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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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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다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위 사도신경(使徒信經)은 필자도 청년시절부터 수 십년 동안 수 없이 암송 기도한 내용이다.
천주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신앙을 가진자라면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은자가 거의 없다. 이는 마치 주기도문(主祈 文)과 같이 예배시간 마다 암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 사도신경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으며 언제부터 암송하여 왔는지 사도신경의 내용도 바로 알지 못하고 신앙하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성경보다 더 위대한 신성(神性)을 가지고 약1,600년 동안 사랑을 받아 왔다고 볼수 있다. 과거나 현재의 신앙인들이 거의 무방비한 상태에서 이유없는 맹종(盲從)으로 무조건 암송하여 신앙 고백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사도신경의 정체를 밝혀서 세상에 공개 하고자 한다.
사도신경에 관하여 특별히 잘 아는 자도 없고 알 길도 없으므로 사도신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신주(神主)모시듯 신앙 고백 하는 자들의 신성한 기도문 이라고 생각하고 암송하여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것이다.
이는 과거의 필자 뿐만 아니라 천주교 기독교인 약 20억의 신도들이 지금도 사도신경 역사와 내용에 대하여 무식한 처지에서 주기도문과 같이 신성한 기도문으로 암송하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도 사도신경에 대한 역사적 유래등 그 자체에 대하여 특별히 아는 바가 없었으나 1980년 성서 교재 간행사에서 발행한 성서 대 백과 사전 제 5권 360~361쪽에 서술된 사도신경에 대한 내용을 읽고서 분통(憤痛)이 터져 의분(義憤)이 일어난 안타까움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단순하게 사도들이 함께 의논 하여 만든 신앙고백을 고치거나 변조됨 없이 그대로 우리가 전수하여 기도문으로 암송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사도신경이 수차려 변역(變易)되고 변조(變造)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심지어는 사도신경 안에 그(예수)는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거룩한 기독 교회 거룩한 카톨릭 교회 란 내용을 자리 잡으려고 투쟁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하여 경악(驚愕)을 금치 못할 뿐만 아니라
사도신경은 기도문으로서의 호리의 값어치도 없기에 성서 대 백과 사전 제 5권 360쪽과 361쪽에 기록된 내용의 문장을 그대로를 여덟문단으로 분장(分章)하여 만 천하에 밝히고 더불어 현재 암송되고 있는 사도신경의 내용이 과연 성경과 부합 하는 지를 성경을 통하여 밝히고자 한다.
1) 사도신경은 마태복음 19장 28절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백과 사전 제5권 360쪽의 내용이다.
사도신경(使徒信經) The apostles, creed 서방교회(西方敎會)에서만 사용되어 온 신앙에 관한 선언(宣言)이다. 이것은 증거와 설명을 곁들이지 않고 일련의 간결하고 적극적인 믿음의 확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고대 신조들과 마찬가지로 사도신경은 세례의식에서 관례적으로 행해져 온 삼위일체론의 순서에 따라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거의 보편화되어 있는 교리문답의 한 방식이다(참조::칼빈의 기독교 강요institutes).
사도신경은 그 구성으로보아 마19:28을 바탕으로 한듯하며, 성부로서 하나님과 성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3대 요소로 이루어진다.
이 신경의 가장 주요한 부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 이며, 성령에 관한 간단한 선언을 한 뒤에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에 관한 일련의 구절들이 뒤따른다. 예수의 생애와 그 가르침에 역점을 두는 오늘날의 흐름에 비추어볼 때, 그 사도 중심의 고대 교회가 지녔던 근본적인 정당성을 반영하는 이 고대의 보편적 신조에는 이러한 점이 조금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매우 주목할 만하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은때에 나를 쫒는 너희도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리라 (마19:28)
(주) 사도신경(使道信經) 마19:28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자들 20억 신도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마19:28을 생각하면서 사도 신경을 암송한 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재의 사도신경과 마19:28을 비고하여 보라! 과연 그러한지 확인하도록하자! 기록된 말씀(마19:28)에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는 다고 하였다.
새상이 새롭게 된다는 뜻이 무엇인가?
없는 세상이 특출하게 생긴다는 뜻이 아니요 있는 세상이 새롭게(새삼스럽게) 된다 즉 더 좋은 세상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지구가 없어진다거나 이 세상이 없어 진다는 내용이 아니요 지금 있는 이 세상이 새롭게 될 때에 인자 곧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는 다고 하였다.
