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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왜 하필 나한테지?
아버지가 암청색의 호수로부터 피투성이가 된 토드의 몸을 끌어당겨 배 위에
올려놓는 순간 토드는 그렇게 소리쳤다. 배에 타고 있던 아버지와 두 형제,
그리고 세 명의 친구는 구조 요청을 위해 전속력으로 해안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토드는 말짱하게 의식이 깨어 있었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두들 토드의 조부모가 살고 있는 오클라호마의
호수에서 수상 스키를 타며 즐거운 하루를 막보낸 터였다. 토드는 다른 사람들이
수상 스키를 마친 뒤 물 속에서 잠수를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스키 로프를 푸는
순간 배의 기어가 거꾸로 돌아가면서 토드의 다리가 프로펠러에 휘말렸다.
모두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토드의 비명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토드는 생명이 위독한 채 병원에 실려 가고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두 다리는 완전히 타격을 입었다. 오른쪽 다리 좌골
신경이 끊어지고, 그로 인해 무릎 아래에서 발가락 끝까지 영구히 마비되었다.
의사들은 다시는 걷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토드는 서서히 상처로부터
회복되긴 했으나 뼈에 생긴 병이 결과적으로 오른쪽 발에 침투했다. 그후 7년간
토드는 자신의 다리를 지키기 위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투쟁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장 두려운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l981년 4월, 어느 가혹한 날이었다. 토드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수술대
위에서 수술이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누워 있었다. 아직 완전히 마취되기
전이었다. 토드는 침착한 목소리로 병원 직원에게 수술이 끝난 뒤 먹고 싶은
피자 종류를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농담까지 했다.
"전 캐다나 베이컨과 파인애플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문득 두려움 속에서도 고요한 평화가 밀려왔다. 어린 시절에 읽은 성경 귀절이
생각나면서 평화가 토드의 가슴을 채웠다. 그 귀절은 이러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앞에서 가고 있으며. 그의 다음 단계마다 길을 준비하리
라.'
토드는 신이 그를 위해 준비해 놓은 다음 단계가 다리를 잘라 내는 일임을
알았다. 어떤 주저하는 의심도 사라졌고, 그 필연적인 일을 맞이할 용기가
솟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얻기 위해 그는 이제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얼마뒤 한쪽 다리는 사라졌지만, 동시에 모든 미래가 토드에게 열려 왔다.
사고 후, 토드는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심리학을 전공했다.
우등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수족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재활 센터)의 의료 책임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심리학
전공이라는 배경과 또 그 자신 절단 수술을 한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토드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토드는 생각했다.
"삶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단계들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나는 안다. 또한 지금
내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사고가 있기 전까지 토드는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도보 여행과 캠핑, 각종
스포츠를 즐겼으며, 여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다녔다. 다리를 다친 뒤에도
토드는 주위 친구들과 좋은 우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운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절단 수술 후에 부착한 의족은 걸어다니는 데는 그런 대로 쓸 만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토드는 밤마다 넓은 풀밭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꿈을 꾸곤 했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났을 때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드는 정말로 다시 달려 보고
싶었다.
1993년에 그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플렉스 풋( '플렉스' 는 관절을 구부린다는
뜻)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의족이 개발되었다.
토드는 주치의를 통해 곧바로 이 새로운 의족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달리는 데 문제가 있었다. 발이 걸려 넘어지고 숨이 찼다. 그러나
끈기 있게 연습한 결과 오래지 않아 하루에 20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 실력이 점점 늘고 있을 무렵, 한 친구가 잡지에서 토드가 알면 흥미
있어 할 기사를 발견했다. 한 협회에서 미국 50개주에 있는 가장 높은 산들을
차례로 등반할 수족 절단 환자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네 명의 신체
장애자와 함께 1백 일 안에 50개의 산 모두를 등반해 신기록을 세우려는
시도였다.
토드는 당연히 이 계획에 흥분했다. 그는 생각했다.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난 전에도 도보 여행을 즐겼어. 이것은 내
한계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야."
토드는 신청서를 제출했고, 협회로부터 당장 연락이 왔다.
산악 등반은 1994년 4월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토드는 거의 일년 동안 준비를
했다. 날마다 등반 연습을 했으며, 음식 습관을 바꾸고, 주말에는 암벽 타기
연습을 했다. 다들 좋은 계획이라고 찬성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실성 있는
일일까 하는 것엔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토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주저앉히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일이 자신이 걸어가야 할 정해진 길임을 알았다.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
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토드는 그것이 그의 삶에 준비된 다음 단계라는 대답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그런데 1994년 2월이 됐을 때 용기를 꺾는
소식이 날아왔다. 등반에 필요한 후원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협회 대표는 유감이긴 하지만 계획을 취소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토드는 선언했다.
