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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39] 2026년 3월 29일 일요일
그래도 우리는 혜화동에 삽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3월 29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날씨는 봄의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시형 박사는 올해(2025년) 92세이지만,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강연 준비를 하며, 최신 연구 동향을 찾습니다. 그는 이 같은 하루 일과 중 식사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 박사는 하루 세 끼를 모두 챙겨 먹지만, 양보다는 질과 리듬을 중요시합니다. “아침 식사는 몸을 깨우고 정신을 선명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침을 아주 단순하게 챙겨 먹는데, 밥 한 공기 대신 가볍게 누룽지에 채소와 계란을 곁들입니다. 브로콜리, 토마토, 사과 한두 쪽, 삶은 계란 하나로 충분하며, 이를 통해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을 고루 섭취합니다. 점심 식사는 규칙적인 시간에 먹습니다. 주로 현미밥, 두부, 생선, 나물 중심의 한식 위주로 소식(小食)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저녁 식사는 가장 간단합니다. 때로는 과일 한두 쪽이나 죽 한 그릇만 먹습니다. 철칙은 잠들기 4시간 전에는 식사를 끝내는 것입니다.
엄마의 기억은 매일 아침 파도에 씻기는 모래 그림처럼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백지 위에서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합니다. 퍼즐 조각은 때로 맞지 않고, 우산은 방안 가득히 펼쳐져 혼란스럽지만, 그 모든 것 어그러짐도 우리 삶의 소중한 무늬였음을 이제는 압니다.
엄마는 아직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양시설도, 완전히 분리된 공간도 아닌 이 정겨운 혜화동에서 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오가고, 관광객이 길을 묻고, 늦은 밤까지 카페의 불빛이 창가를 비추는 이 동네는 늘 조용하지만은 않습니다. 엄마의 속도와 자주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길을 헷갈려 생각합니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흐릿하고, 집이라는 말의 의미도 날마다 새로 배웁니다. 그런데 혜화동의 골목은 이상하게도 낯선 여행하는 엄마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습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도 누군가는 대답해 주고, 느린 걸음에도 누군가는 기다려 줍니다. 이름을 잊은 순간에도 얼굴을 기억해 주는 이웃들의 다정함 속에서,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곳임을 배웁니다.
“언니는 오데 간노? 엄마는 아즉 방에서 자고 있나?”
어느결에 가장 의지했던 큰이모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찾는 엄마의 물음에 가슴 한구석이 시려 올 때가 있습니다. 이제 좀 나아졌나 싶어 마음의 끈을 놓으려 할 때마다, 엄마는 어김없이 기억의 저편에서 길을 잃고 그 말을 던집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당황하며 눈시울을 붉히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이모는 잠깐 나가셨나 봐요”라고 부드럽게 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엄마의 헝클어진 시간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함께 길을 잃어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자라난 모양입니다. (출처;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에서, 김영연 지음)
●그들의 마음을 열어 이 모든 성경의 말씀들을 깨닫게 하셨다.(눅24:45)
●살아보니 제일 아름다웠던 순간도 가슴 아팠던 순간도 다 소중하게 모여 기억이 된다. 뇌가 쪼그라들어도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으로 살더라(김혜자)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낮아짐의 행복’을 배웠다
에티오피아 세인트폴 대학병원과 우간다 명문 마케레레 대학 사이의 의료 협력을 위해 3년 만에 우간다 땅을 밟았습니다. 캄팔라에서 재회한 민철 씨는 40대 나이에 ICT 전문가라는 본업을 뒤로하고 현지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의대생입니다. 내가 10년 전 우간다를 떠나며 남겨둔 낡은 차를 소중히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운전하는 내 차를 타고 가며 들은 뜻밖의 이야기는 이번 여정의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민철 씨가 임상 실습 중에 만난 한 내과 의사의 사연. 그 의사는 마케레레 의대생 시절, 물라고 병원에서 실습하며 내가 환자들을 돌보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좋은 기억 덕분에 내과 의사의 길을 택했고, 이제 스승의 지인인 민철 씨의 실습을 돕고 있었다. 사실 내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는 제자였습니다. 우간다에서 나로 인해 내과 의사가 된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디딘 때를 떠올리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30여 년 전, 아프리카로 향하던 내 마음은 저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더 잘사는 나라에서 온 의사로서 척박한 땅에 뭔가 베풀어 주겠다는 시혜적 태도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오만한 마음으로는 그 땅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당시 우간다는 거듭된 내전으로 치안이 극도로 불안했습니다. 밤마다 창밖에서 들리는 총소리는 나를 깊은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도착 한 달 만에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전날 내게 신발을 팔고 직접 신발 끈까지 매어준 다정한 한국 교민이 출근길에 총격당해 사망한 것입니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그의 시신을 검안해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엔테베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대사관 운전기사마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러자 내 눈에 비친 현지인들은 더 이상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는 강도 아니면 거지로 보였습니다. 환자가 구름처럼 몰려 왔지만 치료할 약제조차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회의감이 밀려왔고, 머릿속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바꾼 것은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삶’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타인과 눈높이를 맞추는 삶의 자세를 배우면서 시선이 교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베풀고자 했을 때는 나도 괴로웠고, 인상을 쓰고 있는 외국인 의사를 대하는 현지인들도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낮아져 그들 중 하나가 되려 하자 그들의 아픔과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이웃이 돼 고통을 나누자, 그들은 비로소 내 친구이자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치는 늘 높아지는 것에 매몰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집,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권력을 움켜쥐려 합니다. 그러나 높아지려는 삶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경쟁과 질시, 모함을 동반합니다. 성공하면 교만에 빠지고 실패하면 열등감에 괴로워하며 주변 사람들까지 피로하게 만듭니다. 반면 낮은 곳에 마음을 두는 삶은 여유가 있습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기에 공포에서 해방됩니다. 남의 시선에 낭비되던 에너지가 오롯이 내 내면과 주변 사람들의 필요를 향하게 됩니다. 낮아짐이 주는 첫 번째 축복은 이 ‘자유’에 있습니다.
또한 낮아지는 삶은 ‘나’를 비워 ‘우리’를 채우는 삶입니다. 내 고집과 권위를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방의 진실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에게 유익을 주겠다는 마음은 결코 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유익은 결국 나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우간다에서 만난 제자가 내 작은 성실함에 감동해 훌륭한 의사가 됐고, 이제 내가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까지 돌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 역시 그 선순환의 수혜자가 된 셈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물잔 비우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새로운 기쁨이 들어올 자리가 생깁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30여 년 세월이 풍요로웠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세속적인 비교의 잣대를 던져버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영혼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삶은 투명해지고, 그 투명함 속에서 본질적인 기쁨을 만나게 됩니다.
‘낮아짐의 행복’을 알게 된 데 감사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얼마나 낮아져 있는가? 진정한 낮아짐은 단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내 생각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내면의 실력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부족함 투성이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시간들이 제자들과 이웃들에게 작은 울림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과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행복은 수직적 상승에 있지 않고, 수평적 넓어짐과 낮아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한 계단 올라가기보다 한 뼘 더 낮아지고 싶습니다. 낮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와 살아있음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출처 ; ( 유덕종의 아디스 레터에서, 유덕종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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