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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옥중서신

무엇이든 에코/테츠/해리포터............... 조회 수 1048 추천 수 0 2003.02.25 22: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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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5시. 우리는 5년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켜보았다. 수구 언론과 거대야당의 정략적 목조르기에 지칠대로 지쳐 버린 78세 노대통령의 걸음걸이가 힘겨워 보였음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정계에 투신한 지 50년. 이제 그가 무거운 짐을 젊은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쓸쓸히 그 자리를 물러나고 있다.

내가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아마도 71년 대선 때였던 것 같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담벼락에 붙은 대선후보 벽보에 40대의 젊은 얼굴로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모습이 그에 대한 첫번째 인상이었다. 별다른 정치의식이 있을 리 없었던 내게, 그는 다만 박정희라는 절대권자(나는 그 때 박정희 대통령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다)와 대통령 자리를 다투는 대단한 사람이거니 하는 것으로 마음속에 자리매김을 하는 정도였다.

지역감정이 선거에 먹히기 시작한 71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신승을 하고 나서, 종신집권을 위해 허겁지겁 유신을 선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허수아비 집단을 만들어 체육관 선거를 하고 있을 즈음, 반유신투쟁에 나섰던 김대중이 73년 동경에서 납치되고 이후 형극의 길을 걷는 동안에도 나는 그를 몰랐다. 중앙정보부의 서슬이 시퍼런 긴급조치 시절에 우리는 유신헌법을 외우고, 교련복을 입고 총검술을 배우고, '나의 조국'과 '새마을의 노래'를 매일 아침 들어야만 했다. 한 마디로 암흑 시기였다.

내가 그를 다시 인식한 시기는 10.26이 일어나고, 80년 '서울의 봄'이 되어서였다. 신군부의 언론통제 속에 이름조차 거론되지 못하고 '재야인사'로 불려지던 그가 다시 정계에 등장하면서,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된 나의 정치의식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그 당시 집안 형님으로부터 들은 3김에 대한 인물평에 의하면 김대중이 가장 재목이라는 것이었다. 정치적 안목이 전혀 없던 내게는, 단지 반독재투사적 이미지로만 굳어져 있던 그가 정치 지도자로서의 평가를 받는 면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들렸다. 그리고 그는 다시 5.18 광주항쟁과 더불어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투옥된다.

김대중에 대한 나의 관심이 가장 고조되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사형언도를 받고도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구명운동에 의하여 사형을 당하지 않는 정치인이 그였다. 관제언론에 의해 국민들에게는 빨갱이라고 알려진 그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토록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무언의 투쟁을 하는가? 반독재투사로 자리 잡고 있던 사람이 의미있는 정치 지도자로서 서서히 내 안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前대통령의 '김대중 옥중서신'


통곡의 몇 년이 흘렀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저항을 받고 끝나갈 무렵 나는 중요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김대중 옥중서신'이 바로 그 책이다. 그 책이 그때까지 금서였는지, 아니면 민주화 열기에 밀려 금서에서 풀렸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장인으로부터 받아 읽은 그 책은 1980년에서 1982년 까지 감옥에서 사형수로 지내면서,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을 앞둔 이가 가족들에게 남겨주는 유언장처럼 자신의 철학과 인생관을 정리한 글들이었다. 교도소로부터 종이가 허락되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봉함엽서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 내려간 이 글들을 보면서 나는 엄청난 감동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의 방대한 지식과 철학과 사유의 세계에 놀랐고, 그의 뜨거운 인간사랑에 책장 위로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 책은 57년 정치에 입문한 후로부터 그의 행적과 역경을 한꺼번에 이해하게 해주는 완벽한 해독서였다. 아!! 이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 이후 나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 보낸 반독재투사에 대한 추종적 지지가 아니라, 진정 철학과 역사에 대한 안목을 지닌 커다란 정치가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존경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지도자가 있다는 것이 내게는 하늘의 축복이었다. 87년 민주화 후보 단일화가 불발됐을 때나,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과 경쟁을 벌였을 때에도 그에 대한 나의 지지는 변함 없었다. 한 권의 책을 보고 그렇게 순진하게 빠져들 수가 있는가에 대한 질타도 나는 감수한다. 그러나 김대중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김대중 옥중서신'을 한 번 열린 마음으로 읽어 보라고. 그리고 나서 그를 비난하라고.

