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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9 추천 수 0 2026.07.26 08: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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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3:18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사람이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게 인간의 주권에 있느냐, 하나님의 주권에 있느냐? 하나님의 주권이다. 이 말은 기본구원에 속하는 말로서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으로 오셔서 33년 동안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의의 삶으로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법에 만족을 이뤄드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의 영을 살린 것을 말한다. 영이 죽었으면 스스로는 살아날 수가 없고 외부로부터 신의 역사가 와야 살아날 수 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존재적으로나 신분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업적적으로 예수님과 같은 존재는 없다. 아무리 도통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도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무게가 있거나 귀한 것은 없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고 말씀이고, 영원히 사는 말씀이고, 영원히 살리는 말씀이다. 예수님 외에 모든 인간의 말은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영이 죽고 타락된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뜻이 현세에 국한된다. 질이 그렇다.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 영이 죽었지만 예수님은 안 죽었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원리 하에 이렇게 되는 거다.

 

선악과 따먹고 나온 타락된 이성적 지식과 감정과 논리는 하나님 앞에 금물이다. 이런 사고로 성경을 풀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영의 눈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소경이 되게 만들어 버리고, 구원이 더 안 되게 만들어 버린다. 이성적인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고침을 받는다는 것은 턱없는 소리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인을 치료하시는데 영의 개념이 아닌 육적인 개념을 가지고 살다가, 육의 이해타산을 가지고 살다가 자기 몸에 병이 드니까 이제부터 교회에 나가고 예수 믿을 테니 좀 고쳐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 설령 이렇게 해서 낫는다고 해도 영인성장 면으로는 못 들어간다.

 

그 이치가 창: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은 이후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에덴동산 주위에 불 칼이 돌고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게 허락이 안 되었다. 이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상태에서는 생명과를 못 먹는다는 의미다. 창조의 목적관에서 이렇게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영이 죽었고 육신은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죽지 않으려고, 오래 살려고 생명과를 먹는다? 먹을 수도 없는 거지만 설령 먹는다고 해도 이미 죽었고 선악과의 독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무리 생명과를 먹어도 안 죽는 것으로 살아나는 개 아니라 죽은 상태로 영원히 가게 된다. 이성적 사고방식은 선악과가 주격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 주격인 상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생명과를 못 먹는 거고, 먹도록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면 영이 중생을 해서 예수를 믿으며 생명과를 먹다가 선악과를 먹은 지식을 자기의 기준으로 세우고 나가면 어떻게 되느냐? 영은 중생이 되었지만 영인 성장 면에서 마치 영이 죽은 것처럼 성장이 안 된다. 이룰구원이 안 된다. 하나님의 속성적으로 자라지 못한다. 우리는 이 면에 신경을 써야 한다. 왜냐? 마귀가 이 면을 방해하려고 엄청나게 역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방에 눈이 달려야 한다.

 

성경은 사람을 영적 속성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드는데 예수 믿는 사람의 생각과 소원과 목적과 이해타산과 가치판단과 평가성이 육이요 세상으로 들어가 있으면 일반적인 개념의 삶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에서 성경을 일반적인 개념으로 가르친다면 이는 거짓 종이요, 이단자들이요, 넓은 길이고, 죽는 길이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본질을 깨달으면 교회의 교훈이 구별 분별이 되고, 목사의 정신과 사상이 구별 분별이 되고, 자기의 정신과 사상과 소원과 목적이 구별 분별이 된다.

 

사람이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내가 지옥에 가겠구나. 천국에 가겠구나하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 면을 염려 걱정하는 것은 신앙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말씀을 먹고 신적 지혜지식으로 잘 자라가는 것뿐이다. 마귀는 이 면이 자라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방해를 한다. 이 방해꾼이 제일 가까이 있고, 교회에 가면 목사도 되고, 교인도 된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고 훼방하고 환난 핍박을 주는 자들이 이방인이 아닌 성경(율법)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 심지어 당신의 제자에게 팔렸다. 주님께서는 이 가룟유다를 깨닫게 하려고 빙 둘러서 말씀하기도 했고 직접적으로 말씀하기도 했는데, 어떤 데서는 예수를 팔 것이라고도 했고, 어떤 데서는 처음부터 마귀라고도 했고, 어떤 데서는 마귀가 가룟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다고도 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룟유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남에게 하신 게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를 팔 자러라. 마귀니라라는 말을 듣기 이전에 마음에 이미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안 그러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나도 듣게 되고, 나도 가룟유다와 같은 짓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집을 짓는 것은 우리가 영인성장 면의 신앙의 집을 짓는 것을 깨닫게 한다. 집을 지을 때는 안전한 곳에 단단히 기초를 놓아야 한다. 안 그러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창수가 나면 금방 무너진다. 우리가 신앙의 집을 지을 때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허물어지지 않게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허술한 집에는 쥐나 벌레들이 구멍을 뚫고 들어오듯이 신앙이 견고하지 못하면 사단이 자기의 마음을 뚫고 들락날락 한다.

