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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26] 니컬러스 월터스트로프(Nicholas P Wolterstorff, 1932~ )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3 추천 수 0 2026.07.14 21:41:32|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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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니컬러스 월터스트로프(Nicholas Paul Wolterstorff, 1932~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철학자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도서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리로 나간다. 법정으로 간다. 울고 있는 사람 곁에 앉는다.
그는 관념의 건축가가 아니다. 상처의 증인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진리를 설명하려 애쓴다. 월터스토프는 정의를 묻는다. 많은 철학자들이 아름다움을 논한다. 그는 고통받는 이웃을 바라본다. 그의 철학은 머리보다 먼저 가슴을 통과한다.
그는 미국 개혁주의 전통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았다. 교육, 예술, 정치, 인권, 정의. 그가 손대는 곳마다 철학은 현실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월터스토프에게 신앙은 사적인 취미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다.
그는 인간의 존엄이 국가에서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다수결에서도 오지 않는다고 보았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이 부여한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인권은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선언되어야 할 진실이 된다.
그의 대표작들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
단순한 문장이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이 한 문장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바쳤다.
그의 삶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슬픔을 연구한다.
월터스프는 슬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쓴 《Lament for a Son》은 철학책이 아니다. 신학책도 아니다. 한 아버지의 울음이다. 그 책에서 그는 논리를 전개하지 않는다. 대신 눈물을 기록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철학자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진짜 철학은 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통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고통받는 사람 곁에 머물렀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그의 철학은 공격적이지 않다. 그러나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학문적 유행을 좇지 않았다. 대신 인간의 존엄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붙들었다.
어떤 철학자는 탑을 세운다.
어떤 철학자는 미로를 만든다.
월터스토프는 다리를 놓는다.
신앙과 이성 사이에.
교회와 사회 사이에.
정의와 사랑 사이에.
그리고 삶과 고통 사이에.
그래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단순한 기독교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눈물을 철학의 언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차가운 논증이 아니라 따뜻한 증언이다.
그리고 그 증언은 지금도 묻는다.
"당신은 정의를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내고 있는가?"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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