사도신경을 암송 기도 하면서 세상이 새롭게 될 때에 인자(예수)가 영광의 보좌에 앉는 다고 생각하고 사도신경을 암송기도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사실이 이러한데 사도신경이 마19:28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할수 있는가?
"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사도신경의 내용이 과연 성경적으로 기록된 것인지 확인하도록하자.
히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지금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며 지금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지는 않으셨다. 왜냐하면 세상이 새롭게 되어야만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을수 있기 때문이다 (마19:28)
영광의 보좌는 어디인가?
영광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만이 영광의 보좌인 것이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인가?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하나님의 보좌)에 앉아야 우리들이 새롭게 된 새 세상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 아닌가?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실때에는 이기는 자가(요일5:5) 예수의 보좌에 앉게 되고 예수님이 아버지의 보좌(하나님의 보좌)곧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다고 하였다.
히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때까지 기다리시나니
~ 기록된 말씀에서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은 원수가 발등상 될 때까지 보좌 우편에서 기다리신다고 하였다. 이를 다시 말하면 에수님이 원수를 발등상시키는 것이 아니요 발등상이 되기를 기다리시는 자이심으로 원수를 발등상 시키는 자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발등상( 床)이란 무엇인가?
책을 올려 놓으면 책상이라고 하고 밥을 올려 놓는 상을 밥상이라고 하며 발등을 올려 놓는 발판을 발등상(등 床) 이라고 한다. 원수 발등상( 床)이란 원수(사단, 뱀, 마귀, 용)가 예수의 발아래 굴복되는 것을 말하며 원수가 예수의 발아래 굴복될때까지 예수는 보좌 우편에서 기다리신다고 하였으므로 에수님이 직접 원수를 발등상 시키는 심판의 사명을 직접 하지 아니하신다.
옛날에는 권세자가 전쟁의 포로나 노예를 잡아 와서 엎드리게 하고 승리자나 포로나 노예들을 밟고서 지나가는 것을 발등상 시킨 승리자로서의 의례로 행한 바 있다.
요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계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 기록된 말씀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께 심판 권세를 받았으나 예수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예수님이 심판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였다.
이는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또한 예수님이 이기는 자(요일5:5 예수믿는자)에게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리니 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철장 권세를 받은 이기는자는 심판권세를 예수로부터 받았으므로 예수가 아닌 것을 알수 있다.
나도(예수)내 아버지(하나님)께받은 것이 이러하다고 하였으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심판 철장 권세를 이기는 자에게 준다는 내용이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 권세의 철장을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였으므로 이기는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발등상을 시키면 예수님은 원수가 예수의 발아래 발등상이 되게 하시기까지 보좌 우편에서 기다리신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데 사도신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이는 예수님이 직접 심판하러 오신다는 사도신경의 내용은 성경의 기록과는 상반되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이단적인 내용이라고 하겠다
2) 사도신경은 사도가 한 사람씩 각각 다른 조항을 써서 만든 것이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 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백과 사전 제 5권 360쪽의 내용이다.
이 사도신경의 긍정적 확신은 신약성서의 증거에 의해서도 그 정당성을 밝힐수 있다 (히드락과 불트만, 그리고 다른 일부 학자들은 견해를 달리하여 사도신경이 그 세부적 특징이나 교리관에 있어서 신약의 증거를 앞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그러나 신경의 형식 자체는 물론 사도들에게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이명칭이 처음 발간된 시점은 A,D,390년 경인데, 그 뒤 오래지 않아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공통 작품이라는 전승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전승은 매우 기묘한 것으로(70인역이 이루어진 전승과 비유할 수 있음) 열두 사도가 한 사람씩 각각 다른 조항을 써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성신의 감동을 받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니 라고 시작 했다고 전한다. 뒤이어 안드레 (혹은 요한 이었을지도 모름)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라고 천가 했고 형인 야고보가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라고 계속 했다고 하며, 이와같이 하여 전체의 신경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승의 형시과 사도들이 사도신경을 썼다는 것은 다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주) 기록된 말씀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능하사 천지를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믿사오며" 라고 하였고 (안드레, 요한,?모름)"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외아들 되신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을 신앙 고백하는 내용이다. 과연 예수님은 외아들로 재림할 것인가?
