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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9] 크리스토프 슈뵈벨(Christoph Schwöbel, 1955~2021)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3 추천 수 0 2026.06.27 23:05:19|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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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크리스토프 슈뵈벨(Christoph Schwöbel, 1955~2021)
크리스토프 슈뵈벨은 현대 독일 신학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역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혁명가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무너져 가던 신학의 기초공사를 다시 시작한 건축가였다.
20세기 후반의 신학은 거대한 폭풍을 지나고 있었다. 세속화는 신앙의 성벽을 갉아먹고 있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라는 단어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많은 신학자들이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표류할 때, 슈뵈벨은 마치 오래된 항구의 등대지기처럼 삼위일체라는 고전적 교리의 불을 다시 밝혔다.
그의 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 중심적 현실 이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 근대 신학에 의문을 던졌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게 만드는 토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저작을 읽다 보면 인간의 목소리보다 하나님의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신학의 카메라가 인간 얼굴에서 하나님 얼굴로 방향을 틀어버린 셈이다.
특히 그는 삼위일체 신학을 현대 신학의 심장부로 되돌려 놓으려 했다. 하나님은 외로운 독재자가 아니라 성부·성자·성령의 영원한 교제라는 것이다. 슈뵈벨에게 세계는 경쟁의 전쟁터가 아니라 관계의 우주다. 존재란 고립된 점이 아니라 연결된 선이다.
이 점에서 그는 바르트 이후 가장 정교하게 하나님 중심 신학을 재건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문장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논리는 독일제 시계처럼 정교하다. 허술한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 그의 신학은 마치 중세 대성당 같다. 웅장하고 치밀하며 균형 잡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비판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슈뵈벨의 신학은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다. 너무 정교해서 오히려 현실의 먼지와 땀 냄새가 잘 스며들지 않는다. 그의 하나님은 장엄하지만, 때로는 거리의 소음보다 도서관의 침묵 속에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몰트만이 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희망을 외쳤다면, 슈뵈벨은 연구실에서 정교한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몰트만의 신학이 화산이라면, 슈뵈벨의 신학은 천문대다. 하나는 세상을 흔들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설명한다.
그래서 어떤 독자들은 그의 신학을 읽으며 감탄한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한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 안에 고통받는 현대인의 숨소리는 충분히 들리는가?”
그럼에도 크리스토프 슈뵈벨은 현대 신학이 잃어버린 중심축을 복원하려 했던 보기 드문 신학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시대정신의 손님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정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 놓고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위대함이자, 동시에 그의 한계였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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