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27~48:7 내가 또 다른 ‘나’를 위하여 할 일
우문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처음 사람 아담에게도 수명이 있었을까요? 죽음이 죄의 결과라면 죄에 오염되기 전의 아담은 영생의 존재였겠죠? 하지만 범죄 한 후, 유한성의 상징인 죽음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런 중에도 자손을 통해 가계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아버지가 계십니다. 닮고 싶었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극복해야 했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또 다른 ‘나’입니다. 같은 이치로 자녀 역시 또 다른 ‘나’입니다. 그렇게 ‘나’는 시간 속에 연속하여 존재합니다. 이 연속성의 신비가 참된 가치를 지니려면, 아버지는 나에게, 나는 자녀에게 좋은 가치와 아름다운 전통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약속’이라고 합니다.
죽음이 임박한 이스라엘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입양하여 축복한 것은, 육신의 혈통을 넘어 언약의 지경을 넓히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혜의 연속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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