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엇이든 › 한국천주교회의 "한국카톨릭교회해체선언"1과6의 전문입니다

어떤천주교신자 | 2005.05.18 23:35:3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3년전 한국천주교회를 발칵뒤집어놓았던 금구요한님의 '한국카톨릭교회해체선언'입니다.
병들대로병든 한국교회에 한줄기 빛이기를 소망합니다.
한국개신교의 깨어있는 지성인들에게 보내는 바램도 있습니다.
널리 알려주십시요.

이름 : 다시읽기     번호 : 5417
게시일 : 2005/05/18 (수) PM 11:23:45  (수정 2005/05/18 (수) PM 11:31:05)    조회 : 7  
자료실에 올려져있는
3년전, 금구요한님의 "한국카톨릭교회해체선언"1과 6의 전문입니다....
다시 읽어보아도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교회해체만이 그 명확한 대안입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 가톨릭교회란 분명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신성(神聖)을 빙자한 교회의 오만불손한 독선적 권위주의,
교회의 이념으로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부의 축적,
징벌과 보상의 논리로 치밀하게 전개되는 영성의 착취,
사이비과학으로 치장한 반지성적 교리의 정교화,
어떤 파렴치도 정당화되는 선교의 절대화,
정통의 이름으로 묵살해버리는 새로운 상황의 처절한 절규들,
정의로 위장한 권력과 부의 섬김,
사랑이라는 이름의 저주와 경멸들뿐입니다.

더 이상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사태를 직시하십시오. 정열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교회를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교회해체운동입니다.
이 길만이 분명한 대안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병든 사목지도자들을 깨워 살리고 우리가 진정 교회를 살아갈 수 있는 유일의 선택입니다.  


★★★한국카톨릭교회해체선언문(1/10)

나 금구요한은 2002년4월19일 42돌 4.19학생의거일을 맞으며  
너무나 병들고 썩어버려 이미 회생불능 지경에 이른 교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멍청한 벙어리가 된 교회,
미친 헛소리만을 해대는 교회,
정치권 흉내만 내다 초권력 집단이 되어버린 교회,
돈벌이에만 골몰하다 재벌중의 초재벌이 되어버린 교회,
그리하여 교회라는 말조차 처참하게 짓밟아 죽여버린 한국가톨릭교회를
통한의 눈물로 바라보면서,
이제라도 한국가톨릭교회가 최소한 가톨릭교회이게 하기 위하여서라도,
사목성직자수도자들이 최소한 사목성직수도자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수많은 교형자매 교우여러분들이 진정 최소한이라도 그리스도인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게라도 하기위해서라도,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의연히 일어서서 진정 교회를 위하여,
진정 사목성직자를 위하여,
그리고 진정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온전히 주체적 의지와 성숙한 인식으로 단호하게....
이 불의의 제도교회에 맛서 이 썩고 병들대로 병든 교회에 대항하여 이 병든 교회를 해체시키는 것만이 이 통한의 현실 위에서 더 이상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이상 우롱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비장한 확신을 갖고, 400백만한국카톨릭신자들에게 감히 교회해체운동을 선언하면서 이 운동에 참된 신앙의 마음으로 여러 교우분들이 적극 동참하여 줄 것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본인의 이 선언은 본인 양심에 비추어, 본인 지성에 비추어 그리고 미천하나마 본인이 천착하여온 바, 애쓰며 공부하여온 바, 부당한 종교권력에 정면으로 항의하다 십자가형에 처하여진 2천년전 저 팔레스티나의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하여 본인의 소신만으로 여러 교우여러분들에게 외치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를 바라봅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교회입니까? 2천년간 우리들이 그토록 목말라해 온 "구원의 방주"라는 교회가 바로 이러한 모양이었습니까?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닙니다.  
과연 그리스도 예수가 지금과 같은 거대한 재벌기업에 불과한 교회를, 지금과 같은 초권력정치집단에 불과한 교회를 상상이라도 하셨을까요? 아니 거꾸로 기가막히게도 예수가 그렇게 저항하고 대항하던 썩은 종교권력 그 모습 그대로 교회는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이름만 바꾸고 우리들 앞에 버티고 서있습니다.
"강도도둑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고 "장사치모리배들의 시장통이 되어버렸다"고 채찍을 휘두르시며 격노하시던 우리의 주님 예수를 생각합니다. 그분의 분노를 생각합니다.
본인의 이 선언 이 중심 한복판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말씀만이 자리합니다.
그분 안에서 저는 감히 판단하고 단언하며 해체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스승 그분을 더 이상 조금이라도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과연, 그리스도 예수가 전국민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미쳐 살아가는 부정부패전시장 대한민국 한가운데서 "돈이란 좋은 것입니다. 돈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꽃동네회지에서)하고 말하는 대주교를 상상이나 하셨겠습니까? 교육이 작살나고 문화가 미쳐 날뛰고 전국토는 유흥환락가가 되고 전국민이 날라리시정잡배가 되어가고 아이들이 시한폭탄이 되어가고 사법정의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우롱 당하고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이 땅. 천민자본주의 카지노판 돈놀이가 한탕주의가 전국토를 작살내는 한복판에서 교회신자배가운동만을 지상의 과제로, 가두선교가 지상과제라고 미친 소리나 떠들어대는 대주교를 상상이나 하셨겠습니까? 해외토픽 황당 뉴스거리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이렇게 미쳐버렸습니다. 너무나 배불러서 비만당뇨증으로 헐떡헐떡거리며 미쳐버렸습니다. 너무나 높은 곳에서 군림하다보니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너무나 거짓말만을 뻔뻔스럽게 하다보니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지 한가운데 거대한 공룡으로 쓰러져있습니다. 눈만 멀뚱멀뚱 뜨고서 숨만 겨우 헐떡거립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를 물어삼키고 자멸(自滅)을 향하여 치달려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 교회입니다.