외 아들이란 아들 형제도 없으며 딸의 형제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다시(재림) 오실때에 외아들로 오시지 아니 하고 맏아들로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맏아들의 되신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외아들 되신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에게 청천 벽력같은 소리가 될지 모르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그리스도는 맏아들로서 세상에 다시 오실(재림) 것이다.
히1: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 할지어다
~ 기록된 말씀과 같이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재림) 하실 때에 모든 천사가 맏아들에게 경배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맏아들이란 무슨 뜻인가?
맏아들이란 많은 아들 중에서 맏이가 된 아들 즉 제일먼저 탄생한 아들을 말한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악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기록된 말씀은 예수님을 많은 형제(아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신다고 하였고 또 미리 정(定)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심을 받든 자들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와같이 영화롭게 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므로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어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하였고(요17:5,24) 창세 전 하나님이 땅을 창조 하실 때 즉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새벽 별같이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쁘게 소리하였다고 한 것이다.
욥38:4~7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 하였었느니라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 한다고 하였는데
새벽별은 누구를 상징항한 것인가?
계22:16 에 예수님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였으므로 천지를 창조할때에 예수님과 같은 새벽 별들이 많이 있었으니 이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 사실이 이러한데 예수님을 외아들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골1:13~16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은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기록된 말씀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만물이 그로 인하여 창조 되었다고 하였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지창조에 하나님과함께 하신 것을 알수 있다.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기록된 말씀에서 사람을 창조할 수 있는 "우리"라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였으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기록된 말씀은 새벽 별 되신 예수와 같은 인간의 창조권(權)을 가진 "우리"라는 무리의 하나님 아들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성경의 기록이 이러한데 예수님을 외아들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신. 구약 성경 어느곳에도 예수님이 외아들이란 사실이 단 한 귀절도 없다.
롬8:16~17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함께)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고 하였다. 이는 진리의 성령을 받은 자(요16:13)는 주(예수)와 합한 자가 되므로 주와 합한 자는 주와 한 영(靈)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고전6:17 주와 합한자는 한 영이니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갈4:6~7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마지막 때에는 많은 아들이 탄생되므로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시어 「외아들이 이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요」 맏아들로서 다시 이땅 위에 재림 하시는 것이다. 맏아들이 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예수와 함께 후사(後嗣)를 받게 되고(롬8:17) 맏아들이 되신 예수와 함께 유업(遺業)을 받게 된다고(갈4:7) 기록된 성경이 살아 역사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외아들로 오신다는 사도신경을 기도문으로 암송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일이다.
신약 성경 어느곳에도 예수님이 외 아들로 재림하신다는 성경 구절이 없다. 다만 외아들이란 성구가 한 곳이 있는데 이는 예수에 대한 내용이 전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외아들이 귀신 들려 고생하는 것을 예수님이 고쳐 주신 일일 뿐이다(눅9:37~43) 예수님이 맏 아들로 오실때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와 함께 후사가 되고 유업을 받는 귀한 자들로 축복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 사도신경은 세계 기독교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가 신학적인 기본 좌표로 설정한 것이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 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 백과사전 제 5권 360쪽의 내용이다.
반면 상당수의 다른 신학자들은 사도신경의 초기적 요소를 신약성서의 기록안에 찾고 있다. 이러한 교의(敎義)는 마19:28로 명백한 설명이 가능하며, 이로부터 개종자가 새로운 믿음을 확고히 파악하기 위해 어떤 특정한 요소들이 꼭 필요했었다는 논리가 확실히 납득(納得)할만하다.
세계 교회 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가 그들의 신학적인 기본 좌표로서 설정하여 선택한 용어를 검토해 보더라도 일찍부터 신조를 확인 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내용은 곧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수 없느니라"(고전12:3)라는 것이다. 바울은 새로운 개종자들이 몸 바치게 되었던 '가르침의 모범'을밝혀 주고 있다.(롬6:17)
디모데는 자신이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하였음을 깨우치게 되었고(딤전6:12) 이것은 곧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시련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일찍부터 신앙고백이 존재했고 또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이 행해 졌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체 내용에 관해서는 암시만 주어질 뿐이다(참조:딤후2:8, 4:1)
(주) 세계 기독교 협의회가 신학적인 기본 좌표를 설정하였다고 하였는데 언제 사도신경을 신학적인 기본 좌표로 설정하였는지 확실치 아니하니 AD390년경 전승되었다는 것을 보아서 AD390년 이후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사도신경의 내용이 마19:28의 내용을 명백한 설명으로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히10:12절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기인된 것이라고 하겠다.
