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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과 나무젓가락

이숙원............... 조회 수 1182 추천 수 0 2004.07.12 21:18:14
.........
거의 17년 전 일이다.
나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에 나와 결혼식을 했다.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기 전 약 6주 동안 시부모님 댁에서 함께 지냈다. 시집오시기 전까지 교직에 계셨던 어머님께서는 어머님 방식으로 나를 많이 가르치시려 하셨다.
하루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베이컨을 익히라고 하셨다. 나는 달구어진 후라이팬에 베이컨을 올려놓고 중간에 한 번 뒤집기 위해서 스페툴라(spetula: 주걱처럼 넓적해서 부침 등을 뒤집는 주방도구)를 사용하였다. 바로 그 때에 어머님께서 나무젓가락을 주시면서 베이컨을 익힐 때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면 훨씬 더 편리하다고 하셨다. 살림을 지식으로 하지말고 지혜롭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님, 어떤 식으로 하든지 바삭바삭하고 노릇노릇하게 익힌 베이컨을 아침 식탁에 올리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나무젓가락을 주시는 어머님 말씀을 들으면서 속으로 든 생각이었다. 말씀을 드리려다 얘기를 꿀떡 삼키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젓가락으로 베이컨을 조리했다. 그런데 정말로 젓가락으로 기다란 베이컨 조각을 뒤집으니까 기름이 후라이팬 밖으로 튀기지 않아서 좋았다. 또 접시에 옮겨 담기 전에 한쪽 끝을 젓가락으로 잠시 들고 있으면 기름이 아래로 흘러내려서 좋았다.
그 후 나는 미국인 친구들에게도 베이컨을 익힐 때 젓가락을 쓰면 '참 좋다'고 알려준 적이 몇 번 있다. 베이컨은 원래 서양 음식이니까 당연히 서양 주방도구를 써야 된다는 나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 그것이 삶의 지혜인 것이다. 잔소리처럼 들렸던 '젓가락 제안'이 나의 인생길에 귀중한 가르침이 되었다.
팔십이 내일 모레이신 어머님께서는 요즈음엔 나를 가르치지 않으신다. 나의 부족함을 보셔도 그저 아무 말씀 안 하시는 어머님을 뵈면서 이젠 또 어머님의 고요함을 배운다.
-이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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