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보면 머리만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0 센티 짜리 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난 길이와 넓이 등 뭐든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걸"하며 재고 다녔습니다. "넌 길이가 5.4 센티야..." "넌 키가 9.8 센 티밖에 안돼..." "넌 코의 넓이가 6.2 센티야." "10 센티도 안되는 것들이 까불어..." 라며, 다들 이 10 센티 짜리 자가 항상 수치로만 남을 평가하는 점이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10 센티 짜리 자는 저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울은 무조건 자를 저울 위에 얹어놓고는 "넌 겨우 5 그램짜리구나... 짜식! 아주 가벼운 놈이 잘난 척하고 있군, 저리 비켜, 잽도 안되는 게..."하고 비웃더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평가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평가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평가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스탈린과 고르바초프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탄과 천사만큼 큰 차이가 납니다. 폭정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죽자 많은 구 소련인이 슬퍼했습니다. 그들은 스탈린이 소련을 세계가 주목하는 강한 나라로 끌어올린 지도자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가 강요한 희생보다 그들에게 심어준 자부심을 더 높은 평가 기준으로 본 것입니다. 서방 세계의 사람의 평가 기준에 의하면 스탈린보다 고르바초프가 훨씬 좋은 지도자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억압의 족쇄를 풀고 자유를 준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고르바초프에 공감하기는커녕, 그를 경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은 냉전을 끝냈지만 자유와 함께 혼란과 궁핍을 가져다주었고 '대국'의 모습을 잃고 쪼개져 자존심, 자부심을 잃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인생은 절대자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평가의 기준을 세 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마25:14-30). 첫 번째 평가 기준은 게으름과 부지런함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놓았습니다. 그에게 한 달란트를 맡겨준 주인은 그런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평가 기준은 충성과 불충성입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맡은 자에게 주인이 하는 말은 동일하게 잘했다 충성된 종입니다. 세 번째 기준은 악함과 착함입니다. 착하다는 말은 올바름을 말합니다. 아무리 부지런하고 아무리 충성되게 한다하여도 그것이 악에 대한 부지런함이고 악에 대한 충성이라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2008년도 한 해가 끝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주어진 시간을 다 마치는 때가 찾아 올 것입니다. 어떤 평가 기준으로 남은 인생을 살겠습니까? 문득 우리에게 마지막이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3)”.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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