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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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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탄생 시기와 크리스마스를 연관시켜 12월이 되면 온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크리스챤이던, 난크리스챤이던 상관없이 이때만은 구분없이 하나가 된다. 과연 작금의 ‘크리스마스’와 예수님의 탄생과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정말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일까?
성경이 예수님의 정확한 출생일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마당에 왜 지구상의 많은 기독교 국가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12월25을 공휴일로 정하여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는가? 어느 누구도 이의없이(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지만) 알고 있는 12월 25일은 진정 그리스도의 출생일로 믿으며 지켜야 할 날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가?
과연, 일년중 하루의 특별한 날을 '선택'하여 '그 날' 자체에 부동의 의미를 부여하며, 다른 날과 구분짓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인가? 목욕물을 버리면서, 욕조에 있는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듯이, '욕조'가 중요한가 아니면 욕조에 담겨있는 '아기'가 중요한가? '크리스마스'라는 전통이 빚어낸 '욕조'가 중요한가? 아니면, 그 욕조속에 담겨있는 '실체의 의미'가 더 중요한가?
예수님의 탄생시기에 관하여.
탄생 당시의 역사적인 정황들을 고찰해 보면 예수께서 어느 시기에 탄생하셨는지는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에 유대식민지를 다스리던 왕은 '헤로드'(헤롯이라는 탐욕스러운왕)였다. 그 헤롯왕가는 권력의 야욕에 눈이 먼 추하기 그지없었던 왕가였다. 동방의 점성술사들이 헤롯에게 찾아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를 찾아왔다고 했을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불을 본듯 명확하다.
자신의 권력적 야욕을 위해 자식들까지도 아무 거리낌없이 죽여버리는 헤롯이 '또 다른 유대왕'이 태어났다는 소식 그 자체만으로 그의 '사이코패스적'기질에 불을 질렀을것이 분명하다.결국 '영아학살사건'이라는 인류역사에 두 번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살인극을 저지른다.그때 죽은 아이들이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었다. 바로 이런 사건이 헤롯이 죽기직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헤롯은 B.C1년에 죽었다) 이같은 사건의 정황을 미루어 보아 예수님의 탄생은 적어도 B.C 2세기 경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예수님보다 육개월 먼저 출생한 이종사촌이었던 '세례(침례)요한'이 본격적인 '광야 선지자'의 사역을 수행하던 때가 티베리우스 카이사르가 즉위한지 15년이 되던 때였다. 그때가 역사적인 시점으로 A.D 28년 후반 내지 29년이었다.그렇다면 그때 '세례요한'의 나이는 몇 살 정도가 되었을까? 성경에서는 그가 몇 살 인지를 밝히지는 않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규례를 볼때, 서른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원래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아들이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제사장은 가장 최고위층의 성직자 계층이다. 그의 아버지를 이어서 '자동으로'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보장된 자신의 미래와는 전혀 상관없이 '광야의 야인'같이 전광석화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유대인의 율법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성물을 다루며 일할수 있는 나이가 '서른'으로 규정되어있다.(구약성경 민수기 4장 1절~3절,22,23,29절) 그렇게 볼때 요한이 출생한 년도가 B.C 2세기 경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께서 탄생하신 시기를 확정적으로 말하기 전에 예수께서 죽으신 때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봄 철 유월절에 죽으셨는데, 유대력에 따르면 그때는 니산(혹은 아빕)월 14일이다.(마태복음 26:2; 요한복음 13:1-3; 출애굽기 12:1-6; 13:4)<유대인들은 지금의 달력과는 다른 자신들의 종교에 입각한 종교력의 달력을 쓴다>
당시 유대력에 의하면 그 해의 유월절이 시작된 것은 그 주간의 여섯째 날 (유대인들의 계산으로는 목요일 일몰부터 금요일 일몰까지)이었다.여기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은 요한복음 19:31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 성구에서는 그 다음 날이 “큰 날”로서의 안식일이었다고 알려 준다.
