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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세기의 신학자27] 존 웹스터(John Bainbridge Webster, 1955-2016)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2 추천 수 0 2026.07.15 21:48:39|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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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존 웹스터(John Bainbridge Webster, 1955-2016)
존 웹스터는 신학계의 소음 속에서 침묵을 연구한 사람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세상에서 출발해 하나님에게 도달하려 했다. 웹스터는 반대로 걸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출발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 단순한 방향 전환이 그의 신학 전체를 설명한다.
그에게 신학은 종교학이 아니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학문도 아니었다.
신학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문장은 차분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폭풍이 숨어 있다. 독자는 조용한 강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절벽 앞에 서게 된다.
웹스터가 가장 경계한 것은 하나님을 너무 쉽게 다루는 태도였다.
현대 신학은 종종 인간 경험을 중심에 놓는다. 문화, 정치, 심리, 역사.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웹스터는 묻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 질문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그는 신학의 주인공 자리를 인간에게 내주지 않았다. 하나님을 다시 무대 중앙으로 불러냈다.
웹스터의 하나님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상징도 아니다.
종교적 감정도 아니다.
살아 계신 분이다.
자유롭게 말씀하시고 자유롭게 행동하시는 분이다.
그는 특히 성경을 사랑했다. 하지만 성경을 단순한 정보 창고로 보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이 울리는 장소였다. 그래서 성경 읽기는 자료 조사가 아니라 경청이다.
그의 신학을 읽다 보면 이상한 경험을 한다.
새로운 이론을 배우는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잊어버린 중심을 다시 발견하는 느낌이다.
마치 복잡한 도시를 헤매다가 갑자기 북극성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앵글리칸 신학자로서 칼뱅과 바르트를 깊이 연구했다. 그러나 단순한 계승자는 아니었다. 오래된 전통을 복원하면서도 현대 신학에 새로운 중력을 부여했다.
그의 영향력은 거대한 운동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모두가 새로운 것을 외칠 때 그는 가장 오래된 것을 가리켰다.
모두가 인간을 말할 때 그는 하나님을 말했다.
모두가 주변을 둘러볼 때 그는 위를 올려다보라고 말했다.
어떤 신학자는 다리를 놓는다.
어떤 신학자는 탑을 세운다.
존 웹스터는 나침반을 만든 사람이다.
그 나침반은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교회도 아니다.
문화도 아니다.
신학자 자신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다.
그래서 존 웹스터의 신학은 화려한 불꽃놀이가 아니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에 가깝다. 조용하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는 그것보다 강력한 빛이 없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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