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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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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떤 위대한 일을 이룩한 사람은 없다는 뜻으로,
나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목회도 그런 면이 많다.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 존재하기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선 사모의 헌신적인 도움을 말하고 싶다.
그 도움과 마음 고생을 어떻게 제외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목사보다 더 많은 부분을 감당해 내고도
묵묵히 기도만 하는 사모의 일기가 없이는 목회는 불가능하다.
내가 멋있게 강단에 서서 설교하기까지도
여러 사람들의 협조가 요청된다.
토요일 오후 누군가 강단을 청소했다.
그리고 내 설교를 들어주려 교회에 와서 성도들이 앉아주었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과 학식과 역량들이 있지만,
김목사가 하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참 고맙다.
예배시간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주자와 성가대와
기도자등 순서맡은 자의 도움이 이었야 한다.
그리고 몇년째 헌금바구니를 강단으로 가져오는
집사님의 발걸음도 소중하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물한컵 손에 받쳐들고,
종종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강단으로 여집사님이 다가온다.
예배를 인도하는 김목사가 먹을 물이다.
그런데 물을 떠오는 여집사님이 물컵을 대하는 태도는 거룩하기조차 하다.
마치 귀중한 보물을 받쳐들고 오듯이 그렇게 왔다.
그녀는 하나님께 하듯 했다. 그의 믿음의 표현이다.
나는 그렇게 귀중한 물을 먹었다. 감사할 일이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우리교회에는 아내와 아이들만 교회에 나오고 남편은 아직 안나오는 가정이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에 가버리면 혼자서 집에 있곤 한다.
우리도 알다시피 아내가 없는 집안은 왜 그렇게 썰렁한지......,
아마 그 남편도 그 썰렁함을 많이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인정해주고 있다.
어느 토요일 저녁,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친정 부모님들을 위하여 맛있는 김치를 저녁 늦게까지 만들었다.
그 여성도는 참으로 효녀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주일 아침! 친정인 부여까지 김치를 배달해야 하는데 예배시간과 겹치게 되었다.
어떻게 하느냐?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은 '내가 김치배달은 할터이니 당신은 교회갔다가 오라 오후에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자' 고 제안하였다.
그날 그 여성도님은 너무나도 기분좋게 예배에 참석했다.
설교시간 내내 영의 말씀을 달게 먹는 것을 보고 김목사는 행복했다.
그렇다. 한 사람이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교인이 아닌 남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선하심을 이끌어내시는 성령님께서 그 남편을 속히 구원해주시리라 나는 확신한다.
그 여성도님의 이번해의 기도제목 제1순위는 남편구원이다.
비록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아내를 예배에 참석시키기 위해 대신
김치배달을 한 그 남편은 보이지 않는 동역자이다.
전도사로 섬겼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여집사님의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자리에는 얼큰하게 한잔 걸친 남편도 있었다.
그 때 그 남편이 한마디 하였다.
"전도사님도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교회를 이끌어 갈텐데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아내가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안믿는 남편의 배려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남편이 아직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나도 그 교회 성도다' 고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그 남편은 그 교회 안수집사가 되었고, 아내는 권사가 되었다.
오늘 나는 술취해서 진심을 이야기한 그 분의 말이 마음에 새로와진다.
목회여정 내내 이런 보이지 않는 동역자들의 존재를 결코 잊지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독불장군은 없다.
서로 협조하고 도와서 이루어낸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훌륭한 업적이 있다 하더라도 저 혼자 우쭐되어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분명이 있다.
혼자만의 노력이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에 선 사람들은 겸손해지는 것 같다. 겸손해져야 할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떤 위대한 일을 이룩한 사람은 없다는 뜻으로,
나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목회도 그런 면이 많다.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 존재하기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선 사모의 헌신적인 도움을 말하고 싶다.
그 도움과 마음 고생을 어떻게 제외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목사보다 더 많은 부분을 감당해 내고도
묵묵히 기도만 하는 사모의 일기가 없이는 목회는 불가능하다.
내가 멋있게 강단에 서서 설교하기까지도
여러 사람들의 협조가 요청된다.
토요일 오후 누군가 강단을 청소했다.
그리고 내 설교를 들어주려 교회에 와서 성도들이 앉아주었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과 학식과 역량들이 있지만,
김목사가 하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참 고맙다.
예배시간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주자와 성가대와
기도자등 순서맡은 자의 도움이 이었야 한다.
그리고 몇년째 헌금바구니를 강단으로 가져오는
집사님의 발걸음도 소중하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물한컵 손에 받쳐들고,
종종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강단으로 여집사님이 다가온다.
예배를 인도하는 김목사가 먹을 물이다.
그런데 물을 떠오는 여집사님이 물컵을 대하는 태도는 거룩하기조차 하다.
마치 귀중한 보물을 받쳐들고 오듯이 그렇게 왔다.
그녀는 하나님께 하듯 했다. 그의 믿음의 표현이다.
나는 그렇게 귀중한 물을 먹었다. 감사할 일이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우리교회에는 아내와 아이들만 교회에 나오고 남편은 아직 안나오는 가정이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에 가버리면 혼자서 집에 있곤 한다.
우리도 알다시피 아내가 없는 집안은 왜 그렇게 썰렁한지......,
아마 그 남편도 그 썰렁함을 많이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인정해주고 있다.
어느 토요일 저녁,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친정 부모님들을 위하여 맛있는 김치를 저녁 늦게까지 만들었다.
그 여성도는 참으로 효녀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주일 아침! 친정인 부여까지 김치를 배달해야 하는데 예배시간과 겹치게 되었다.
어떻게 하느냐?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은 '내가 김치배달은 할터이니 당신은 교회갔다가 오라 오후에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자' 고 제안하였다.
그날 그 여성도님은 너무나도 기분좋게 예배에 참석했다.
설교시간 내내 영의 말씀을 달게 먹는 것을 보고 김목사는 행복했다.
그렇다. 한 사람이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교인이 아닌 남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선하심을 이끌어내시는 성령님께서 그 남편을 속히 구원해주시리라 나는 확신한다.
그 여성도님의 이번해의 기도제목 제1순위는 남편구원이다.
비록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아내를 예배에 참석시키기 위해 대신
김치배달을 한 그 남편은 보이지 않는 동역자이다.
전도사로 섬겼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여집사님의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자리에는 얼큰하게 한잔 걸친 남편도 있었다.
그 때 그 남편이 한마디 하였다.
"전도사님도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교회를 이끌어 갈텐데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아내가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안믿는 남편의 배려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남편이 아직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나도 그 교회 성도다' 고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그 남편은 그 교회 안수집사가 되었고, 아내는 권사가 되었다.
오늘 나는 술취해서 진심을 이야기한 그 분의 말이 마음에 새로와진다.
목회여정 내내 이런 보이지 않는 동역자들의 존재를 결코 잊지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독불장군은 없다.
서로 협조하고 도와서 이루어낸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훌륭한 업적이 있다 하더라도 저 혼자 우쭐되어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분명이 있다.
혼자만의 노력이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에 선 사람들은 겸손해지는 것 같다. 겸손해져야 할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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