미쳐버린 교회의 증상이 여기저기서 터져 버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파면시켜야 마땅할 주교사제들이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습니다. 졸부중의 졸부같은 사목자들이 우후죽순 활개를 칩니다. 사제됨이 마치 중세봉건시대의 왕족이라도 된 양 착각하고 군림하는 가엾기 그지없는 사목자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민중의 원성으로 소리쳐 들립니다. 교구청에 불려가는 신부들은 "안기부에 끌려간다"고 말해지는 서글픈 교회현실. 예수로 살아가려는 깨어있는 사목자들일수록 거꾸로 짓밟아 누르는 교회. 목조르는 교회.  
이것이 과연 교회입니까? 이것이 과연 예수께서 원하셨던 사목자도자들의 모습입니까?
아니 예수께서 상상이라도 하셨겠습니까? 우리들은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보로 훈련되어 길들여져 왔습니다.
"거룩함이라는 이름의 폭력 아래" 우리들은 그저 충실한 병신도들일 뿐입니다.
꼭두깍시일 뿐입니다. 이 병든 교회를 떠받쳐주고 있는 정말 한심한 바보들일 뿐입니다.
주님에게 물어봅니다. 따지듯이 되물어봅니다. 이러한 교회를 위하여 당신은 그렇게 죽으셔야만 했느냐고 되물어봅니다. 그렇게 처참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야만 했느냐고 물어봅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무리 되물어보아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고 무엇인가 거꾸로 서있어도 한참 거꾸로 서있는 것입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본인의 한국가톨릭교회해체운동선언은 전세계 가톨릭교회 전체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여기 이 땅 대한민국의 한국가톨릭교회만을 대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대한민국을 떠난 가톨릭교회까지 소상하게 본인은 잘 알지 못합니다. 여기가 본인이 주창하는 이 운동의 출발과 도달점의 분명한 한계입니다.    
한 사회와 그 사회의 문화, 교육, 정치, 경제 등등이 우리의 교회와 우리들의 신앙고백과 결코 유리 될 수 없고 밀접하게 상호영향 하는 관계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여기 이 병들고 썩은 교회는 놀랍게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암적인 존재 그 장본인 가운데 장본인이라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슬픈 사실의 확인입니다.
즉, 교회만 올바로 살아왔어도 교회만 정말 교회였어도 결코 이 땅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서글픈 사실의 확인입니다. 아니 거꾸로 바로 이 교회가 "아니요"하고 말해주어야 할 교회가 한번도 제대로 "아니오"하지 못하고 비열하게 눈치나 보고 더럽게 기생하면서 생명을 이어온 동안 모든 것은 썩을대로 썩고 병들대로 병들어버렸다는 견딜 수 없는 분노의 확인입니다. 오늘 한국가톨릭교회는 한국사회 그 치명적인 암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가운데 극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M.Gandhi가 언급한 7가지사회악 (즉, 철학없는 정치, 노력 없는 부, 양심없는 쾌락, 개성없는 지식, 도덕성없는 상거래, 인간성없는 학문, 자기희생없는 신앙)의 종합복사판으로 한국사회는 미쳐 질주하고 잇습니다. 교회는 결코 "아니다"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천민자본주의 부정부패에 이미 매몰되어 뭍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멍청하게 주일마다 그 쓰레기하수구의 꾸정물을 성수인양 되받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악순환에 다시 악순환 "악화는 양화를 구축합니다." 우리의 영성공간이 정확히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느님을 말하는 것조차 자기공허의 되새김질일 뿐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이기 훨씬훨씬 이전에 먼저 도덕적일 것 윤리적일 것"이 절박하게 요청되는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멍청하게 당신은 교회가 교회 같아서 무얼 믿고 살아가십니까)"하는 소리가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말해지는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습니까?
단언컨대 지금 이 대한민국의 한국가톨릭교회가 거룩한 교회를 철저히 배신하면서 불의에 교묘히 편승하고 뒷손잡고 기생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쇄신을 울부짓고 개혁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호소합니다. 본인은 그러한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말하고자합니다.
교회쇄신 교회개혁 교회변화.....그 길은 적어도 대한민국 가톨릭교회에서만은 교회해체운동뿐입니다.

당신들의 충언은 다시 한번 기가 막히게 교묘한 장치를 통하여 교회권력 지배자들에 의하여 이용당해질 뿐입니다. 거꾸로 당신들의 충언은 이 불의한 교회구조를 더 질기게 존속시키는데 기여할게될 뿐입니다. 그렇게 분노하면서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 교회 안에서 교회의 녹으로 먹고삽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합니까? 어설픈 교회비판은 종교적 기만의 지적 자위행위(自慰行爲)에 불과합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하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나머지는 기만(欺滿)입니다. 스스로에게 또한 어리석은 교우들에게 행해지는.

교회해체만이 그 명확한 대안입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 가톨릭교회란 분명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신성(神聖)을 빙자한 교회의 오만불손한 독선적 권위주의, 교회의 이념으로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부의 축적, 징벌과 보상의 논리로 치밀하게 전개되는 영성의 착취, 사이비과학으로 치장한 반지성적 교리의 정교화, 어떤 파렴치도 정당화되는 선교의 절대화, 정통의 이름으로 묵살해버리는 새로운 상황의 처절한 절규들, 정의로 위장한 권력과 부의 섬김, 사랑이라는 이름의 저주와 경멸들뿐입니다.
더 이상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사태를 직시하십시오. 정열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교회를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교회해체운동입니다. 이 길만이 분명한 대안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병든 사목지도자들을 깨워 살리고 우리가 진정 교회를 살아갈 수 있는 유일의 선택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따끔한 매를 들어야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본인은 이 글을 씁니다.
본인의 교회해체운동선언은 세상한가운데 참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신 예수가 평신도로 사셨고 평신도로 싸우셨으며 평신도로 죽음에 이르심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열어 보여주셨듯이 평신도가 명실공히 교회의 주체라는 선언이며, 교회가 참으로 교회로 살 수 있도록 사목성직자들이 참으로 사목성직자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밑으로부터의(아래로부터의) 영성적 저항운동"이며 실천적 신앙의 고뇌가 도달한 모색임을 저는 감히 고백합니다. .