4) 사도신경은 처음에는 "믿음의 규칙"이란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 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백과 사전 제 5권 360쪽의 내용이다.
초대 교회의 저자들과 기독교 변증론자(辨證論者)들은 마태복음의 세례 형식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첨가하거나 변화시켰다. 2세기 중반에 이르러 세례의식에서 행하는 증언은 이레네우스, 터툴리아누스, 노바티아누스, 오리게네스 등이 일정한 표현의 형식으로 자유롭게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던 형식이 시간이 감에 따라 보다 더 중용되었으며, 신학적인 논쟁과 이단의 세력이커져감에 따라서 새로운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점차 공식적인 신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그 뒤 이것은 "믿음의 규칙이란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성서에 대한 이단적 추론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사도신경은 믿음이 성서에 그 바탕을 둠에 따라서 공통적 신앙에 대한 증거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주) 사도들의 신앙고백의 기도문을 성경에 근거도 없는 믿음의 규칙이란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초기에는 「사도신경」이란 이름이 아니요 「믿음의 규칙」이란 이름으로 알려졌으므로 그 누구도 신앙고백의 기도문으로 암송하지 아니하였다는 증거가 아닌가.
현재의사도신경이 옛날에 「믿음의 규칙」이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신앙인들이 안다면 기절 초풍할 노릇이아닌가. 사실이 이러한데 사도신경을 「공통 신앙에 대한 증거로서 기능을 하게 하였다」고 하였으니 더더욱 말이 안되는 것이다. 정경(正經)인 성경을 두고서 믿음의 규칙이 어찌공통신앙의 기능이 되겠는가 뿐만 아니라 성서를 근거한 이단적 추론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더더욱 말이 안된다.
사도신경의 비성서적인 사실이 이렇게 밝혀 졌는데 이단적 추론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겠는가?
이는 잘못된 저울로 물건의 무게를 확인 하려는 것과 같고 잘못된 거짓 잣대로 측량하려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믿음의 규칙」이었던 사도신경을 결단코 성경보다 더 신성화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도신경이 성경보다 더 신성화되고 굳어진 화석처럼 신앙고백으로 유전화 된 것은 성경을 대적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것이다(마22:29)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사도신경)과 같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며망에 이르리라고 하였는데 사도신경이야 말로 다른 성경(사도신경) 화 되었으며 성경보다 더 중시한 잘못된 풍조가 유전 되어 왔다는 것은 바로 교정 되어야 할 것이다.
막7:6~9 가라사대 이사야가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 기록된 말씀과 같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고 마음은 멀리 떠난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킨다고 하였다.
사도신경이야말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버린다고 하였다. 사도신경은 성경도 아니요 사도들의 신앙고백도 아니요 사람의 유전으로서 수없이 변조되고 자기들의 필요에 의하여 난도질 당하여 온 짜집기 작품의 비성경적인 기도문이다.
5) 오늘날 사도신경의 형식은 가장 오래된 당초의 모습과는 다르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 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 백과 사전 제 5권 360~361쪽의 내용이다.
오늘날 알려져 있는 사도신경의 형식은 가장 오래된 당초의 모습과는 다르다. 현존 사도신경보다 짧은 것도 있었고, 긴 곳도 있었다.
짧은 것은 고(古)로마 형식으로 알려져있는데 그 연대는 2세기 중엽(A.D.140년경)까지 소급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긴 것은 이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잡고 있는데 그 역사는 한층 더 모호하고 또한 휠씬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역적인 변화에 따라 그 내용상의 변화도 컷으리라 생각된다.
현재의 공식적인 사도 신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짧은 것, 즉 성장단계에 있는 고 로마 형식이 보다 흥미를 끌 것으로 믿어진다.
(주)오늘날 알려져 있는 사도신경이 당초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안다면 마치 신앙을 사기 당한 것 같을 것이다.
현재 사도신경이 당초의 모습과 다르다면 본래의 모습에서 변질되었다는 증거다.
