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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없는 믿음, 근거 있는 믿음

무엇이든 박관수............... 조회 수 719 추천 수 0 2003.05.29 21: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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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믿음, 근거 있는 믿음

나는 이 글을 통해 ‘나의 기도는 왜 응답 받지 못하는가?’
‘도대체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는가?’
‘나는 왜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었는데, 아직 복을 받지 못했는가?’ 등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것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의 공통적인 문제이며 절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형제들에게 더 풍성히 임하며, 또한 그분의 사랑에 온전히 거하게 하시길 기원한다.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한 낙심
나 자신을 비롯한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다. 성경에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고 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무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라고 하셨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고 있다. 또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하셨는데, 여전히 우리 가운데는 물질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때로는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도 하지만, 몇 번 구해보고 응답이 오지 않으면 이내 실망하고 주저 앉고 만다. 또 나의 삶을 곤고하게 만드는 질병과 경제적 문제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해 보지만,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그런 응답이 오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기도가 무너지고 나면,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은 무기력하고 형식적인 모습으로 전락하게 된다.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상,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기뻐하는 것을 누구일까? 바로 우리를 바로 그 자리로 끌어내리려고 악한 궤계로 속였던 사탄이다. 그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탄에게 속아 오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오히려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사탄의 소리를 더 믿고 살아 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 너무나 터무니 없고 어리석은 착오에 불과한 것이다.

너무나 논리적인 영적 세계
믿음은 완전한 논리의 세계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하셨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심은 그대로 거두는’ 법칙을 만드셔서, 선한 일에는 선한 보응이, 악한 일에는 반드시 악한 보응이 있게 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우연이나 요행을 믿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이 만들어낸 말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오직 자신이 심은 그대로 받게 되어 있으므로, 결코 우연이나 요행이란 있을 수 없다. 농부가 봄에 씨도 뿌리지 않고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일이 생긴다면 나도 우연을 믿겠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낙엽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수많은 논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땅 속의 수분과 토질의 문제 또 나무 자체의 건강 상태, 일조량, 바람의 강도, 그리고 낙엽이 질 때와 시기 등 낙엽 하나가 땅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수많은 조건들이 다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결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세계를 보면 너무나도 철저한 논리 속에 움직여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 속에서도 또 보이지 않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도, 정확한 논리적인 근거 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분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의 세계 또한 그분의 성품 그대로 완전한 법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은 밤이 지나면 낮이 오는 것처럼,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완전한 법칙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는 말씀대로 그분은 자신이 말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많은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모든 축복과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근거
모든 질병과 가난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이 세상에 임한 저주였다. 결국 사단이 그 어둠의 권세를 쥐고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왕노릇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단의 모든 권세를 십자가로 깨트리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그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율법에 불순종하여 임한 죽음과 질병, 가난과 모든 종류의 저주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게 함으로써 모두 속량해 주셨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모든 축복을 다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꼭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 단순히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의 생명이 구원 받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뿐만 아니라,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 버렸던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모든 축복과 은혜를 다시 누릴 수 있는 삶 전체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4)는 말씀은 우리가 아브라함이 누렸던 그 모든 풍성한 복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누리게 될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실로 엄청난 것이 아니었던가. 그가 밟는 모든 땅을 그에게 주신다는 말씀처럼 물질적으로도 엄청난 부를 소유하였으며, 순종하는 아내 사라와 사랑스러운 아들 이삭을 둔 행복한 가정, 주변의 모든 족속들에게마저 존경을 받았던 그의 아름다운 삶 등 정말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최고의 축복을 누렸었다. 바로 그 최고의 축복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모든 축복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은 그 모든 복을 거져 누렸지만(물론 범죄하기 전까지), 우리가 예수님께서 회복해 주신 그 모든 복을 누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그대로를 믿는 믿음(belief)’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faith)’이다.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가 이루어 질 것을 믿는 믿음과,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말씀에 순종하려는 믿음, 이 두 가지 믿음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이루신 모든 회복의 혜택을 입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다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모든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인 ‘기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기도의 영적 법칙
다니엘서를 보면 기도의 영적 법칙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 잘 알 수 있다. 다니엘이 그가 받은 이상(異像)의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 앞에 겸비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그 세 이레 동안의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법칙들을 가르치신다.