종교, 신앙은 고사하고 사람들의 일상 삶 자체가 산산히 부수어지고 작살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그 분열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탄에 빠진 민중의 처절한 울부짓음은 바로 하느님의 통곡이며 울부짖음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도 헛소리만을 해대고 있습니다. 말로는 초등학생도 읊어대는 교과서식 부정부패가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대면서 말로는 생명이니 어쩌니 떠들어대면서 안으로는 신자배가운동이나 획책하고 통계수치만 자랑하고 야훼하느님을 부르면서 기가막히게도 구약의 우상 바알(Baal)신만을 찾아헤메고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 최대의 관심사, 사람은 사람들은 이 썩은 교회 고위성직자의 뇌속에서는 그저 통계상의 수치일 뿐입니다.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지금의 한국가톨릭교회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부정부패와 윤리적 도덕적 퇴락, 파멸의 늪으로, 질곡으로 몰아가고 있는 구조악 가운데 치명적이고 암적인 기생충집단에 불과하다고. 교회가 교회이지 못한 죄악이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살지 못하는 죄악이 이렇게 가공한 것입니다. 21세기,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 부정부패의 나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국가톨릭교회는 분명 그러합니다.
진정 참회하지도 않으면서 참회하는 척하면서 참회를 남발하고, 진정 용서하지도 않으면서 용서하는 척하면서 용서를 남발하고, 내어주지도 않으면서 내어주는 척 사랑이라는 용어를 남발함으로써 언어마저 생명을 잃게 하였습니다. 언어마저 언어를 집어 삼켜버리게 하였습니다. 교회의 언어는 이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보통사람들의 비아냥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리없는 절망은 이 죄악에 대한 통곡과 절규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는 부도덕한 재벌보다도 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은 썩은 정치권력지도자들보다도 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사목성직자들은 교육을 망쳐버린 멍청한 교육관계자들보다도 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나는 여기서 전세계 가톨릭교회를 싸잡아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땅 내가 확인할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한국 가톨릭교회만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톨릭교회를 흉내내다 일반인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고있는 대형 개신교회도 저는 여기서 잠시 피해가겠습니다. 우리들보다 더 한심한 작태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서 저와 같은 출발이 탄생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순진하고 착한 신자들이었습니까? 우리는 이 가운데서도 그래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교회가 교회이기를 교회일수 있기를 정말 바라고 믿으면서 가르침에 순종하면서 꾸역꾸역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는 "아니다"라고 단호히 외쳐야할 때입니다. "너희들이 교회로 살지 못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우리라도 차라리 교회로 살아가겠노라"고 외쳐야할 때입니다. 이제는 분명하게 거부하고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깊은 잠에 푹 빠져있는 교회, 사목자라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깨워 주어야합니다.

얼마나 더 우리는 이 병든 교회의 구조제도조직으로부터 상처를 받아야합니까?
얼마나 더 더럽고 비열한 거짓말로 치장한 성령의 모독을 감수하며 살아야합니까?  
"홀로교회운동"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가정교회운동"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이웃과 함께교회운동"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스도 예수의 메시지를 명확히 다시 한번 주목해야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 우리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하며 명확합니다. 단호합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병들어 있을 때 감옥에 갇혀 있을 때....너는 나를 찾아주었다"

또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성당미사참례를 꼭 해야만 하느님을 만난 것 같다는 분들
성체를 모셔야만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같다는 분들
고백실에서 중얼중얼 고백을 해야만 용서를 받았다고 느껴진다는 분들
성당 마당에 서야만 주님의 집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는 분들에게까지
신부님 주교님을 보아야만 비로소 주님을 만난 것 같다는 분들에게까지  
저는 저의 호소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호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교회에 남으셔야합니다. 남으셔서 충실하게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단, 한가지만 꼭 명심하시고 말입니다.
당신 앞에 버티고 서있는 이 교회는 언젠가는 당신이 졸업해야할 학교 같은 곳입니다.
바로 이 속되고 죄악이 만연한 이 세상이, 사람들 한가운데가, 바로 당신이 교회로 살아가야 할 최후의 마지막 마당(場)이라는 사실만은 제발 잊지 말으시고 열심히 공부 하십시요. 열심히 공부하셔서 제발 영원한 교회재학생, 교회 유급생으로는 남지 마시고 훌륭한 교회졸업생이 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 금구요한은
진리에 순명 하기 이전에.... 진실에 몸 바칠 수 있는 한사람이고 싶습니다.    
진실보다 더한 진리는 없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이 길이 얼마나 고단할 십자가의 길임도 잘 압니다.
기쁘게 이 형극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 길이 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요구한다면 저는 기쁘게 제 목숨을 내 놓겠습니다.


