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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20] 리차드 마우(Richard J. Mouw, 1940~ )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4 추천 수 0 2026.07.08 21:41:23|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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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리차드 마우(Richard J. Mouw, 1940~ )
리차드 마우는 전쟁터의 장군이라기보다 국경지대의 외교관에 가깝다. 그가 평생 해온 일은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신학의 세계에서 이런 역할은 의외로 드물다. 대부분은 깃발을 들고 진영을 규합하지만, 마우는 담장을 넘어 이웃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쳤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우의 신학은 종종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개혁주의 신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대양을 보고 물웅덩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교리를 사랑했지만 교리주의자는 아니었다. 정체성을 소중히 여겼지만 부족주의를 경계했다.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처럼 모든 논쟁이 즉시 전쟁으로 번지는 시대에 그의 태도는 오히려 급진적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총장으로 재직한 그는 수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행정가로서의 성공이 아니다. 그는 신학교를 단순한 교리 공장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는 실험실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언제나 교회 담장 밖을 향해 있었다.
마우는 특히 가톨릭, 몰몬교, 이슬람, 세속주의자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는 종종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진리를 믿는 사람만이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대화는 타협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시험하고 정화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문장은 망치보다 창문에 가깝다. 상대를 때려눕히기보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승패를 가르는 논쟁보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선이 먼저 보인다. 그는 “누가 옳은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무엇보다 리차드 마우는 개혁주의가 세상을 향해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신앙을 문화와의 끝없는 전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세상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적대보다 호기심을, 배제보다 환대를, 불신보다 경청을 선택했다.
신학사의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운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리차드 마우는 그 건물들 사이에 길을 냈다. 사람들은 종종 교리를 기억하지만, 시대를 바꾸는 것은 때로 다리다. 마우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신념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향해 문을 여는 법을 보여준, 보기 드문 개혁주의의 대화가였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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