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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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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0(금)
예측하지 말라, 대가리만 아플 뿐이다.
제목 : 노무현의 재신임과 예측불가능한 '창조적 와해과정'
예측하지 말라, 대가리만 아플 뿐이다.
이름쟁이의 브랜드정치 칼럼 2003년 10월 10일
"뛰어난(또는 훌륭한) 군주는 너무나 신비해서 어디에도 살지 않는 것 같다. 너무나 불가해해서 아무도 그를 탐색할 수 없다. 그는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대신들은 아래에서 떨고 있다."
위의 문장은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군주가 어느 사안마다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들은 대체 군주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측량하기가 힘들어 경거망동을 하거나 군주를 기망할 생각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위와 같은 것이 오늘 던져졌습니다.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측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특히 노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이) 점점 더 예측 못한 것들이 '재신임 폭탄'으로 말미암아 이어질까 점차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갑작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것만큼 두려움을 주는 것은 없거든요. 동물들은 정해진 패턴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을 사냥할 수 있고 죽일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바꿀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힘을 깨닫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틀에 박힌 패턴의 편안함을 더 좋아합니다. 패턴을 따르는 데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신을 흔들어 놓는, '일상의 패턴'이 깨지면 사람들은 두려워 하게 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그것을 갖기 위하여 간혹 예측불가능한 행위로 일부러 사람들을 흔드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또는 적들은 혼란을 일으키고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도 익숙한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거꾸로 예측불가능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사람들은 균형을 잃게되고 그것을 해석하려다가 지치게 됩니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일이 벌써부터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뒷배경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아직 자세한 것이 나오지 않았으나, 청와대 뿐 아니라, 외부에서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이 갑자기 '폭탄선언' 처럼 나온 나머지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국민들이 각자 여러 가지 분석을 하고 있지만 점차 정치권에서는 '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최고의 계산은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할 경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리 행동 계획을 신중하게 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훨씬 낫다."
피카소는 그림장수인 '폴 로젠버그'와 한동안 함께 일했습니다. 처음에 피카소는 로젠버그에게 상당한 재량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에게 다시는 그림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피카소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로젠버그는 그 말을 듣고나서 이틀 동안 이유를 짐작하려고 애를 쓸거요. 내가 다른 화상(그림장수)에게 그림을 주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일을 하고 잠을 자는 동안, 로젠버그는 이유를 파악하려고 전전긍긍할 거요. 이틀이 지나면 초췌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할 거요. '내가 전에 드리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드리면 계속 나한테 그림을 주시겠지요?' "
승부수죠.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뻔히 결과가 예측되는 승부수입니다.
노대통령은 피카소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혼란스럽습니다.
왜?
뻔히 결과가 보이는 승부수인데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때문에(그리고 그 승부수의 결과가 그대로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정치권에 폭탄이 던져진 승부수 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당연한 혼란' 이 좀 더 진행될 것입니다.
제 각기 갖가지 분석과 예측을 하느라고 사람들은 온통 여기에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대부분이 영양가 없는 분석과 예측들을 하느라 대가리를 쥐어 싸맬 것이며 그 분석과 예측들을 보느라 자기 시간을 바칠 겁니다.
더구나, 노대통령의 정적들이 더할겁니다.
이런 표현 하기는 뭐하지만, 오늘부터 노대통령이 그 반대세력을 손 바닥에 올려놓고 그들을 장난감으로 갖고 놀기를 시작한 겁니다. 노대통령의 의도는 그러하지 않아도 벌써부터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봄, 남군 4천 6백명을 거느린 스톤월 잭슨 장군은 세넌도어 계곡에서 북군의 부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한편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9만명의 대병력을 거느린 북군의 조지 브린튼 매클렐런 장군이 남부동맹의 수도인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를 향하여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일 동안 잭슨은 군대를 이끌고 세넌도어 계곡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행동을 되풀이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리치먼드를 방어하러 갈 준비를 하는 것인가? 매클렐런이 이동하는 바람에 수비가 약해진 워싱턴을 공격하려는 것인가? 공격을 위해서 북으로 진격하려는 것인가? 왜 그의 대부대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북군 장군들은 잭슨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리치먼드 로의 진격을 늦추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남군은 리치먼드 수비를 강화할 수 있었고, 결국 북군은 남군의 수도를 장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잭슨 장군은 중과부적일 때마다 곧잘 이런 전술을 쓰곤 했는데, 잭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늘 적에게 수수께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적이 오해를 하게 하고, 적을 기습하라. 이런 전술을 이용하면 싸울 때마다 이길 수 있으며, 작은 군대로도 큰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
저는 노대통령이 심모원려를 작동한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오늘 내놓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재신임 이라는 폭탄은 너무도 큰 폭탄이기에 위에서 주루룩 설명한 것들이 적들에게서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며, 노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을 구사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앞날이 진행되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피카소의 말처럼 구체적으로 앞날을 짜지 않아도, 노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이, 있지도 않은 노대통령의 계획을 의심하고 추측하고 예단하고 ... 좌우간 혼자 생쑈를 다하고 실수를 연발하다가 신세 조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노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던진 것인가?