              "그 일이 목숨을 걸만한 일인가."
                위대한 스승은 내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 한국카톨릭해체선언(6/10) - 남아있는 이들을 위한 교회제안

교회 안에 남아있는, 또 남아있을 사람들을 위하여 올리는 교회개혁을 위한 몇 가지 제언.
"뜻을 펼 수 없었던 불우한 사람들, 탐관오리를 제거하려는 의분에 찬 지사들, 외적의 침탈을 통분하는 사람들, 수탈 당하고 호소할 곳 없는 사람들, 죄를 져서 도망한 사람들, 의지할 곳 없이 흩어진 사람들, 농민이나 상민 중 지극히 가난한 사람들, 풍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 빚에 쪼들려 못 견디는 사람들, 천한 신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
(관변 기록이 전하는 동학혁명 당시 전국 각지로부터 보은집회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본인이 이 해체선언을 통하여 희망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올바로 깨어있는, 똑바로 깨어 살아가려는 한 개인개인들의 준엄한 선택과 결단들일 뿐입니다. 그분들이 만들어가는 교회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뿐입니다.    
이러한 개인개인들의 연대와 선택과 결단만이 이 제도교회를 진정으로 변화하게 할 수 있으며, 세상을 변화하게 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하게 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모든 문제들이 대개 그러합니다.
조직 안에서, 제도 안에서, 구조 안에서 참된 변화를 꿈꾸고 그 참된 모색을 갈망한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그저 희망사항이 될 뿐입니다. 형식적으로 말하여지는 요식적 구호에 불과해질  뿐입니다.
이러한 한국가톨릭교회의 구조제도조직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란 우리들 모두의 열렬한 바램이건만 아주 요원한 희망사항이 될 뿐입니다. 성숙한 기독교인 존재자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들이 본인으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여정을 통하여 해체선언에 이르게 한 아픈 과정이었음을 저는 고백합니다.  

한사람의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공무원에 의하여 감사원의 비리가 폭로되고
한사람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군인에 의하여 거대한 군부조직의 음모와 비리가 폭로되고  
한사람 교사에 의하여 교육계 암적인 요소들이 환부를 드러내고 수술을 받게 되고  
이름 없는 한사람의 시민에 의하여 부정과 비리가 바로 잡아져 가는 사회현상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혼자라도 의연히 그 스스로 교회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을 통하여 교회는 현현(顯現,incarnation)합니다. 이러한 개인들을 통하여 교회는 우리 안에 우리들 삶 안에 구체적으로 자기의 모습을 열어 보여 줍니다. 저는 이러한 개인 개인들이 많아졌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

우리들 곁에는 분명 조직제도의 교회를 상상하지 못하고서는 교회라는 것은 꿈에서라도 그려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습니다. 저는 충분히 그분들을 이해합니다. 그분들을  무지몽매한 종교적 노예들의 가련한 사람들이라고 경박하게 매도하지도 않겠습니다. 어차피 그분들 또한 하느님을 향하여 걸어가는 이 지상의 나그네길, 여정에서 우리들의 또 다른 동반자로서 우리 모두는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동행(同行)의 순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 해체선언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무모할 수 있으며 또한  교회관계 당국자들에게는 얼마나 발칙할 수 있는 도발적 도전인가를..... 그러나, 이제 병들대로 병들고 썩을 대로 썩은 회생불능 지경의 한국카톨릭교회를 다시 한번 바라보면서 그렇다고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 떠나 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님을 본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 남아있을 사람들, 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결코 조직일수 없습니다. 제도일수 없습니다. 교회는 결코 통제적일 수 없고 관리적일 수가 없습니다. 온전한 자발성의 사람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 연대를 칭할 뿐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역설적이게도 참된 교회를 말하면서 언제나 참된 교회를 압살하여왔습니다. 가려왔습니다. 은폐시켜왔고 왜곡시켜왔습니다.
참된 교회로의 움틀림을 끝없이 매도하고 저지하여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인이 교회가 해체될 때만이 무화(無化,케노시스)될 때만이 참된 교회는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의 출발입니다. 단초입니다.

명백합니다. 오늘날 최소한 한국카톨릭교회에서는 바로 제도교회부터가 성직지도자들부터가 개혁과, 혁명과, 쇄신의 첫번째 대상입니다.
이러한 구조속에서 교회는 용기있고 정직하지 않고서는 끝없이 거짓말을 해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들어도 정말 한심한 빈말만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2천년간 교회의 영성은 우롱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체성(正體性)의 위기"란 다른 말이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로 살아오지 못한 당연한 결과의 표현입니다. 사목지도자들이 사목지도자답게 살아오지 못한 당연한 결과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지 못한 당연한 결과의 고백일 뿐입니다.    

생각해봅니다.
공동선을 위하여 작지만 소중한 힘으로 연대투쟁하는 일반 시민단체만도 못한 종교,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아무 조건없이 자신들의 것을 나누는 사람들, 사람들의 모임보다도 못한 종교, 바르게 살자고 구호만을 외쳐대는 관변단체만도 못하게 더 허망하면서도 빛깔만 요란찬란한 종교적 교설, 사실상 천민자본주의 한복판에서 악착같이 졸부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성공학 주식투자에 불과한 강론설교, 비열하고 더러운 얌체인간들의 양심을 또 한번 가공해서 철저히 마비시켜버리는 면죄부적 도피처에 불과한 종교, 종교가 신앙이 교회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이렇게 우롱되고 농락되는 땅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나 금구요한은 다시 한번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제라도 한국카톨릭교회가 진정 교회로 다시 태어나고 교회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목수도자들이 최소한 사목수도자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구조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행할 수 있는 선택과 결단은 "교회해체운동"입니다.
교회해체운동이란 교회를 파괴하자는 운동이 아닙니다. 부수어 버리자는 운동이 더더욱 아닙니다.  
교회를 버리고 떠나자는 선동적 운동은 더더욱 아닙니다. 분명 떠나야할 사람들이 있고 분명 남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 금구요한은 간절히 소망합니다. 끝끝내 교회에 남아야하는 사람들이 진정 "남은자들"(remnant)이 될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다시 말해서 본인이 주장하는 한국카톨릭교회해체선언은 각각의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가 이제까지 배운바 글자그대로 참된 교회를 스스로 살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이 비인간화의 시대에 물신숭배만이 만연한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라도 "참사람으로" 살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저의 교회해체선언은
교회를 희생양 삼아 죄악의 집단으로 몰고 가자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이지 못했다는 저의 비판을 부디 경거망동한 선동으로 몰고 가지는 말아주십시오. 교회가 교회이지 못했다는 저의 비판을 부디 정신병적 파괴주의자의 넋 나간 선동으로 몰아붙이지는 말아주십시오.

