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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3: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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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3장 12절-18절: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2절-15절: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모본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우리에게 서로 행하라고 했다. 먼저 주님의 종부터 실천하고 가르치라는 거다. 발을 씻긴다는 것은 말씀으로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요, 사랑으로 허리를 동이고 겸손하라는 뜻이고, 죄를 씻어 마음을 즐겁게 평안케 하라는 뜻으로, 교회를 이렇게 섬기는 게 복음에 수종을 드는 거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회의 일에 앞장 선다. 어릴 때부터 늘 이렇게 자라다 보면 봉사하는 습성이 자기 인격화 된다. 이처럼 교회를 섬기는 습성을 가지면 자기 집에서도 식구들을 위해 섬기는 일이 나오고, 식구들을 섬기는 이 사랑이 또한 교회 안에서 형제들을 섬기게 된다. 이런 사람은 교인들이 족보적으로는 남남이지만 친한 관계성이 남 같지가 않다. 한 집안 식구 같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교회를 신경 쓰고 섬기는 게 습성화 되면 이 사람은 마음이 넓다.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늘 이웃도 생각한다. 이게 옳은 마음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봉사심이 길러지지 못한 사람은 가정에 돌아가서도 문제다.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를 깨우쳐 주시려는 마음으로 말씀하신 거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머리 깨우침이 안 된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는 거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람이 까칠해진다. 사람은 사랑의 존재인데 속이 다듬어지지 못해서 까칠한 것만 나오면 이 사람은 세상을 사는 게 힘이 든다. 그래서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거다.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께서 어련히 아시고 이런 교훈을 하셨겠느냐?
예수 믿으면서 주님의 성품으로 자체화 인격화 사상화가 안 되면 종교적인 일을 두고 복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러면 자꾸 어떤 일에서 복음의 일을 찾으려고 하게 된다. 복음의 정신을 가지고 어떤 일이던 구원으로 통과를 시켜야 하고, 이 일은 사상과 정신으로 되는 건데 어떤 일에서 복음의 일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이룰구원이 되지 않는다.
16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보낸 자는 주님이시요, 보냄을 받은 자는 주님의 종들이다. 세상이 보냈으면 세상을 자랑할 것이고, 이것은 영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의 일에 방해가 된다. 이건 마귀 짓이다. 주님이 보내셨으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이치를 전한다. 사람이 이 가르침을 받으면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천국복음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구원의 일이다.
주님으로부터 교회에 보냄을 받은 종은, 목사는 진리 주격이요, 신 주격이요, 영 주격이다. 이런 종은 교인들을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주님께 보낸다.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종, 혹은 목사, 혹은 목회자는 반드시 이 일을 한다. 세상을 자랑하고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라고 한다면 이건 주님자랑도 아니고 주님이 보낸 종도 아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마음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또한 누가 우리를 교회로 보냈는지? 교인들의 마음에 세상 소원 목적이 들어있으면 자동적으로 세상이 보낸 인도자에게 가게 된다. 질과 질이 같으면 같이 붙게 된다. 이러면 아무리 종교적인 활동을 많이 해도 결과적으로 마귀의 운동이 된다. 교회를 보는 눈, 성도를 보는 눈, 종을 보는 눈이 하나님의 본질이 기준이 아니면 이것을 볼 수 없다.
믿는 우리가 부분적인 어떤 활동이나 종별적인 것을 보고는 원칙을 못 찾는다. 원칙을 찾으려고 할 때는 성경으로 들어가라. 예를 들면 성경에서 왕이나 사사들이 많은 여자를 취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세상을 보면 일부다처제인 나라도 있고 일처다부제인 나라도 있는데, 이런 것을 그 자체로만 보고 해석을 하려고 하면 원칙을 못 찾는다. 창:으로 가서 보면 부부의 원칙은 일부일처제다. 그런데 성경에 왜 여러 여자를 취한 게 나오는 거냐? 일부다처제를 하라는 게 아니라 모든 성경은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 주신 것이니 이룰구원 차원에서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룰구원을 놓고 보는 게 모든 성경을 보는 대 원칙이다.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취하는 것을 신앙 면으로 생각을 하면 선악과를 먹은 지식을 주격으로 하고 사는 자들은 자기 눈으로 보기에 좋고 커 보이면 자기 욕심대로 취하려고 한다. 선악과 먹은 사상이 이렇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살면 세상을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자, 어떤 사람은 자동차, 어떤 사람은 집에 욕심을 내고 이것을 가지기 위한 목적으로 산다. 이런 사상을 깨닫게 하려고 성경에 왕들이 많은 여자를 취한 것을 보여주는 거다. 이것은 부정적 재앙적 형벌적 심판적인 면으로 보는 거고, 이룰구원 면으로 보면 실력이 있는 자는 좋은 것을 다 차지하는구나. 선별을 해서 좋은 것을 골라서 가질 수 있구나.