97년 대선은 우리 민족사상 소수파가 다수파로부터 정권을 가져온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이이가 해냈구나. 비록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가 닥쳐 왔지만, 그의 경륜과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었기에 나는 환란극복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연 그는 훌륭하게 당신의 일을 해 나갔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통일의 초석을 다져 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보통신과 지식산업을 장려하여 오늘 날 우리사회를 근저에서부터 민주화가 가능한 사회로 탈바꿈 시켜 놓고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것이야 말로 지난 5,000년 동안 문화의 흐름에서 뒤쳐진 한반도를 다시는 그 흐름에서 유리되지 않게 하려는 민족 지도자로서의 안목과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러는 이야기한다. 그가 대통령에 대한 집념과 욕심이 컸던 사람이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그만큼의 역량이 있었고, 정치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꿈을 향해 무던히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방향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방향으로 집중해왔음을 또한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 그가 길고 긴 정치인의 여정을 끝내고 야인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 세월은 50년이 흘렀고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그도 늙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마지막 역량을 힘있고 당당한 젊은 정치지도자를 국민들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에 쏟았다. 그것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죽이는 침묵으로 그것을 달성해냈다. 말을 안 해도 국민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를 위대하다고 할 수밖에 없게 하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그의 경륜이며 철학이다.

연어는 새끼를 낳고 제몸을 죽여 태어난 새끼의 영양분이 되게 한다. 이제 그가 자신의 몸을 죽여 노무현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의 거름이 되려 한다. 나는 그를 존경했지만, 한 번도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부르련다.

후광 김대중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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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테츠
2003/2/15(토)

김대중 대통령...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잘 모른다. 그래서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그 어떤 글도 쓴 적이 없다. 다만, 노무현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잠시 근거로써 끌어들인 적이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글인데, 서프라이즈의 대문에도 걸린 적이 있다. 사실 그 글로 정치칼럼계에 데뷔(?)를 했다구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워낙에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글들이 넘치고 넘쳐 오래간만에 그 글을 검색해서 읽어 보았다. 작년 11월달에 쓴 글이었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글이다. 노무현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때는 워낙에 긴박했던 때였으니.. 음...암튼 수단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다룬데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렇다. 나는 경상도 출신에 전라도 지역 놀러가 본 적은 딱 한번 있고, 김대중은 보수부르조아지 정치인이기 때문에 세미나 같은 거 할때도 그냥 열외였다. 웃기게도 자유주의자에 불과한 내가 선거권을 지게된 95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선거를 할수 있는 상황이라면 항상 민노당을 찍었다. 이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를 찍을 뻔 했지만, 재외국민은 선거권이 없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듣고, 민주당과 나와의 인연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항상 민주당지지자라는 말이 나에게 돌아올 때 항상 반론을 한다. 나는 민주당지지자가 아니라 노무현 빠돌이에 불과하다고, 루저라는 분에게 한 네번 정도는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저번달 1월 17일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때, 비로소 그를 만날수 있었다.(실제루 만났다는 말이 아니다....--;) 서프라이즈 모임에서 알게 된게 아니구, 그 전날 딴지사커 오프모임에서 김미륵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멋진 분이 나에게 [김대중의 옥중서신]이라는 것을 선물해 주신 것이다.

흡혈마공을 써서 읽어볼까 했는데, 주화입마 걸렸다. 솔직히 말하믄 김수행 교수가 친절하게 자본론을 설명해주신 [자본의 이해]를 읽을때랑 똑같은 느낌이었다.(자본을 읽은 것이 아니다. 자본의 이해를 읽었따....--;) 민경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테크노 폴리틱스는 딱 2시간 반만에 다 읽었는데, [옥중서신]은 무려 일주일동안 읽었다.

나는 김대중을 욕하는, 혹은 비판하는 양반들에게 김대중을 비판하려면 [옥중서신]을 읽어본다음 비판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비판은 자유고, 욕설하는 것도 자유지만, 솔직히 비판자들의 논거는 서프는 김대중 광신도들의 집합소라는 자기거울/이미지의 허상에서 한치앞도 나가지 못한다. 나처럼 별루 김대중 대통령 광신도 아닌 사람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은 상당히 많은데.. 그런 것들을 다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김대중 광신도로 몰고가려는 태도는 무언가 컴플렉스가 있다고 밖에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컴플렉스와 딱지쒸우기의 의견들 중에는 [무식한 김대중]이라는 말이 나올때도 있는데...그건 대착각되겠다. 김대중 대통령 정말 똑똑한 양반이다. 원래 비판을 하려면 그양반의 텍스트 한권쯤은 읽고 비판해야 된다.

