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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3:10-17 |
|---|---|
|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3장 10절-1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0절-1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가룟유다는 거룩하고 선한 마음이 아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르셔서 계속 교훈을 하셨고, 계속 고치라고 언질을 줬는데도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마음이나, 믿은 후의 마음이나, 교훈을 받은 후의 마음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예수를 믿으면 믿기 시작한 그 날부터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주님 쪽으로, 하나님 아버지 쪽으로, 인간창조의 목적 쪽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가야 하는데 가룟유다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신학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은 가룟유다가 기본구원을 못 얻었다고 하며 지옥에 갈 사람이요 불택자라고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기본구원은, 즉 사죄 칭의 새 생명을 얻어서 영이 중생되는 것까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으로 되는 거고, 영이 중생한 사람이 마음이 천국 쪽으로 거듭나고 소원 목적이 천국 쪽으로 거듭나는 것은 성령님과 유기적으로 자기가 하는 건데 가룟유다는 이게 없다.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 들어있다.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았으니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이 말을 하는 사람 역시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다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세상 것을 가지고 시험을 했으니 이 사람은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고, 가룟유다처럼 돈을 받고 예수를 파는 것과 같은 거고, 가룟유다가 지옥에 간 것처럼 가룟유다와 같은 짓을 한 자기도 지옥에 가게 된다는 말이 된다. ‘돈’ 하면 세상의 대표적인 상징인데, 세상 것을 이루려고 예수를 믿는 것은 가룟유다와 같은 거다.
오늘날 목사님들 중에 예수이름을 팔아서 세상과 바꿔먹는 자가 많다. 세상으로 커지고 유명해지는 것을 목회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를 세상에 파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진리본질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어떤 사건 환경에서도 진리로서의 권위성이 나와야지 진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큰소리를 치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이건 마귀자랑이요, 세상자랑이요, 섞을 자랑이요, 불탈 것 자랑이요, 냄새가 나는 자랑이다. 이것은 가룟유다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의 소원과 욕구를 위해 예수를 부르는 것과 같은 거다. 세상 속화된 교회는 다 이런 정신으로 나간다.
세상 것이 잘되어야 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인데도 부자가 안 된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게 되고, 믿음이 있다는 표시를 내려면 집문서라도 교회에 바치라고 하게 된다. 이건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거다. 인간에게 칭찬을 받고 사람에게 높임을 받으려는 게 아나니아와 삽비라다.
가룟유다는 자기 주관대로 계획대로 예수이름이나 교회를 잘 이용하면 자기의 세상적인 욕심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정치인이 선거에서 표를 많이 얻으려고 교인이 많은 교회에 나오는 것도 가룟유다의 마음이다. 돈을 계산하고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도 많고, 부자를 계산하고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도 많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회초리를 들고 ‘내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며 쫓아내셨다. 세상적인 계산을 하며 예수를 믿지 말라는 거다.
주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듯이 말세를 맞은 지금 거짓된 인도자들이나 교인들이 어디를 가도 수두룩하다. 자기 주관적으로 교회를 인도하는 자는 사람을 외모로 보고 직분을 주고, 물질이나 몸으로 충성봉사를 하는 자를 알아준다. 이것은 성직을 세상적 종교적 존귀와 명예에 팔아먹는 거다. 목사라는 간판을 가지고 정치계에 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면 세상사람들이 ‘저 사람은 목사니까 정직할 거다’ 라고 하며 찍어주겠느냐? 이건 두 마음을 품은 자로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내가 너를 부자가 되게 해주마. 내 기도는 능력이 있다. 네 병을 고쳐주마. 그러니 헌금을 얼마 내라’ 라고 하는 것은 다 사기꾼이고 강도고 도적이다. 이런 마음바탕을 가지고 목회를 하고,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실천교육을 하시는데 자기 속을 바꾸지 못한 가룟유다는 제 갈 길로 가는구나. 교회 인도자가 이 모양이면 교인 전부를 세상 길, 멸망 길, 사망 길, 넓은 길로 인도하게 된다. 신앙의 마음바탕이 이 모양이면 이 사람이 목욕을 한들 효력이 있겠느냐? 말씀으로 자기를 씻어야 하는데 마음이 이 모양이면 목욕탕에 가서 씻은들 씻겨지겠느냐? 마음바탕이 거듭나지 못했는데 발을 씻은들 효과가 있겠느냐?
