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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글모음914] 화이트 크리스마스
12월이 되고 한 해가 저물어 가면,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며 캐롤송 들이 한해의 마지
막을 장식하려는 듯이 가득 메워집니다.
그 많은 캐롤송 중에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마치 샘물이 흐르듯 그 조용하고 따스한
여운이 지워지지 않는 곡이 있습니다.
그 곡은 찬송가 112장의 " 그 맑고 환한 밤중에"입니다.
나는 이 곡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곡조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만, 이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어디론가
깊은 곳에, 정말 감미로운 천사들의 음악소리가 있는 곳에 가라앉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1977년 한 겨울밤의 일이었습니다.
그해 여름에 내가 군에 입대를 했으니까 군대에서 처음으로 맞는 겨울이 되는 셈이었습니
다.
그때 우리 부대는 38선의 철책 선에서 경계근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훈련을 마치고 10월쯤에 자대에 들어와서 졸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는 하루에 여덟 시간 내지 열 두 시간씩 철책선 에서 보초를 서는 일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보초근무중의 추위만 잘 견뎌낼 수 있다면, 그럭저럭 편안하게 지
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소대는 20여명의 소대원과 1명의 소대장으로 구성된 아담한 소대였습니다.
소대장님은 ROTC출신의 쾌활하고 다감한 성품의 크리스챤으로서 소대원을 따뜻하게 대
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 소대는 군대 라기 보다는 깊은 산골에서 20여명의 형제들이 공동생
활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포근하고 화기애애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근무가 없을 때에는 우리는 내무반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토끼를 잡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어느 병장이 자칭 "토끼잡이의 귀재" 라고 해서 우리는 그를 따라 다녔는데, 내 기억으로
는 토끼를 잡으려다가 넘어져서 부상을 당한 적은 있어도, 토끼를 잡은 적은 없는 것 같습
니다.
소대장님의 예언이 맞았던거죠.
그분은 항상 그렇게 말씀 하셨으니 까요.
"네가 토끼를 잡아? 아이고, 토끼가 너를 잡겠다..."
12월 중순에 있었던 소대 대항 노래 자랑에서 우리 소대는 다섯 명이 참가해서 나의 기타
반주로 "연가"를 불렀는데, 멋진 화음을 구사해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은 참으로 즐거운 추
억이었습니다.
물론 우승하기까지 우리는 많은 연습을 했지요.
저녁을 먹은 후에는 계속해서 '비바람이 치는 바다...'를 되풀이했는데, 소대장님은 '저놈의
비바람, 언제까지 몰아치나..."하시곤 했으니까요.
물론 소대장님께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소대 자체의 노래 자랑에서 나는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불렀고, 내 동기는
아베마리아를 불렀는데, 그놈이 우승을 하고 내가 3위 권에도 들지 못한 것은 아무리 생각
해도 억울하고, 이해가 안가니까요. 혹시 천국에서 만나게 되면 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소대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내가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소대에는 교회 물을 약간씩 먹은 엉터리 신자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비교적 내가
덜 엉터리 같다는 것이 선정된 이유였지요.
하지만 나도 날라리 신자였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 지 몰라 들은 풍월을 총동원
해서 헤매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자 졸다가 비몽사몽이 된 김 병장이 갑자기 담배를
피워 물은 것이죠.
조용히 다가간 소대장님이 담배를 뺏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김 병장, 정신차려. 조금만 있으면 끝나."
잠을 자는 시간을 빼놓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철책선의 보초서는 곳이었습니
다.
보통은 두 명이 들어가 근무를 하게 되는데, 자칫 졸다가 순찰 자에게 적발되면 그것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졸음을 쫓기 위하여 운동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했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이야기란 뻔한 것이지요. 과장이 가득한 자신의 사회생활의 무용담, 주로
여자 이야기들...
고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나는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어대었습니다. 그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풍부한 상상력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간혹 혼자서 근무하게 되면 옆에 떨어진 초소와 큰소리로 외치기도 하면서 밤의 고독을
견디어 냈습니다.