나쁘게 말하면, 노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선택의 딜레마'를 던진 것입니다. 국민들이 노대통령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더라도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될래? 아니면 덜 나쁜 나를 선택할래?.. 라는 딜레마를 던진 것입니다.
1553년, 훗날 이반 뇌제(雷帝) 라는 별칭을 갖게 되는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3세의 아들, 스물세 살의 이반 4세가,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하여 죽음이 가까이 온 것으로 생각해 대신들과 귀족들을 병석으로 오게 하여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다수가 충성맹세를 머뭇머뭇 거리는가 하면, 거부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반 4세는 생각했습니다.
"씨바... 내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내가 죽으면 내 아들도 곧 죽고 군위는 찬탈될 것이다.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이반 4세는 병에서 회복된 후, 점차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귀족들은 러시아의 적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로 달아나서 황제를 없앨 음모를 획책했습니다. 1564년에는 심지어 이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안드레이 쿠르브스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리투아니아로 달아나서, 이반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되었습니다.
황제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쪽에서는 달아난 귀족들이 침략을 노리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타타르족이 호시 탐탐 러시아를 넘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자신의 이익이 침범당한 대귀족들이 허구헌날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 이반4세는 도무지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564년 12월 3일 아침, 모스크바 시민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백 대의 썰매가 크렘린 광장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썰매마다 황제의 보물과 식량이 쌓여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어안이 벙벙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와 신하들은 썰매를 타고 모스크바를 떠났습니다.
황제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아무말도 없이 다른 곳에서 한달이나 머물렀습니다. 대체 아무런 설명도 없었으며, 이유도 알 수 없는 황제의 행동, 황제가 한달동안이나 수도를 비우는 행위... 모스크바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 이반이 시민들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상가들은 철시하고, 시민들은 매일 집회를 열었습니다. 1565년 1월 3일, 황제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귀족들의 배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퇴위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편지를 읽고 귀족들을 비난했습니다. 귀족들은 시민들이 무서워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으며, 곧 교회, 귀족, 백성의 대표로 구성된 대표단이 이반이 있는 마을로 가서, 제발 황위로 복귀하고 모스크바로 되돌아 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반은 처음에는 들은 체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며칠동안 애걸하며 매달리자 이반은 백성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귀족들을 다스릴 절대 권력을 주거나, 아니면 새로운 지도자를 뽑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전과 절대권력 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된 모스크바 시민들의 절대 다수가 강한 황제를 선택했습니다. 이반은 2월에 모스크바로 돌아왔고 그때부터는 이반이 절대권력을 휘둘러도 귀족들이나 러시아인들은 쉽게 불평을 할 수 없어 뒤에서 궁시렁궁시렁 댔습니다.
씨바.... 내 탓인걸.... 아... 쒸바스런 인간... 짱나!!!!!!!
자, 다시 이야기를 바꾸어,
한비자는, 법.술.세(法.術.勢), 이 세가지를 통치공학의 선결조건으로 보았습니다.
기원전 535년, 정(鄭)나라의 재상인 자산(子産)이 구리솥에 형법조항을 새겨넣은 형정(刑鼎)을 만들어 세상에 공포함으로써 정치적 성과를 올렸는데, 이러한 법의 성문화 또는 명문화된 법을 제정.공포.시행하여 인민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군주의 통치 제 1조로 보았습니다.