더 정확히 그리고 쉽게 말하자면 해체선언이란, 이미 거대한 기업이 되어버렸고 재벌이 되어버렸고 권력집단이 된 이 한국카톨릭교회가 진정한 교회에 대하여 눈뜨게 하자는 운동이며, 대한민국이라는 아주 특별한 도덕적, 윤리적 질곡의 특수상황 안에서 교회가 진정 교회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형극의 십자가의 길인가를 우리 서로 깨우치고 자각하게 하자는 운동입니다.
아주 선명한 문장으로, 우리들이라도 교회를 철저히 가난하고 단출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자는 운동입니다.

이제라도 저는 간곡하게 교회당국에 호소합니다.
제도교회는 이제라도 진정 교회이기 위해서 신자배가운동이니 세력확장이니 하는 따위의 제국주의적 발상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내실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양성에 전력을 경주해야합니다. 먼저 사목자들이 철저히 사목자답게 살수 있도록 우리의 주님 그분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고민하고 도와야합니다. 지금 교회는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있습니까? 이 땅에서 교회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한국카톨릭교회 해체운동입니다.

이제 나는 먼저 기쁘게 떠나야하는 사람들을, 떠나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1), "제도조직교회를 참다운 교회로 만들기 위한" 제도조직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정면 비협조운동 전개입니다(분명하게 "아니다"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신앙에 기초하여 명확하고 분명해야합니다. 왜 반대하는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따지고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만큼 우리 평신도들이 공부해야합니다. 알아야합니다). "자본주의의 복음"과 "예수의 복음"은 함께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하게 "아니다"하고 예수의 복음을 말할 수 있도록 교회를 일깨워 도와야합니다.

2), "교회없이 교회를 살아가는" 적극적으로 교회를 버리고 떠나는 주체적 냉담운동의 전개 그 확대심화입니다(이 대목은 가장 쉽게 오해를 불러오기 쉽습니다. 여기서 냉담이란 사랑하기에 떠나는 가슴아픈 결단입니다. 사랑하기에 자기의 자녀에게 매를 드는 부모의 심정으로 행해지는 냉담입니다. 이 냉담에는 세상 한가운데서 기꺼이 교회로 살겠다는 다짐이 전제됩니다. 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때만이 선택할 수 있는 깊고 깊은 차원의 결단이라는 것을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이미 세상 한가운데서 교회를 발견하신 분은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이미 "하느님나라"의 건설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상처받지 마시고 불필요한 정열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분명한 한계를 설정하십시오.  

3), "세상 한가운데서 스스로 교회를 사는" 홀로 혹은 가족들과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료들과 또는 가까운 이웃친지들과 각각의 상황과 나름대로의 조건에 따라 충실한 형식과 내용으로 스스로 공부하고 서로를 가르치며 배우며 신앙생활을 실천하고 전개해 가는 것입니다. 마치 이 땅에 처음으로 천주교학이 전래되었을 당시 그 서슬 퍼렇던 시절 진리에 대한 사랑하나로 목숨을 내걸고 평신도 스스로 모임을 구성하고 공부하고 연구했던 그 유서깊은 전통을 상기하십시오. 스스로 모여 자발적으로 공부하십시오. 고민하고 연구하십시오. 윤독회를 구성하고 독서토론회를 만들고, 어려운 문제들은 솔직히 드러내 서로상의하고 서로 돕고 품앗이하고 하십시오. 우리에겐 이미 교회가 아주 단단한 교회가 우리들의 삶 속에, 일상속에 존재해 왔었습니다.

4), 언제 어디에 있거나 예수의 요청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는 삶에 우리의 기준은 자리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의 요청보다 더한 잣대는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한 기준은 없습니다. 과연 "예수의 교회"냐 "자본주의의 교회"냐 따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교회"냐 "씨이져의 교회"냐 따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와 교회를 동일시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을 필요할 때에는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십시오. 교회의 가르침이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할  수는 있어도 예수가 교회를 왜곡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마저 예수 이름으로 예수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점을 본인은 특별히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잣대 위에 반듯하게 서 있어야합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이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를 기망하고 배신할 때, 지금과 같은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일 수 없습니다.

또한 나 금구요한은
운명적으로건 자신의 탓으로건 혹은 이러저러한 이유에서건 제도교회 안에 끝끝내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도교회의 참된 교회화(churchification)를 위하여 동시에 몇가지 제안을 하는 바입니다.

