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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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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내일을 꿈꾸는 것입니다.
보다 발전적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달려보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100m 달리기를 처음 시계로 측정하였을 때
19초였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시계로 측정할 때 마다 그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18초 17초 .. 13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 저를 보았습니다.
가장 빨리 달리는 방법은
머리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예전보다 더 많이 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좀더 빨리 달리려는 저는
이젠 낙망을 느낍니다.
조금 뛰려고하면
뛰는 것 자체가 힘겨워짐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발전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러나
저의 겉사람은
늙어가는 것을 봅니다.
지식은 많아지지만
기억력은 흐려지고
많은 것을 보지만
시력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내 육체뿐 아니라
세상을 통해 얻고 누리는 것 역시
언젠가는 한줌도
손에 웅켜쥐고 갈 수 없는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좀더 더 좋은 곳에
더 큰 묘비를 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절망일 뿐입니다.
그러나 낙심치 않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가 회복 될
그날을 기대합니다.
육신은 진보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영적인 삶은 늘 전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부끄럽지 않을
우리의 인격과 삶으로
성령님이 우리속에서
부단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래 살아간다면
성령의 충만을 가질 수 있다면
낙망의 현실속에서
환란의 환경속에서
후패할 모습가운데서도
우리를 연단하시고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늘 만나며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후서4:16)
늘 새로운 소망 가운데 사십시오.
푸른 나무입니다.
보다 발전적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달려보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100m 달리기를 처음 시계로 측정하였을 때
19초였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시계로 측정할 때 마다 그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18초 17초 .. 13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 저를 보았습니다.
가장 빨리 달리는 방법은
머리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예전보다 더 많이 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좀더 빨리 달리려는 저는
이젠 낙망을 느낍니다.
조금 뛰려고하면
뛰는 것 자체가 힘겨워짐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발전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러나
저의 겉사람은
늙어가는 것을 봅니다.
지식은 많아지지만
기억력은 흐려지고
많은 것을 보지만
시력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내 육체뿐 아니라
세상을 통해 얻고 누리는 것 역시
언젠가는 한줌도
손에 웅켜쥐고 갈 수 없는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좀더 더 좋은 곳에
더 큰 묘비를 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절망일 뿐입니다.
그러나 낙심치 않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가 회복 될
그날을 기대합니다.
육신은 진보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영적인 삶은 늘 전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부끄럽지 않을
우리의 인격과 삶으로
성령님이 우리속에서
부단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래 살아간다면
성령의 충만을 가질 수 있다면
낙망의 현실속에서
환란의 환경속에서
후패할 모습가운데서도
우리를 연단하시고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늘 만나며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후서4:16)
늘 새로운 소망 가운데 사십시오.
푸른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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