"현명한 군주의 도(道)는 법만을 오로지하며 지혜를 구하지 않는다" 라며, 법과 명징한 통치시스템을 구비할 것을 한비자는 군주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두 번째는 術로서, 군주 자신이 마음속에 깊숙히 간직하여 남에게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군주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면 신하가 거기에 영합하여 군주의 눈을 현혹시킨다며, 일종의 권모술수와 테크닉을 구비할 것을 군주들에게 역설했습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術'이 노대통령의 '재신임 받겠다'는 형태로 오늘 나온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한비자는 '勢'가 군주에게 따라 붙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법과 술'을 행사할 수 있는 힘, 군주에게는 그에 걸맞는 권세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는 집권여당이 의회다수당이거나 국민의 지지가 높아야만 '법과 술'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한비자가 이야기한 勢입니다. 세가 없으면 법을 제정하기 어렵고 정치테크닉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또한, 그 勢를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벌 집행권을 군주가 반드시 행해야 하며, 상벌권을 함부로 아랫사람에게 넘기지 말라고 강력히 주문했습니다. 상벌권이 아래로 내려가면 군주의 지위가 위태로워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국가가 위태로워지는 일이 다반사 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검찰,국세청.국정원등을 자기 멋대로 행동하도록 놔두어서는 안되며 대통령이 장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는 민주사회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그 기관들을 반드시 장악하되 자신을 위해 '남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13일 전국 세무관서장 초청 특강에서 “국정원·검찰·국세청 등 권력 기관을 독립시키면 무슨 힘으로 국가를 끌고 가겠다고 하는가”라고 자문한 뒤 “도덕적 신뢰로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 대통령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도덕적 원칙과 긴장, 그리고 도덕적 절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왔다”며 “이 수준을 밀고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저는 노대통령의 그 말에 대해 그들을 아예 확실히 대통령에게서 놓아주겠다는 것으로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이전 정권들과는 달리 대통령이 심하게 간섭하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 기관들을 동원해 사익을 위한 도구로 쓰거나, 권력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위의 기관들 역시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들을 위해 제 멋대로 나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 더구나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때에 어리석은 판단을 하여 불행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어쨋든, 재신임을 통해 세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궁극적인 목적일 것입니다. 물론 재신임에 실패하면 하야해야 되겠죠.
그리고, 재신임 방법으로서는 우리 헌법 제 72조가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고 한만큼, '대통령 재신임'만으로는 국민투표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외에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따라서, 이라크 파병안과 결부시켜 재신임을 묻거나, 총선과 결부하여 재신임을 묻는 방법을 현재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언론들이나 기타 노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이 알아서 묘안을 짜주거나 힌트를 제공해 줄테니 그냥 지켜보면 될 것입니다.
노대통령이 10월 초 기자회견에서, 현재는 '창조적 와해과정'이라고 했는데, 이 말에 담긴 노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은 함의와 앞날을 한번씩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예측하지 말라, 대가리만 아플 뿐이다.
제목 : 노무현의 재신임과 예측불가능한 '창조적 와해과정'
예측하지 말라, 대가리만 아플 뿐이다.
이름쟁이의 브랜드정치 칼럼 2003년 10월 10일
"뛰어난(또는 훌륭한) 군주는 너무나 신비해서 어디에도 살지 않는 것 같다. 너무나 불가해해서 아무도 그를 탐색할 수 없다. 그는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대신들은 아래에서 떨고 있다."
위의 문장은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군주가 어느 사안마다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들은 대체 군주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측량하기가 힘들어 경거망동을 하거나 군주를 기망할 생각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위와 같은 것이 오늘 던져졌습니다.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측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특히 노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이) 점점 더 예측 못한 것들이 '재신임 폭탄'으로 말미암아 이어질까 점차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갑작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것만큼 두려움을 주는 것은 없거든요. 동물들은 정해진 패턴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을 사냥할 수 있고 죽일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바꿀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힘을 깨닫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틀에 박힌 패턴의 편안함을 더 좋아합니다. 패턴을 따르는 데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신을 흔들어 놓는, '일상의 패턴'이 깨지면 사람들은 두려워 하게 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그것을 갖기 위하여 간혹 예측불가능한 행위로 일부러 사람들을 흔드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또는 적들은 혼란을 일으키고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도 익숙한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거꾸로 예측불가능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사람들은 균형을 잃게되고 그것을 해석하려다가 지치게 됩니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일이 벌써부터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뒷배경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아직 자세한 것이 나오지 않았으나, 청와대 뿐 아니라, 외부에서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이 갑자기 '폭탄선언' 처럼 나온 나머지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국민들이 각자 여러 가지 분석을 하고 있지만 점차 정치권에서는 '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최고의 계산은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할 경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리 행동 계획을 신중하게 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훨씬 낫다."
피카소는 그림장수인 '폴 로젠버그'와 한동안 함께 일했습니다. 처음에 피카소는 로젠버그에게 상당한 재량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에게 다시는 그림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피카소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로젠버그는 그 말을 듣고나서 이틀 동안 이유를 짐작하려고 애를 쓸거요. 내가 다른 화상(그림장수)에게 그림을 주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일을 하고 잠을 자는 동안, 로젠버그는 이유를 파악하려고 전전긍긍할 거요. 이틀이 지나면 초췌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할 거요. '내가 전에 드리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드리면 계속 나한테 그림을 주시겠지요?' "
승부수죠.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뻔히 결과가 예측되는 승부수입니다.