이런 가룟유다와 같은 마음상태에서 매일 발을 씻는다면 자꾸 자기 꾀만 나온다. 이러다가 결국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에 떡을 받고, 말씀을 받고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이렇게 나가면 나가기는 나가는데 ‘네 일을 빨리 하라’는 명령 안에 들어간다. 이 말이 이해가 되느냐? 마음이 세상성으로 되어있는 사람은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면 말씀을 받았음에도 자기 할 일을 빨리 하게 되어있다. 즉 마음바탕이 믿음의 일을 안 한다는 거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의 발을 씻겨도 효력이 없다. 마음바탕이 그러니 아닌 말로 가룟유다가 발을 씻은 후에 시원하고 기쁘겠느냐? 주님의 마음인들 기쁘겠느냐? 마음을 안 바꾸면 수시로 예수를 파는 짓이 나온다. 안 믿는 사람들은 성격 성질이 안 바뀐 상태로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에 이 지식을 가지고 더 크게 죄를 짓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이 바뀌는 게 참 힘들다.
12절: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발을 씻기시면서 7절에서는 ‘나의 하는 것을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라고 했고, 12절에서는 다 씻기신 후에 ‘내가 하는 일을 너희가 알겠느냐’ 라고 했다 열두 명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내가 행한 것을 너희가 알겠느냐’ 라고 하셨는데, 가룟유다가 이 말씀을 새겨들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아느냐?
천국복음을 주는 자나 받는 자가 근본적으로 마음바탕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운동이 안 된다. 천국복음은 구원운동이요 성품이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더라.’ 교회의 운동은 신의 운동이요 신의 역사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다. 이 일은 신의 조력이 없으면, 즉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
이런 일을 할 기독자가 자기 속에 세상을 품고 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자기가 언제까지 산다고 스스로 보장을 할 수 있느냐? 내일 일을 네가 아느냐? 오늘 밤의 일을 네가 아느냐? 자기의 마음바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구원운동이 안 안 된다. 자기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안 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뀌지 않는다.
성령님은 거룩한 분이시라서 더러운 마음에서는 역사를 하지 않으신다. 마음바탕이 천국의 소원으로 깨끗해야 삶의 걸음걸이에서 더러운 세상 것이 묻어오는 것을 말씀으로 씻을 수 있는 거지 세상으로 더러워져 있으면 이 일이 안 된다. 믿는 효력이 없다. 구원역사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가룟유다가 자살을 하듯이 이룰구원이 없이 스스로 죽게 된다.
가룟유다의 마음을 분해해서 오늘날 목사에게 적용을 하면 돈을 벌기 위한 목회, 노후대책을 위한 목회, 건물을 짓기 위한 목회, 세상을 가지기 위한 목회가 많다. 이런 마음바탕에서 발이 씻겨지겠느냐?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겠느냐? 살아있는 진리생명에 소속과 입장이 되어서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되겠느냐? 자기의 소속을 예수님에게 둘 수는 있지만 마음이 주님께 입장이 되어있지 않으면 이것은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아니라서 이룰구원이 되지 않는다.
13절-15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주로서 또는 선생으로서 무엇을 가르쳤느냐? ‘너희도 서로 씻겨라’ 라고 하셨는데 안 씻으려고 도망을 가면 어떻게 되느냐?
세상에 속한 선생들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이 있느냐? 예수님의 발 씻김은 구원이 들어있는 발 씻김이다. 학교의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과 같은 거냐? 세상에 속한 모든 선생들은 자기 제자들을 주님처럼 발을 못 씻긴다. 예수님께서 씻기신 것과는 근본적 근원적 질적으로 다른 거다. 성경은 영적 계시성이 들어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영적인 일에 대한 비유다. 글자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성경의 비유대로 하는 게 아니다.
