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1~24 ‘그래서’ 못 믿습니까, 믿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는 사건은 서양 근대철학사에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헤겔은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을 통해 아브라함을 인류 보편의 도덕률을 부정한, 문명화가 덜된 사회의 미성숙한 인물로 설명하였습니다. 반면 키에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신앙의 영역은 윤리의 보편성 너머에 있다며 ‘그래서’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근대 이성의 성을 쌓은 헤겔과 그 성벽에 틈을 내어 실존의 바람을 불어 넣은 키에르케고르 사이에서 당신의 믿음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믿음 좌표는 ‘그래서 믿지 못한다’와 ‘그래서 믿는다’ 중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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