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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은 산업세력 對 IT세력의 대회전

무엇이든 민경진............... 조회 수 598 추천 수 0 2003.03.29 10: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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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28(금)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단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

필자의 서가에는 10년 전의 타임지 한부가 아직도 꽂혀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가뭄, 멕시코와 아시아에서 밀려드는 불법이민, 한계에 다다른 교통체증, LA 폭동 그리고 대지진의 위협까지.. 1993년은 미국 전체가 부시 행정부 때 누적된 불경기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었지만 캘리포니아는 특히 심했다. 잡지 전체를 캘리포니아 특집으로 채운 타임은 한 때 축복의 땅이었던 캘리포니아에 과연 미래가 있는지 심각하게 질문하고 있었다. 

당시 네 번째 책 <전쟁과 反 전쟁>을 막 출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역시 한 대담에서 똑 같은 질문을 받았다. 캘리포니아에 미래가 있는가? 토플러는 이렇게 답했다.

"캘리포니아에는 태평양이 있다"

그의 선견지명은 정확했다. 실리콘밸리, 할리우드, 와인산업… 토플러의 예견대로 산업시대를 졸업하고 정보화시대라는 제3의 물결의 최선봉에 선 캘리포니아는 태평양 건너 아시아에서 정보통신장비의 생산기지와 수요시장을 동시에 확보하면서 이후 10여년간 승승장구 했고 드디어 캘리포니아州 자체만으로도 세계 8위 규모의 경제권으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주목할 것은 실리콘밸리의 첨단 IT업체들이 연구개발과 정보처리 등 고부가가치 활동은 미국 내에서 해결한 반면에 토플러가 제2의 물결이라고 규정한 생산기능은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폴 등 동남아국가에 위탁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애플 컴퓨터의 설계와 마케팅은 실리콘밸리에서 이루어지지만 부품의 조달과 생산은 대만과 여타 동남아 국가에 분산되어 있다. 결국 동남아국가는 정보통신기기의 생산기지로서 겉보기에는 제3의 물결에 편입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정보화사회와는 거리가 먼 철저하게 2차 산업의 생산기지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는 토플러 역시 예견했던 현상이다. 선진 경제권이 제3의 물결을 누리기 위해서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농업을, 아시아는 제조업이라는 한물 간 기능을 대신 수행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토플러는 1.2.3차 산업의 역할분담이 전지구적인 차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일어 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 유력한 후보지로 중국을 꼽았다.

중국은 명목상으로만 단일국가로 존재하고 있을 뿐, 상하이 같은 연안지역은 제3의 물결, 배후의 생산기지는 제2의 물결을 그리고 더 깊은 내륙에서는 아직도 농사라는 제1의 물결의 지배를 받고 있다. 토플러는 과거 농업시대에서 산업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수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중국의 연안지역과 내륙지역 사이에 조만간 커다란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토플러의 대담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토플러가 우려했던 중국 연안과 내륙지역간의 내전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지만 경제력 차이가 심화되면서 점차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정보화세력과 산업시대 강자들의 전쟁은 중국이 아니라 이미 미국에서 벌어졌다. 무슨 전쟁이 벌어졌느냐고? 바로 이라크 전쟁 말이다.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해제하고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명분 하에 벌어지고 있지만 필자는 지난 10년간 IT혁명의 열풍 뒤에서 소외 받았던 미국의 산업세력이 복수의 칼을 갈다 잃었던 영향력을 만회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고 보고 있다. 단지 전장이 석유가 묻혀 있는 이라크일 뿐이다.

클린턴 치하 8년 동안 미국의 군수업체와 에너지기업처럼 설움 받은 업체들도 없을 것이다. 부통령이란 사람이 입만 열면 환경과 대체에너지 개발을 운위하고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정보고속도로에서 찾고 있을 때 텍사스의 거대 에너지기업과 군수업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클린턴 치하에서 시에라 클럽 같은 환경 단체들의 발언권은 대폭 올라갔고 캘리포니아州를 필두로 자동차 연비와 배기가스규제는 갈수록 엄격해 졌으며 알래스카 연안에 침몰한 엑손 발데즈호의 뒷처리에 수 년간 수십억 달러의 돈을 퍼 붇고도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규제로 인해 최신형 이중선체 유조선으로 낡은 선박을 교체해야만 했던 석유 업체들은 그야 말로 사면초가였다. 대체에너지에 대한 민주당 정권의 높은 관심 역시 이들에게는 악몽이었다.

군수업체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지속적인 군축에다 국방예산 삭감으로 신무기 개발은 지지부진 이었고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MD사업은 클린턴 정권이 임기 말에 마지 못해 실험을 허락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민간여객기 수주 전에서 유럽의 에어버스에 판판이 깨지면서 시장점유율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어 스타워즈 사업에서 활로를 찾으려던 보잉이나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으로서는 'IT-환경정권' 민주당 정권의 무기현대화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가 불만스럽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지난 2000년 미국 대선이 한달간 개표에 재개표를 거치며 그토록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조지 W. 부시의 당선은 산업 세력의 사활을 건 한 판의 거대한 도박이었던 셈이다.

이라크 전은 부시행정부와 산업세력의 로비스트에 장악된 미 의회가 군수.석유 산업과 합작해 벌이는 거대한 복수 혈전이다. 이들은 이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지난 10년의 세월을 보상 받으려 들고 있다. 하지만 산업세력의 거대한 반격은 이번 전쟁의 승패에 관계 없이 이미 패배로 결론이 난 듯 하다. 후일 역사가들은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이 바그다드의 방송국으로 날아가던 그 순간을 미국 산업세력의 패배가 확정된 시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전례 없는 미디어 전이라는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지난 1차 걸프전 때 위세를 떨친 CNN은 알 자지라의 반격에 속수무책이었지만 그보다는 지난 10년 세월 사이에 압도적으로 확산된 글로벌 인터넷 인프라의 위력에 주목하고자 한다. 명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이번 전쟁에서 산업시대 대량생산사회에 걸 맞을 TV같은 대중매체의 위세가 갈수록 힘을 잃는 반면에 이에 맞서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대안언론과 네티즌들의 여론전은 아무리 펜타곤이 CNN같은 막강한 선전매체를 동원하고 해커들이 나서 알 자지라 사이트를 다운 시킨다고 해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밀물처럼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산업세력의 대표선수 조.중.동 신문매체와 인터넷 매체의 대회전을 목격했고 신경촉수처럼 뻗어있는 인터넷의 여론 네트워크는 아무리 수백만부의 신문지로 새벽의 융단폭격을 가한다 해도 단 몇 명의 조직적 반격만으로 이를 순식간에 무력화 할 수 있음을 목도한 바 있다. 명분에서 이기는 것이 절반이라는 이번 이라크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의 산업세력이 이라크를 무대로 벌이는 대반격이 과연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되돌릴 수 있을까? 문명은 끝내 전진하고야 말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 피를 흘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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