유월절 다음 날은 무슨 요일이 되든 관계없이 언제나 안식일로 지켜졌다.(레위기 23:5-7) 그렇지만 이 특별 안식일이 정규 안식일(주간의 일곱째 날)과 겹칠 때는 “큰 날”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니산월 14일 금요일 오후 3시경에 죽으셨다.(누가복음 23:44-46) (최근 일각에서는 목요일에 죽으셨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지만, 그들의 주장은 논외로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예수께서 봄인 니산월에 죽으셨으므로, 죽으시기 삼 년 반 전에 시작된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시작은 틀림없이 가을 ‘에다님월’(9-10월)경에 시작되었을 것이고, 예수님보다 출생이 6개월 빠른 요한이 ‘공식적’으로 대중들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직무를 시작하던 때는 A.D 29년 봄쯤으로 산정할 수 있다.따라서 요한이 태어난 때는 기원전 2년 봄이고, 예수님은 여섯 달쯤 뒤인 기원전 2년 가을에 출생하여 약 30년 뒤인 A.D 29년 가을에 공생애의 직무를 시작하고 A.D 33년(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봄철인 니산월 14일)에 죽으신 것이 된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당시의 역사적인 사항들을 토대로 산정된 것이다.예수님의 죽으신 때를 기준으로 태어나심을 역산하는 내용은 '하얀마음'님의 글 중에서 참조했다)
따라서 예수님의 출생시기를 정확한 일자까지 추측해 낼수는 없지만, 적어도 위에서 언급한 정황들을 근거로 산출해 낼때 주전 2세기경의 이른 가을이었을 것이 타당하다. 적어도 12월 일수는 없다는 말이다.
12월에 출생하실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목자들이 양을 치던 시기는?
예수님의 탄생일이 12월이 될 수 없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그 날 밤에 목자들이 들에서 양 떼를 돌보고 있었다는 성경적 사실이다. (누가복음 2:8, 12)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자신들의 유대력으로 가을인 불월(10-11월)이 되면 이미 우기가 시작되어(신명기 11:14) 양 떼는 밤에 안전한 보호 시설 안으로 모아졌다. 다음 달인 기슬레우월(유대력으로 아홉째 달인 11-12월)은 춥고 비가 오는 달(예레미야 36:22;)이었으며, 데벳월(12-1월)은 연중 기온이 가장 낮은 달로서 고지대에서는 이따금 눈도 내렸다. 따라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출생 시기가 초가을인 에다님월 임을 밝혀주는 증거와도 자연스럽게 일치한다(적어도 12월에 출생하신 것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한가지 12월일 수가 없는 역사적인 증거로는 당시의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그런 겨울 우기의 달을 택하여,불만과 불평으로 가득 차있던 식민지하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의 고향으로” 여행하여 인구조사의 등록을 하게 했을리가 만무할 것이라는 점이다.(누가복음 2:1-3. 마태복음 24:20, 당시 예수님의 부모도 인구조사를 위해 자신들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는 중이었다.)
이같은 여러 정황들을 고려해볼때, 예수님이 12월에 태어나실 수도 없었고, 더더욱 25일이라고 날짜까지 못 박는 일은 결코 '성경적'인 결정도 아니고, '성경의 정신'과는 대치되는 일임을 알수있다. 다만 성경은 예수님이 일 년중 어느 때에 출생하셨을 것이라는 단서가 될만한 역사적인 사건들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건들을 분석하고, 정황을 해석해서 '성경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고, 선택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는 A.D 4년, 당시 가장 권위있는 종교회의의 결정을 통해서 시행되었다. 그 결정의 배경과, 근거는 정치적인 역학관계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필자는 판단한다.이러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교회사적인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가 필요하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과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후대의 사람들이 결정해 놓고, 처음의 의도(그것마저도 사실은 불투명하지만)와는 전혀 상관없이 흥청망청 온 세상이 들떠있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하나님과 ‘크리스마스’의 당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날이다.
따라서 흔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의 출생일로 널리 알려진 12월 25일은 성경상의 어떤 근거도 찾아 볼 수 없는 날이다. 다만, 그리스도는 가을정도에 출생하셨다는 것 정도만 역사적 정황들로 비추어 보아 가늠할 수 있는 ‘사실(fact)’일 뿐이고, 여기까지만 성경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사실이다.
구청에 출생신고 하듯, 정확하게 언제, 몇 일에 태어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성경은 침묵할 뿐이다. 어쩌면 성경을 기록한 저자는 그 정확한 날자체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사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적 정신과도 상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계속해서 ‘우긴다면’ 그것은 성경적이고, 역사적 근거에 입각한 ‘사실’이 아니다.(우리는 이같은 것을 fiction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후대의 사람들이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했는가?
