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링컨 광고
1980년 2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공익 광고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런 사나이를 생각해 보세요. 그는 초등학교를 9개월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는 잡화점을 경영하다 파산했는데, 그 빚을 갚는 데만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는 주 의회 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했으며, 부통령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름을 항상 A. 링컨이라고 서명했다.
링컨의 생애는 '실패와 불행'이라는 글자가 귀찮을 정도로 따라 다녔습니다. 그는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려 일곱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으며 사업에도 두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또한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잃었습니다. 10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20살에는 누이 사라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27살 때는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 앤 메이가 갑작스럽게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42살과 53살에는 각각 둘째 아들 에드워드(5살)와 셋째 아들 월리엄(12살)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링컨이 가던 길은 실패와 불행으로 인해 수없이 중단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의 대열에 서서 자신의 불행과 실패를 행복의 자본으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중에서-
1980년 2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공익 광고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런 사나이를 생각해 보세요. 그는 초등학교를 9개월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는 잡화점을 경영하다 파산했는데, 그 빚을 갚는 데만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는 주 의회 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했으며, 부통령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름을 항상 A. 링컨이라고 서명했다.
링컨의 생애는 '실패와 불행'이라는 글자가 귀찮을 정도로 따라 다녔습니다. 그는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려 일곱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으며 사업에도 두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또한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잃었습니다. 10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20살에는 누이 사라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27살 때는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 앤 메이가 갑작스럽게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42살과 53살에는 각각 둘째 아들 에드워드(5살)와 셋째 아들 월리엄(12살)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링컨이 가던 길은 실패와 불행으로 인해 수없이 중단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의 대열에 서서 자신의 불행과 실패를 행복의 자본으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중에서-
첫 페이지
313
314
315
316
317
318
319
320
321
322
323
324
325
326
327
328
329
330
331
332
333
334
335
336
337
338
339
340
341
342
343
344
345
346
347
348
349
350
351
352
353
354
355
356
357
358
359
360
361
362
363
364
365
366
367
368
369
370
371
372
373
374
375
376
377
378
379
380
381
382
383
384
385
386
387
388
389
390
391
392
393
394
395
396
397
398
399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끝 페이지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