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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세기의 신학자17]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 1950~ )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5 추천 수 0 2026.07.05 22:20:22|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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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 1950~ )
로완 윌리엄스는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는 설교자이기 이전에 언어의 깊이를 파고드는 시인이며, 교회의 최고 직위에 올랐지만 권력의 문법을 끝내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다. 신학자는 많지만, 그는 신학을 “설명”하지 않고 “침묵의 구조”로 끌고 간 드문 유형이다. 그의 문장은 항상 부드럽지만, 그 부드러움은 칼날처럼 사고를 가른다.
그는 교회를 통치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교회가 이미 잃어버린 “듣는 능력”을 회복시키려 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명령이 아니라 호흡에 가깝다. 하나님을 체계로 정리하려는 순간마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한다. “너무 빨리 말하지 말라. 신학은 말하기 이전에 먼저 경청이다.” 이 태도는 성공회의 전통 안에서조차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급진적이다.
그의 사고는 철학과 신학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닌다. 그는 도그마를 돌처럼 고정하지 않고, 물처럼 흐르는 구조로 본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천천히 가라앉는 과정을 견디는 일이다. 그는 결론으로 독자를 데려가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결론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이 역설적 방식이 그를 현대 신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 중 하나로 만든다.
캔터베리 대주교로서 그는 정치의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정치인의 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타협과 선언 대신 모호함과 숙고를 택했다. 그 결과 그는 종종 비판받았다. 그러나 그 비판조차 그의 방식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교회의 권위가 명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성을 견디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의 글에서는 항상 한 가지 공기가 흐른다. 그것은 “결정하지 못한 상태의 거룩함”이다. 그는 신앙을 확신의 체계가 아니라,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계속 더듬어 찾는 감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라,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도시와 같다.
Rowan Williams는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고, 믿으면서도 믿음의 언어를 계속 의심하는 사유의 긴장이다. 그의 존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신학은 답이 아니라, 답을 끝까지 미루는 용기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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