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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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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과 새 생명(롬6:6-15)
전 장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한 사람 첫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을 죄
인 되게 하였고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으나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였다는 대조를 보이며 한 분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한 은혜를 논증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본 장 초두에 전 장 끝 부분의 말씀을 이어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더 체험하려고 죄를 짓겠다는 엉뚱한 발상을 금지하려고 필두에
강조하면서 죄에서 해방된 존재인 성도가 죄에 이길 것, 즉 성화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6절에 ‘옛사람’이라는 용어와 그리스도 밖에 있던 인간과 그리스
도 안에서 4절의‘새 생명’을중심으로 얻은 존재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
해하고 영성을 얻고자 합니다.
1.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
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라
고 하는데, 본문 6절에 옛사람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옛사람의 존재가 어
떤 존재인가? 죄된 존재, 죄인이었습니다.
옛사람은 죄인이라는 형벌 받을 존재입니다. 그 인격의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 앞에 멸망 받을 존재를 말합니다. 본문에 죄에 대하여,라고 할 때
죄는 하말티아(헬,aJmartiva)로 과녁에 빗맞다,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났다
는 뜻으로 하나님의 법에 저촉되어 형벌 받게 된 상태입니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
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 우리가 주의 속죄의 죽으심을 믿을 때 그 죽으심
의 순간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을 죽여버린 결과를 말해주고 있습니다.즉
우리가 인격적으로 수양을 쌓아 그 결과 구원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돌아가실 때 우리의 죄, 우리가 받을 심판의 죄가
함께 죽었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예수께서 죽으실 때 하나님의 약속대
로 우리의 죄를 함께 매장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라는 밥티죠(헬,baptivzw)는 잠근다,젖게 한다, 씻는다는 뜻으로 풀
이됩니다. 예수와 함께 죄가 땅 속으로 묻혔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의 죽
으심으로 죄를 죽여서 이제 죄인이라는 누명에서 해방되게 하신 것을 뜻
합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옛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형벌의 사람이요 인생관이 없는
무지의 사람이었습니다.사후의 세계가 없었던 자요 하나님을 모르던 자였
습니다. 구원이 없고 멸망을 기다리는 존재였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법적으로 양자의 신
분을 얻게 된 자입니다. 옛 사람,즉 불신자는 아직 버림의 상태에 있으나
비슷한 인격이라도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칭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은 그 정체성이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
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
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
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
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
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2. 새 생명의 존재가 됨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첫 아담은 단순히 살아
있는 영이라고 했지만 마지막 아담, 즉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던 우리를 다
시 살리시는 영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 살려주심은 영적으로 중생케 하시는 은혜요 부활 영생의 생명을 주시
게 된 영이시라는 말입니다. 옛 생명은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 없는
생명 자체일 뿐입니다. 죄의 생명이요 심판 받을 생명일 뿐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을 얻었으니 이것은 영원한 가치의 생명이 된 것입
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
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새로운 새 생명의 존재가 됨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영적 생명의 선물입니다.생명이라는 쪼에(헬, zwhv)라는 단어는 그
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탄생된 영적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성도 자신이 속 사람으로 스스로 깨닫는 존재이기도 합
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
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
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고 한 말에서 우리가 우리들
의 정체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함을
지적하고 있는 줄 압니다.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
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
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골 2:12-13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
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할 때,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새 생명의 존
재는 결국 하나님의 형벌에서 제외되어 자유로운 영입니다. 예수 믿는다면
서 죄에 대해 불안해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회개가 덜 되었든지 아니면 믿
음으로 죄 사함 받은 것을 깨닫지도 체험도 못한 이유입니다.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
하리라』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닙니다. 인격적 수양의 종교도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약속, 새 언약을 통하여 구원의 체험을 가지는 실제적인 역
동성 있는 종교입니다.
성령의 중생 역사와 속죄의 체험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종교입니다. 이
미 주신 속죄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와 구원의 자녀로 은총을 맛
볼 수 있는 종교입니다.
엡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
에 앉히시니』라고 했으며,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으며,
요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
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
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성도가 된 속 사람은 이미 영생의 생명으로 다시
소생케 된 존재입니다.그리스도 밖의 존재는 살았으나 죽은 존재라고 했습
니다. 대신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소유한 존재로서 새 생명 가
운데 거하는 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영생으로 가는 기능을 수반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것은 세상
을 살아가는 데도 능력을 발휘하는 생명력으로 성도와 교회의 활동에 역력
히 나타나는 힘입니다.
주께서는 진리 자체이신 당신을(요14:6) 믿고 의지하고 진리 안에서 체험
적으로 살 때, 진정한 자유의 영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인생의
자유로움은 영적입니다. 문화를 통하여 자유할 수 없고 정치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는 없으나 진리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생명은 부활의 영으로서 마침내 부활 영생을 기다리는 새로운 존재가
곧 성도의 정체입니다.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성도의 새 생명의 의지는 결국 성령으로 주어진 새 생명의 영으로 인하여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결국 부활하게 될 때,우리의 옛
사람, 즉 심판 받아 멸망 받을 존재가 아닌 영생으로 가게 되는 부활의 존
재가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부활을 입게 되겠지만 그것은 가치 면에서
저주의 부활입니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
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고후 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라고 성도의 소망을 피력해
주고 있습니다.
3. 의(義)의 종
이제 새로운 존재인 성도의 정체성은 삶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옛사람
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의와 죄를 구분이 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하나님
의 의로움을 알고 선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복음을 위하여 살고 복음의 성
질대로 살기를 바라는 의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죄의 종과 순종의 종을 대비하면서 우리의 옛사람의 정체성과 새로운 존
재의 영으로서 삶의 지향하는 목표와 의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 장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
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베드로도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갈 때의 성도는 어떠한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옛사람의 습관으로 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의의 거하는 바 새 나라를
바라보는 경건함으로 살 것을 베드로도 권면하고 있습니다.
벧후 3:11-13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
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
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성화의 필요성 성도의 정체성으로 봐서 얼마나 귀중한가
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완전해지는 인격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베드로도 성령 충만하고도 또 실수와 연약한 부분을 말했습니다.성
령 충만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연약한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래 죄인이라는 존재의 가치에서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의 존재로 새로운 속 사람을 창조해 주셨습
니다.
이 존재의 가치가 형벌의 죄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
다. 성도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그러나 선교적인 책임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도의 본질적인 거룩함의 존재 가치를 지속하고
성화 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두는 인생관이 확고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무슨 일을 많이 하는 것에 주력하는 것보다 그래서
대충 불의한 방법을 쓸 수 있다는 정당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거룩을 보존한다는 것에 유의할 것을 아시아 7교회를 순방하시면서 주님이
견책하시고 바라시는 모습을 계시록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죄인 됨의 죽음, 예수 부활 나의 삶의 거룩한 중심으로 대
체하여 권면하는 바울의 소망은 죄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말세의 성도로서
또한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과에 만족하고 과정을 무시하거나 교회의 거룩성 회복은
관심이 없고 업적이나 규모에 관심을 두는 이 시대는 결코 성경적인 교회
관에 부합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성도의 생명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안고 거룩한 존재의 삶의 방식을 성경으로 잘 살기 위해 노력해
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느냐를 묻기 전에 죄와 싸우고 의의
병기로 얼마나 잘 살았더냐를 물으실 것으로 봅니다. 의로움을 좇아 잘 살
아서 홍수의 시대에 노아의 의로움과 시대마다 빛났던 어둠 속의 믿음의
선진들처럼 새 생명의 삶을 잘 살아가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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