 

우리가 지옥에 가고 천국에 가는 것은 예수님께서 책임을 지셨으니 우리가 걱정할 일은,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온전을 깨닫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인격적 속성적 성품적으로 하나님의 온전을 닮아가는 거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선생님의 주권이 아니라 학생 자신의 주권에 달린 것처럼 하나님의 온전을 닮아가는 일은 내 주권이다.

 

일반세상은 어른이 될수록, 많이 알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을 미덕으로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의 이치로 자기를 무장하는 거다. ‘너의 젊은 나이를 수히 여기지 않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서 진리 자체화 실상화 능력화 되라는 거다. 이게 참 능력이요 주권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세계적으로 볼 때 예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마리아 때에 세계적으로 아기예수를 배도록 택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처녀가 마리아 하나뿐이었느냐? 세계적으로 처녀가 많이 있었지만 진짜 처녀는 마리아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다른 처녀는 다 세상바람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처녀는 처녀로 보시지 않는다. 진짜 처녀는 마리아 하나 뿐이다.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신앙 사상적으로도 그렇고 마리아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가정에, 교회에 구원의 예수님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거다.

 

이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천국의 족보에도 올려졌고, 인간의 족보에도 올려져 있다. 세상에 이런 족보가 있느냐? 성경 표면인 역사를 들어서 신앙이 좋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데도 믿는 사람들이 왜 이런 것에 마음을 안 쓸까? 만일 마리아가 예수를 낳아놓고 맨날 술이나 먹고, 화투나 치고, 이 남자 저 남자의 손을 잡아주고 했다면 예수를 어떻게 길렀겠느냐? 보나 마나 술 사 와라. 담배 사 와라라고 했을 거다.

 

주님께서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는데, 이 마지막 시대에 방주를 짓는 노아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롯은 화려한 소돔 고모라 성을 택했지만 아브라함은 말씀만 바라보고 따랐는데, 오늘날 이 아브라함의 정신을 가지고 세상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믿는 부모가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거냐? 열심히 일을 해서 많은 재산을 물려주려는 거냐, 아니면 하나님 앞에 방주를 짓는 가정이 되는 거냐?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당대만 위해 살지 말고 영원히 가는 것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이게 인간창조의 목적에 맞는 가족의 결속이다.

 

노아가 홍수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는데, 롯 같으면 자식들에게 조금 있으면 큰삼촌 아브라함의 집에서 후손들이 날 것이니 그들이 차지하기 전에 너희들이 먼저 너희들의 것으로 만들어라라고 할 거다. 믿는 우리는 물질적인 소유성은 이방인들이 가지되 사용권 활용권은 믿는 자기가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게 신앙의 세계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엄밀히 따지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건데 내가 이걸 관리를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 줘서 관리를 하게 하는 거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각 세계에 다니며 전도를 할 때 비행기도 타고,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자동차도 타는데, 이런 걸 다 전도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느냐?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거다. 사도바울이 로마로 갈 때 자기 돈을 내서 갔느냐? 그 먼 길을 빈 몸으로 돈 한 푼도 안 들이고 호위병을 거느리고 갔다.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죄인으로 만들어서 돈도 안 들이고 호위를 받으면서 가게 한 거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사도바울을 보호하는 방편이다. 또한 풍랑을 일으켜서 사도바울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기도 했는데 이런 게 다 하나님의 역사다.

 

모든 세상만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사도바울 스스로가 작은 돛단배를 만들어서 타고 가는 게 능력이 더 나타날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죄수로 잡혀가게 하는 게 능력이 더 나타날까? 어느 쪽이 더 신이 나겠느냐? 하나님께서 바다의 큰 고기를 불러서 고집불통 요나를 집어삼키게 해서 3일간을 보호를 했으니 사도바울을 더 귀하게 보호하는 게 당연한 거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에 붙잡혀서 움직이는 사도바울에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의 보호로 고래를 보내던, 거북이를 보내던, 어떻게든 로마로 보내셨듯이 육해공을 다 들어서 성도를 보호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믿음이 이렇게 보호를 받을 정도인지?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는 것은 말세가 되면 세상에 가룟유다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거다. 가룟유다의 속성, 그 정신, 그 이해타산, 그 목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정신을 가지게 되면 가룟유다처럼 예수를 팔아먹고 이용해 먹는 짓이 나오게 된다. 믿는 사람 속에 이런 요소성이 조금이라도 들어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안 된다. 거룩한 성령님의 역사가 안 된다.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거룩한 영이 와서 역사를 하는 거다.