예를 들면, 나는 진중권을 좋아한다. 그러나 비판할 때도 있다. 나는 진중권의 텍스트를 거의 다읽었다. 그래서 비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는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고, 조심해야 하는 법인거다. 솔직히 진중권 지지자들이 간혹가다 서퍼들 욕하는 이유중의 하나도 진중권의 진정성이 담긴 텍스트를 [서퍼들이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의혹이 강하게 들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이유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직접 쓴 텍스트 [옥중서신]이라는 책을 한번쯤 읽어 보시고 난 다음 나타나시길 바란다. 대통령이 된 다음의 대통령의 행위를 평가하는 데, 왜 그딴 책읽어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안읽어도 된다. 읽든 말든 그건 당신들 자유이지만...나는 그냥 추천해주고 싶을 따름이다.

좌파든 우파든 자유주의자든 수구이든지 간에...

총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자 적어 봤다.

동경에서 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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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해리포터
2003/2/24(월) 12:38

퇴임하는 DJ에 대한 나의 고백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던 순간 전 긴 안도의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비록 작다고 할지라도 DJ의 공을 무조건 악으로 둘러 업지는 않을 사람이 노무현이라고 믿었기에,최소한 이땅에 통일과 평화의 횃불을 계속 밝혀줄 대북한 포용정책을 지속될 수 있을거라고 믿었기에,지역감정의 마녀사냥이 중단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의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당선자에 대한 축하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습니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그러나 제가 DJ 당신을 알게 된것은 87년 고등학교 3학년 때이었으니 15년이 훌쩍 넘어 버렸군요. 항상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어느 누구한테도 당신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면서도 매번 선거에서 당신을 찍었고 저의 가족은 항상 당신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왜 제가 그렇게 바보같이 표현의 자유를 포기했었는지 꼭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 좋을거라 판단했습니다. 이글을 읽을 내친구도 내 아내도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 놀랄겁니다.

제 고향은 전라북도 익산입니다. 제가 DJ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된 87년은 제가 고3때였는데 그당시 투표권하고는 상관없는 나이였으나 당시 학교 국어선생님이 틈만 나면 당신에 대한 칭찬을 했었죠. 그 분 성함이 "김대종"였기에 그 인연으로 그랬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거기에 전라도에서도 이번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열변도 기억이 날 듯 하구요.

암튼 그당시엔 학교에 가도 김대중이고 집에가도 김대중..심지어 87년 당시 해태와 빙그레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에서 빙그레 선발투수가 "김대중"이었는데 엄청 점수를 주자 광주 만원관중이 김대중을 연호하는 소리가 텔레비젼을 통해 생중계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보단일화의 실패와 YS,DJ의 호남과 영남에서의 유세중에 발생하는 폭력사태로 영.호남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이 되었습니다.전 87년 대학입시에 낙방하며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익산을 떠나 경남 울산시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 정말 말투도 조심했었습니다. 다행히 사투리가 심하지 않아 많은 친구들이 절 서울출신으로 알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친해진 친구들에게 몰래 전라북도 익산 출신이라 밝히게 되었습니다.그 당시 사회분위기로선 전라도와 경상도가 무슨 대단한 철천지 원수의 분위기였었기에..암튼 전 울산에서의 1년을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놀러도 다니며 그곳에서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였습니다.사귀게 된 여자친구의 집에선 제가 전라도 출신이라 사귀지 말라고 말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 정말 친구관계도 전라도 출신이라 안된다니..그때부터 인지 전 대학생활하면서도 그 전라도출신이란 피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 후 집안 형편이 좋지않아 어렵게 구한 입주과외 자리에서도 출신이 전라도라 안된다 하였구,군 제대후 새로 사귄 여자친구 집에서도 전라도 출신이라 안된다구 하였다구 하고..그놈의 전라도에서 태어난게 머 어쨌다는 이야긴지..너무나 허탈하고 화가 났었죠.

그런 부당한 기억들이 모여 당신에게 법적으로 나의 투표권을 던질수 있었던 92년 대선에서 부터 꼭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고 바랬씁니다.그리고 누구를 만다든 고향이 어디냐구 물으면 서울이라고 말했으며, 92년 대선에서 누굴 지지할 거냐구 물을땐 백기완씨를,97년에선 권영길씨를 찍을거라고 거짓말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의도를 숨긴체 김영삼이 안되는 이유,이회창이 안되는 이유를 말하곤 하면서 적어도 당신의 반대편에겐 표를 찍지 못하도록 공작(?)을 하곤 했었죠.물론 그때마다 제 고향이 서울이란걸 거짓으로 강조하면서 말이죠.