언젠가는 노래를 번갈아 하면서 기나긴 밤을 때우기도 했는데, 내가 "Like a bridge over
trouble water"를 열창해서 양쪽 초소로부터 받은 앵콜과 환호는 아직도 기억을 새롭게 합
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에서는 명절이 되면 더 외로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고향과 가족들 생각 때문
이지요.
집을 떠나 처음으로 맞게 되는 크리스마스 - 집에서, 교회에서 불렀던 임마누엘의 찬미,
메시야의 합창소리, 크리스마스 츄리와 징글벨 소리, 새벽 송을 돌면서 나누었던 수많은 찬
양과 이야기들... 나는 갑자기 외롭고, 서글퍼졌습니다.
그때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캐롤송, 주의 탄생을 찬미하는 찬송가소리를 듣는 것이었
습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소대원, 소대장 모두의 바램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대부분이 경건한 신자는 아니었고, 날라리 신자들이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활
기찬 '징글벨' 소리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루돌프 사슴코'를 들으면서 깡총 깡총 뛰고 싶어했으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숙연
해지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내무반에 카셋트 라디오는 있었으나, 캐롤송 테이프는 한 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에 휴가를 가는 김 병장의 귀대일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김 병장에게 저마다 캐롤송 테이프를 사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입니다.
김 병장이 떠난 후, 좀처럼 시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밤의 철책선 근무가 너무나 지겨워졌습니다.
"고요한 밤..."을 불러 보았으나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같이 근무하던 박 상병도 별로 이야기를 시키지 않고 그저 시무룩하게 있을 뿐이
었습니다.
드디어 24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것은, 지난밤부터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려서 부대로 오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버스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정말 반갑지 않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습니
다.
그날, 온종일 기다렸으나, 김 병장은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래서는 오늘
도착하기는 틀린 것입니다. 이 밤에 근처에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차도 없는데 그 먼 거리를
걸어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너무 상심이 되어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근무를 나왔습니다.
이 날은 12시까지만 근무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도 듣고 싶은 캐롤송을, 찬양을 듣지 못하고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다니.
엄청난 비애가 전신을 휩쓸었습니다.
그 밤은 진정 외롭고, 쓸쓸한, 고독한 밤이었습니다.
지루했던 시간을 겨우 보내고,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 발을 동동 구르며 내무반으로 들어
와 보니, 모두들 잠이 들어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소대장님 혼자 뿐이었습니다.
그는 잠이 오지 않는 듯, 난로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
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갔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다 보니 새벽 2시를 치는 벽시계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근무교대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웬일일까. 몸은 누워 있는 채로 열심히 문 쪽
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되어 문 앞에 가까이 오더니
우악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소대장님이 급히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침구 속에서 살짝 내다보니, 밖에는 눈을 흠뻑 뒤집어 쓴 김 병장이 헐떡거리며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버스가 끊어진 눈길을, 카세트 테이프를 움켜쥐고, 네 시간이 넘도록 넘어지고, 자빠
지면서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내일 귀대해도 될 것을, 기다리는 소대원들을 기쁘게 해 주려는 일념으로 그는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는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으며, 힘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소대장님은 그의 탈진한 몸을 얼싸안았습니다.
그리고 치하를 했습니다.
잠시 대화가 오고 간 후, 소대장님은 그가 가져온 캐롤 송 테이프를 카셑트 라디오에
집어넣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나는 심하게 고동치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노력하며 침구 속에서 온 신경을 카셑트 라디오
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잠시 후에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맑고 환한 밤중에 천사들 내려와
그 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미하기를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 평안하여라.
그 소란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도다.....
아아! 그것은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었는지, 얼마나 포근한 음성이었는지요.....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나의 눈물은 흘러 내려와 베개를 적시었고, 베개의 축축하게 젖은 부분이 얼굴에 기분 좋
게 느껴지면서, 이상하게 나는 마치 엄마 품에 있는 아기처럼 안심이 되고, 따뜻해진 느낌
이었습니다.
그것은 온 누리를 덮은 눈으로 인하여 그토록 맑고 환해진 밤중에 진정 하늘에서 천사들
이 내려와 비파를 들고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천사들을 보내주시고, 그 곡을 들려주셨다고.
그리고 상심에 빠져 있었던 내 마음을 위로하셨던 것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껏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내 마음속에서는
새 하얀 눈 위에서
천사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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