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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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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쟁이도 아니고 선거 전문가도 아니다. 따라서 이번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파할만한 실력은 전혀 없다. 다만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지난 87년 이후의 선거 과정과 그 결과를 나름대로 지켜보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이번 선거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고 싶다.
나는 87년 이후 그러니까 대통령 직선제 이후 적어도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나는 표의 성격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세 후보에 대한 지지로 대변되는 표가 바로 그것이다.
최종분석 : 누가 소극적 개혁세력과 입을 맞출까
이런 구분은 지역 구도로 바라봤을 때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런 표의 분포를 개혁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노태우표=개혁 거부, 김영삼표=소극적 개혁, 김대중표=보다 적극적인 개혁... 이렇게 말이다. 물론 무리도 많고, 각각의 지지성향을 일괄 재단할 수 없는 방법론이긴 하지만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그렇다는 전제 아래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에 대해 긍정적인 유권자들을 분열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기는 양김의 분열과 그로 인해 촉발된 지역 감정이었다. 그리고 92년 대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김영삼은 자신의 지지 기반인 소극적 개혁 세력에 개혁 거부 세력까지 결집해 대선에서 무난히 승리할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의 표 차이는 70년대 이후 대한민국 대선 역사상 가장 큰 것으로 기억한다. 표의 분포, 지지세력의 구도 자체가 그러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0년대와 70년대 대선 구도가 양자 대결이었던 반면, 87년 이후 대선이 계속 3자 구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국내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나타내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70년대까지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엄밀하게 말해 거의 민중적 지지 기반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집권당 프리미엄을 더해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으나 이후 일정한 경제적 성과와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상당한 지지계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97년 대선 역시 3자 대결 구도였다. 이 선거에서 이인제가 위력을 발휘한 근거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물론 이인제는 특별한 지역 기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자체 득표와 함께 대권의 향방을 바르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김영삼의 퇴임 이후 공백 상태가 된 소극적 개혁 세력이 바로 이인제에 대한 지지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양강 대결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87년 당시 출발한 3자 대결 구도나 마찬가지다. 바로 정몽준의 존재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아무 정치적 이력이나 역량 검증이 없는 정몽준이 노무현을 추월하는 후보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소극적 개혁 세력의 존재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소극적'이라는 그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는 본질적 한계를 갖고 있다. 즉 정치적 의견 정립이 유동적이고 별로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소한 사건 하나도 이들의 정치적 선택을 좌우할 수 있다. 또한 보다 적극적이고 명분이 있는 세력에 휩쓸리는, 한마디로 말해 정치적 역관계에 의해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양적 분포 자체는 아마 가장 방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7년 이후 한국의 대선을 수구-개혁 세력의 대립 관계로 분석했을 때 양자의 승부는 이들 소극적 개혁 세력을 누가 끌어들이느냐, 누가 이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느냐에 따라 갈렸다고 볼 수 있다. 노태우는 이들을 적극적 개혁 세력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승리했고, 김영삼은 보다 적극적으로 '소극적 개혁+개혁 거부 세력'이라는 구도를 통해 압승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결과는 비참했고, 그러한 결과는 그의 승리의 구도 자체에 내포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에서 정몽준으로 대표되는 소극적 개혁 세력은 일단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적극적 개혁 세력의 손을 들어줬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고, 나올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그 의미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 이후 원래 정몽준 지지자들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정치에서 가장 기본은 일단 명분이다. 이 명분이란 점에서 노무현은 전략적 승리를 거뒀다. 정몽준 지지자들 가운데 몇 명이나 노무현을 지지할 것이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김영삼은 '소극적 개혁+개혁 반대'라는 카드로 승리했지만 노무현은 '적극적 개혁+소극적 개혁'이라는 구도를 이뤄냈다. 어느 카드가 보다 위력적일까? 길게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본다. 이것은 노무현이 PK 출신이라느니 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물론 출신 지역이 그러한 정치적 지형을 보다 선명히 하는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성격은 분명히 다르다.
이번 대선이 애초 출발부터 이회창에게 극히 불리한 구도라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구도는 87년 당시 YS와 DJ가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구도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노무현이 자꾸 역사적인 채무 또는 숙제 해결을 말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노무현이 영삼 시계를 차는 해프닝을 연출한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바로 87년 당시 양김이 이뤄내지 못했던 그 숙제, 역사에게 빚지고 있는 그 숙제를 이뤄낸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란 게 워낙 다양한 변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하는 게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판세라도 그 핵심을 이루는 줄기는 대개 간단하다. 나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선 판도를 이 3개의 핵심 세력, 즉 개혁 반대, 소극적 개혁, 적극적 개혁 세력 사이의 대립, 갈등, 투쟁, 이합집산, 협력 관계의 방정식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큰 줄기는 이미 결정이 됐다. 나머지 사소한 부분들은 이 큰 줄기가 점점 뚜렷해지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러한 큰 흐름을 막을 장사가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현재의 이회창 진영을 바라보면서 큰 흐름을 막을 그런 장사의 출현에 대한 기대(또는 우려^^)를 접게 된다. 불행히도 한나라당에는 상황을 이런 구도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지역감정, 반DJ로 몰아가면 모든 게 풀린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걸 알아야 한다. 원래 진검 승부가 아니라면 모든 변수, 모든 실력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진검 승부는 곧 대선이다. 지역구도, 반DJ감정... 분명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보다 근본적인 세력 구도에 대한 조치 위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너무 낡은 구호, 너무 낡은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한나라당... 이번에도 먹혀들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자꾸 "재미난 골에 호랑이 나온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한나라당은 지역구도, 반DJ 정서로 너무 많이 재미를 봤고, 너무 많이 우려먹었다.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정치 슬로건도 대중에 대한 하나의 학습이라고 봤을 때... 최악의 학습방법은 같은 방법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명제 말이다.
