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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도 모르면서

이성희............... 조회 수 1500 추천 수 0 2003.07.30 08: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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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모르면서

좀처럼 한가한 시간을 갖기 힘들지만 그래도 한나절의 여가가 생기면 아내와 함께 북한강을 끼고 드라이브를 합니다. 때로는 남한강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하지만 북한강이 더 익숙하고 정이 들어 북한강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청평댐을 끼고 한 바퀴 도는 재미는 저에게는 대단한 맛입니다. 벌써 할머니가 되었지만 아직도 젊고 예쁜 아내가 친구와 분위기 연출자가 되어주니 길이 더 정겹고 산수가 환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공휴일에 여느 때나 다름없이 또 그 길을 가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미 한강을 끼고 나선 길이 차들로 꽉 메워 있었습니다. 길이 여러 갈래라서 얼른 코스를 바꿔 다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그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석을 지나고 천마산을 막 지났는데 또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길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길에서 곧장 가면 춘천 쪽으로 가게 될 것이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양수리 쪽으로 가는 새터 삼거리를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차들이 춘천까지 늘어져 있으면 오는 길도 순탄하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배가 상당히 고팠습니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청평까지 가기 힘들 테니 그냥 오른쪽으로 돌아서 적당한 데서 밥 먹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고 아내도 제 말에 선뜻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100미터도 안 가서 앞쪽에서 큰 관을 묻는 공사가 진행중인 것을 알았습니다. 길이 막힌 것은 차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공사 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빠져 나오자마자 차는 막힘 없이 질주하였고 그날도 예외 없이 청평댐을 보았습니다.
그 길을 빠져 나온 후 아내와 저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사람은 한치 앞도 모르면서 잔머리를 굴린다”며 웃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이런 저런 사람의 판단과 경험이 총동원됩니다. 그런데 그 판단이나 경험이 얼마나 단편적이며 근시안적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길만 뚫어놓으시면 그 잔머리는 아무 소용없는 폐기물이 되고 맙니다. 이런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도 인간은 잔머리의 도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보려고 하는 결단보다 잔머리를 굴리는 수고를 더 많이 합니다.
인간은 어차피 앞을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또 앞을 알지 못해야 행복합니다. 앞으로 진행될 개인의 역사나 세계의 역사를 알면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걸리고 미치게 될 것입니다.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앞을 모른다는 것이 감사한 것인 줄 아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우린 이 일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잔머리가 죄를 짓게 하였고 그 잔머리 때문에 지금도 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잔머리 대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것은 복된 삶입니다. 길이 없을 때는 하나님의 발길을 따라가는 것이 최고의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길이 없을 때에 하나님의 지시하심만 따랐습니다. 가장 편한 길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되게 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길과 나의 길이 일치하는 것, 이것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영성은 가장 편한 삶의 방편입니다. 그리고 영성은 나의 잔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머리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자기의 잔머리를 따라 자기의 길을 갑니다. 한치 앞도 모르면서 ….

-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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