암튼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정말 당신이 정말 제대로 해서 욕 안먹길 바랬습니다.최소한 전임 YS처럼 친인척 잘관리해서 전라도란 걸 숨기지 않아도 될 사회가 이루어지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신문지상에서 말하는 소위 전라도 역차별로 그럴 수 있을거라며 받아들여한다고 생각했고 암튼 욕만 안먹고 제대로 했다고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말고도 이런 생각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이 했을겁니다. DJ가 대통령돼서 청구,우방,대동은행,동남은행이 무너지는 건 전라도가 경상도 피말린다는 이야길 들으면 난 서울사람이지만 전라도도 해태,거평,나산 등이 무너졌고, 망하는건 경영자들이 사업을 못해서 그런거지 정부가 어케 망하게 하냐구 당신을 두둔했고..

부산에서 삼성자동차가,대구에서 삼성상용차가 문을 닫을땐 당신을 욕하면 안되고 삼성을 욕해야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하였습니다.하지만 이런 당신에 대한 지원이 조중동의 딴지걸기와 소위말하는 3홍비리란 사건으로 정말로 챙피하고 암담하고 허탈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북한 포용정책과 일련의 사회 개혁 정책이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의해 모두가 잘못된 정책으로 치부될때엔 할 말은 많았으나 당신의 친인척 관리에 포기하곤 했었죠.참으로 저것이 참인데 모두가 거짓으로 주장하니..그렇다고 멀 이야기할려구 하면 이문열 같은 사람은 당신 전라도지 하면서 무시하니 그냥 주저앉아 정치에 관심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노무현이 나타났습니다.2000년 8월 당시 노하우에 노사모로 회원가입하며 이런 용기있는 사람이 꼭 대통령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기억과 함께..

더군다나 노무현이란사람은 당신의 재벌개혁 정책,대북 포용정책등에 대하여 계속 승계할 거란 걸 약속하였고 더군다나 90년 3당 합당때부터 지역통합을 일관되게 주장한 사람이 이었습니다.

전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지하철역에 나가 노사모와 함께 율동했구 마누라 몰래 후원금을 보내고 국참본부에 무려 300여개의 지인 이멜을 등록하고..그러면서 제가 생각했었던 것은 남북을 분열시키려는 냉전세력,틈만 나면 대구 부산에서 지역감정을 돋구었던 분열세력, 조중동과 개혁을 저지하려는 수구세력이 되면 계속 전라도가 고향임을 숨겨야 한다고..그래서 노무현이 되어야 한다고..

정몽준이 마지막날 헛질할때는 잠 한숨 못자고 문자보내구 채팅방에서 투표독려하고..심지어 투표 안한다는 누나와 형에게 전화해서는 동생이 선거법 위반이니까 노무현이 안되면 감방갈줄 모른다고 협박까지 하면서..그때의 심정은 내 자식한테는 전라도란걸 숨길필요없는 사회,북한에 대한 증오가 필요없는 사회가 되어야한다구 믿었던 것이 그런 원천적인 힘이 었을 것입니다.

오늘이 2월 24일,

내일이면 노무현 당선자가 취임하니 DJ 당신은 오늘 퇴임하는 것이 맞다면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이겠죠. 60년인가 인제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무려 40여년간 한국정치의 중심에 서있었으면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당신.

목숨을 걸며 이나라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받쳤고, 망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선 국고를 체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냉전이 끝난 세계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렸던 남북관계를 평화와 대화가 지속되게 만들었던 당신의 노력이 조중동의 딴지와 두 아들의 비리와 당신이 전라도 출신였기에 묻힐 순 없을 것입니다.

아니 몇 달전에는 그런 걱정을 저도 그렇지만 DJ 당신도 했겠지요.하지만 이젠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노무현후보가 당선되었고,어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도 당선되기 전에 말씀하신 대북 포용정책,지역감정 해소,경제 및 언론개혁에 의지를 보여 줬기 때문이기두 합니다..

오늘 퇴임하면 앞으론 푹 쉬도록 하십시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그런 열정을 기억할 것이며 저또한 오늘 커밍아웃 할 계획을 갖도록 하겠습니다.이젠 당당히 제가 전라도 출신이며,그거하곤 별개로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했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02/24일 오전에 낭독한 퇴임사