글자대로 본다면 만나가 찐빵처럼 큰 거냐, 가시처럼 작은 거냐?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만나가 내렸는데,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주워 모았을까? 핀셋으로 집었나, 눈처럼 쌓여서 긁어모았나? 그래서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이 표현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걸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흉내를 내라는 게 아니라 영적인 일에 대한 비유다.
목욕은 기본구원을 말하고, 몸을 씻는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 새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성경을 구구절절이 못 깨달았어도 세상적인 마음을 버리고 천국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 마음이 목욕을 한 거고, 이 상태에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세상의 것이 묻어오는 것을 날마다 말씀으로 바로 잡는 것은 발을 씻는 거다.
서로 발을 씻기려면 내가 먼저 내려가서 무릎을 꿇어야 씻을 수 있는 거지 무릎을 꿇고 내려앉지 않으면 못 씻긴다. 그리고 자기가 실력이 있어야 발을 씻길 수 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겸손하게 내려앉는다. 교만하고, 주관이 강하고, 남을 무시하고, 사람을 외모로 보는 자는 겸손한 성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없다.
잘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추수가 된 후에 농부의 입맛에 잘 익은 곡식의 맛을 낸다. 그러나 피는 익어도 고개를 쳐들고 있다가 바람이 불면 씨를 온 논에 퍼뜨린다. 발을 씻기려면 잘 익은 곡식처럼 서로가 허리를 동이지 않으면 서로 발 씻김이 안 된다.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예수님을 ‘주라 또는 선생’이라고 하면서 겸손의 마음을 배우지 못하면 발을 씻길 수 없다. 우리는 예수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배우는 거다.
예수님의 지혜지식을 닮아가면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린다. 마음이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순간적으로 태평양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마음보다 더 빠른 것은 영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면 자기 마음이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면 얼른 붙잡아 올 수 있다.
16절-17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인간의 세계에서 종과 상전의 신분은 물질적 학문적 능력에 의해 생긴 건데, 성경에서는 영적인 면을 두고 비유적으로 종과 상전을 말한다. 본 절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전제로 하고 종과 상전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종은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을 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천체적 물질적 자연적 이치에 절대적으로 순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 자연이치를 거스르면 자기가 죽는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연이치와 과학적 이치를 준 것은 자타의 구원에 이용 활용 응용하는 것만 아니라 건강을 도모하고 생활에 쓰라는 거다.
자연이치의 섭리를 잘 지키면 자기가 건강해진다. 그런데 말세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걸 전부 어겼다. 그래서 지구가 몸살이 난 거다. 우리 기독자들은 ‘남이 그러니 나도 그런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만물을 이용 사용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나의 건강이 들어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왜 만들어 놓은 거냐? 인간은 계시 면에서 다 아담과 하와인데, 생명과를 먹고 세상 것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하라고 지구를 만들어 놓은 거다. 그런데 생명과 대신 선악과를 먹고 육신과 세상을 목적으로 사니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이는 수단 방법도 나오고, 자연만물을 인간의 욕심을 위해 파괴를 하기도 하니 땅과 바다의 생물이 죽고 이상 기후가 되는 거다.
우리의 상전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서부터 주권적으로 창조적으로 능력적으로 신분적으로 위치적으로 인격적으로 최고 최상 최대의 분이다. 하나님 이상의 상전은 없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서 움직이는 존재로서의 종이다.
종은 자기의 주권과 소유와 능력과 자유가 없다. 주인으로부터 일반은혜와 교육이 없으면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죽는 비참하고 처절한 존재다. 근심 걱정으로 고달픈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주인을 만나면 교육도 받고, 주인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인정을 초월하고 물질을 초월해서 자원적 자유적으로 주님의 종이 된 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역사가 따른다.
