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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2::3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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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2장 36절-38절: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6절: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예수님의 활동의 시간이 지나면 못 믿는다는 거다. 무슨 말이냐? 진리본질이 있을 때, 구원이 있을 때 믿어라. 떠나면 끝이다. 못 믿는다. 네가 살아있을 때, 그리고 진리본질이 있는 곳에서 믿어라. 너도 떠나고 진리의 종도 떠나면 끝이다. 살아있을 때 믿고 교제를 해야지 죽으면 이룰구원도 없다.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빛의 아들’이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지혜지식성과 하나님의 도덕성과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본질로 성품화 인격화 영적 실상화로 되는 거다. 이러면 사람의 질이 안 믿는 사람과 완전히 달라진다. 하늘의 사람과 땅의 사람으로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시대분별, 교훈분별, 교회분별을 하면서 자타의 이룰구원을 잘 해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거다.
유월절 전날 밤에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고 있었다. 예수님의 가슴에 기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다 듣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는데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른다면 자기에게 문제가 있거나, 인도자에게 문제가 있거나, 둘 다에게 문제가 있거나 한 거다.
예수를 믿는다면 진리본질의 교훈을 받고 주님의 의사와 단일이 되어야 한다. 계: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천사로 내려오고, 천사로 통해 사도요한으로 변질이 없이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는 중간에서 틀어지면 안 된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에베소 교회는 생명과가 감추어졌다. 처음 사랑이에서 떨어졌다. 남을 시험하며 큰소리를 쳤지만 자기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몰랐다. 즉 어디에서부터 하나님의 본질에서 빗나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빗나갔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숨겨진 생명과를 먹지 못한다. 하늘의 만나를 못 먹는다. 이걸 알아라.
가룟유다가 돈을 받고 스승을 판 것은 가룟유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냐, 예수님께서 돈을 좋아하고 구했기 때문에 가룟유다가 이걸 배워서 그런 거냐?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는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돈에 욕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팔게 된 거다. 세상을 구하고, 부자를 구하고 있다면 이것은 한 마디로 돈을 구하는 것이니 가룟유다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돈 돈’ 하기 때문에 가는 곳곳마다에서 빛의 아들이 아닌 어두움의 아들 짓을 하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근검하게 살지 않아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 돈을 잘 빌리면 믿는 사람에게서는 더 많이 빌리게 된다. 이건 어두움의 자식이다. 마귀 짓을 하는 자식이다. 예수 믿으면서, 교회에 다니면서 복 받을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누가 복을 갖다주느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빛 되신 분이 왜 숨느냐? 빛 되신 분은 가는 곳곳마다 빛이 날 텐데 어디에 숨겠느냐? 그러니까 숨는다는 것은 영적 정신적 사상적인 뜻으로 말씀을 하는 거다. 성경의 글자는 읽지만 성경을 봐도 영적인 뜻이 안 보인다면 이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숨어 계시는 거다. 반대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이 보여진다면 이것은 빛 되신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나타나신 거다. 이건 성령의 역사다.
예수님께서 숨으시는 이유가? 1.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꾸 핍박하는 것을 못 견뎌서? 2. 유대인들에게 맞아 죽을 까봐? 3. 유대인들이 진리생명의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에? 4. 유대인들이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기 때문에. 5. 유대인들이 교만자들이기 때문에? 6. 유대인들이 이적과 기사와 표적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어느 거냐?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37절-38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알고 이 말을 했을까? 선지자는 자기 마음대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말을 하는 거다. 선재적 그리스도가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을 해 놓은 거다.
선지자의 말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겉으로 보면 사건에 관한 말 같으나 사실은 사람에게 이뤄지는 거다. 이게 성경이다. 그래서 교회의 교훈은 사건 환경의 파고를 이기고 영능의 실력자가 될 수 있는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게 교회고, 성경해석이고, 선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올 거다’ 라는 말만 하고 그 사건이 오면 어떻게 대처하고 헤쳐나가야 한다는 교훈이 없으면 그 사건이 오면 벌벌 떨게 된다. 신앙 면에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안 보이는 게 더 무서운 것이니 교회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영감적으로 직감할 수 있도록 영의 눈을 밝혀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나에게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이다. 성경에 이미 이뤄진 것도 이것을 지금의 나에게 들고 와서 ‘네가 이렇게 살면 결과가 이렇게 된다’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서 예언의 말씀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정신을 모르면 제 마음대로 적당히 주관적으로 교만하게 살게 된다. 이건 헛똑똑이다.
성경에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된 말씀은 지나간 말로 했더라도 시간이나 장소에 상관이 없이 지금의 나에게도 그대로 역사가 되어 나간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다 나에게 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생명책이요 사망책이다. 그러니 나부터 깨닫고 고치고 빛이 되어야 다른 사람도 빛이 되게 고쳐줄 수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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