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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신학자58] 존 마이어(John P. Meier, 1942~2022)
더깊은신앙으로 samyoung.park............... 조회 수 4 추천 수 0 2026.08.17 22:54:47| 출처 : | www.facebook.com/samyoung.park.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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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존 마이어(John P. Meier, 1942~2022)
존 므이어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판사였다.
그는 변호사가 아니었다. 예수를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 검사도 아니었다. 예수를 공격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증거를 요구했다.
메이어의 평생 프로젝트인 《A Marginal Jew》는 현대 신약학이 낳은 가장 거대한 역사적 예수 연구 중 하나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시리즈는 단 한 가지 질문을 붙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예수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는 유명한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어느 날 가톨릭 신부, 개신교 목사, 유대교 랍비, 불가지론 역사학자가 한 도서관에 갇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자. 각자의 신앙은 문밖에 두고 오직 역사적 증거만 사용해야 한다.
메이어는 바로 그 보고서를 쓰고 싶어 했다.
그의 예수는 교회의 강단 위에 서 있는 예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회의주의가 만든 허상도 아니다. 그는 문헌과 자료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말하는 예수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그의 연구는 느리다.
매 문장을 쓰기 전에 증거를 확인한다. 매 결론을 내리기 전에 반론을 검토한다. 다른 학자들이 한 페이지로 끝낼 이야기를 그는 수십 페이지에 걸쳐 심문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신학자가 아니라 형사 기록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예수는 실제로 세례를 받았는가?
기적을 행했는가?
스스로 메시아라고 생각했는가?
부활을 예고했는가?
메이어는 질문 하나하나를 법정에 세워 증언을 듣고 판결을 내린다.
그의 가장 큰 공헌은 균형감각이다. 그는 보수주의의 확신에도, 급진적 회의주의의 의심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어느 편의 응원단장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보수 학자들은 때때로 그가 너무 신중하다고 불평했고, 진보 학자들은 때때로 그가 너무 많은 것을 인정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메이어의 힘이었다.
그는 결론보다 절차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연구에서 역사적 예수는 신앙의 적도 아니고 신앙의 노예도 아니다. 역사는 역사로 말하게 하고, 신앙은 그 다음에 판단하게 한다.
위대한 학자는 정답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결정하는 규칙을 세우는 사람이다.
메이어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불트만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폐허를 남겼다면, 메이어는 그 폐허 위에 측량 도구를 들고 나타난 사람이었다. 그는 성급하게 궁전을 짓지 않았다. 대신 한 조각 한 조각 증거를 모아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오늘날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 가운데 그가 만든 작업장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학문은 화려한 불꽃놀이가 아니라 정밀한 법정 기록이다. 그러나 오래 살아남는 것은 종종 불꽃이 아니라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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