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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32 추천 수 0 2026.03.29 08:37:00
.........
성경본문 : 요12:27-3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27-32: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내 마음이 민망하니라고 하신 주님의 이 마음이 일반사람들과 같은 마음이냐, 아니면 성령에 감화된 마음이냐? ‘민망이란 답답하고 딱하고 안쓰럽다는 의미다. ‘무슨 말을 하리요.’ 기가 차다는 거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하셨을까? 십자가의 사건을 앞에 둔 당신의 마음이 이렇다는 거냐, 아니면 제자들의 신앙상태를 생각하니 염려 걱정이 된다는 거냐? 주석가들은 이 말씀을 당신이 십자가에 달릴 사건을 앞에 두고 불안하고 겁이 나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것과는 거리가 있다. 지금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전날 밤이냐, 조금 더 지나야 십자가에 달리는 거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직전에 지금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고 하신 거나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옵소서라고 하신 것도 주석가들이 주님께서 영원 전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설정 계획을 하셨고, 이 일을 성취하려고 이 땅에 왔지만 막상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시간이 다가오자 무섭고 떨려서 하신 말씀이라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 이건 예수님을 비굴한 분으로 만드는 거다. 우리는 주님의 이런 말씀들을 이룰구원 차원에서 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 여러 곳에 말씀을 해 놓았다. 구약에서도 이에 대해 말씀을 많이 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은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영원 전서부터 당신이 계획을 하셨고, 이 일을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지옥에 가게 되는데 얼마나 떨리는 일이냐? 그런데 주님의 이 마음을 모른 채 막상 십자가에 죽으려고 하니 겁이 나서 염려 걱정과 근심을 하며 고민을 하셨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내 마음이 민망하니라고 하신 것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냐? 당신의 일을 두고 한 말씀이냐,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냐? 영의 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냐, 육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냐?

 

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필연적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떨리고 안 떨리고와 상관이 없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설정된 필연적으로 가감 없이 진행이 될 일이다.

 

25절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믿음의 결단을 말씀하심이고, 26절에서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라고 하신 것은 주님을 믿는 자의 존귀성을 말씀하심이다.

 

이 세 구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27절의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하신 것을 보면 예수 당신이 당할 일을 앞에 놓고 하신 말씀이겠느냐, 당신을 따르는 교인들의 신앙상태를 생각하니 민망하고 답답하고 딱하다는 거겠느냐?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존귀 영광성을 말씀해 주셨는데도 이것을 깨닫지 못해서 진리본질에 적중성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교회에 다니며 평생을 물질을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목숨을 바쳐서 봉사를 해도 이룰구원은 없고, 예수님께서 이뤄놓으신 약속된 효력을 보지 못하고 형벌과 진노로 사라진다면 이런 답답하고 민망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까 당신의 십자가를 두고 염려 걱정을 하면서 그 말씀을 하신 게 아니라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의 효력을 보지 못할 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하심은 당신을 믿는 우리가 이룰구원 면에서 효력을 보라는 거다. 그런데 이 면을 모른 채 충성봉사를 하고서도 심판을 받는다면 이게 얼마나 민망한 일이냐? 주님은 이 면을 놓고 우리를 위해 염려 걱정을 하심인데 주석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놓고 겁이 나서 벌벌 떠는 장면으로 묘사를 해놨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저 뒤에 가서 벌어질 일인데 여기에서 미리 말씀하심은 지금의 우리에게 너희들은 구원의 효력을 보고 오너라라고 하시는 거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분인데 무엇을 못해서 당신을 구원해 달라고 하겠느냐? 당신의 인간을 구원하는 사역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이 된 거다. 그래서 기본구원을 받은 교인들이 할 일은 이 기본구원을 바탕으로 하고 각자 이룰구원을 이뤄가는 거다.

 