 

그러면 가룟유다와 비슷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택자냐, 불택자냐?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천국에 갔느냐, 지옥에 갔느냐? 목숨은 주님의 것인데 자기 마음대로 자살을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이렇게 보면 안 된다. 가룟유다가 왜 자살을 한 거냐? 자신이 불택자요 지옥에 갈 자라는 것을 모른 채 그동안 하나님께 이용만 당한 게 원통해서 자살을 한 거냐?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과 같이 죽으려고 우상의 신당을 무너뜨리고 거기에 깔려 죽었기 때문에 지옥에 갔느냐? 이게 말 같은 소리냐? 이치를 모르면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택할 때 외부 표면 행동을 보고 택하기도 하고, 재물과 재산을 보고 택하기도 하고, 학문을 보고 택하기도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을 택할 때 무엇을 보고 택하시느냐? 어떤 사람을 써야 천국복음 운동에 순종을 잘 할까?

 

영 주격으로 판단을 해야 옳은 판단이 되는 건데 세상에서 많이 배운 사람은 이 지식을 기준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옳은 판단이 안 되고 순종이 안 된다. 왜 그러냐? 이성적 판단과 영적인 판단은 판이 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안 믿는 사람들의 세상학문의 판단은 아무리 오래 가봐야 세상이 있는 동안에만 소용이 있는 거고,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효력을 주지만 영의 판단의 효력은 영원히 간다.

 

오늘날 교회 안에 가룟유다와 같은 목사가 한 사람도 없느냐? 참 많다. 거짓 종이나 이단자라고 하는 게 다 이 부류에 속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냐? 모르긴 해도 우리에게 목사라는 간판을 주고 목회를 하라고 한다면 별 희한한 짓을 다 할 거다. 같은 진리를 듣고 배웠으면 가르칠 때 질이 같아야 하는데 사람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게 각기 다르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바탕이 세상으로 되어있으면 결국은 자기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일의 방편을 통해 어찌하든 깨닫게 하고 고치게 하려는 게 있는데 우리가 여기에 순종을 하면 마음바탕이 옥토로 변해서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사람이 된다. 이 사람이 영원히 존귀 영광자다. 열매가 풍부한 사람은 말씀 앞에 겸손하다.

 

믿는 사람이 말씀의 이치에 의해 깨달음을 받고 거듭나고 순종을 해야 주님의 성품의 사람이 된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간사를 떨면서 굽신거린다. 이런 세상적인 마음바탕에서는 아무리 굽신거려도 겸손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런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색깔을 띠고 있는 거라서 자기 식대로 예수를 믿게 된다.

 

세상성의 마음바탕은 거룩성이 아닌 이질이요, 옛사람 부패성이요, 마귀의 성질이기 때문에 절대로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 교인들의 신앙과 같은 상태다. 이러면 예수님을 못 닮는다. 세상의 마음바탕은 영원히 가지 못하고 마귀 짓밖에 안 나온다. 마귀가 가면을 쓰고 들어오기가 제일 좋은 마음바탕이 거듭나지 못한 세상적 육성을 가진 신앙이다. 마귀는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을 이용해 먹기가 쉽다.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어떤 자가 발꿈치를 들었느냐? 예수님의 떡을 먹은 자다. 이 자가 예수님께 발꿈치를 들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차버렸다는 거다. 사람 간에도 배반하고, 원수를 맺고, 환난과 핍박을 주는 자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한 통속이고, 이웃이고, 한 집안 식구고, 부부다. 즉 제일 가까운 자들이다.

 

집에서 누가 제일 애를 먹이느냐? 자기 집에서 한솥밥을 먹는 자다. :에서도 아담의 아내가 선악과를 따먹었다. 부부라면 서로 의논을 해서 생명과를 먹어야 행복하고 사망과 죽음과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겨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건데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살면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나가느냐? 절대로 못 이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자기가 잘났다 싶으면 배우나 가수를 하겠다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 보면 그런 너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다. 그런 것에 마음을 쓰다가 네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그리고 카톡이니 채팅이니 이런 걸 많이 하는 모양인데, 이런 것을 하는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이런 걸 하다 보면 마음이 자꾸 밖으로, 상대 쪽으로 나간다. 마음상태가 열려 있게 된다. 밖으로 나가게 된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 단속을 잘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가 자기의 평생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사방으로 눈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안팎을 보라는 거다.

 

발뒤꿈치를 들었다는 것은 뒷발질을 하려는 거다. 가룟유다가 차마 스승을 앞으로 찰 수가 없으니 뒷발로 차는 거다. 가룟유다는 주님이 주시는 떡을 먹은 주님과 제일 가까운 데 있는 자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배반했다. 이걸 보면서 우리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있을 때 무엇으로 제일 가까워졌는지, 어떤 연유로 제일 가까워졌는지 생각을 하고 진리중심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또한 멀어졌다면 무엇으로 멀어졌는지, 어떤 연유로 멀어졌는지 생각을 하고 중심을 고쳐야 바로 되어 들어가고, 바로 된 상태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라고 하신 것을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을 해서 보면 말세가 되면 교인들이 성경에 예언이 되어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자기 앞에서 예언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는 거다. 이 말씀은 세상을 목적으로 믿는 교인들에게 해당이 되고 진리본질로 나가는 교인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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