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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59] 2026년 8월 16일 일요일
인생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할렐루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8월 16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곳 김포의 하늘에는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날씨는 좋은 편입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참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초등 시절부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은 후에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느 중국인이 만리장성 돌벽에다 자기 이름을 새기려다가 붙잡혀서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바벨탑 사건을 잘 아실 겁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 이름을 내려고 탑을 쌓다가 그 탑이 무너진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사람마다 그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게 되어서 서로 불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무엇이 달라진다고, 사람들은 그토록 자기 이름을 내려고 그토록 안달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 높이며 찬양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중에서 하나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가장 허망하게 보내는 방법 중에서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격과 지능은 상당 부분 타고 납니다. 그러니 상수(常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성품과 지혜는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변수(變數)입니다. 그렇다면 상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변수를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수보다는 변수가 더 힘이 셉니다.
창의성은 상수처럼 보이지만 변수입니다. 타고나는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의 창의성이 달라집니다.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잘 지내는 능력도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아니라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출처 ;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 생활’에서, 김경일 교수)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신32:29)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플라톤)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라고 말해주자
숨이 턱 막히게 찌는 날,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릅니다. 나는 무슨 청승인지 혼자 있을 땐 에어컨을 틀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아껴야 잘 산다’는 말이 아직도 내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무 아껴도 궁상맞습니다. 하지만 좀 견디다 시원한 바람을 쐬면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당연하다 싶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해 주고 인내력 점수도 올라가는 것 같아서 종종 훈련하듯 참아봅니다. 특히 산에 올라갈 때는 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는데 나뭇잎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 소리는 어느 오케스트라 연주의 도입부보다 설렙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조용한 길을 따라 걷는데 그 고요함이 신비하여 나만 아는 숲속 요정의 별장으로 향하는 기분이 듭니다.
우리 학교 뒤에는 우스갯소리로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 올라가면 해소가 된다”는 부아산이 있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몸이 좀 무거울 땐 등산화로 갈아신고 산에 오릅니다. 예전엔 부드러운 신발이 좋았는데 신발 안에서 많이 움직이는 발 때문에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요즘엔 좀 딱딱한 걸 신습니다. 처음엔 좀 불편해도 며칠 익숙해지면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도와주어 걸음이 편해집니다.
이렇게 다 좋은데 한 가지 좀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다 마주치면 서로 인사하는 분들이 있고 그냥 지나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먼저 인사하는 걸 당연히 좋아하는데 한 번씩 안 받아주는 분들을 만날 때면 머쓱해져서 어느덧 먼저 인사하는 것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래, 나도 올라가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그냥 가자’하고 건조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몇 명을 지나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나이가 좀 있으신 어머님과 따님을 정상 아래서 만났습니다. 두 분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냥 지나쳐 내려오는데 어머님 왈, “아, 여기가 끝이었으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내가 나도 모르게 “요기만 돌면 끝이에요. 조금만 더 힘내시면 이제 좋을 일만 남으셨어요” 말했더니, 두 모녀가 하하하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나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육중한 몸도 발걸음이 가벼우니 날다람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따닥따닥 리듬을 맞추며 신나게 내려가는데 앞의 아저씨가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내적 갈등. ‘아, 어쩌지? 내가 먼저 인사할까? 아님, 그냥 지나칠까?’ 고민하는데 아저씨가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 주셨습니다. 나도 반갑게 화답하면서 속으로는 ‘아, 그냥 내가 먼저 할걸. 그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후회하며 내려가는데 또 다른 아저씨의 등장. 이번에도 아저씨가 먼저 인사해 주셨습니다. 나는 먼저 인사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담아 더 씩씩하게 인사했습니다. 살짝 미소를 보이고 나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아가씨, 참 시원시원하네”라며 지나가셨습니다. 나는 아가씨란 말이 좋았던 건지, 시원시원하다는 말이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웃음이 났습니다. 최근에 병원과 아파트 관리실에서 만난 분들에게서 “어머니,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소리를 들어서일까? 물론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를 몰라보셔서 그랬겠지만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이제 내가 어머니로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는 현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기에 더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씩씩하게 내려오며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마음을 이렇게 훈훈하게 해 주는데 먼저 입을 떼기가 왜 망설여지는 걸까? 그때 ‘아, 난 늘 누가 먼저 해 주길 바라며 살았구나. 내가 먼저 해도 되는데 쑥스럽단 이유로 또는 굳이 뭘…’ 하면서 상대가 먼저 인사해 주고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구나. 산에서 우연히 만난, 모르는 아저씨가 해 주신 짧은 인사에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내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게 표현해 주면 얼마나 더 좋을까?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 인생의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있을 때 내가 먼저 말을 걸고 물을 준비해 주고 땀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건네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물론 모른 척해 줘야 할 때도 있지만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출처 ; ‘장미란의 무게여 안녕]’에서, 장미란 역도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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