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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16]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 1934~2022)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9 추천 수 0 2026.07.04 22:24:34|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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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 1934~2022)
로드니 스타크는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수많은 신학자들의 서가 한가운데에 그의 책이 꽂혀 있다. 역사가도 아니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이 그의 주장에 반박 논문을 쓰느라 바쁘다. 그는 사회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던진 질문은 신학과 역사학의 심장부를 향해 날아갔다.
스타크는 마치 범죄 현장의 수사관처럼 기독교의 탄생을 조사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혹은 “교리가 매력적이었다”고 말할 때, 그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몇 명이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교회가 커졌다는 건가?”
그의 연구실에는 성화보다 통계표가 더 잘 어울렸다. 그는 신앙고백 대신 사회조사 방법론을 들고 초기 기독교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기독교는 단순히 좋은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성장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공동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성장했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족마저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병자 곁에 남았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고,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우고, 과부를 돌보았다. 스타크는 바로 이런 행동이 역사를 바꾸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기독교는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아니었다.
오히려 도시 골목길을 따라 조용히 번져가는 불꽃이었다.
그는 특히 초기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당시 로마사회는 여성에게 가혹했다. 그러나 기독교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존엄을 인정했고, 이것이 교회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스타크의 글은 때때로 신학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는 기적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적만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도 역사 속 인간을 통해 일하셨다. 그래서 신앙과 사회구조를 동시에 바라보아야 했다.
그는 또한 중세에 대한 통념에도 도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세를 암흑기로 묘사할 때, 스타크는 오히려 서구 과학과 대학, 경제 발전의 토대가 기독교 문명 안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으면 마치 익숙한 역사가 뒤집혀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만약 Karl Barth가 천둥처럼 신학의 하늘을 흔든 인물이라면, 스타크는 현미경으로 역사의 바닥을 뒤집은 인물이다. 바르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물었다면, 스타크는 “그 믿음이 실제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추적했다.
그는 신학의 성벽 밖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수많은 신학자들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서게 되었다. 로드니 스타크는 교회의 설교단이 아니라 통계자료 속에서 기독교의 생명력을 발견한, 매우 드문 종류의 순례자였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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