이것은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사역으로 되는 게 아니라 종인 우리가 주인의 말씀에 순복하고 주인의 은혜 아래 살아야 가능하다. 종인 우리는 주인의 은혜와 배려가 없으면 못 산다. 종이 자기 주관으로 살다가 주인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무시를 당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계속)
13장 10절-1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0절-1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가룟유다는 거룩하고 선한 마음이 아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르셔서 계속 교훈을 하셨고, 계속 고치라고 언질을 줬는데도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마음이나, 믿은 후의 마음이나, 교훈을 받은 후의 마음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예수를 믿으면 믿기 시작한 그 날부터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주님 쪽으로, 하나님 아버지 쪽으로, 인간창조의 목적 쪽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가야 하는데 가룟유다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신학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은 가룟유다가 기본구원을 못 얻었다고 하며 지옥에 갈 사람이요 불택자라고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기본구원은, 즉 사죄 칭의 새 생명을 얻어서 영이 중생되는 것까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으로 되는 거고, 영이 중생한 사람이 마음이 천국 쪽으로 거듭나고 소원 목적이 천국 쪽으로 거듭나는 것은 성령님과 유기적으로 자기가 하는 건데 가룟유다는 이게 없다.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 들어있다.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았으니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이 말을 하는 사람 역시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다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세상 것을 가지고 시험을 했으니 이 사람은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고, 가룟유다처럼 돈을 받고 예수를 파는 것과 같은 거고, 가룟유다가 지옥에 간 것처럼 가룟유다와 같은 짓을 한 자기도 지옥에 가게 된다는 말이 된다. ‘돈’ 하면 세상의 대표적인 상징인데, 세상 것을 이루려고 예수를 믿는 것은 가룟유다와 같은 거다.
오늘날 목사님들 중에 예수이름을 팔아서 세상과 바꿔먹는 자가 많다. 세상으로 커지고 유명해지는 것을 목회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를 세상에 파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진리본질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어떤 사건 환경에서도 진리로서의 권위성이 나와야지 진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큰소리를 치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이건 마귀자랑이요, 세상자랑이요, 섞을 자랑이요, 불탈 것 자랑이요, 냄새가 나는 자랑이다. 이것은 가룟유다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의 소원과 욕구를 위해 예수를 부르는 것과 같은 거다. 세상 속화된 교회는 다 이런 정신으로 나간다.
세상 것이 잘되어야 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인데도 부자가 안 된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게 되고, 믿음이 있다는 표시를 내려면 집문서라도 교회에 바치라고 하게 된다. 이건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거다. 인간에게 칭찬을 받고 사람에게 높임을 받으려는 게 아나니아와 삽비라다.
가룟유다는 자기 주관대로 계획대로 예수이름이나 교회를 잘 이용하면 자기의 세상적인 욕심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정치인이 선거에서 표를 많이 얻으려고 교인이 많은 교회에 나오는 것도 가룟유다의 마음이다. 돈을 계산하고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도 많고, 부자를 계산하고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도 많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회초리를 들고 ‘내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며 쫓아내셨다. 세상적인 계산을 하며 예수를 믿지 말라는 거다.
주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듯이 말세를 맞은 지금 거짓된 인도자들이나 교인들이 어디를 가도 수두룩하다. 자기 주관적으로 교회를 인도하는 자는 사람을 외모로 보고 직분을 주고, 물질이나 몸으로 충성봉사를 하는 자를 알아준다. 이것은 성직을 세상적 종교적 존귀와 명예에 팔아먹는 거다. 목사라는 간판을 가지고 정치계에 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면 세상사람들이 ‘저 사람은 목사니까 정직할 거다’ 라고 하며 찍어주겠느냐? 이건 두 마음을 품은 자로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내가 너를 부자가 되게 해주마. 내 기도는 능력이 있다. 네 병을 고쳐주마. 그러니 헌금을 얼마 내라’ 라고 하는 것은 다 사기꾼이고 강도고 도적이다. 이런 마음바탕을 가지고 목회를 하고,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실천교육을 하시는데 자기 속을 바꾸지 못한 가룟유다는 제 갈 길로 가는구나. 교회 인도자가 이 모양이면 교인 전부를 세상 길, 멸망 길, 사망 길, 넓은 길로 인도하게 된다. 신앙의 마음바탕이 이 모양이면 이 사람이 목욕을 한들 효력이 있겠느냐? 말씀으로 자기를 씻어야 하는데 마음이 이 모양이면 목욕탕에 가서 씻은들 씻겨지겠느냐? 마음바탕이 거듭나지 못했는데 발을 씻은들 효과가 있겠느냐?
