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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이유들-기독교 신정론

 

저자 손호현

출판사 동연

출판일 2023.8.14

쪽수 689쪽 

대출 국립세종도서관

빌려온 날 2026.7.21

 

<내용 요약>

 

1.신정론

기독교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란? 기독교의 신은 절대적 선(善)의 초월자로서 전능하시고 완전하시며 우주 만물과 모든 세계사를 지배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런 분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왜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하나님의 의로움을 변증하는 신학적·철학적 논의를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2.무신론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3) 신이 없다고 하는 것을 무신론(無神論)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善)과 악(惡)’은 어디에서 왔는가? 신이 없다면 악을 설명할 필요도 없는가? 무신론은 신이 없다는 핑계로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3.다신론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신5:7)는 계명은 다신론을 전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신관은 ‘다신론적’이었고 ‘택일신론’을 거쳐 ‘유일신론’으로 점진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시편 82편은 최고신(神)인 하나님이 타락하여 임무에 태만한 다른 신들을 심판하고 전 세계를 홀로 다스리는 유일신론을 확립했다고 합니다.

 

4.악마론 

“악마 없이는 하나님도 없다”(제르리 러셀) 1700년대, 우주가 두 개의 동일하게 영원한 능력자들 곧 선과 악의 주관자들이 싸우는 전쟁터라는 견해가 생겼는데, 그것을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영지주의자, 마니교, 바빌론 종교, 그리고 심지어 기독교 안에도 이원론이 들어와 ‘하나님은 선하시고 세상(마귀)은 악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5.분열 인격론

‘악마론’은 선악의 대립을 하나님의 바깥에서 찾은 반면에, ‘분열 인격론’은 선악이라는 것은 하나님 안에 내재하는 일종의 심리적 분열이라고 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사45:7) 어둠도, 환란도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합니다. 

 

6.자유의지 신정론

“슬퍼하는 인간이 행복한 벌레보다 낫다.” 자유의지 신정론(自由意志 神正論free will theodicy)을 한마디로 요약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입니다. 크랜쇼는 “인간은 자유롭게 범죄하고 하나님은 정의롭게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의 무게를 드러내는 자유는 어떤 이론 하나로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7.교육적 신정론

존 힉(John Hick)은 ‘악의 골짜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영혼을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교육적 방법 때문이다’라며 교육적 신정론(?有的神正論educative theodicy)을 주장합니다. 악의 기원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책임 없음’을 강조했다면 존 힉은 오히려 하나님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8.내세적 신정론

악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은 내세적 신정론(來世 的神正論afterlife theodicy)입니다. 영혼이 불멸한다면 그리고 불멸하는 영혼이 거주할 정의로운 내세가 있다면, 또한 현세의 지연된 정의가 내세에서는 올바로 실현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희망은 우리가 불의한 현실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줍니다.

 

9.역사적 신정론

헤겔의 역사적 신정론은 종말론적 신정론을 거부합니다. 그는 ‘신정론은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옹호’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야 하는 시공간은 내세가 아닌 현세이며, 천국이 아닌 인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헤겔은 이러한 시간의 변증법, 곧 역사의 과정 전체를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해석합니다.

 

10.교제의 신정론

그린(M. Green)은 고통의 긍정적 가치를 강조하며, 고난 자체가 “하나님과의 직접적 관계, 하나님과의 협력, 나아가 하나님과의 합일적 교제의 계기”가 된다고 하는 교제의 신정론(交際的神正論)을 주장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에게 더 가깝게 만드는 길이 고통을 통한 그와의 교제라며 일종의 종교적 위안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11.대속적 신정론

교재의 신정론 중 ‘고난과 타자를 위한 고난’을 확장한 것이 대속적 신정론(代贖的神正論)입니다. 본회퍼와 몰트만은 ‘오직 이런 고통당하는 신만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합니다. 대속적 신정론은 그러한 교리적 페러다임 안에 이미 존재하는 기독교인들에게만 설명이 가능한 신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기독론적 신정론

메럴린 아담스(M M Adams)의 기독론적 신정론은 “고난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협력과 교제를 위한 가장 강렬한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고난받는 하나님이시기에 고난이란 신앙인에게 자신의 창조주를 모방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의로운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알게 한다.”

 

13.민족적 신정론

함석헌의 신정론은 ‘민족적 신정론’입니다. 함석헌은 조선 민족의 집단적 고난이 세계를 위한 ‘대속적 고난’이라고 해석합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의 죄를 대신 짊어진 고난의 역사를 겪었으며 그렇기에 조선 민족은 일종의 집단적 예수로서 대속적 고난의 담지자이다...라고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저서에서 주장합니다. 

