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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글방25-이상호 목사(세광교회)
29세에도 부르면 가야한다
2-3주 전에 딸 삼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선생님(침신대 강사)이 위암 선고받은 지 불과 3주만에 세상을 떠났다. 방년 29세, 꽃다운 나이다. 일찍이 독일에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들어왔으니 잘 나가는 젊은이였다. 졸업반이라고 삼희에게는 각별히 신경을 써 주었으며 병원에 있었으면서도 감쪽같이 나와서 레슨까지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전혀 몰랐었다는 삼희는 마치 부모라도 잃은 양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이 주간에는 조카 전도사(큰 누님의 큰 딸)가 29세의 생애를 마쳤다. 오래 질병으로 고생했는데 위독하다고 해서 병 문안을 가면서 길을 묻느라 전화를 했더니 조금 전에 운명을 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병 문안은 조문으로 바뀌었다. 호스피스 샘물병원이라 조용하고 죽음이 아름답게 일반실에 누워있다.
두 사람은 모두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특히 김전도사는 힘들게 개척하여 성장시켜 빌딩교회를 건축까지 하였으나 마침 IMF 경제위기를 만나 교회를 고스란히 넘겨야 하는 목사의 딸로 일찍이 가정의 어려움을 체휼하며 전도사로, 피아노선생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선생님으로 열심히 살았다. 아마도 환경이 그로 하여금 병든 몸을 혹사시켜 일찍 부르심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힘든 장례일정이다. 예식을 주례할 담임목사는 여름휴가로 멀리 삼척에서 올라오는 중이며, 생전에 안구를 기증하여 서울대병원에서 안구척출시술을 온다는 연락이 되었다. 하지만 시술팀이 병원에서도 수술을 담당하느라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왔지만 5시간을 넘기는 중에 마냥 기다려야 만 했다. 또한 129 앰블런스 역시 먼길에 오느라 늦어져서 수원 장례예식장에까지 가는데는 자정을 넘겼다. 살아 온 길도 험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도 험했다.
그러나 그는 두 사람에게 빛을 주고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으며, 마침 기승을 부리는 불볕더위 만큼이나 뜨거운 삶을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녀 장례식 치고는 많은 조문객이 다녀갔다. 굵고 짧게 열심히 살아낸 덕에 장례식장이 차고 넘쳤다. 아름다운 숲속에 화려하게 지어진 장례식장엔 화장구가 9구나 있고, 산골처리장까지 있어서 모든게 깨끗하게 마무리 되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나이에 관계없다. 언제 부르시던 아멘 하고 갈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29세에도 부르면 가야한다
2-3주 전에 딸 삼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선생님(침신대 강사)이 위암 선고받은 지 불과 3주만에 세상을 떠났다. 방년 29세, 꽃다운 나이다. 일찍이 독일에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들어왔으니 잘 나가는 젊은이였다. 졸업반이라고 삼희에게는 각별히 신경을 써 주었으며 병원에 있었으면서도 감쪽같이 나와서 레슨까지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전혀 몰랐었다는 삼희는 마치 부모라도 잃은 양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이 주간에는 조카 전도사(큰 누님의 큰 딸)가 29세의 생애를 마쳤다. 오래 질병으로 고생했는데 위독하다고 해서 병 문안을 가면서 길을 묻느라 전화를 했더니 조금 전에 운명을 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병 문안은 조문으로 바뀌었다. 호스피스 샘물병원이라 조용하고 죽음이 아름답게 일반실에 누워있다.
두 사람은 모두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특히 김전도사는 힘들게 개척하여 성장시켜 빌딩교회를 건축까지 하였으나 마침 IMF 경제위기를 만나 교회를 고스란히 넘겨야 하는 목사의 딸로 일찍이 가정의 어려움을 체휼하며 전도사로, 피아노선생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선생님으로 열심히 살았다. 아마도 환경이 그로 하여금 병든 몸을 혹사시켜 일찍 부르심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힘든 장례일정이다. 예식을 주례할 담임목사는 여름휴가로 멀리 삼척에서 올라오는 중이며, 생전에 안구를 기증하여 서울대병원에서 안구척출시술을 온다는 연락이 되었다. 하지만 시술팀이 병원에서도 수술을 담당하느라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왔지만 5시간을 넘기는 중에 마냥 기다려야 만 했다. 또한 129 앰블런스 역시 먼길에 오느라 늦어져서 수원 장례예식장에까지 가는데는 자정을 넘겼다. 살아 온 길도 험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도 험했다.
그러나 그는 두 사람에게 빛을 주고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으며, 마침 기승을 부리는 불볕더위 만큼이나 뜨거운 삶을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녀 장례식 치고는 많은 조문객이 다녀갔다. 굵고 짧게 열심히 살아낸 덕에 장례식장이 차고 넘쳤다. 아름다운 숲속에 화려하게 지어진 장례식장엔 화장구가 9구나 있고, 산골처리장까지 있어서 모든게 깨끗하게 마무리 되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나이에 관계없다. 언제 부르시던 아멘 하고 갈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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