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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33] 프란시스 피오렌자(Francis S Fiorenza, 1941~ )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3 추천 수 0 2026.07.21 21:49:29|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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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프란시스 쉬슬러 피오렌자(Francis Schüssler Fiorenza, 1941~ )

신학을 책장 속에 가두지 않았다. 그는 신학을 살아 있는 토론장으로 끌어냈다. 교리를 박제된 표본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교리를 세대와 세대가 이어가는 대화의 기록으로 읽었다.
그의 신학은 거대한 성당의 첨탑보다 광장을 닮았다. 누구나 들어와 질문할 수 있고, 누구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에게 신앙은 정답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진리를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1941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전후 독일 사회의 폐허 속에서 성장했다. 무너진 도시들은 그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권위는 언제 인간을 살리고, 언제 인간을 파괴하는가?” 이 질문은 훗날 그의 평생 연구 주제가 되었다.
그는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해석하는 데 탁월한 학자로 알려졌다. Second Vatican Council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독특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의회를 문서들의 집합으로 읽을 때, 그는 그것을 교회가 자기 자신과 대화한 거대한 사건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교회는 군대가 아니었다. 명령만 전달하는 피라미드도 아니었다. 교회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충돌하고 설득하며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였다.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 이론, 의사소통 철학, 공론장 개념을 신학과 연결했다.
그의 작업에는 독일 철학자 Jürgen Habermas의 영향이 강하게 흐른다. 그러나 그는 철학을 신학 위에 올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신학이 현대 사회와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철학으로부터 배웠다.
그가 던진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교회는 어떻게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
그의 답은 더 단순하다.
“사람들이 그 권위의 이유를 이해하고 동의할 때.”
이것은 명령의 논리가 아니라 설득의 논리다. 강압의 논리가 아니라 대화의 논리다. 그는 신학을 독백에서 대화로 이동시킨 학자였다.
그의 저작들은 난해한 이론을 다루지만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그는 교회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변호문보다 거울에 가깝다. 읽는 사람은 교회를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보게 된다.
그의 신학은 번개처럼 화려하지 않다. 대신 깊은 강물처럼 흐른다. 천천히 움직이지만 지형을 바꾸어 놓는다. 오늘날 가톨릭 신학에서 권위, 공동체, 민주적 참여, 공적 신학을 논할 때 그의 그림자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의 신학적 위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민주적 대화와 비판적 이성을 진지하게 수용하려 한 신학자.”
그는 가톨릭 사제는 아니며 평신도 신학자다. 독일에서 공부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Harvard Divinity School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다.
그리고 그의 삶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동반자가 있다. 바로 그의 아내인 Elizabeth Schüssler Fiorenza다.
엘리자베스는 성서학의 지형을 바꾼 인물이다. 그녀는 성경을 읽을 때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려 했다. 그녀의 대표작인 In Memory of Her는 여성주의 성서해석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프란시스가 교회의 공론장을 연구했다면, 엘리자베스는 그 공론장에서 침묵당한 이들의 자리를 찾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질문을 품었다. “교회는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한 사람은 제도와 권위를 탐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기억과 해방을 탐구했다. 함께 그들은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가장 지적이며 창조적인 부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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