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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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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벌거숭이 된 산 이야기
어렸을 적만 해도 벌거숭이 산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살던 마을 주변에 황토가 반 이상 드러난 작은 토산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부와 온 국민이 합심하여 산에 나무를 심자며 식목일이라는 특이한 날까지 만들어 노력한 결과, 오늘에는 참으로 푸른 산들이 아름답게 펼쳐진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아린 기억이 남아 있다.
96년 강원도 고성지역.
하나님의 징계였을까, 평소에도 강한 영동 지역의 해안 바람이 그날엔 유난히 더 심하게 불어댔다. 한밤중에 본 산불은 계곡을 따라 브이자 모양의 불꽃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어릴 적에 본 불이 난 아파트의 소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불로 인해 느껴 본 두 번째 공포였다.
다 꺼진 줄 알고 방심했다가 하루 이틀 후에 갑자기 되살아난 불씨들 때문에 피해는 더욱 커졌다. 초등학교 때 지겹도록 많이 들었던 불조심 포스터,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참으로 소중한 교훈이었음을 되새기게 했다.
완전진화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잿더미가 돼 버린 산의 생태계가 너무도 궁금해서 통제구역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숯감용 나무처럼 까맣게 그을린 잿나무들과 3센티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잿더미 바닥이었다. 바닥을 슬며시 나뭇가지로 제쳐보니 실낱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열기가 확 올라왔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
죽음의 산이었다. 생명체의 기식이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 당연하게 들었던, 아니 의식조차 되지 않았던 새소리, 풀벌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떠오르는 단어 둘, '절망'과 '죽음'이었다. 너무 허탈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인간의 무지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구나 ….'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중턱쯤 이르렀을까,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림이 보였고 근처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산토끼였다. 마음속 가득 꽉 차 오르던 반가움이란!
움직임을 보고 싶어서 작은 돌멩이를 던져 보았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바위를 타고 도망가는 토끼! 평소 집토끼만 보았던 터라 산토끼가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물줄기 근처에 잿빛이 아닌 색깔들이 눈에 띄었다. 아주 작지만 그러나 선명한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이름 모를 작은 풀들. 어쩌면 떡잎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지배하는 땅에 생명이 다시 움트고 있었다. 고운 잎새를 부서질라 손가락 끝으로 살짝 스치듯 만져보았다. 도시에 있을 땐 쳐다보지도 않았을 잡초 같은 풀. '풀아, 고마워!'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계속 위로 올라가다가 새 울음을 들었다. 급한 마음에 좌우를 둘러보니 팔뚝만한 크기의 새가 가지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죽은 나무일텐데 용케 새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그 새는 잠시 이쪽을 경계하다가 곧 날아가 버렸다.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갔을까.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해를 받은 새끼들과 짐승들, 벌레들은 또 얼마나 많을꼬.
거의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또다시 산토끼를 보았다. 밑에서 보았던 그 놈인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살아 있는 식물과 동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난 희망들이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고성 지역의 산맥들은 색깔이 단일했다. 잿빛.
잠시 말을 잊은 채 그 산맥을 바라보다가 묵상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당신의 피조물들을 모조리 불사르셔야 했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는지요. 참으로, 참으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하군요. 이런 절망 중에도 한 가닥 희망들을 남겨주셨군요.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나님,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 약하고 교만한 존재임을 발견하오니 이제, 그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
어렸을 적만 해도 벌거숭이 산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살던 마을 주변에 황토가 반 이상 드러난 작은 토산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부와 온 국민이 합심하여 산에 나무를 심자며 식목일이라는 특이한 날까지 만들어 노력한 결과, 오늘에는 참으로 푸른 산들이 아름답게 펼쳐진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아린 기억이 남아 있다.
96년 강원도 고성지역.
하나님의 징계였을까, 평소에도 강한 영동 지역의 해안 바람이 그날엔 유난히 더 심하게 불어댔다. 한밤중에 본 산불은 계곡을 따라 브이자 모양의 불꽃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어릴 적에 본 불이 난 아파트의 소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불로 인해 느껴 본 두 번째 공포였다.
다 꺼진 줄 알고 방심했다가 하루 이틀 후에 갑자기 되살아난 불씨들 때문에 피해는 더욱 커졌다. 초등학교 때 지겹도록 많이 들었던 불조심 포스터,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참으로 소중한 교훈이었음을 되새기게 했다.
완전진화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잿더미가 돼 버린 산의 생태계가 너무도 궁금해서 통제구역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숯감용 나무처럼 까맣게 그을린 잿나무들과 3센티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잿더미 바닥이었다. 바닥을 슬며시 나뭇가지로 제쳐보니 실낱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열기가 확 올라왔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
죽음의 산이었다. 생명체의 기식이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 당연하게 들었던, 아니 의식조차 되지 않았던 새소리, 풀벌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떠오르는 단어 둘, '절망'과 '죽음'이었다. 너무 허탈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인간의 무지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구나 ….'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중턱쯤 이르렀을까,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림이 보였고 근처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산토끼였다. 마음속 가득 꽉 차 오르던 반가움이란!
움직임을 보고 싶어서 작은 돌멩이를 던져 보았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바위를 타고 도망가는 토끼! 평소 집토끼만 보았던 터라 산토끼가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물줄기 근처에 잿빛이 아닌 색깔들이 눈에 띄었다. 아주 작지만 그러나 선명한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이름 모를 작은 풀들. 어쩌면 떡잎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지배하는 땅에 생명이 다시 움트고 있었다. 고운 잎새를 부서질라 손가락 끝으로 살짝 스치듯 만져보았다. 도시에 있을 땐 쳐다보지도 않았을 잡초 같은 풀. '풀아, 고마워!'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계속 위로 올라가다가 새 울음을 들었다. 급한 마음에 좌우를 둘러보니 팔뚝만한 크기의 새가 가지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죽은 나무일텐데 용케 새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그 새는 잠시 이쪽을 경계하다가 곧 날아가 버렸다.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갔을까.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해를 받은 새끼들과 짐승들, 벌레들은 또 얼마나 많을꼬.
거의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또다시 산토끼를 보았다. 밑에서 보았던 그 놈인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살아 있는 식물과 동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난 희망들이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고성 지역의 산맥들은 색깔이 단일했다. 잿빛.
잠시 말을 잊은 채 그 산맥을 바라보다가 묵상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당신의 피조물들을 모조리 불사르셔야 했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는지요. 참으로, 참으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하군요. 이런 절망 중에도 한 가닥 희망들을 남겨주셨군요.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나님,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 약하고 교만한 존재임을 발견하오니 이제, 그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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