 

14.함석한 신정론

함석헌은 ‘자유의지 신정론(응보의 신정론)’, 교육적 신정론, 역사적 신정론, 교제의 신정론(대속의 신정론)들 여러 신정론을 혼종적, 절충적으로 주장했습니다. 함석헌은 “기독교가 결코 유일한 진리도 아니요, 참 사관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진리가 기독교에서는 기독교식으로 나타났을 뿐이다.”라고 합니다.

 

15.예정의 신정론

하나님이 만물을 예정하며, 인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예정의 신정론(定的神正論 theodicy of predetermination)’은 고통과 죽음과 악이 예정의 일부분이라고 봅니다. 바울도 하나님을 토기장이에게 비교하며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1)하고 묻습니다.

 

6.과정 신정론 

악의 문제는 기술적 형이상학(記述的形而上學)의 문제인데 형이상학적 상황이 부적절하게 사용되면 실재는 그 투명성을 잃게 되고, 하나님 존재의 이해 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게 됩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는 이러한 기술적 형이상학으로서의 신정론을 ‘과정 신정론(process theodicy)으로 구성하려고 시도합니다.

 

17.무악론 

악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악론(無?論)은 기독교 지성사에서 매우 일찍부터 발전되어온 전통입니다. 마니교와 같은 선악의 이원론에 대항하여 오리게네스, 바실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은 ‘선의 결핍(privatio boni)’ 으로서의 악이라는 교리적 전통을 발전시겨 왔습니다. “악은 존재가 아닌 반면 선은 존재이다.”

 

18.신정론 없는 위안 

진정한 위안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유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반면 종교적 상인들은 ‘왜’라는 질문을 청원의 기도로 만들려 합니다. 여기에 대한 에크하르트의 대답은 “하나님은 목적론적 ‘왜’가 없다’” 만물은 왜(a Why)가 있지만, 하나님은 왜가 없습니다.(no Why) 장미는 그저 꽃이 피기 때문에 피어날 뿐입니다. 

 

19.논리적 신정론

논리적 신정론(論理的神正論logical theodicy)은 전통적 신정론의 여러 형태와 중첩되지만, 그럼에도 변증의 핵심에 논리적 모순이 없는 설득력이 자리하는 신정론을 선별하여 가리킵니다. 종교적 신정론이 논리적 성격을 지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논리적 신정론이 반드시 종교적이지는 않습니다. 

 

20.미학적 신정론

미학적 신정론(美學的神正論aesthetic theodicy)이란 미학적 가치를 통해서 악의 문제라는 교리적 난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의 예술적 창조의 경험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예술가의 창조와 감상자의 향유 경험에 대한 성찰을 통해 악과 고통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입니다. ‘아름다움이 악을 극복할 것이다.’

 

21.기술적 신정론 

악과 고통이 종교적 문제만이 아니라 기술의 문제라고 보는 견해가 기술적 신정론(技術的神正論technological theodicy)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질병과 장애 그리고 죽음이라는 궁극적 부조리 등등 인류가 경험하는 혹은 경험하기 두려워하는 악과 고통은 신이라는 종교적 관점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2.성서적 신정론

하나님만이 인간의 영혼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인간 영혼이 지닌 존엄성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는 인간이 지닌 어떤 내재적인 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그 기원(origin)이 하나님이기에 존엄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23.체계의 신정론

기독교의 ‘하나님의 경세에 대한 교리’는 체계의 신정론에서는 ‘합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라는 개념적 인식으로 이해됩니다. 헤겔은 “체계가 없는 철학은 전혀 학문적일 수 없다”고 합니다.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이라는 그의 체계의 신정론은 감정의 언어를 개념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54.나그네 신정론

칼 바르트는 “모든 신학은 나그네 신학(theologia viatorum)이다”라고 합니다. 악의 이유들, 곧 창조의 질서를 무화 시키려는 제3의 이질적인 요소를 언어가 체계화할 수 없고, 체계의 내재적인 요소로 포섭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악은 우리를 체계 없는 나그네로 만듭니다. 나그네 신정론은 오직 체계에 대한 해체로만 존재합니다.

 

25.무의 신정론

에크하르트는 바울이 만난 하나님을 ‘무로서의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은 하늘로부터 빛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경험하며 땅에 엎드립니다. 뒤이어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다’ 그는 ‘무(Nichts)’를 본 것입니다. 바울은 ‘무(ein Nichts)’의 하나님을 만난 신비를 경험한 것입니다.

<요약/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