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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48] 2026년 5월 31일 일요일
엄마를 지키자!
할렐루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5월 31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선선합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일본 사람이 쓴 책 중에 ‘물은 답을 알고 있다’가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답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성경 66권 전부는 그만두더라도 오로지 창세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창세기에 인간의 문제가 있고 그 답도 있습니다. 창세기만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저는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요컨대,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이고, 그 죄는 법(하나님, 말씀)을 어김(불순종)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법을 어겨서 그 법망에 걸려든 사람들입니다. 그 외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 밖에서 죄수(죄인)로 살고 있습니다.
몸을 튼튼히 하고 마음을 강하게 한다는 ‘건체강심(建體康心)’의 뒤를 이어 ‘효천애교(孝踐愛橋)’가 따라온다는 이치를 알았습니다. 일단 내 몸이 바로 서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단전호흡에 집중하며 만물과 하나가 된다는 ‘일화창생(一和蒼生)’을 읊조리다가도, 정작 ‘효천애교(孝踐愛橋)라는 네 글자에 이르면 명치끝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하늘에 효도하고 사랑의 다리가 된다는 그 숭고한 문장이, 치매 엄마를 둔 나의 현실 앞에서는 자꾸만 숨을 막아 세웠습니다. 우리네 부모들이 본능적으로 실천해 온 그 지독한 ‘효’에 대하여, 저는 명치의 통증을 느끼며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습니다. 내 틀에 맞춰 엄마를 꺾으려 했던 고집,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썼던 책임감이 호흡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깊은숨을 토해 내며 굳어 있던 명치를 쓸어내립니다. 사랑의 다리가 된다는 것은 엄마를 제 마음대로 끌고 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엄마가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제 몸을 낮게, 그리고 단단하게 눕히는 일임을 알 것 같았습니다.
지하철의 정적 속에서 저는 다시 숨을 들이마십니다. 내 몸의 존엄을 지키는 이 호흡이, 결국 엄마를 향한 정직한 사랑의 다리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출처 ;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김영연 작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십계명 중에서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엡6:2]
●과거를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미래도 멀리 볼 수 있다.(윈스턴 처칠)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 속에서 덜 흔들리는 법
5월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 계절입니다. 결혼식이 이어지고, 모임이 잡히고, 오랜만에 연락이 옵니다. 초록이 짙어지면서 몸과 마음도 더 분주해집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자리가 있었습니다. 과거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청계천을 따라 두 시간 정도 걷는 모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는 행사 시작 전부터 마음이 바빴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먼저 인사해야 하나. 누가 나를 반갑게 맞아줄까. 혹시 어색해지지는 않을까.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무심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사람들 속에서 왜 우리는 쉽게 지치는가? 사람이 많은 자리에 가면 그런 생각들이 의외로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듭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과속하기 시작합니다.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받으려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나는 굳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인사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갔습니다. 억지로 말을 이어가거나 괜히 존재감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천천히 걸었습니다.
사람들 무리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혼자 걷는 느낌으로, 청계천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느끼며, 지금 내 발걸음에만 조금 더 집중하면서 걸었습니다.
신기한 건 오히려 그럴 때였습니다.
예전에는 다소 서먹했던 사람도 먼저 웃으며 말을 걸어왔고, 오래전 함께 일했던 사람도 농담을 건넸습니다. 억지로 관계를 붙잡으려 할 때보다, 담담하게 자기 리듬을 지킬 때 사람들도 나를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일까요?.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 법’만 배우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외면하면 괜히 마음이 흔들리고, 단체 모임을 다녀오면 공연히 피곤해집니다. 집에 돌아와 “괜히 갔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특히 지금 같은 조급함과 번 아웃의 시대에는 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밖에서 하루 종일 비교당하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ㅈ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건 의외로 ‘과잉 존재감’이 아닙니다.
너무 애쓰지 않는 사람. 과시하지 않는 사람. 억지로 친해지려 하지 않는 사람. 오히려 그런 사람 곁에서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저 역시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배우는 것 같습니다. 관계는 억지로 끌어당긴다고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마다 거리와 리듬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사람 많은 자리에 가도 예전처럼 애써 중심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듣고, 웃고, 필요한 말만 하고, 혼자 있는 순간도 견디려고 합니다.
청계천 물은 말 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걸어갔고, 그 사이를 지나며 나도 걸어갔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내 걸음으로. (출처 ; ‘마음 건강 길’에서, 함영준 마음 건강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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