이런 가룟유다와 같은 마음상태에서 매일 발을 씻는다면 자꾸 자기 꾀만 나온다. 이러다가 결국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에 떡을 받고, 말씀을 받고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이렇게 나가면 나가기는 나가는데 ‘네 일을 빨리 하라’는 명령 안에 들어간다. 이 말이 이해가 되느냐? 마음이 세상성으로 되어있는 사람은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면 말씀을 받았음에도 자기 할 일을 빨리 하게 되어있다. 즉 마음바탕이 믿음의 일을 안 한다는 거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의 발을 씻겨도 효력이 없다. 마음바탕이 그러니 아닌 말로 가룟유다가 발을 씻은 후에 시원하고 기쁘겠느냐? 주님의 마음인들 기쁘겠느냐? 마음을 안 바꾸면 수시로 예수를 파는 짓이 나온다. 안 믿는 사람들은 성격 성질이 안 바뀐 상태로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에 이 지식을 가지고 더 크게 죄를 짓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이 바뀌는 게 참 힘들다.
12절: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발을 씻기시면서 7절에서는 ‘나의 하는 것을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라고 했고, 12절에서는 다 씻기신 후에 ‘내가 하는 일을 너희가 알겠느냐’ 라고 했다 열두 명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내가 행한 것을 너희가 알겠느냐’ 라고 하셨는데, 가룟유다가 이 말씀을 새겨들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아느냐?
천국복음을 주는 자나 받는 자가 근본적으로 마음바탕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운동이 안 된다. 천국복음은 구원운동이요 성품이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더라.’ 교회의 운동은 신의 운동이요 신의 역사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다. 이 일은 신의 조력이 없으면, 즉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
이런 일을 할 기독자가 자기 속에 세상을 품고 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자기가 언제까지 산다고 스스로 보장을 할 수 있느냐? 내일 일을 네가 아느냐? 오늘 밤의 일을 네가 아느냐? 자기의 마음바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구원운동이 안 안 된다. 자기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안 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뀌지 않는다.
성령님은 거룩한 분이시라서 더러운 마음에서는 역사를 하지 않으신다. 마음바탕이 천국의 소원으로 깨끗해야 삶의 걸음걸이에서 더러운 세상 것이 묻어오는 것을 말씀으로 씻을 수 있는 거지 세상으로 더러워져 있으면 이 일이 안 된다. 믿는 효력이 없다. 구원역사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가룟유다가 자살을 하듯이 이룰구원이 없이 스스로 죽게 된다.
가룟유다의 마음을 분해해서 오늘날 목사에게 적용을 하면 돈을 벌기 위한 목회, 노후대책을 위한 목회, 건물을 짓기 위한 목회, 세상을 가지기 위한 목회가 많다. 이런 마음바탕에서 발이 씻겨지겠느냐?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겠느냐? 살아있는 진리생명에 소속과 입장이 되어서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되겠느냐? 자기의 소속을 예수님에게 둘 수는 있지만 마음이 주님께 입장이 되어있지 않으면 이것은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아니라서 이룰구원이 되지 않는다.
13절-15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주로서 또는 선생으로서 무엇을 가르쳤느냐? ‘너희도 서로 씻겨라’ 라고 하셨는데 안 씻으려고 도망을 가면 어떻게 되느냐?
세상에 속한 선생들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이 있느냐? 예수님의 발 씻김은 구원이 들어있는 발 씻김이다. 학교의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과 같은 거냐? 세상에 속한 모든 선생들은 자기 제자들을 주님처럼 발을 못 씻긴다. 예수님께서 씻기신 것과는 근본적 근원적 질적으로 다른 거다. 성경은 영적 계시성이 들어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영적인 일에 대한 비유다. 글자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성경의 비유대로 하는 게 아니다.