"난 중단하지 않을 겁니다! 난 이 일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바쳤어요. 따라서
지금 와서 포기할 순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데는 분명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이 등반을 성공시킬 다른 길을 틀림없이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악조건 속에서도 기가 꺾이지 않고 토드는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그후
6주만에 토드가 직접 나서서 모은 후원금은 새로운 등반 계획을 추진하기에
충분했다. 그를 도울 친구들도 사방에서 발벗고 나섰다. 휘트 램바크가 토드의
등반 파트너가 되어 주기로 했고, 나 리사 만레이는 전체 계획을 추진하는 일을
도맡았다. 모든 것이 차근차근 준비되었다. 마침내 토드는 (미국 최고봉Summit
America)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등반 프로젝트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등반을 준비하면서 토드는 지금까지 불과 31명만이 50개 주의 최고봉들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만 해도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등정에 성공했다.1994년 6윌 1일 오후 5시 10분, 토드와 휘트는
쉰 개의 미국 최고봉들을 정복하는 대장정에 올랐다. 출발은 알래스카의 매킨리
봉에서부터였다. 이전 기록 보유자인 아드리안 크레인과 미육군하사 마이크
바이닝이 인디언 이름으로 데날리라고 부르는 매킨리 봉 등정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
토드는 말했다.
"산의 기후 조건은 극도로 예측 불가능했습니다. 갑자기 폭풍이 불어닥치기도
했구요.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마치 고양이와 쥐의 경주와도 같았습니다."
또 그는 말했다.
"기온이 때로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 우리는 12일 동안 온갖
기후 조건, 고산병, 그리고 또 다른 위험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난 산이
위험한 존재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꽁꽁 얼어붙은 몸이 내
눈앞에서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산이 그만큼 위험하구나
하는 게 실감나더군요.
한번에 한 걸음씩밖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1천 피트가 가장
힘들었어요. 난 매 걸음마다 세번씩 숨을 몰아쉬어야 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신이 내게 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난 내 자신에게 계속 말했지요.
그것이 나를 정상까지 올라가도록 몰아부쳤습니다."
나머지 등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말 그대로 흥분의 연속이었다. 유명한
스포츠 용품 회사가 나머지 등반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에 나섰다. 사람들이
토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록을 깨려는 그의 굳은 의지, 그가 살아온
내력이 알려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동안 그의 메시지가 신문과 텔레비전,
라디오를 타고 사방에 전해졌다.
47번째 봉우리인 오레곤 주의 후드 봉을 오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1주일 전에 두 명의 등반가가 후드 산에 도전했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토드와 휘트에게 그 산을 포기하라고 말렸다. 그만한 위험을
무릅쓸 필요 까진 없다는 것이었다.
불안해진 토드는 자신의 옛 고등학교 동창이며 전문 등반가인 프레드 잘로카와
접촉했다. 토드가 처한 곤경을 듣자 프레드는 말했다.
"토드, 자넨 지금 와서 중단하기엔 너무 멀리까지 왔어, 내가 그리로
날아가겠네. 그래서 자네를 정상까지 데려다 주지 . 안전하게 말야."
그리고는 곧바로 프레드가 오레곤 주로 날아왔다. 산악 전문가들과 수많은
토론을 거치고,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세심한 계획을 세운 뒤에 마침내 토드와
휘트, 프레드는 후드 봉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제 토드가 신기록을
세우는 데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만이 남아 있었다.
1994년 8월 7일 오전 11시 57분에 토드는 하와이의 마우나키아 정상에 우뚝
섰다. 모두 합해 66일 21시간 47분만에 50개의 미국 최고봉을 오른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35일이나 단축시킨 쾌거였다.
더 놀라운 것은 토드는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 세운 기록을 의족을
매단 채 갱신했다는 사실이다.
토드는 더없이 기쁘고 환희에 젖었다. 세계 등반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호수에서 사고를 당한 이래 줄곧 그의 머리를 맴돌았던 "왜 하필
나한테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33세의 나이에 토드가 비극을 딛고 이뤄 낸 승리는 결코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마음만 먹으면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용기를 심어 주었다.
오늘날까지도 토드 휴스턴은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는 말한다.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이 당신에게 준 능력을 믿음으로써 당신은 삶에서
직면하는 어떤 도전이든지 극복할 수 있다."