노대통령은 피카소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혼란스럽습니다.
왜?
뻔히 결과가 보이는 승부수인데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때문에(그리고 그 승부수의 결과가 그대로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정치권에 폭탄이 던져진 승부수 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당연한 혼란' 이 좀 더 진행될 것입니다.
제 각기 갖가지 분석과 예측을 하느라고 사람들은 온통 여기에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대부분이 영양가 없는 분석과 예측들을 하느라 대가리를 쥐어 싸맬 것이며 그 분석과 예측들을 보느라 자기 시간을 바칠 겁니다.
더구나, 노대통령의 정적들이 더할겁니다.
이런 표현 하기는 뭐하지만, 오늘부터 노대통령이 그 반대세력을 손 바닥에 올려놓고 그들을 장난감으로 갖고 놀기를 시작한 겁니다. 노대통령의 의도는 그러하지 않아도 벌써부터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봄, 남군 4천 6백명을 거느린 스톤월 잭슨 장군은 세넌도어 계곡에서 북군의 부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한편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9만명의 대병력을 거느린 북군의 조지 브린튼 매클렐런 장군이 남부동맹의 수도인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를 향하여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일 동안 잭슨은 군대를 이끌고 세넌도어 계곡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행동을 되풀이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리치먼드를 방어하러 갈 준비를 하는 것인가? 매클렐런이 이동하는 바람에 수비가 약해진 워싱턴을 공격하려는 것인가? 공격을 위해서 북으로 진격하려는 것인가? 왜 그의 대부대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북군 장군들은 잭슨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리치먼드 로의 진격을 늦추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남군은 리치먼드 수비를 강화할 수 있었고, 결국 북군은 남군의 수도를 장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잭슨 장군은 중과부적일 때마다 곧잘 이런 전술을 쓰곤 했는데, 잭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늘 적에게 수수께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적이 오해를 하게 하고, 적을 기습하라. 이런 전술을 이용하면 싸울 때마다 이길 수 있으며, 작은 군대로도 큰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
저는 노대통령이 심모원려를 작동한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오늘 내놓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재신임 이라는 폭탄은 너무도 큰 폭탄이기에 위에서 주루룩 설명한 것들이 적들에게서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며, 노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을 구사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앞날이 진행되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피카소의 말처럼 구체적으로 앞날을 짜지 않아도, 노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이, 있지도 않은 노대통령의 계획을 의심하고 추측하고 예단하고 ... 좌우간 혼자 생쑈를 다하고 실수를 연발하다가 신세 조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노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던진 것인가?
나쁘게 말하면, 노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선택의 딜레마'를 던진 것입니다. 국민들이 노대통령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더라도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될래? 아니면 덜 나쁜 나를 선택할래?.. 라는 딜레마를 던진 것입니다.
1553년, 훗날 이반 뇌제(雷帝) 라는 별칭을 갖게 되는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3세의 아들, 스물세 살의 이반 4세가,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하여 죽음이 가까이 온 것으로 생각해 대신들과 귀족들을 병석으로 오게 하여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다수가 충성맹세를 머뭇머뭇 거리는가 하면, 거부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반 4세는 생각했습니다.
"씨바... 내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내가 죽으면 내 아들도 곧 죽고 군위는 찬탈될 것이다.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이반 4세는 병에서 회복된 후, 점차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귀족들은 러시아의 적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로 달아나서 황제를 없앨 음모를 획책했습니다. 1564년에는 심지어 이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안드레이 쿠르브스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리투아니아로 달아나서, 이반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되었습니다.
황제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쪽에서는 달아난 귀족들이 침략을 노리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타타르족이 호시 탐탐 러시아를 넘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자신의 이익이 침범당한 대귀족들이 허구헌날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 이반4세는 도무지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564년 12월 3일 아침, 모스크바 시민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백 대의 썰매가 크렘린 광장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썰매마다 황제의 보물과 식량이 쌓여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어안이 벙벙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와 신하들은 썰매를 타고 모스크바를 떠났습니다.