1), 각 교구 신부들의 본당발령인사이동의 제도적 문제에 관하여 획기적인 전국적 개혁조치가 필요합니다. 서울태생 신부는 평생을 서울교구에서만 맴돕니다. 강원도 산골동네 신부는 평생을 산골동네에서만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맴돕니다. 서울 강남의 어떤 본당 한곳 일년예산이 강원도 춘천시 교구전체 일년의 예산보다도 많습니다. 교회 안에 교구 안에 본당과 본당사이에 이렇게 엄청난 빈익빈부익부현상 문제를 떠나서라도, 사목자들 본인들을 위해서라도 인사이동문제에 따른 전국적인 일대개혁조치가 요청됩니다. 즉, 서울 상도동 본당신부가 저 전라도 바다 섬마을 산골오지마을 본당신부로 갈 수 있어야합니다. 경상도 산골마을 본당신부가 명동성당 본당신부로 올라올 수 있어야 합니다. 충청도 깡촌 촌동네신부가 강남 역삼동 본당신부로 올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서로 오고가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남 대치동 본당신부가 주일헌금 5만원도 안 되는 오지마을 본당신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구조적으로 제도적인 장치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교구간의 반목과 불신.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사제들간의 연줄, 지연에 얽힌 슬프고 슬픈 이야기.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제비뽑기를 하십시오. 예를 들어 전국본당 100개 본당신부 100이면 100명 모아놓고 제비뽑기해서 결정하십시오. 구약성서의 지혜와 전례를 따라서 개혁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산골마을 본당신부가 서울 한복판에 와서 주일마다 시골이야기도 들려주고, 서울에서 본당신부하던 이는 저 조용한 촌동네 내려가서 서울지옥 이야기도 좀 해주고 한적하게 공부도하고 할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신부사목자들이 이 문제로 불만을 갖습니다. 더구나 주교 개인의 결정으로 한 신부의 운명(?)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지금의 제도는 전근대적일 뿐 아니라, 범죄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구조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사목자들일수록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습니다. 바로 이 썩은 교회로부터, 이 썩은 교회문제로 고민하다 떠난 신부님들!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잊지말고 꼭 기억하십시요.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주교님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니 주교님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제주도 이야기도 듣고, 제주도에서 서울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옮겨갈 수 있는 일을 왜 교회는 꿈도 꾸지 않습니까? 지역간의 불신상처까지 따져보십시오. 얼마나 교회적인 발상입니까? 특히 서울신부들 시골에서 좀 살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촌동네 신부들 서울에서 살아봐야 합니다. 서로 서로에게 필요합니다. 하루종일 아니 3박4일을 아파트만 오르고 내렸다는 신부의 흙을 밟고 싶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눈물나게 합니다. 이것이 교회 민주화의 첫걸음입니다. 지금과 같은 인사제도는 모두를 망쳐갑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쓸데없는 것만 내던지면 내일이라도 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전세계 가톨릭중에서도 스스로 알아서 가장 로마중심적이고 스스로 알아서 눈치 잘봐서 교황청에 가장 종속되어있다는 비판 비난은 면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마저 그러한데 카톨릭만이라도 좀 당당하게 주체적이면 안되겠습니까? .

2), 각교구의 주교님은 교구 스스로에서 우리 힘으로 선출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녀회 장상도 수녀님들 스스로 모여서 비밀투표로 선출합니다. 교황님도 그렇게 선출됩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학급반장도 아이들이 천거하고 투표해서 뽑습니다. 21세기 한복판에서 중세기식 임명제라니! 지나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도 웃을 일입니다. 민주적 제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스위스교구에서 하는 일을 우리라고 못할 일은 없습니다. 바꾸십시오. 그래서 진정 존경받는 어르신이 주교가 되고 신부님들이 교구청에 불려가면서도 안기부에 끌려간다는 말은 안하겠지요. 큰형님이 부르신다고 기뻐 가시겠지요.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심한 공무원들처럼 이리저리 핑계대지 마십시오. 규정이 어떻고, 현실이 어떻고, 교회법이 어떻고, 전통이 어떻고, 관례가 어떻고 이 핑계 저 핑계대지 마십시오. 예수님 말씀처럼 지고한(?) "율법조차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3), 각 본당의 평협회장님이 누구십니까? 신자공동체의 대표이십니다. 본당신부가 알아서 임명으로 결정하는 사실이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각종 단체장, 액션단체 기타 등등 그분들 자율에 맡겨 자유로이 선출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자공동체의 진정 존경받는 분이 회장이 되고 필요할 때는 당당하게 바른말도 할 수 있고 하는 어르신이 교회 안에 있게 되십니다. 평협회장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추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본당신부의 일방적인 회장직 파면파동으로 벌어지는 추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따위 작태가 바로 한국카톨릭교회가 21세기 한가운데서 중세봉건왕조시대를 사는 추태모양들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 저 같은 일개 범부에 의하여 이제야 인터넷을 통하여 정식으로 제기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카톨릭교회의 참담한 현실과 비극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 신학교난립의 문제 부실 신학생 교육의 문제 짚고 넘어 가야합니다. 수많은 논의들 참고하십시오. 거의 교구별로 신학교가 이 좁은 땅에 7, 8개가 있습니다. 억지 춘양이식으로 신학교를 왜 이렇게까지 만들었는가, 만들어야만 했는가 까지의 불협화음같은 것은 차지하고라도 과연 합리적입니까? 영성적으로 바람직합니까? 교육적으로 바람직합니까? 미래의 사제들 상호간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바람직이나 합니까? 또 경제적으로는 얼마나 낭비입니까? 그 혈세는 누구의 피와 눈물입니까? 교수자리 만들기 위해서 터싸움 하는 것도 아닐 것이라면 이러한 부실불량교육 끝장내야 합니다. 주교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입니다. 이건 순전히... 자격없는 문제의 교수진 문제는 거론조차하지 않겠습니다. 같은 동기신부들이 웃습니다. 그러한 분이 교수한다고.....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교수진도 그렇습니다. 최소한 동등하게 반은 평신도학자로 하십시오. 그곳에서라도 신학생들이 평신도 존경하는 것 배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국카톨릭교회의 성직자중심주의는 정말 세계적입니다. 그래서 엉망진창의 사제들이 막 배출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인원미달이고.    