리사 만레이
"왜 하필 나한테지?
아버지가 암청색의 호수로부터 피투성이가 된 토드의 몸을 끌어당겨 배 위에
올려놓는 순간 토드는 그렇게 소리쳤다. 배에 타고 있던 아버지와 두 형제,
그리고 세 명의 친구는 구조 요청을 위해 전속력으로 해안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토드는 말짱하게 의식이 깨어 있었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두들 토드의 조부모가 살고 있는 오클라호마의
호수에서 수상 스키를 타며 즐거운 하루를 막보낸 터였다. 토드는 다른 사람들이
수상 스키를 마친 뒤 물 속에서 잠수를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스키 로프를 푸는
순간 배의 기어가 거꾸로 돌아가면서 토드의 다리가 프로펠러에 휘말렸다.
모두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토드의 비명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토드는 생명이 위독한 채 병원에 실려 가고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두 다리는 완전히 타격을 입었다. 오른쪽 다리 좌골
신경이 끊어지고, 그로 인해 무릎 아래에서 발가락 끝까지 영구히 마비되었다.
의사들은 다시는 걷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토드는 서서히 상처로부터
회복되긴 했으나 뼈에 생긴 병이 결과적으로 오른쪽 발에 침투했다. 그후 7년간
토드는 자신의 다리를 지키기 위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투쟁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장 두려운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l981년 4월, 어느 가혹한 날이었다. 토드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수술대
위에서 수술이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누워 있었다. 아직 완전히 마취되기
전이었다. 토드는 침착한 목소리로 병원 직원에게 수술이 끝난 뒤 먹고 싶은
피자 종류를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농담까지 했다.
"전 캐다나 베이컨과 파인애플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문득 두려움 속에서도 고요한 평화가 밀려왔다. 어린 시절에 읽은 성경 귀절이
생각나면서 평화가 토드의 가슴을 채웠다. 그 귀절은 이러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앞에서 가고 있으며. 그의 다음 단계마다 길을 준비하리
라.'
토드는 신이 그를 위해 준비해 놓은 다음 단계가 다리를 잘라 내는 일임을
알았다. 어떤 주저하는 의심도 사라졌고, 그 필연적인 일을 맞이할 용기가
솟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얻기 위해 그는 이제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얼마뒤 한쪽 다리는 사라졌지만, 동시에 모든 미래가 토드에게 열려 왔다.
사고 후, 토드는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심리학을 전공했다.
우등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수족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재활 센터)의 의료 책임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심리학
전공이라는 배경과 또 그 자신 절단 수술을 한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토드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토드는 생각했다.
"삶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단계들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나는 안다. 또한 지금
내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사고가 있기 전까지 토드는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도보 여행과 캠핑, 각종
스포츠를 즐겼으며, 여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다녔다. 다리를 다친 뒤에도
토드는 주위 친구들과 좋은 우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운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절단 수술 후에 부착한 의족은 걸어다니는 데는 그런 대로 쓸 만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토드는 밤마다 넓은 풀밭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꿈을 꾸곤 했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났을 때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드는 정말로 다시 달려 보고
싶었다.
1993년에 그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플렉스 풋( '플렉스' 는 관절을 구부린다는
뜻)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의족이 개발되었다.
토드는 주치의를 통해 곧바로 이 새로운 의족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달리는 데 문제가 있었다. 발이 걸려 넘어지고 숨이 찼다. 그러나
끈기 있게 연습한 결과 오래지 않아 하루에 20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 실력이 점점 늘고 있을 무렵, 한 친구가 잡지에서 토드가 알면 흥미
있어 할 기사를 발견했다. 한 협회에서 미국 50개주에 있는 가장 높은 산들을
차례로 등반할 수족 절단 환자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네 명의 신체
장애자와 함께 1백 일 안에 50개의 산 모두를 등반해 신기록을 세우려는
시도였다.
토드는 당연히 이 계획에 흥분했다. 그는 생각했다.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난 전에도 도보 여행을 즐겼어. 이것은 내
한계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야."
토드는 신청서를 제출했고, 협회로부터 당장 연락이 왔다.
산악 등반은 1994년 4월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토드는 거의 일년 동안 준비를
했다. 날마다 등반 연습을 했으며, 음식 습관을 바꾸고, 주말에는 암벽 타기
연습을 했다. 다들 좋은 계획이라고 찬성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실성 있는
일일까 하는 것엔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토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주저앉히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일이 자신이 걸어가야 할 정해진 길임을 알았다.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
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토드는 그것이 그의 삶에 준비된 다음 단계라는 대답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그런데 1994년 2월이 됐을 때 용기를 꺾는
소식이 날아왔다. 등반에 필요한 후원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협회 대표는 유감이긴 하지만 계획을 취소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토드는 선언했다.