참 사람이 변질되면 악인이 되는 것이요 음식이 변질되면 먹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이 변질된 사도신경은 신앙 고백의 기도문으로서는 호리의 값어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존하는 사도신경보다짧은 것도 있고 긴것도 있었다고 하였으니 본래의 사도 신경이 성경적이라고 하였다고 할지라도 변질된 사도신경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은 변질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신앙을 병들게 하는 쑥의 뿌리(신29:18~19) 와 같이 신앙의 생명의 위협을 가져올수 있다는 것을 기독교와 천주교의 지도자들은 사실을 인정하고 깨달아 중대한 초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다.
6) 사도신경의 마지막 구절은 AD 390년경 루피누스에 의하여 보존된 라틴 형식에는 생략되어 있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 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백과 사전제 5권 361쪽의 내용이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 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 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_
이 마지막 구절은 A.D.390년경 루피누스(Rufinus)에 의홰서 보존된 라틴 형식에는 생략되어 있다. 위에서 예를 든 형식은 A.D.341년 안키라의 마르첼루스(Marcellus of Ancyra) 의 헬라어판에서 인용하여 온 것이다.
(주)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AD390 년경에 만들어진 사돗긴경은 최초의 것인데 현재의 사도 신경의 마지막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면 현재의 사도신경은 조작된 것이요 조작된 사도 신경은 더더욱 신앙고백으로 값어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부분이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 나이다 이부분이 AD 390년경의 사도신경에 빠져 있었다면 신앙고백으로서의 무슨 값어치가 있는가
몸이 다시 산다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을 의미한 것이요 영원히 산다는 것은 믿음의 근본인데(요3:16) 이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을 누구인가가 삽입하여 오늘날 사도신경을 신앙 고백으로 조작하여 암송하게 하였다는 것은 사도신경이 조작되고 변질된 것임을 알수 있다. 조작되고 변질된 잘못된 신앙고백에서 지금 당장 벗어 나야 할 것이다.
7)사도신경은 여러 세기동안 다양한 해석이 뒤따라 등장했으며 추가 되기도 하고 손질 받기도 하였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 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 백과 사전 제 5권 361쪽의 내용이다.
사도신경의 역사를 살펴 볼때고 로마 형식은 2세기 중엽에 이르러 로마에서 사용되었던 것이 틀림 없고 그 이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헬라어 판과 라틴어판이 나오며, 헬라어판이 앞섯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루피누스는 A.D. 390년경에 라틴어 형식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그의 교회 (아킬레이아 Aquileia ) 의 사도신경 양식과 비교했던 사실로 미루어 이것은 그보다 훨씬 앞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키라의 마르첼루스는 4세기에 헬라어판을 보전하고 있었는데, 이 사도신경을 약간 축소한 형태를 영국에서 추적해 올라가면 노르만 정복 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다.
공식적인 사도신경은 여러 세기 동안 다양한 해석이 뒤따라 등장했으며, 추가되기도 하고 손질 받기도 하여 그 역사가 첫째 조항에 표시되었다. 즉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이란 구절이 A.D 650년경 헬라어 판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체로 보아 현존하는 사도신경이 확립되기는 A,D 460년경 리이쯔의 파우스투스(Faustus of Reiz) 가 처음이었고, 7세기 이르러 아일랜드로 옮아 갔으며, A,D.850년 경에는 영국 (샤를마뉴【Charlemagne】 의 궁정을 통해서 전파되지 않았나 생각됨) 으로 들어갓고, 10세기에 이르러 그보다 짧은 고 로마형을 거의 대체해 버렸던 것같다. 8세기의 어느 필자가 처음으로 오늘날의 형태 그리고 정확히 사도신경을 인용했으나, 이 형태가 굳어진 것은 뒷날의 일이었다.
(주) 여러 세기동안 사도신경의 다양한 해석이 뒤따르며 『추가되기도 하고 손질 받기도 하였다면』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 대한 충격이 아닐수 없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은 처음 사도들이 모여서 신앙고백을 한 공통 기도문이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 기독교인 천주교인들이 성경보다도 더 신성하고 존엄한 입장에서 사도신경을 유전적으로 이어 왔으며 신앙고백으로 기도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도신경이 여러 세기동안 다양한 형식으로 해석되어 왔고 추가되기도하고 손질되어 왔다면 본래의 사도들의 신앙고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엄격히 말하면 사도들이 신앙고백한 기도문이 아니요 조작한 사도신경을 신도들에게 희롱한 것이요 지금 20억이나 되는 신도들의 신앙을 사기한 것이라고도 할수 있다.