이것을 인간의 수준에 빗대서 생각을 하면 주님께서 인간이 이뤄가야 할 구원의 일에 매달리게 되면 기독자 전제적인 기본구원에 관한 바탕을 이루지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작은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큰 것을 놓친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의 이룰구원을 염두에 두고 우리를 위해 당신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거다. 그러니까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라고 하는 것은 알고 보면 당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다. 세상에서도 이런 이치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은 국가의 대사가 있으면 이것부터 먼저 해야지 이건 버려두고 자기 가정의 작은 일에 매달리게 되면 대국적인 큰일은 놓치게 된다. 또 한 뜻은 교인들 개체마다 이룰구원이 잘 이뤄지도록 구원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라고 하셨는데, ‘내가 이를 위하여란 우리의 이룰구원을 말함인데, 이 이룰구원도 예수님의 대국적인 큰 구원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요, 이 이룰구원은 내가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입고 내가 이뤄야 하는 거지만 대국적으로 보면 이 일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24절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하신 이 일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요, 25절의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라고 하는 것은 예수 믿는 내가 할 일인데 이 일 역시 대국적으로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령님과 유기적으로 되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예수님께서 독권적으로 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이루는 이룰구원은 내가 할 일인데, 이룰구원을 내가 하게 하신 것은 천국의 누림의 차등성의 효율성을 위함인데, 이룰구원도 주님이 다 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심판이고 상급이고 차등이 없게 되기 때문이요, 이렇게 되면 인간에게 인격성을 주신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열둘은 택하였고 하나는 아니니라라고 말씀을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안 택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예를 들면 딸이 홀어머니를 모시느라고 시집도 안 가고 같이 늙는 경우가 있는데, 딸도 인간창조의 목적이 있는 존재이니 딸은 시집을 가서 남편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는 게 구원이다. 홀어머니는 남의 인생을 빼앗으면 안 된다. 시집을 가서 자녀를 낳고 자녀들을 예수 믿게 해서 구원을 이어가는 게 옳은 거다. 그리고 일찍 과부가 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이룰구원에 안 맞는다. 우리가 사는 기준은 언제나 영 위주라서 영적인 면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들은 허망하게 살다가 간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이 모양이냐? 기독교라고 하면 다 믿는 우리를 말하는 거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종들이 성경을 깨닫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가르쳐서 교인들이 제 마음대로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적으로 보면 오늘날 교인들이 애굽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고, 광야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고, 광야를 거쳐 가면서 훈련과 연단을 받으며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

 

28-30: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인자는, 즉 예수님은 높이 들려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된다. 그러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나타낼 자가 누구냐? 이방인이 아닌 아들이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의 가치판단과 모든 속성을 가지지 못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만큼 높이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를 잘 알아야 아버지만큼 높일 수 있다.

 

마지막 시대에 사는 교회인 자기는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으냐? 그렇다면 질적으로 아버지의 본질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세상성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못 높인다. 하나님의 본질의 것을 가져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다하고 하나님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땅의 지식과 철학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높일 수 없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내가란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했다는 거다. 그러면 아들이 무슨 기도를 했기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고 이 말씀을 하시는 걸까?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나타낼 자는 아들이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의 가치판단과 모든 속성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리 아버지를 높인다고 해도 아버지를 아버지만큼 높이지 못한다.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면 하나님의 본질을 가져야 하고 아버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기독자들이 세상 것을 달라고 한다면 이 사람으로 통해 아버지가 높아지겠느냐?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아직 십자가에 달리기 전인데 아버지께서 언제 아들을 영광스럽게 했느냐? 첫째는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하셨고, 두 번째는 변화산상에서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말씀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의를 위해 세례를 받고, 구약과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하나님과 의사단일의 본질의 신앙으로 이룰구원을 이루고 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스러워 하신다.

 

예수님의 모든 이적과 기사와 표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이다.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함은 이런 가운데서 구원도리를 발견해서 하나님의 속성을 입는 것을 말한다. 영적 속성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게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거다.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 말을 들은 무리 중에 어떤 이는 우뢰가 울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천사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예수님에게는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영광스럽게 할 거다라는 말로 들렸다.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의 한 말씀인데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렸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생길까? 사람들의 믿음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문제인가? 여러 가지 말로 들리는 사람이 문제인가,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이 문제인가? 인격적으로 아버지와 의사단일인 아들에게는 영광의 약속으로 들리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는 두렵고 무섭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소리로 들리고, 어떤 자들에게는 자기가 아닌 남에게 말을 하는 것으로 들렸다. 자기가 된 것만큼 들리는구나.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 소리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적 실질적으로 자기에게 어떻게 들리느냐? 자기에게 들리는 소리가 현재 자기의 신앙의 정도요 상태다. 속일 수가 없다. 말씀 앞에서 이치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내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난다.

 

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임금이 쫓겨나리라.’ ‘심판이란 구별 분별 판단을 해서 정죄하는 거다. 심판자는 절대적인 공의와 공정과 공평과 만능의 능력이 이 땅에서만 아니라 온 인류가 죽음의 선을 넘어가서도 변함이 없는 공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분이라야 심판을 할 수 있다.