황제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아무말도 없이 다른 곳에서 한달이나 머물렀습니다. 대체 아무런 설명도 없었으며, 이유도 알 수 없는 황제의 행동, 황제가 한달동안이나 수도를 비우는 행위... 모스크바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 이반이 시민들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상가들은 철시하고, 시민들은 매일 집회를 열었습니다. 1565년 1월 3일, 황제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귀족들의 배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퇴위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편지를 읽고 귀족들을 비난했습니다. 귀족들은 시민들이 무서워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으며, 곧 교회, 귀족, 백성의 대표로 구성된 대표단이 이반이 있는 마을로 가서, 제발 황위로 복귀하고 모스크바로 되돌아 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반은 처음에는 들은 체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며칠동안 애걸하며 매달리자 이반은 백성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귀족들을 다스릴 절대 권력을 주거나, 아니면 새로운 지도자를 뽑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전과 절대권력 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된 모스크바 시민들의 절대 다수가 강한 황제를 선택했습니다. 이반은 2월에 모스크바로 돌아왔고 그때부터는 이반이 절대권력을 휘둘러도 귀족들이나 러시아인들은 쉽게 불평을 할 수 없어 뒤에서 궁시렁궁시렁 댔습니다.
씨바.... 내 탓인걸.... 아... 쒸바스런 인간... 짱나!!!!!!!
자, 다시 이야기를 바꾸어,
한비자는, 법.술.세(法.術.勢), 이 세가지를 통치공학의 선결조건으로 보았습니다.
기원전 535년, 정(鄭)나라의 재상인 자산(子産)이 구리솥에 형법조항을 새겨넣은 형정(刑鼎)을 만들어 세상에 공포함으로써 정치적 성과를 올렸는데, 이러한 법의 성문화 또는 명문화된 법을 제정.공포.시행하여 인민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군주의 통치 제 1조로 보았습니다.
"현명한 군주의 도(道)는 법만을 오로지하며 지혜를 구하지 않는다" 라며, 법과 명징한 통치시스템을 구비할 것을 한비자는 군주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두 번째는 術로서, 군주 자신이 마음속에 깊숙히 간직하여 남에게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군주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면 신하가 거기에 영합하여 군주의 눈을 현혹시킨다며, 일종의 권모술수와 테크닉을 구비할 것을 군주들에게 역설했습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術'이 노대통령의 '재신임 받겠다'는 형태로 오늘 나온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한비자는 '勢'가 군주에게 따라 붙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법과 술'을 행사할 수 있는 힘, 군주에게는 그에 걸맞는 권세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는 집권여당이 의회다수당이거나 국민의 지지가 높아야만 '법과 술'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한비자가 이야기한 勢입니다. 세가 없으면 법을 제정하기 어렵고 정치테크닉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또한, 그 勢를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벌 집행권을 군주가 반드시 행해야 하며, 상벌권을 함부로 아랫사람에게 넘기지 말라고 강력히 주문했습니다. 상벌권이 아래로 내려가면 군주의 지위가 위태로워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국가가 위태로워지는 일이 다반사 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검찰,국세청.국정원등을 자기 멋대로 행동하도록 놔두어서는 안되며 대통령이 장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는 민주사회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그 기관들을 반드시 장악하되 자신을 위해 '남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13일 전국 세무관서장 초청 특강에서 “국정원·검찰·국세청 등 권력 기관을 독립시키면 무슨 힘으로 국가를 끌고 가겠다고 하는가”라고 자문한 뒤 “도덕적 신뢰로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 대통령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도덕적 원칙과 긴장, 그리고 도덕적 절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왔다”며 “이 수준을 밀고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저는 노대통령의 그 말에 대해 그들을 아예 확실히 대통령에게서 놓아주겠다는 것으로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이전 정권들과는 달리 대통령이 심하게 간섭하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 기관들을 동원해 사익을 위한 도구로 쓰거나, 권력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위의 기관들 역시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들을 위해 제 멋대로 나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 더구나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때에 어리석은 판단을 하여 불행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어쨋든, 재신임을 통해 세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궁극적인 목적일 것입니다. 물론 재신임에 실패하면 하야해야 되겠죠.
그리고, 재신임 방법으로서는 우리 헌법 제 72조가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고 한만큼, '대통령 재신임'만으로는 국민투표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외에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따라서, 이라크 파병안과 결부시켜 재신임을 묻거나, 총선과 결부하여 재신임을 묻는 방법을 현재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언론들이나 기타 노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이 알아서 묘안을 짜주거나 힌트를 제공해 줄테니 그냥 지켜보면 될 것입니다.
노대통령이 10월 초 기자회견에서, 현재는 '창조적 와해과정'이라고 했는데, 이 말에 담긴 노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은 함의와 앞날을 한번씩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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