솔로몬이 여자 천 명을 취한 것을 우리가 좋게 보면 안 된다. 그 결과로 나라가 두 조각이 났고 예루살렘이 징벌을 당하기도 했다. 이것을 신앙 면으로 보면 교회 안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좋아하면 교회가 찢어지고 개체적으로도 망한다. 예를 들면 집안의 아버지가 돈이 많다고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여자를 취하면 그 가정이 바로 서겠느냐? 이런 이치를 보여주는 거다.
믿는 사람의 마음이 세상으로 흩어지면 안정이 되지 못한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붕 떠버린다. 어디를 간들 안정이 안 되는 그 정신에서 선이 나오겠느냐? 전부는 악행이다. 반면에 진리의 사람은 자기를 조절할 줄 알고 지혜롭기 때문에 아무렴 하나님 앞에 옳은 삶이 된다. 우리는 교회로서 마음바탕에 무엇이 깔려있는지 남을 보기 전에 나부터 구별 분별을 해야 한다.
17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것을’ 이란 16절의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라는 말씀을 말한다. 우리가 교회로서 알지 못하고는 행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행한 후에 복이 있는 게 있고 재앙이 따라오는 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행심사에는 생명이 아니면 사망이 따르고 있다. 성경에는 자기의 성격 성질 소원 목적을 다 그려놨다.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를 미리 다 밝혀놨다. 온 세상사람이 성경 안에 다 들어있다. 신 불신 간에 성경 밖에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자기도 이 안에 들어있다.
18절: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가룟유다는 누가 택한 거냐? 제 발로 스스로 걸어온 거냐? 가룟유다와 열한 제자 모두를 예수님께서 불렀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열둘을 택했다고도 했고, 다른 곳에서는 하나는 아니라고도 했는데, 예수님의 제자가 열두 명뿐인데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 어떤 뜻을 두고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냐? 글자 그대로 사람을 두고 한 말이냐, 영의 눈으로 보는 정신과 사상과 마음바탕을 두고 한 말이냐? 후자다. 성경 전부는 우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 주시려는 뜻으로 기록이 되었다고 성경이 자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고 ‘너희들이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했는데, 이 말씀이 제자들이 전부 어린아이처럼 기저귀를 차야 한다는 말씀이냐? 천국에는 어린아이만 들어간다는 말씀이냐? 그리고 예수님 앞에 섰던 그 어린아이가 지금도 예수님 앞에 그대로 서 있느냐, 아니면 성장을 해서 천국에 들어갔느냐?
가룟유다의 경우를 글자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룰구원의 이치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룟유다를 데리고 와서 사건을 통해 하시는 말씀인즉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이 가룟유다처럼 세상바탕으로 되어있으면 이것은 예수를 파는 마음인데 주님께서 이런 사람을 천국복음의 구원의 일에 일꾼으로 들어 쓰시겠느냐? 돈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갖가지 죄악들이 나온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돈 때문에 부모 형제도 죽이고, 남도 죽이고, 팔아먹고 하는 거다.
주님께서 왜 가룟유다를 택한 것일까? 그 마음을 고치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려는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도 모르고, 자신에 관한 이룰구원도 모르고, 또한 자기의 주관적인 성격 성질도 모르면서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정죄부터 하고 들어가니 이런 사람에게 무슨 성령의 열매가 열리겠느냐?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거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자기의 죄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고 기록한 것이니 성경을 보면서 남을 정죄하기 전에 나부터 깨닫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고 겸손의 사람이다. 남을 정죄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고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게 예수님의 마음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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