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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44] 안병무(Byeongmoo Ahn,1922~1996)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8 추천 수 0 2026.08.01 22:59:01|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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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안병무(Byeongmoo Ahn,1922~1996)
안병무는 예수를 민중 속으로 다시 데려온 사람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예수를 왕으로, 구세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설명했다. 안병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질문했다. “예수는 누구와 함께 있었는가?” 그리고 그의 시선은 성전도, 궁전도, 학자의 서재도 아닌 거리의 사람들, 이름 없는 군중들, 억눌린 민중들에게 머물렀다.
안병무는 1922년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 군사독재를 모두 통과한 세대였다. 그는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서구의 학문적 엄밀함을 배웠지만, 자신의 신학적 질문은 한국의 현실에서 발견했다. 교과서가 아니라 거리에서, 강의실이 아니라 역사의 상처 속에서 신학을 길어 올렸다.
그는 한국 민중신학의 대표적 창시자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단순한 사회운동의 신학이 아니었다. 안병무에게 민중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성서의 핵심 주제였다.
그는 특히 마가복음을 새롭게 읽었다. 그가 주목한 단어는 “오클로스(ochlos)“였다. 흔히 군중이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를 그는 민중으로 읽었다. 예수는 단순히 민중을 가르친 분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숨 쉬고, 먹고, 울고, 고난받은 존재였다. 예수의 삶 자체가 민중 사건이었다.
안병무의 예수는 유리 진열장 안의 성인이 아니다. 그는 먼 하늘에서 내려온 영웅도 아니다. 먼지 날리는 길을 걷고, 배고픈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권력자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안병무는 그 예수를 다시 현실 한가운데로 불러냈다.
그의 신학은 교회를 향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교회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민중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과연 그 교회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그는 신학이 현실을 피해 도망치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다고 보았다. 신학은 고통의 현장에 발을 디딜 때 비로소 복음이 된다고 믿었다.
그의 사상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 나갔다.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아시아의 민중운동,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학 논의 속에서 안병무의 이름은 자주 언급되었다. 그는 서구 신학이 놓치고 있던 질문을 던진 동양의 목소리였다.
안병무는 거대한 체계를 세운 조직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잊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해석자였다. 그의 신학은 높은 탑이 아니라 낮은 들판이었다. 화려한 교리의 성벽보다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더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안병무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이렇다.
그는 예수를 민중에게 소개한 사람이 아니라, 민중 속에 이미 계시던 예수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의 신학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복음의 길이었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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