나는 87년 이후 그러니까 대통령 직선제 이후 적어도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나는 표의 성격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세 후보에 대한 지지로 대변되는 표가 바로 그것이다.
최종분석 : 누가 소극적 개혁세력과 입을 맞출까
이런 구분은 지역 구도로 바라봤을 때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런 표의 분포를 개혁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노태우표=개혁 거부, 김영삼표=소극적 개혁, 김대중표=보다 적극적인 개혁... 이렇게 말이다. 물론 무리도 많고, 각각의 지지성향을 일괄 재단할 수 없는 방법론이긴 하지만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그렇다는 전제 아래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에 대해 긍정적인 유권자들을 분열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기는 양김의 분열과 그로 인해 촉발된 지역 감정이었다. 그리고 92년 대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김영삼은 자신의 지지 기반인 소극적 개혁 세력에 개혁 거부 세력까지 결집해 대선에서 무난히 승리할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의 표 차이는 70년대 이후 대한민국 대선 역사상 가장 큰 것으로 기억한다. 표의 분포, 지지세력의 구도 자체가 그러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0년대와 70년대 대선 구도가 양자 대결이었던 반면, 87년 이후 대선이 계속 3자 구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국내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나타내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70년대까지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엄밀하게 말해 거의 민중적 지지 기반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집권당 프리미엄을 더해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으나 이후 일정한 경제적 성과와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상당한 지지계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97년 대선 역시 3자 대결 구도였다. 이 선거에서 이인제가 위력을 발휘한 근거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물론 이인제는 특별한 지역 기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자체 득표와 함께 대권의 향방을 바르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김영삼의 퇴임 이후 공백 상태가 된 소극적 개혁 세력이 바로 이인제에 대한 지지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양강 대결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87년 당시 출발한 3자 대결 구도나 마찬가지다. 바로 정몽준의 존재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아무 정치적 이력이나 역량 검증이 없는 정몽준이 노무현을 추월하는 후보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소극적 개혁 세력의 존재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소극적'이라는 그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는 본질적 한계를 갖고 있다. 즉 정치적 의견 정립이 유동적이고 별로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소한 사건 하나도 이들의 정치적 선택을 좌우할 수 있다. 또한 보다 적극적이고 명분이 있는 세력에 휩쓸리는, 한마디로 말해 정치적 역관계에 의해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양적 분포 자체는 아마 가장 방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7년 이후 한국의 대선을 수구-개혁 세력의 대립 관계로 분석했을 때 양자의 승부는 이들 소극적 개혁 세력을 누가 끌어들이느냐, 누가 이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느냐에 따라 갈렸다고 볼 수 있다. 노태우는 이들을 적극적 개혁 세력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승리했고, 김영삼은 보다 적극적으로 '소극적 개혁+개혁 거부 세력'이라는 구도를 통해 압승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결과는 비참했고, 그러한 결과는 그의 승리의 구도 자체에 내포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에서 정몽준으로 대표되는 소극적 개혁 세력은 일단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적극적 개혁 세력의 손을 들어줬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고, 나올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그 의미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 이후 원래 정몽준 지지자들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정치에서 가장 기본은 일단 명분이다. 이 명분이란 점에서 노무현은 전략적 승리를 거뒀다. 정몽준 지지자들 가운데 몇 명이나 노무현을 지지할 것이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김영삼은 '소극적 개혁+개혁 반대'라는 카드로 승리했지만 노무현은 '적극적 개혁+소극적 개혁'이라는 구도를 이뤄냈다. 어느 카드가 보다 위력적일까? 길게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본다. 이것은 노무현이 PK 출신이라느니 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물론 출신 지역이 그러한 정치적 지형을 보다 선명히 하는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성격은 분명히 다르다.
이번 대선이 애초 출발부터 이회창에게 극히 불리한 구도라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구도는 87년 당시 YS와 DJ가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구도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노무현이 자꾸 역사적인 채무 또는 숙제 해결을 말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노무현이 영삼 시계를 차는 해프닝을 연출한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바로 87년 당시 양김이 이뤄내지 못했던 그 숙제, 역사에게 빚지고 있는 그 숙제를 이뤄낸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란 게 워낙 다양한 변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하는 게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판세라도 그 핵심을 이루는 줄기는 대개 간단하다. 나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선 판도를 이 3개의 핵심 세력, 즉 개혁 반대, 소극적 개혁, 적극적 개혁 세력 사이의 대립, 갈등, 투쟁, 이합집산, 협력 관계의 방정식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큰 줄기는 이미 결정이 됐다. 나머지 사소한 부분들은 이 큰 줄기가 점점 뚜렷해지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러한 큰 흐름을 막을 장사가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현재의 이회창 진영을 바라보면서 큰 흐름을 막을 그런 장사의 출현에 대한 기대(또는 우려^^)를 접게 된다. 불행히도 한나라당에는 상황을 이런 구도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지역감정, 반DJ로 몰아가면 모든 게 풀린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걸 알아야 한다. 원래 진검 승부가 아니라면 모든 변수, 모든 실력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진검 승부는 곧 대선이다. 지역구도, 반DJ감정... 분명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보다 근본적인 세력 구도에 대한 조치 위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너무 낡은 구호, 너무 낡은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한나라당... 이번에도 먹혀들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자꾸 "재미난 골에 호랑이 나온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한나라당은 지역구도, 반DJ 정서로 너무 많이 재미를 봤고, 너무 많이 우려먹었다.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정치 슬로건도 대중에 대한 하나의 학습이라고 봤을 때... 최악의 학습방법은 같은 방법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명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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