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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교리와 살아 숨 쉬는 언어
며칠 전, 어느 교단이 발표한 신학적 입장을 접하고는 갑자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거대한 명제의 감옥 속에 갇혀 버린 느낌을 받았다.
교계와 신학계는 ‘전능(全能)’, ‘전지(全知)’, ‘천지창조’라는 웅장하고 압도적인 신학적 수사들을 동원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올바르게 고백하는 것이라 믿는 이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성경의 언어로 고백하는 것을 유일한 진리 수호의 길로 여겨 그 기둥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당장 기독교 세계가 파산할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교리의 성벽을 더 높고 단단하게 쌓아 올린다.
그러나 묻고 싶다. 정말 그런 거대 담론의 언어로만 말해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 건가.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거창한 형용사를 헌정해야만 만족하는 분이라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너무나 메마르고 고독한 군주에 불과하지 않을까?
참 하나님은 교리서의 두꺼운 책장 사이가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일상과 자연의 결 속에 살아서 출렁인다. 우리가 그분이 참 하나님임을 삶으로 부정하지 않는다면, 비록 거창하게 고백하지 않아도 언제나 넉넉한 삶의 자리를 내어주신다,
계절의 바뀜을 따라 소리 없이 피고 지는 들꽃의 순리 속에서, 모진 바람에 온몸이 휘청이면서도 끝내 하루를 살아내는 이웃의 눈물겨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숨결을 만난다. 거친 먼바다를 묵묵히 품어 안는 큰 배의 의연함처럼, 부서지고 깨진 삶의 자리마다 가만히 돋아나는 회복의 날개 속에서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으며, 또 증거하고 있다. 가장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도 하나님을 말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도-물론 일부에 제한된 일이라 믿고 싶지만-기성 종교의 언어는 날로 고집스러워진다.
질문을 잃어버린 신앙은 상상력과 성찰의 빈곤을 낳았고, 그 빈곤함을 숨기기 위해 ‘진리 수호’라는 엄숙한 명분을 앞세운다. 시대착오를 신실함으로 착각하는 서글픈 풍경이다.
물려받은 낡은 교리의 껍데기만 웅얼거리는 이 메마른 유산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상력도, 삶을 껴안는 따스한 성찰도 사라진 이 박제된 신앙의 언어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과연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그들이 숨 쉴 영적인 대지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화석 같은 교리가 아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고백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그들만의 언어’를 찾아주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관에서, K-팝 공연장에서, 드라마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분출하는 신앙의 마그마를 왜 느끼지 못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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