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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의 하루"
우리 교회 교인 수는 나와 아내를 포함해서 열넷이다.
강단에 서면 한쪽 눈을 감아도 다른 쪽 눈에 다 들어온다.
숫자로 말하면 금세 셀 수 있고, 이름으로 말하면 한 사람도 가볍지 않다.
대부분이 일흔을 넘겼고, 오십 대가 세 분, 사십 대도 한 분이다. 교인의 반이 복지 카드 소유자다.
다수가 장애인에 다리가 불편한 교인이라 예배하러 오는 일이 잠깐의 외출이 아니라 하루의 큰 결심이 된다.
그래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가 건물 2층 계단을 오르면서 예배실에 들어설 때는 가장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그래서 나는 주일 아침마다 출석 숫자를 세기보다, 그들의 힘겨운 걸음을 먼저 살핀다.
큰 교회처럼 분주한 프로그램은 없지만, 이 작은 교회에도 나름의 숨결이 있다.
누군가는 지팡이를 짚고 오고, 누군가는 약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오고, 누군가는 혈압이 떨어졌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자리에 앉는다. 어제를 보내고 오늘 목사님의 얼굴을 보는 게 감사하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예배실 문을 열면 오래된 공기와 함께 사람들의 삶이 들어온다. 병원 냄새가 조금 섞인 옷깃, 파스 냄새, 때로는 퀴퀴한 삶의 냄새, 그리고 자리에 앉아 기도하며 내는 조용한 한숨까지.
나는 그 모든 것이 어쩐지 거룩하다고 느낀다. 번듯하고 힘찬 것만 예배가 아니라, 이렇게 늦지 않으려고 애쓴 몸과 마음도 예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목회는 때로 달걀로 바위를 치는 일 같고, 구멍 난 항아리에 물 붓는 일 같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있다. 같은 말씀을 여러 번 전한 것 같은데도, 다음 주가 되면 다시 처음부터 말해야 할 것 같고,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 뒤에 들려오는 소식은 늘 사랑보다 서운함에 가깝다.
연세 많은 교인들은 작은 말에도 상처를 깊이 받고, 작은 친절에도 오래 운다. 젊은 사람처럼 금방 털고 일어나는 대신, 오래 기억하고 오래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도 거창한 문장보다 오래 남을 한마디를 더 두려워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 한마디가 한 주의 볕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교회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여기서 느린 기쁨을 배운다. 열네 명뿐인 교회이니 한 사람이 빠지면 금세 빈자리가 크고, 한 사람이 웃으면 예배당 전체가 조금 밝아진다. 성도가 적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산의 1/3을 선교와 구제에 지출할 정도로 마음씀이 아름답다. 오히려 성도가 적으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큰 교회에서는 스쳐 지나갈 표정 하나가 여기서는 오래 남는다.
“목사님, 오늘은 좀 덜 아파요.” 이 한마디가 어떤 날은 성장한 교회 소식보다 더 반갑다. “어제 전화해 줘서 기뻤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목회가 결국 사람을 숫자로 세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붙들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배운다. 목회는 교인을 상대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감당하는 일이라는 말이 내게는 이런 순간에 가장 실제가 된다.
몸이 불편한 교인을 볼 때마다 나는 자주 내 조급함을 들킨다. 나는 자꾸 앞으로 가려 하는데, 그분은 천천히 가야 한다. 나는 예배를 매끈하게 진행하고 싶어 하는데, 그분의 하루는 매끈함보다 버팀에 가깝다. 그럴 때 나는 이 교회의 걸음이 내 걸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오히려 내 걸음이 이 교회의 걸음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빠른 사람의 편만 드시는 분이 아니라, 느린 사람 곁에 오래 서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작은 교회는 내게 목회의 기술보다 목회의 자세를 가르친다. 앞장서는 손보다 기다려 주는 눈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마음이 스산해진다. 나는 잠시 머물 뿐이지만, 이 교회 몇 년 뒤를 생각하면, 지금 앉아 있는 자리들 가운데 반은 비어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장례를 예배보다 더 자주 준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목회자의 마음에도 바람이 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소망을 본다. 이분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남기지 못할지 몰라도, 믿음을 생활의 결로 남기고 있다. 아픈 몸으로도 예배 자리를 지키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작은 헌금을 정성으로 드리고, 자기 걱정이 더 큰데도 다른 교인 안부를 먼저 묻는다. 세상은 이런 것을 대단한 일로 기록하지 않겠지만,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 같다는 믿음이 내게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목회를 성공이나 확장보다,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함께 익어 가는 일로 느낀다. 이 교회의 사계절을 같이 건너는 일, 아픈 날과 괜찮은 날을 함께 기억하는 일, 교회 안팎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 붙들어 주는 일 말이다.
열네 명의 교인과 목사가 함께 버티는 이 조용한 풍경 속에서, 나는 종종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은 아니어도, 하루를 건널 만큼은 충분한 빛을 본다. 크지 않아도 선명한 빛,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오늘을 지켜 주는 은혜의 빛이다.
목회는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하루가 아주 조금 덜 무너지게 하는 일. 그리고 그 작은 덜 무너짐들이 모여, 결국 한 교회를 지탱하게 하는 일. 나는 오늘도 그 일을 하러 예배실 문을 연다.
문을 열면 묵은 바람이 나를 맞이하고, 창문을 열면 새바람이 들어온다. 그다음에는 사람들의 느린 걸음이 들어오고, 마지막으로는 우리를 부르시고 말없이 우리를 기다리시던 하나님이 들어오신다. 그 순서가, 나는 좋다.
최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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