5), 교회재정의 전면 투명화 공개화를 촉구합니다. 돈(재정)이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한푼도 없으면 이러한 자본주의 땅에서는 굶어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아주 "무서운 것(terrible)"입니다(결코 세상 사람들이 좋은 것, 아주 좋은 것이라고 말해도 최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은화30냥 때문에 배신당하셨을 정도로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이 맘몬의 한 뜻입니다).
교회재정을 모든 신자들이 알도록 공개하고 투명화시켜야 합니다. 얼마의 돈이 헌금을 통하여, 교무금을 통하여 또는 외부지원을 통하여 수입되었으며 그것은 또 어떻게 교구청으로 가고 어떻게 모여져서 어떻게 쓰이고 등등을 알아야 할 권리가 신자들에게는 있습니다. 십자고상을 향하여 돈을 들고 우리는 제대를 향하여 걸어갑니다. 주여 나의 몸과 모두 바치오니 하면서 바치는 돈입니다. 그것이 코 묻은 동전 한푼일지라도 일지라도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돈입니다. 돈놀이꾼의 이자돈, 정치권의 뇌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신성한 정재(淨財)의 사용은 철저히 공개적이며 투명해야 합니다. 교구청에서는 어떻게 결산이 되고 쓰여지고 하는지를 최소한 일반성인 신자들은 알아야합니다. 어떻게 쓰여지는지도 공개되어야합니다. 최소한 각 교구 각 본당 평협 지도자 어르신들만이라도 전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비근한 예로 최근 한국천주교회의 명예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게 한 인천부평2동 성당사태같은 문제는 이렇게 밀실에서 은밀히 진행되었기에 발생가능했던 일입니다. 상호신뢰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시골본당 성모회장도 성모회총무에게 검증받고 본당수녀님에게 검증받고 본당신부에게 회계감사를 받습니다. 통장과 도장은 별도로 관리합니다. 왜 당신들은 그렇게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이제 평신도들에게 정확히 점검을 받아야합니다.    

6), 정진석대주교님! 하실수 만 있으시면 임기에 연연하지 마시고 조속히 은퇴하십시요.
’꽃동네대부’시라는 닠네임의 니꼴라오대주교님! 최고지도자답게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교회해체선언을 하는 제 비판이 최소한 그리스도교적 윤리면에서라도 타당하다면 그 책임을 지시고 사임하십시오. 더구나 주교님께서는 한국카톨릭교회에 몇 분 안 되는 교회법의 최고권위자이십니다. 얼마나 후학들을 위하여 옮기고 쓰시고 알려주어야 할 것들이 많으십니까? 고백성사 죄항목일람표에서부터 대죄중죄소죄분류서까지. 주교님 아니시면 누가 읽기라도 하겠습니까? 선임 김수환추기경님께서 10년에 걸쳐서도 못하신 일을 주교님은 서울교구장으로 가시고 1년만에 하셨다고 합니다. 즉 모든 서울교구신부들로부터 교구청에 하나같이 등을 돌리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능력을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느님보시기에는 인간관점의 무능력이야말로 또 하나 새로운 차원의 섭리이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으로 책임져야하실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돈이란 좋은 것입니다. 참 좋은 것입니다. 여기 신부님들 꽃동네 돈 탐내시면 안됩니다. 저도 탐내지 않겠습니다."(꽃동네회지에서 발췌) 하고 말씀하시던 대주교님!

이 어지러운 사회, 미쳐 날뛰는 문화, 방황하는 교육의 절망, 몸부림, 기호를 전혀 읽지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젊고 박력 있는 후배에게 기쁘게 자리를 양보해주십시오.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교회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최고지도자로서 스스로 은퇴하는 아름다움. 떠나야할 때를 알고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범으로 보여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니꼴라오대주교님! 금구요한이 "교회해체선언"(1/10)을 통하여 아주 무례하게 거친 언사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무릎꿇고 간절히 용서를 청하는 바입니다. 주교님 개인을 감정적으로 미워해서 그러하였겠습니까? 대교구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의 위상. 이 화급한 대한민국의 긴박한 현실 등등을 생각할 때 주교님의 여러 발언들이 정말로 측은하고 딱해서(?) 제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직언(直言)한 것일 뿐입니다. 부디 불쾌하셨다면 노여움을 푸시고, 부디 저의 간곡한 충언을 깊이 담으시고 용단을 내려주실 것을 간절히 기대하는 바입니다. 저 개인 니꼴라오대주님께서 옮기신 토머스머튼의 <칠층산>, 죤오브라이언신부의 <억만인의 신앙> 등을 보물처럼 귀히 여기는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어느날 주교님 앞에 나타나 제가 바로 그 금구요한입니다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교님이 감당하시기에 이 대한민국의 현실은 너무나 긴박하고 어지럽습니다. 사퇴를 권하는 본인의 깊은 뜻을 깊게 헤아려주시기를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7), 인천부평2동 천주교회 사태의 장본인 이윤하신부는 지금이라도 즉각 성직을 박탈해야합니다. 수많은 신부님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조치는 한시바삐 취해져야합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님께서도 명백히 잘못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남는 문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본인은 이윤하신부 개인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3천,4천의 선배후배동료 신부님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사제직에 연연해야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 말씀 그대로처럼 "신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직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떠나십시오. "교회해체론"이 정말 필요한 분은 당신 같은 분일지 모릅니다. 이제 그저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진짜 교회를 이제 살아가십시오. 다른 신부님들을 생각해서라도 조속히 사제직을 떠나십시오. 학원선생도 좋습니다. 무슨 선생 영어교실 교사도 좋습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교회안에서는 태연하게 벌어집니다. 다른 본당으로 발령이나 내지를 말던지.... 이러한 처사는 교회 당국이 평신도 전 신자를 병신바보들로 여기고 있다는 말밖에 달리 변명이 안됩니다. 교회당국의 분명한 조치를 요청합니다.      