그렇다면, 왜 하필, 정확한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알 수 도 없는데 12월 25일을 많은 사람들이 흥겨워하고 즐기는 축제로서의 ‘크리스마스’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참고 문헌들을 살펴보면 '그 날' (12월 25일)이 당시의 ‘이교적 축일’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역사의 사료들을 조금이라도 참고해 본다면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12월 25일을 기독교의 최대축일중의 하나로 기념하게 된 기원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자료들이 있지만,(인터넷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라는 검색어만 쳐봐도 충분히 알 수 있기에 여기서 굳이 다루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당시의기독교 자체가 직면했던 로마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로마 제국하에서 초창기의 기독교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사람들은 지하동굴(카타콤)로 숨어다니면서 자신들의 순수한 신앙을 지켜야 했다. 그러던 기독교가 A.D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로마의 정식 ‘종교’로 채택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음지에서, 제국의 칼날을 피하면서 지켜야 했던 기독교신앙을 만 천하에 드러내놓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과 같이 치부되던 때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차제에 일어나게 되는 기독교 역사를 두고 살펴본다면 기독교의 타락과 변질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그 타락과 변질은 암흑기 중세 1600여년간이나 이어진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로마의 통치자들은 기독교를 근간으로 수 많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해 나가야 할 절박성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차제에 각각의 종교가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을 규합하고, 묶어나가기 위해 가장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적 축제’였다. 결국, 무늬만 기독교였지, 알맹이는 기독교의 본질과 신앙의 핵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혼합된 이교적 종교가 당시 기독교 신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이같은 변질에 항거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의 무리’가 되어 역사의 뒤안 길로 숨어버린다.(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듯 하다)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라고 불리워지는 인류역사의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이벤트는 그같은 이교적 종교적 규합의 산물 이상은 아니었다.(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초대순수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기념하는 어떤 종류의 의식이나, 예전같은 것은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크리스마스’인가?
사실 ‘크리스마스’를 ‘성탄(Natale)’이라는 말로 번역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용어사용이 아니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니, 혹은 성탄절이니 하는 자체가 성경에 존재하지도 않는 용어이다.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크라이스트(Christ)' 라는 말과 ’예배 혹은 제사‘라는 의미의 매스(Mass)라는 두 말의 합성어에서 온 것이다.(천주교에서 ’미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Mass라는 말의 한국식 표현이다. 천주교에서 ’미사‘의 기원은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두고 있다.기독교는 미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예배_worship라는 말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정작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는 그 본질적 성격상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고 기리는 의미가 더 강한 단어이다. 이것은 기독교나, 기독교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같은 본질적 사건의 의미를 모른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생각없이 인사를 주고 받는것은 일종의 넌센스 아닌가...차라리 '해피 할러데이'가 낫다.
본인이 생각하고 믿는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 역사속에 자신을 ‘드러내시고’ 개입하신 ‘그리스도의 오심’이 소위 말하는 ‘크리스마스’라 불리우는 사건의 본질이다. 그래서 ‘성탄’이라는 용어보다 ‘강림’(Advent)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고 정확한 말이다.(이것은 어떤 규정화되고 전례화되어 버린 특정한 ‘절기’로서의 강림이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초기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갈리워지고, 중세를 지배하던 서방교회가 종교개혁이라는 하나의 분기점을 거치면서 본질적 기독교의 회귀라는 모토하의 ‘개신교’(천주교와 구분되는 기독교로서의 개신교)로 자리매김되어, 중세이후 근세기로 넘어와서 분열과 분파로 신음하고 있는 현대의 ‘기독교’의 자리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 천여년 이상의 기독교 역사의 본질은 ‘나타내심’혹은 ‘오심’(강림, 파루시아)이라는 단어속에 집약되어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이고, 본질이다. 신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Incarnation,성육 成肉]과,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인간 역사속에 ‘다시 오실(재림) 것’임을 믿고 그것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내세적 소망이 사실 기독교신앙의 본질이다. 현세에 살면서 현세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말해서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도 이 ‘두 오심’이라는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총체적 사건의 완성을 가리킨다. 다시말해 가시적인 인간 구원의 시작이 ‘성탄’으로 불리워지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에 있다면, 그 완성은 ‘다시 오심’의 재림에서 종결되고, 완결되어 진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지탱해주는 두 개의 커다란 톱니바퀴이며, 이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기독교의 개념은 상실되고 전체는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따라서 작금의 ‘크리스마스’가 연말 백화점에 한 몫을 안겨주는 연말 연시를 멋지게 장식하는 대목의 주체로 전락되었다해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본질중의 하나인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계심’의 ‘임마누엘’과 ‘다시 오실’그리스도를 대망하는 ‘마라나타’(μαρ?να θ?,Our Lord come! 이 용어는 성경에 단 한번 등장하는 말이다)를 소망하는 과거와 미래의 통시적인 사건으로서의 기독교본질적 개념을 기억하고, 그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직도 ‘크리스마스’는 인간의 생에 가장 유쾌하고 즐거움과 소망이 넘치는 ‘Merry Christmas'임이 분명하다.