성경에 보면 다니엘이 기도를 작정하는 순간, 벌써 천사 가브리엘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가지고 다니엘을 향해 내려 가게 되는데, 악한 영들의 세력이 가브리엘을 가로 막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치되는 상황이 삼 주 동안이나 계속 되었었는데, 신실한 다니엘은 실망치 않고 계속 근신하며 기도를 드렸다. 결국 그의 믿음의 기도가 군사 천사인 미가엘을 움직였고, 미가엘의 호위로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내려가서 그가 기도했던 것에 대한 응답을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순간, 일어나는 영적 세계의 일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기도하는 즉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것마다 얻을 것이요’라는 그분의 약속대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내려 보내신다. 그러나 악한 영들은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도 응답이 임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라는 바른 굳은 믿음을 가지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된다. 그러나 며칠 기도해 보고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만다면, 악한 영들의 승리로 그 게임은 끝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악한 영들의 훼방 거리가 되는 나의 모든 죄악들
그렇다면 악한 영들이 훼방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 또한 정확한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본다면, 그들은 내가 하나님 앞에 지은 ‘불신앙의 죄’와 ‘불순종의 죄’라는 두 가지 근거를 가지고 훼방을 함을 알 수 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의도적으로 죽게 만드는 범죄를 행하였을 때,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나타나 한 말을 통해 우리는 그 영적 논리를 알 수 있다.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삼하 12:14)

즉,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들을 가지고 악한 영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다. 죄가 적으면 훼방도 적어 그만큼 기도 응답이 빠르다. 그래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신 것이다.(약 5:16)

결국 내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죄악들이 악한 영들로 하여금,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못하도록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되는 것이다.

믿음에 두 가지의 형태가 있듯이, 죄도 불순종과 불신앙의 죄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의 고집대로 악을 행하며 사는 것이 불순종이라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아니하고 불신하는 것이 바로 불신앙의 죄인 것이다.

불신앙에 대해 좀 더 예를 든다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하셨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고난 앞에서 요동하고 원망하는 죄를 짓는 것도 불신앙이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믿지 못해, 그 질병을 대적하지 않고 운명처럼 짊어지고 사는 것도 불신앙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범하는 모든 죄악들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두터운 벽을 만들어,그것을 통해 내가 악한 영들의 훼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사 59:1,2). 결국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원인은 첫째,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믿는 바른 믿음이 없어서요, 둘째, 하나님 앞에서 행한 우리의 그 수많은 불순종의 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불순종을 회개하며,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응답 받을 때까지 간구하며 나아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대부분이 그 둘을 행하기 전에 기도를 포기하고 만다.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 받을 수 있는 영적 비밀
위에서 언급한 영적인 지식들을 염두에 두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 받을 수 있는 영적 비결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도대체 기도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확신’이 임할 때까지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릴 때, 때로는 응답이 바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런 ‘확신’이 먼저 마음에 임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겠다는 확실한 응답인 것이다. 그런 마음의 확신이 있을 때, 더 이상의 간구는 필요치 않다. 오직 은혜가 임할 때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확신’이란 것은 권능의 말씀이 역사하는 통로이다. 아브라함이 단 한 명의 아들조차 없었던 그에게 그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 질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의 삶 속에 말씀 그대로가 역사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확신’이란 믿음의 길을 통해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신다.

그렇다면 그런 ‘확신’이란 축복의 통로를 기도드릴 때마다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간절한 기도’다.
실제적 응답이나 혹은 강한 응답의 확신이 임할 때까지. 간구하며 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하셨다. 부르짖는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릴 때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된다.

두 번째, “믿음의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든 것을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응답을 주실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하셨다. 내 마음에 있는 믿음을 입으로 고백드릴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응답이란 모든 문제로부터의 구원이 임하게 된다.

또한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고 하셨으므로, 우리의 믿음의 고백은 더욱 중요한 것이 된다.

세 번째,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는 말씀에서처럼,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믿음의 분량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삶 전체에 내려 주신 모든 은혜의 분량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주신 은혜 만큼 내가 주님께 보여 드려야 할 믿음의 그릇의 양, 바로 그만큼 하나님 앞에 합당히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말씀을 듣고 수 십년을 신앙생활을 한 사람과 이제 갓 거듭난 초신자와의 믿음의 분량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초신자들은 영적 간난 아이로 기도도 안 드리고 말씀도 읽지 않아 때로 범죄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다. 또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작은 기도도 기뻐하시고 속히 응답하신다.

그러나 믿음의 분량이 큰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또 순종하는 경건한의 삶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기도도 그만큼 성숙되고 온전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의 기도는 즉시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매일 진실된 마음으로 간구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며, 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날마다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살아 갈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회복시키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간절히 주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모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구하는 것마다 다 응답을 받게 될 것이며, 늘 깊은 평강 가운데 모든 부유함과 강건함 속에서 풍성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포기하고 여전히 무기력한 삶 속에서 죽은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종국에는 구원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약 2:26).

그러므로 이제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더 이상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오직 심은 대로 역사하시는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그분의 모든 은혜를 실제로 힘입을 수 있는 ‘근거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자. 그런 바른 믿음으로 하늘의 아버지께서 그 사랑하시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으로 죽게 하실 만큼, 그토록 주시기를 원하셨던 모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다 받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며, 완전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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