8), 끊임없이 불미스런 의혹이 제기되는 몇몇 대형사회복지시설의 문제, 특히 음성꽃동네문제, 오웅진신부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하여 교회는 감사원 혹은 외부양심시민단체를 통해서라도 의혹을 씻어낸다는 차원에서라도 명확하게 그간의 의혹을 밝혀주어야 합니다. 또 이러한 대형화, 거대화하는 복지시설에 대하여 교회는 이제라도 사회복지와 신앙차원의 접근을 분명히 구분해 주어야합니다. 대형화 거대화를 막아야합니다. 이것은 신앙차원의 실천이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람들로부터 격리수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동기가 어떻고, 이유가 어떠하든, 현실이 어떠하든 그들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입니다. 지구상 어디에도 꽃동네와 같은 이상한 수용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해체시켜야 합니다. 교구별로 본당별로라도 책임을 나누든지 해야합니다. 사람은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떠하든 정신박약아든 알콜중독자든 언제 어디에 존재하든 사람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권리는 있기 때문입니다. 꽃동네 정말 출발은 아름다웠습니다. 바로, 20억 100억 30억 200억 억억하던 그 대형화 거대화 바람이 지금의 꽃동네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는 꼴의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나 금구요한은 오웅진신부 개인에게 이제라도 특히 인도의 마더데레사를 깊게 공부해서 무엇이 당신과 처음부터 달랐는가를, 어디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당신과 차이가 있었는가를 철저히 공부해서 연구하고 고민해서 전국민이 들썩들썩했던 꽃동네가 한국카톨릭교회의 오명적(汚名的) 상징이 되지 않도록 노심초사해줄 것을 간곡히 간청하는 바입니다. 또 오신부 본인을 둘러싼 숱한 의혹에 대하여 사제적 양심으로 이제라도 모든 이가 수긍할 수 있는 공개감사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며 위법적 범죄 사실에 따른 법의 심판이 있을 때는 그 결과에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이것이 그간 의혹과 불신의 근원지로서 꽃동네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리는 이유라는 것을 직시하고, 교회를 위하여 또 꽃동네를 위하여 또 대한민국 전체를 위하여 다짐하고 있어야 할 기본자세라는 것도 분명히 밝혀두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나 금구요한이 오신부였다면 꽃동네회장직을 떠나면서 본인은 일반 본당신부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바람직한 방법이 있었는데....안타까울 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떠나야할 때 그 떠나야할 때를 너무나 모르고, 버려야할 때 그 버려야할 때를 너무나 모르고, 너무나 악착같이 붙들고 살아가는 삶에 너무나 쉽게 습관되어 살아가는 듯합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9), 취미 삼아 골프니 승마니(소위 이 땅의 유한상류층의 고급취미를 흉내내신다는)를 하신다는 신부님들! 평신도들이라도 일어서서 강제퇴출 시켜야합니다. 성사전례거부 투쟁이라도 벌려야합니다. 사제파면 소송제도라도 신설하여 징계해야합니다. 보통 일반시민 사회에서도 위화감을 조성한다느니하여 도덕적으로 도마에 오르는 일을 가장 도덕적으로 선봉에서 모범이어야 할 사제, 주교라는, 사목자라는 이들이 이러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경악할 일입니다. 기꺼이 "가장 가난한자들 중에서도 가난한자로 사셨던" 우리의 주님을 정면으로 능멸하는 것입니다. 교구별로라도 이러한 사목자들에 대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사제됨이 무엇인지조차 기본적으로 망각한 이러한 이들에게 어떠한 영성을 기대할 수 있으며, 어떠한 말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떠한 모범의 삶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까? 도대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목자들에게 예수는 과연 무엇인지 나는 당당하게 묻고 싶습니다.    

10), 교회 안밖에서 허드렛일을 하시면서 살아가는 분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요구합니다. 교구 관할 공동묘지에서 그 무더운 여름날, 혼자서 왼종일 엄청난 풀을 깎고 일당이라고 받은 돈이 2만원도 아닌 버스차비 막걸리한잔 값 5천원으로 처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분을 공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고 되돌아오는 길,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죄악입니다! 이러한 분들에 대한 교회조치가 사실이라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정해진 월급도 없고.... 어떠한 혜택도 없고 양반상놈시절 종살이하던 돌쇠마냥 대우하고 있다는 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믿을 수가 없어서 몇번이고 되확인을 하고 저는 경악, 경악했습니다. 죄악입니다.  

교회 안밖의 이 작은 사람들에 대하여 교회는 뼈아프게 눈떠야합니다. 이분들이 바로 우리 곁에서 묵묵히 우리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교회는 뼈아프게 깨우쳐야합니다.  

11), 교회 안 밖 교구청 직간접, 교회관련 신문방송사 단체연구소 기타 등등에 근무하시는 분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요청합니다. 최소한 일반직장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대우가 주어져야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이분들이 당신들의 노동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당신들의 노동에 기쁘게, 힘있게 종사할 수 있도록 특별한 조치를 요청합니다. 최전선의 선교부대는 바로 이러한 분들입니다.  

12), 교회 안에 수녀님들의 위상문제를 짚고 싶습니다. 같은 수도자 사목자이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하나로(?)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듣게됩니다. 수녀님은 여성사제와 같으신 분들입니다. 오죽하면 수녀회 장상회의에서 각 본당에 파견되어있는 수녀님들을 철수시키는 문제가 논의되었겠습니까? 이 문제에 관한 한 저는 일반신자들의 관료적, 수직적 사제중심적 의식구조를 비난하고 싶습니다. 보통 보십시오. 수녀님들은 가난한 서민들처럼 버스 타고 다니십니다. 지하철 타고 다니십니다. 무거운 가방을 이리저리 들고, 성당에 짓궂은 일은 도맡아 책임지시고 해내십니다. 정말 따뜻한 존경과 감사를 받아야 마땅하신 분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가톨릭교회 안에 하루바삐 여성사제가 탄생하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당국자들보다도 일반신자들의 반성을 촉구합니다.

13), 하느님께서 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또는 그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로마교황청에 직접 직통 전화하신 비밀내용이 아닌 한, 모든 것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개하십시오. 투명하게 하십시오. 이만큼 제도교회는 참된 교회에 가까워지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동등한 자녀인 까닭입니다.










밑글 : 5416  종교권력과 한국천주교회(한신대강인철교수)  
  

      

* 최용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5-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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