 

심판을 받을 자는 세상임금이라고 하는데, 신앙 면에서 성분적으로 이질적 타락적 사망적인 자기 주관성이 들어있는 사람은 다 임금이다. 왕이다. 어린아이도 자기 집에서 임금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임금이 수없이 많다. 마치 한 마리의 문어의 몸에 다리가 여러 개가 달려있어서 몸과 같이 움직이듯이 먹으라는 생명과는 안 먹고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저주받고 타락된 사상을 주격으로 하고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임금이다. 마귀라는 존재 하나만 죽이면 교인들 속에 들어있는 마귀의 성질이 다 죽느냐? 거짓된 이단자 하나를 죽이면 교인들 속에 들어있는 이단성이 다 없어지느냐? 그렇지 않다. 빛 된 진리의 옳음이 각 교인들 속에 들어가야 한다.

 

이 마지막 시대에 거짓된 자들과 이단자들의 정신과 사상이 예수이름과 성경을 빙자하여 전 세계 교회적으로 왕 노릇, 임금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 이런 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자기 속에 어떤 임금이 들어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고 했는데, 다른 곳에 보면 심판은 마지막 때 한다고 하기도 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용어가 같다고 해서 뜻이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 ‘심판이라고 할 때 세상 마지막 때의 심판이 있고, 이룰구원의 교훈 면에서 현재에서 되어지는 심판이 있다.

 

현재적 심판은 믿는 사람이 말씀을 깨달아서 현실을 살면서 닥치는 사건과 환경 가운데서 구별 분별을 해서 천국의 것을 택하든지 세상의 것을 택하든지 하는 심판이다. 마지막 때의 심판은 현재에서 천국의 것과 세상의 것을 택하는 심판이 아니라 네가 세상을 살면서 선택을 하며 산 것이 바로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하는 면의 심판이다.

 

인간은 심판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의 것과 세상의 것을 구별하고 분별해서 천국의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이게 현재적 심판이다. 우리는 목적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지식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신앙의 질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천국의 것을 선택해야 한다. 현재에서 이 선택, 즉 심판을 잘 해야 마지막 심판에 걸리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별 분별을 해서 심판을 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 주셨다. 만일 주님께서 이 땅에 사시면서 이 일을 안 한다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는 거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목사가 천국 것과 세상 것, 사망과 생명, 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별 분별을 안 해 준다면 목사가 필요 없는 거다. 교회는 세상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거다. 예수님의 오심은 세상의 그 누구도 못하는 일을 하기 위함이다. 예수가 아니면 아무도 천국의 일을 못한다. 그래서 오신 거다. 예수님은 사대 성인 중에 한 분이 아니다. 예수님이 사대 성인 중에 하나라면 예수님을 죄인취급 하는 거다. 사람을 진리로 깨닫고 알게 하여 구원이 되는 생명운동을 하게 하려고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거다. 이게 오신 여러 목적 중에 하나다.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인데, 우리는 이 말씀을 교훈적인 면으로도 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존재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일어나셨는데 그냥 죽었다가 살아나신 게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살아날 수밖에 없는 요소로 사셨기 때문에 부활을 하신 거다.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이 땅에 사시면서 죽을 게 없이 사셨고, 죽은 게 없이 사셨고, 생명적으로만 사셨기 때문에 이로 인해 부활 승천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룰구원의 이치로 보여주셨으니 예수 믿는 우리는 현재에서 계속 죽지 않을 정신으로 살면, 즉 사는 것으로 살면 남보다 먼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는 거고, 이렇게 살면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된다고 약속을 하셨다. 따라서 믿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가치판단 평가를 살아있는 지식과, 살아있는 지혜와, 살아있는 도덕성과, 살아있는 능력성에 내리고 살면 먼저가 되고, 우두머리가 되고, 앞서 나가게 된다. 이게 예수 믿는 효력이다.

 

우리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는 말씀이나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자기의 현재로 끌고 와서 죽지 않는 정신과 사상과 지식 면으로도 봐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기 전에 죽은 것, 죽을 것이 없이 전부는 사는 것, 살리는 것으로 사셨듯이 믿는 우리도 살리는 운동, 일으키는 운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운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게 교회요, 이게 참 신앙이요, 이게 참 예수 믿는 거요, 이게 효력을 보는 믿음이다. 여기에는 죽음이 근접을 할 수 없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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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2 요한계시 종말의 직전 현상 10. 말세에 나타날 두 증인 계11:3-5  강종수 목사  2026-01-11 78
18351 요한복음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요11:53-12:2  김경형목사  2026-01-11 30
18350 요한계시 작은 책 계 10:7-10  강종수 목사  2026-01-04 71
18349 요한복음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11:50-53  김경형목사  2026-01-04 34
18348 요한복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게 유익하다. 요11:48-52  김경형목사  2025-12-28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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