8) 사도신경의 역사는 불투명한 전승(傳承)과 관습(慣習)의 길을 따라 전개 되었으며 심지어는 "그(예수)는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 는 구절 마저도 자리를 잡으려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투쟁을 계속하였다.
※ 아래 내용은 성서 교재 간행사 1980년판 성서 대 백과사전 제 5권 361쪽의 내용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사도신경의 역사는 그와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전승과 관습의 길을 따라 전개 되었다. 심지어 '그는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고, 하는 구절 마저 사도신경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으려고 현대에 이르러서 까지 투쟁을 계속했다.
'살(flesh)' 부활을 강조했던 구절을 대신하여 '몸(xbody)' 의 부활을 강조하는 변황등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정착 되었으며, '거룩한 기독교회(Holy Catholic Church) '라는 용어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러 서방 교회에서는 어디를 가나 세례시에 사도신경의 정형을 사용하고 일일 에배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관례가 보편화 되었다. 이 두 가지 관례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주) 기록된 바와 같이 사도신경이 불투명한 전승(傳承)과 관습(慣習)의 길을 따라 전개 되었다면 호리의 값어치도 없는 기도문이요 이단(異端)적인 것이다.
이단이란 끝이 다르다는 뜻으로서 내가 천국 간다면 상대(이단)는 지옥 간다는 뜻이다. 이단이란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것이라는 뜻이 포한되어 있다. 오늘날이단이라 함부로 말하는 자들은 교리와 교파의 전통이나 권위를 반항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참 이단은 성경의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자들 이(이단)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사도신경이 신앙의 척도를 가늠하고 이단의 척도를 가늠하는 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사도신경을 이단의 척도로 가늠하려고 하는 자들이야 말로 성경적인 이단 (異端)이 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아니라고 할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그(예수)는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 고 까지 사도신경을 자리 잡으려고 하는 것은 사도신경이 이미 개판(開 蓋板)이 되었다는 뜻이다.
더더욱 말도 안되는 것은 「거룩한 기독 교회」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사도신경에 삽입하고자 하는 것은 교권주의자들의 깡패 같은 폭행을 행하고자 하는 것과 무엇 다른가
【결론】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의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기도문이란 전체 내용을 사도들이 만든 것도 아니요 수 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변질된 것이 유전(遺傳=막7:8~9)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비성경(非聖經)적이요 성경적으로 보면 이단(異端)적인 내용이 확실하지만 오늘날 사도신경을 밤낮으로 암송하는 신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도신경의 정체를 밝힌 필자는 교리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단(異端)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엉터리 사도신경을 외우게 하는 성경적인 이단들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오늘날 교회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하느냐 암송하지 아니하느냐로 이단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으나, 교파나 교리적인 이단에 있는 자들은 세월이 지나 교파나 교리가 바뀌면 이단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길이 있을 수도 있으나
성경적인 이단을 가는 자들은 영원한 이단(異端)으로서 결단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요 또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자들은 이단(異端)적인 교리와 유전(遺傳)에서 벗어 나되 먼저 잘못된 사도신경의 율법(律法)적인 사설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 빛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는 귀한 자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하는 바이다.
댓글 '7'
나눔
요한
순례자
왜냐하면 이를 알게 하신이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알게 하셨다는 것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카톨릭과 장로교단과 감리교단에서는 예배전에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읍니다
성경 어디에도 사도들이 우리들은 이렇게했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이렇게하라 라는 구절은 없읍니다
이 사도신경의 시작은 카톨릭에서 발단이 된것이며 각 개인의 신앙 고백으로는 합당치 않읍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죄 사함의 고백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믿는자와의 관계가 무엇인지가 없고 예수의 부활과 성도에 대한 부활이 어떻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자세한 가르침이 없이 그냥 막연히 주문하듯 외우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처럼 포장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마리아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이 염불하듯 구원의 핵심이 없는
사도신경으로 구원 받는다고 속이는 카톨릭의 잘못을 깨닫고 개신교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인으로 돌아 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성도들에게 바른 말씀로 가르쳐서 훗날 예수님 앞에 섯을때
이 가증을 떨다온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영원히 저주받을 찌어다 라는 책망받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맙시다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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