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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세기의 신학자54]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Childs, 1923~2007)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2 추천 수 0 2026.08.11 21:12:09|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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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Childs, 1923~2007)
브레바드 차일즈는 구약학계의 반항아였다. 그러나 그의 반항은 전통을 버리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을 되찾는 방향으로 향했다.
20세기 성서학은 해체의 시대였다. 학자들은 본문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누가 썼는지, 언제 쓰였는지, 어떤 편집자가 손을 댔는지 추적했다. 마치 고대 유적지를 발굴하듯 성경을 파헤쳤다. 많은 것을 발견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이상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차일즈는 바로 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역사비평학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서학이 지나치게 본문의 과거에만 집착한 나머지 현재의 성경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다. 발굴은 성공했지만 집은 사라진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경비평(Canonical Criticism)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차일즈에게 중요한 것은 본문이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가가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공동체가 어떤 형태의 성경을 받아들였는가였다. 그는 성경을 미완성 원고가 아니라 완성된 교향곡으로 보았다. 작곡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가 듣는 것은 완성된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Biblical Theology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는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거대한 증언으로 읽으려는 시도였다. 당시 학계는 둘을 자꾸 분리하고 있었지만, 차일즈는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는 성경을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교회의 책으로 읽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신앙을 위해 학문을 포기하지 않았고, 학문을 위해 신앙을 희생하지도 않았다. 그 둘이 서로를 교정하며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일즈는 진보 진영에서는 너무 교회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보수 진영에서는 너무 비평적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는 양쪽 모두에게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그의 위대함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성경의 뿌리를 연구했다. 차일즈는 열매를 바라보았다.
많은 학자들이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었다. 차일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었다.
“교회는 왜 이 성경을 성경으로 받아들였는가?”
그 질문은 구약학과 신약학 사이에 새로운 길을 냈다.
차일즈의 손에서 성경은 더 이상 해부대 위의 시신이 아니었다. 다시 살아 있는 정경이 되었다. 그는 현대 성서학이 잃어버렸던 한 가지를 회복하려 했다.
본문의 역사만이 아니라, 본문의 목소리를 듣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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