글자대로 본다면 만나가 찐빵처럼 큰 거냐, 가시처럼 작은 거냐?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만나가 내렸는데,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주워 모았을까? 핀셋으로 집었나, 눈처럼 쌓여서 긁어모았나? 그래서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이 표현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걸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흉내를 내라는 게 아니라 영적인 일에 대한 비유다.
목욕은 기본구원을 말하고, 몸을 씻는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 새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성경을 구구절절이 못 깨달았어도 세상적인 마음을 버리고 천국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 마음이 목욕을 한 거고, 이 상태에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세상의 것이 묻어오는 것을 날마다 말씀으로 바로 잡는 것은 발을 씻는 거다.
서로 발을 씻기려면 내가 먼저 내려가서 무릎을 꿇어야 씻을 수 있는 거지 무릎을 꿇고 내려앉지 않으면 못 씻긴다. 그리고 자기가 실력이 있어야 발을 씻길 수 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겸손하게 내려앉는다. 교만하고, 주관이 강하고, 남을 무시하고, 사람을 외모로 보는 자는 겸손한 성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없다.
잘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추수가 된 후에 농부의 입맛에 잘 익은 곡식의 맛을 낸다. 그러나 피는 익어도 고개를 쳐들고 있다가 바람이 불면 씨를 온 논에 퍼뜨린다. 발을 씻기려면 잘 익은 곡식처럼 서로가 허리를 동이지 않으면 서로 발 씻김이 안 된다.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예수님을 ‘주라 또는 선생’이라고 하면서 겸손의 마음을 배우지 못하면 발을 씻길 수 없다. 우리는 예수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배우는 거다.
예수님의 지혜지식을 닮아가면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린다. 마음이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순간적으로 태평양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마음보다 더 빠른 것은 영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면 자기 마음이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면 얼른 붙잡아 올 수 있다.
16절-17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인간의 세계에서 종과 상전의 신분은 물질적 학문적 능력에 의해 생긴 건데, 성경에서는 영적인 면을 두고 비유적으로 종과 상전을 말한다. 본 절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전제로 하고 종과 상전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종은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을 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천체적 물질적 자연적 이치에 절대적으로 순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 자연이치를 거스르면 자기가 죽는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연이치와 과학적 이치를 준 것은 자타의 구원에 이용 활용 응용하는 것만 아니라 건강을 도모하고 생활에 쓰라는 거다.
자연이치의 섭리를 잘 지키면 자기가 건강해진다. 그런데 말세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걸 전부 어겼다. 그래서 지구가 몸살이 난 거다. 우리 기독자들은 ‘남이 그러니 나도 그런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만물을 이용 사용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나의 건강이 들어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왜 만들어 놓은 거냐? 인간은 계시 면에서 다 아담과 하와인데, 생명과를 먹고 세상 것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하라고 지구를 만들어 놓은 거다. 그런데 생명과 대신 선악과를 먹고 육신과 세상을 목적으로 사니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이는 수단 방법도 나오고, 자연만물을 인간의 욕심을 위해 파괴를 하기도 하니 땅과 바다의 생물이 죽고 이상 기후가 되는 거다.
우리의 상전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서부터 주권적으로 창조적으로 능력적으로 신분적으로 위치적으로 인격적으로 최고 최상 최대의 분이다. 하나님 이상의 상전은 없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서 움직이는 존재로서의 종이다.
종은 자기의 주권과 소유와 능력과 자유가 없다. 주인으로부터 일반은혜와 교육이 없으면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죽는 비참하고 처절한 존재다. 근심 걱정으로 고달픈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주인을 만나면 교육도 받고, 주인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인정을 초월하고 물질을 초월해서 자원적 자유적으로 주님의 종이 된 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역사가 따른다.
이것은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사역으로 되는 게 아니라 종인 우리가 주인의 말씀에 순복하고 주인의 은혜 아래 살아야 가능하다. 종인 우리는 주인의 은혜와 배려가 없으면 못 산다. 종이 자기 주관으로 살다가 주인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무시를 당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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