  먼저,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귀중한 목숨 을 잃은 시민 여러분의명복을 빌고, 유가 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부상자들이 하루속히 쾌유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을 대하는 것이 오늘로서 마지막이되었습니다. 삼가 작별 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지난 5년 동안 격려하고 편달해 주신 국민 여러분의 태산 같은 은혜에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제 인생 최대의 보람을 국민 여러분에게 봉사하고 여러분과 함께 민족과 국 가의 운명을 열어가는 데 동참하는 것이라고 믿고, 저의 모든 것을 바쳐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후 회스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과 저의 정부는 지난 5년 동 안 최선의 노력을다하여 국운융성의 큰 기틀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힘이 컸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되어서 저는 더할 나위없이 기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가 융성하려면 훌륭한 국민과 책임을 다하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우리 국민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했습니다. 외환위기에는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였고, 개혁의 과정에 는 가혹한 시련과 희생을 감내해 주었습니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성공시켜 세계를 감탄케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세계적인 IT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반세기 민족의 비극에 전환점을 이루는 화해협력의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높은 국민의 참여 속에 가장 공명한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하는 국민적인 각성과 자신감이 전국 방방곡곡에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힘과 성원이 있었기에 국민의 정부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1세기 일류국가의 기틀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민주 인권국가로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넘치는 언론자유, 시민운동의 활성화, 여성지위의 획기적 향상, 노동운동의 자유 보장, 그리고 과거 군사독재하에서 희생됐던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 많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 기업, 공공, 노사 등의 4대 개혁을 실행하여 우리 경제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한국은 이제 IT강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배워라", "한국인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자랑할 권리가 있다", 이런 많은 찬사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사회 안전망을 선진국 수준으로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문화의 창달과 체육.관광의 진흥을 통해 보다 나은 국민의 삶과 국가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처우와 인사환경의 개선 속에 성실하고 능력있는 봉사를 통해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21세기 일류국가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벅찬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순간 이러한 성취를 위해 지 원하고 편달해 주신 사회 각계의 지도자 여러분에게도 머리 숙여감사드립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항상 어둡 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그것은 반세기가 넘는 분단과 대립의 민족현실입니다. 최근에는 북한 핵문제까지 우리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민족의 비극은 우리의 운명이며 해결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일생을 두고 민족의 평화공존과 평화교류,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박해와 오해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요지부동으로 보이던 평화통일에의 수레바퀴도 이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햇볕정책은 한반도 긴장을 크게 완화시켰습니다. 과거 50년간 해외 투자 유치는 246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600억 달러의 해외 투자가 들어왔습니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곧 경제이고, 안보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반세기만에 휴선선에서 육로가 열렸습니다. 지금 진행중인 철도와 공단의 건설 등은 남북을 하나의 민족경제로 연결하는 힘찬 출발이 될 것입니다. 5천년 단일민족을 지켜온 우리의 하나됨을 그 무엇도 영원히 갈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의 민심도 우리에 대한 불신과 적대에서 이해와 동경으로 차츰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다가 서로 안심할 수 있을 때에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민족의 비극을 종식시키고 통일 조국을 실현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북한과 이념을 달리하고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국가 안보는 지금도 우리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인내와 노력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점진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포기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지난 5년이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부산 아시안게임이 국민적으로 이를 실감케 했습니다.

    북한 핵은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핵은 반드시 포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는 한미일 정상간의 합의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북미간의 대화가 해결의 중요 관건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노력을 계속할 때 북한은 더욱 개방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안정과 평화속에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전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와 육로를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 중심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북아시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성장한 우리의 힘은 통일의 비용도 자신있게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 통일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착실히 전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족의 분단은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우리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서 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현실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히 지키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화해협력과 더불어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동맹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입장으로 봐서 조선왕조 말엽과 같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동북아의 언정자로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지금은 물론 통일 이후에도 필요합니다. 한미 군사동맹은 한미 양국에게 모두 이익이 됩니다. 반미도 반한도 다 같이 배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주변의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EU와 같은 영향력 있는 국제사회와도 더 한층 긴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외교는 중요합니다. 외교는 평화와 번영에의 중요한 길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민주주의와 나라의 발전,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십년을 망명과 연금, 감시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치욕과 고통도 있었고 수많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저 역시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저는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이고, 죽더라도 타협을 거부하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습니다.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습니다.

    일생동안,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새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저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민족과 국민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 주십시오. 새 정부가 추구하는 민족간의 화해협력과 국민참여 속에 국정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 소명을 다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위대한 국가로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자질이 있습니다. 경제 대국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간의 평화적 통일도 언젠가는 실현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이제 저는 국정의 현장에서 물러갑니다. 험난한 정치생활 속에서 저로 인하여 상처입고 마음아파했던 분들에 대해서는 충심으로 화해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모두 하나같이 단결합시다. 내일의 희망을 간직하고 열심히 나아갑시다. 큰 대의를 위해 협력합시다.

    위대한 우리 국민에게 영광이 있으소소. 갈라진 우리 민족에게 평화와 통일의 축복이 있으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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熊: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수고해주실거라 믿습니다.

(그 책은 꼭 읽어봐야겠군요...20대라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네요..) -[02/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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