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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그리운 시대

무엇이든 4987 ............... 조회 수 938 추천 수 0 2004.02.20 09: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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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바보가 그리운 시대

 
 ▲ 물건에 가격표를 붙이지 않고 그때 그때의 흥정으로 값을 매겨서 거래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꼭 받아야 할 값을 마음 깊이 숨겨둔 채, 일단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부터 부릅니다. 물건을 사는 쪽에서는 살 가격의 최고한도를 밝히지 않은 채 턱없이 낮은 값으로 상대방을 떠봅니다. 흥정이 되기도 하지만,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아주 흔합니다.


 
 요즘에는 물건값을 대부분 바코드(bar code)로 표시해 두기 때문에 여간 편리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생활필수품은 가격표를 보지 않더라도 모두들 그 가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술값에 정통하고, 가정주부들은 공과금(公課金)과 식료품 값에 민감합니다. 젊은 여성들은 의류와 화장품 값에, 아이들은 게임기구나 인스턴트 음식값에 모두 전문가들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물건의 '가격'에 정통한 사람도 사물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가치는 가격처럼 바코드로 표시할 수도 없거니와, 서로 흥정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격과 가치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명상(冥想)과 자기성찰을 일상화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값(가격)을 쳐주지 않는 손때 묻은 일기장이 무엇보다도 큰 가치를 지니는 법이지만, 스스로의 내면을 살필 줄 모르고 다만 가벼운 박수와 칭찬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값비싼 물건들 · 높은 가격의 장식품들만이 관심사일 뿐입니다.

 
▲ 오늘날은 상업자본과 시장경제체제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시대입니다.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제3의 길'이니 '2 . 5의 방식'이니 하는 대안(代案)들이 새롭게 모색되고 있지만, 금융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날로 그 힘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창의력과 생산의 동기(動機)를 극대화하고 경제적 성취의 본능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데에는 자본주의만큼 우수한 제도적 장치를 아직은 달리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상당 기간, 인류역사는 자본주의의 물길을 타고 계속 흘러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탁월한 기능을 수행하는 상업자본과 시장경제가 인간의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정신과 사상의 영역마저도 상업적으로 유도해가고, 너와 나의 인간관계 · 사람과 자연과의 환경적 관계, 아니 인간과 신과의 초월적 관계마저도 시장의 논리로써 재단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헌신적으로 가사(家事)를 돌보는 가정주부도 전업노동자(專業勞動者)로 간주하고, 그 사랑의 수고를 마치 임금(賃金)처럼 숫자로 산출해내고 있는 세상입니다. 가족을 위한 따뜻한 애정의 헌신을 '사랑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의 가격'으로 환산하려는 슬픈 현상입니다.

 
환경문제는 오늘날 전세계적인 관심사로 되어 있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환경'이라는 단어로써 매개하려는 것 자체가 또다른 반(反)자연적 태도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환경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고, 자연은 그 '주변적 상황'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환경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보지 않고 언제나 주체와 객체로, 중심과 주변으로 구별하는 이러한 생각 속에는, 자연과의 공생(共生)의 관념보다는 자연에 대한 지배와 정복의 욕구가 더 깊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지배와 정복'은 자본과 시장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 '문화수요'니 '사상의 시장'이니 '교육의 재생산'이니 하는 식으로 경제적 용어들을 붙여 정신과 문화의 내용을 규정하고, 생명의 신비를 풀어 헤치는 유전자과학(遺傳子科學)이 바이오 마켓(bio - market)이라는 생명공학시장(生命工學市場)에 내맡겨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심지어, 유수한 대형교회의 안내책자에 선교시장(mission - market)이라는 용어까지 버젓이 등장하는 세태입니다. 선교시장이라니, 그럼 진리는 상품이요 선교사는 장사꾼이란 말입니까? 진리라는 상품을 팔고 도대체 무슨 값을 받아 내겠다는 것입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예수의 말씀(마태복음 10:8)조차도 '서로 주고 받는'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잠재의식의 발로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용어 하나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의식의 바탕이요 인격의 표현이기에 부득불 제기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의 가격'은 예배당과 신도들을 함께 묶어서 팔고 사는 '삯군 종교상인'(宗敎商人, 요한복음 10:12)들이 오늘도 기독교신문의 광고란에 친절하게 밝혀두고 있지만, '교회의 가치'는 오직 사랑의 수고와 진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에 의해서만 가늠될 수 있습니다.

 
▲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마구잡이식 개발이 한창 벌어지던 지난 시절, 역사와 철학 같은 인문학(人文學)의 분야를 '제2경제'라고 부른 용감한 정치인도 있었지만, 인간의 문화적 욕구를 '문화수요'로, 사상의 다양성을 '사상의 시장'으로, 교육의 창조적 기능을 '교육의 재생산'이라는 산업현장의 용어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줄 모르는 시장의 노예들이 오늘도 이 시대의 정신을 깊이 오염시켜가고 있습니다.
인류정신사의 바탕이요 버팀목이 되어온 인문학이 이제는 돈벌이가 안된다는 이유로 대학 안에서조차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가격'을 모르면 바보 취급을 받고, 물건값을 모르면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가치'를 모르면 인격과 삶의 실패를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건의 가격은 수요 · 공급의 시장원리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사물의 가치는 '그 내재적 본질과의 인격적 관계성' 속에서만 오롯이 파악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건의 가격은 영악하리만치 잘 알아차리면서도 사물의 가치에는 조금치의 관심조차 두지 않는 정신적 소경들의 시장터에서,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묻고 다니는 바보가 무척이나 그리운 시절입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우근 장로/ 극동방송국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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