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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세기의 신학자31]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1933-2025)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4 추천 수 0 2026.07.19 21:59:34|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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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1933-2025)
월터 브루그만은 구약학자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성경 속에 잠들어 있는 예언자들을 깨워 현대 세계 한복판으로 다시 데려온 사람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구약은 더 이상 먼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왕들의 탐욕이 오늘의 권력으로 변하고, 예언자들의 외침이 오늘 아침 뉴스가 된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성경이 그들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브루그만은 구약을 역사책으로 읽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상상력의 전쟁터로 읽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개념 가운데 하나인 “예언자적 상상력(Prophetic Imagination)“은 단순한 학술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뒤흔드는 선언이다.
그에 따르면 세상은 언제나 두 개의 목소리가 싸우고 있다.
하나는 제국의 목소리다.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한다.
지금의 질서가 영원할 것이라고 속삭인다.
사람들을 소비자와 통계 숫자로 바꾼다.
다른 하나는 예언자의 목소리다.
눈물을 기억하게 하고,
희망을 상상하게 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꿈꾸게 만든다.
브루그만은 평생 이 두 목소리의 충돌을 연구했다.
그는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정치학을 보았고, 시편을 읽으면서 인간의 영혼을 발견했으며, 예레미야를 읽으면서 현대 사회의 우상을 해부했다. 그의 손에 들어간 구약은 먼지가 쌓인 고대 문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저항 문학이 되었다.
특히 그의 문장은 독특하다.
학자처럼 분석하지만 시인처럼 노래한다.
어떤 페이지는 논문처럼 치밀하다. 다음 페이지는 설교처럼 불타오른다. 독자는 학문과 시, 신학과 예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게 된다.
그래서 브루그만을 읽는 일은 종종 불편하다.
그는 독자를 안심시키지 않는다.
신앙을 안전한 피난처로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의 이야기를 믿고 있는가?
하나님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제국의 이야기인가.
그 질문은 그의 모든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화살이다.
브루그만은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구분 속에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성경을 누구의 이념에도 넘겨주지 않았다. 대신 성경 자체가 가진 낯설고 급진적인 힘을 회복하려 했다.
오늘날 많은 구약학자들이 본문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러나 브루그만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본문이 세상을 다시 상상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책을 덮고 나면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는 느낌보다 더 강한 경험이 남는다.
마치 누군가 오래된 창문을 열어젖힌 것 같다.
그리고 그 틈으로 하나님의 바람이 들어온다.
월터 브루그만은 바로 그 바람의 방향을 가리킨 사람이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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