"난 중단하지 않을 겁니다! 난 이 일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바쳤어요. 따라서
지금 와서 포기할 순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데는 분명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이 등반을 성공시킬 다른 길을 틀림없이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악조건 속에서도 기가 꺾이지 않고 토드는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그후
6주만에 토드가 직접 나서서 모은 후원금은 새로운 등반 계획을 추진하기에
충분했다. 그를 도울 친구들도 사방에서 발벗고 나섰다. 휘트 램바크가 토드의
등반 파트너가 되어 주기로 했고, 나 리사 만레이는 전체 계획을 추진하는 일을
도맡았다. 모든 것이 차근차근 준비되었다. 마침내 토드는 (미국 최고봉Summit
America)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등반 프로젝트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등반을 준비하면서 토드는 지금까지 불과 31명만이 50개 주의 최고봉들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만 해도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등정에 성공했다.1994년 6윌 1일 오후 5시 10분, 토드와 휘트는
쉰 개의 미국 최고봉들을 정복하는 대장정에 올랐다. 출발은 알래스카의 매킨리
봉에서부터였다. 이전 기록 보유자인 아드리안 크레인과 미육군하사 마이크
바이닝이 인디언 이름으로 데날리라고 부르는 매킨리 봉 등정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
토드는 말했다.
"산의 기후 조건은 극도로 예측 불가능했습니다. 갑자기 폭풍이 불어닥치기도
했구요.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마치 고양이와 쥐의 경주와도 같았습니다."
또 그는 말했다.
"기온이 때로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 우리는 12일 동안 온갖
기후 조건, 고산병, 그리고 또 다른 위험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난 산이
위험한 존재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꽁꽁 얼어붙은 몸이 내
눈앞에서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산이 그만큼 위험하구나
하는 게 실감나더군요.
한번에 한 걸음씩밖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1천 피트가 가장
힘들었어요. 난 매 걸음마다 세번씩 숨을 몰아쉬어야 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신이 내게 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난 내 자신에게 계속 말했지요.
그것이 나를 정상까지 올라가도록 몰아부쳤습니다."
나머지 등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말 그대로 흥분의 연속이었다. 유명한
스포츠 용품 회사가 나머지 등반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에 나섰다. 사람들이
토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록을 깨려는 그의 굳은 의지, 그가 살아온
내력이 알려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동안 그의 메시지가 신문과 텔레비전,
라디오를 타고 사방에 전해졌다.
47번째 봉우리인 오레곤 주의 후드 봉을 오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1주일 전에 두 명의 등반가가 후드 산에 도전했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토드와 휘트에게 그 산을 포기하라고 말렸다. 그만한 위험을
무릅쓸 필요 까진 없다는 것이었다.
불안해진 토드는 자신의 옛 고등학교 동창이며 전문 등반가인 프레드 잘로카와
접촉했다. 토드가 처한 곤경을 듣자 프레드는 말했다.
"토드, 자넨 지금 와서 중단하기엔 너무 멀리까지 왔어, 내가 그리로
날아가겠네. 그래서 자네를 정상까지 데려다 주지 . 안전하게 말야."
그리고는 곧바로 프레드가 오레곤 주로 날아왔다. 산악 전문가들과 수많은
토론을 거치고,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세심한 계획을 세운 뒤에 마침내 토드와
휘트, 프레드는 후드 봉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제 토드가 신기록을
세우는 데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만이 남아 있었다.
1994년 8월 7일 오전 11시 57분에 토드는 하와이의 마우나키아 정상에 우뚝
섰다. 모두 합해 66일 21시간 47분만에 50개의 미국 최고봉을 오른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35일이나 단축시킨 쾌거였다.
더 놀라운 것은 토드는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 세운 기록을 의족을
매단 채 갱신했다는 사실이다.
토드는 더없이 기쁘고 환희에 젖었다. 세계 등반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호수에서 사고를 당한 이래 줄곧 그의 머리를 맴돌았던 "왜 하필
나한테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33세의 나이에 토드가 비극을 딛고 이뤄 낸 승리는 결코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마음만 먹으면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용기를 심어 주었다.
오늘날까지도 토드 휴스턴은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는 말한다.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이 당신에게 준 능력을 믿음으로써 당신은 삶에서
직면하는 어떤 도전이든지 극복할 수 있다."
리사 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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