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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15] 조지 헌싱어(George Hunsinger, 1948~ )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5 추천 수 0 2026.07.03 21:18:12|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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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조지 헌싱어(George Hunsinger, 1948~ )
조지 헌싱어는 신학계의 통역사라기보다 번역기 자체를 갈아엎은 사람이다. 많은 학자들이 20세기 신학의 거봉인 Karl Barth를 해설하려고 애썼지만, 헌싱어는 그를 단순히 설명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바르트의 거대한 사유 체계 속으로 들어가 건축가의 설계도를 펼쳐 보이듯 그 구조를 해부했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바르트는 종종 모순적인 인물로 읽혔다. 자유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 혁명가인가, 정통주의자인가? 헌싱어는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바르트의 신학을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보았다. 바이올린만 떼어 들고 음악을 평가할 수 없듯, 몇몇 문장만 인용해서 바르트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싱어의 대표작들은 바르트를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대화 상대로 복원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 속 인물이 걸어 나와 오늘의 문제를 토론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신학을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의 진짜 강점은 학문적 정밀함과 교회적 열정을 동시에 품었다는 점이다.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학문과 교회 사이의 다리를 잃어버렸다. 한쪽은 지나치게 학문적이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실용적이다. 헌싱어는 그 사이를 왕복하는 보기 드문 여행자였다. 그는 바르트를 연구하면서도 예배를 잊지 않았고, 교리를 탐구하면서도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신학 서가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인권 문제와 고문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신학이 세상을 해석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신학은 책상 위의 잉크가 아니라 거리의 먼지까지 묻어 있는 신학이다.
만약 바르트가 거대한 산맥이라면, 헌싱어는 그 산맥의 지도를 다시 그린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지도는 수많은 신학자들이 여전히 길을 찾기 위해 펼쳐 보는 현대 신학의 필수 장비가 되었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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