솔직히 ‘크리스마스’가 세속화되고, 물질화되어가는데 기독교회나 기독교인들 역시 암묵적인 일익을 담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2월 25일 이라는 그 날짜를 신성시하다시피하여 기독교신앙의 본질로서의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월기나, 절삭과 같이 부수적인 이벤트로 전락시킨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표현하셨다. ‘시작’이요 ‘끝’이라는 의미다. ‘크리스마스’는 연말을 장식하는 신명나는 파티가 아니다. 그것은 덧없는 듯한 이 세상에서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고 될대로 되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작의 희망이고, 다다를 목적지가 있음에 대한 소망의 동기요 근거로서의 크리스마스다.
더욱이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일 년 열 두달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과 순전한 동기와 출발을 되새기며, 삶의 목적지와 방향이 정확한지를 가늠하는 주춧돌이고, 시금석과 같은 의미가 되는 요체다. 그같은 본질을 일년 중 어느 하루, 시즌을 정해놓고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크리스마스는 '엔터테이너화된 이벤트'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삶의 정신이고, 핵심이다.
적어도, 참된 크리스챤이라면, 이같은 본질적 정신이 자신의 삶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야 한다. '산타 클로우스'를 학수고대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의 심정속에는 원망이나,다툼,분쟁,분열이 없다. 왜냐하면 '싸우고 우는 애들'한테는 산타가 선물을 안 준다고 굳게 믿지 않는가...
‘크리스마스’의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참음과 기다림이 있고, 용서와 화해가 있으며, 분노에 대한 조절과 억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남을 돌아보게 되는 근본적인 기독교의 정신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지 않는가..본질이 이러하다면, 일년 열두달 중 어떤 특정한 하루를 못 박아 놓고 성대한 생일잔치를 벌이는 것은 결코 성경적인 정신도 아니고, 그 날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의 원하심도 아니라고 나는 확신하다.
행여 연말의 들뜬 분위기속에서 휘황찬란한 조명아래 끼리끼리 즐기면서 눈 내리는 멋진 성탄의 무드속에 뭔가 모를 설레임을 기대하고, 그 기대와 즐거움만으로 하루를 엔조이하며 지낸다면 그것은 ’엑스마스‘ 이상의 그 어떤 의미도 아니다.
올해도 그 ‘시즌’이 어김없이 또 다가왔나 보다. 이 ‘안티적인’ 크리스마스에 대한 나의 단상도 올해로서 마지막을 고하고 싶을 뿐이다. 일 년 열두 달 중 유독 이맘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나 역시 동일한 ‘엑스마스’속에 살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타클로스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크리스마스에 주고받는 선물에도 별 관심이 없는 아빠를 향해 작은 딸내미는 불만에 가득찬 소리로 ‘아빤 크리스마스를 싫어하잖아~~’라고 소리친다. 이 아이들이 애비의 심정을 알아줄 때가 올까..
그래 그건 맞다. 솔직히 아빠는 싫다. 크리스마스를 연말 특급이벤트로 전락시킨 인간들이 싫고, 그 이벤트에 종교라는 옷으로 덧 입혀 동참하는 이 시대의 변질된 기독교가 싫고, 일 년 열 두달 개념없이 속인들 처럼 살다가 유독 무슨 이벤트, 절기만 되면 입으로만 티내는 자칭 ‘예수쟁이’들이 싫을 뿐이다..그렇게 해서 부르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의 악몽' 처럼 다가올 뿐이다.
초대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피하면서 카타콤으로 전전하며 그들의 순수한 신앙을 지키는 하나의 표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물고기'(잌투스)였다. 서로의 손을 잡을때 손가락으로 물고기의 모양을 그렸고,상대가 화답하지 못하면 그는 로마의 첩자였다. 그런 절박한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Immanuel and Marana Tha! 임마누엘 마라나타!
(종종 Christmas를 X-MAS로 줄여서 표기하는데 이때 X는 영어 알파벹의 ‘엨스’가 아니라,‘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리이스어 Χριστ?(크리스토) 의 첫 글자 X를 의미한다. 물론 영어 철자를 읽듯이 엑스마스라고 읽는다면 그야 말로 그 X는 수학에서 말하는 미지수 X이지 않던가...차라리 '리얼 크리스마스'의 본질과 정신이 사라져버리고 그것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엑스마스'가 더 솔직한 표현일런지 모르겠다.
요즘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을 마음놓고 할 수 없다.종교의 자유가 엄연히 보장된 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종교의 인사를 강요하는 것이란다..대부분의 tv 채널이나, 기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라디오가 아닌경우에는 대부분 'Happy Holiday'라는 말을 사용한다. 마음껏 즐기고, 쇼핑하고, 먹고 마시는 한 해를 마무리짓는 가장 흥겨운 날로 전락해 가고 있는 중이다..그냥 '엑스마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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