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오늘의

읽을꺼리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의미 못살리는 개신교회의 예배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3081 추천 수 0 2009.02.19 22:45:37
.........
출처 :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는 지나치게 말씀 중심을 강조하고 있어 회중의 참여나 하나님과의 만남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회중이 참여하는 통로 전혀 없어 ‘예배 구경꾼’으로 전락

한국 교회의 예배는 이중적이다. 목회자의 성향에 따라 지나치게 조용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시끄럽기도 하다. 어떤 교회는 전자 악기나 드럼을 사용해서 시끄럽고 흥분된 가운데 찬양을 인도하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예배 도중에 박수를 치는 것도 금한다. 그러다 보니 조용한 교회를 다니던 교인이 시끄러운(?)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가면 정신이 없고 적응하기가 힘들다. 반대로, 시끄러운 교회에 익숙한 교인이 조용한 분위기의 예배에 참석하면 예배가 아니라 강연회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씀 중심의 단순한 구조

어느 편이 더 좋은 예배냐 하는 것은 사실 단정하기 힘들다. 이것은 사실 예배를 드리는 방식의 문제일 뿐, 예배의 본질이나 의미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교회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배 모범’은 물론, 예배의 의미와 형식에 대한 합의된 틀이나 이론도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국 교회의 예배 형식, 혹은 순서는 루터교나 성공회, 혹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도의교회 처럼 독특해 보이 교단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하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묵도-찬송-교독문-신앙고백-기도-찬양-설교-헌금-축도의 순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교회의 특성에 따라 한두 가지의 다른 요소들을 첨가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단순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예배가 이처럼 단순화된 것은, ‘말씀 중심’이라는 개신교회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탄생한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이라는 기치 아래 중세 가톨릭 교회의 의식과 예전의 상당부분을 폐기했다. 따
라서 예배에 있어서도 말씀을 중심으로 꼭 필요한 몇 가지 요소만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개신교회의 예배는 몇 가지의 문제점을 안게 됐다. 우선, 예배에 회중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교독문이나 사도신경 등 회중이 낭독을 하는 순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회중의 예배 참여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 결국, 예배에 있어서 회중은 예배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해 버렸고, 이에 따라 회중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두번째 문제로는, 말씀을 강조한 나머지 성찬을 제외시켜 버림으로써 말씀과 성찬의 불균형 현상이 심화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찬은 회중들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의 예배에서 성찬이 제외됨으로써, 회중들이 예배를 통해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낄 여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국 개신교인들의 삶과 신앙이 따로 놀게 된 이면에는 이같은 ‘말씀과 성찬의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중 참여 기회 박탈

회중이 예배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도 못하고, 예배를 통해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느끼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예배의 ‘축제적 성격’이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라는 측면과 함께, 하나님과 회중이 하나가 된 것을 기뻐하는 ‘축제’라는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회의 예배에서는 이같은 ‘기뻐함’이나 ‘축제’의 측면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냥 순서에 따라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들은 뒤 헌금을 하고 헤어질 뿐이다. 예배에 참여함으로써 당연히 느껴야 할 하나님 나라 백성의 환희는 온데간데 없다.
이처럼 ‘결정적인 요소들이 삭제된’ 개신교회의 예배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더해서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가 안고 있는 또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말씀 중심’의 예배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헌금 중심’의 예배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일선 목회자들을 부인할지 모르나, 한국 교회의 예배가 헌금 중심의 예배라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대부분의 한국 교회의 예배에서 헌금 순서는 설교 바로 뒤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예배에 헌금 순서를 따로 두지 않고 예배당에 들어갈 때 헌금함에 넣게 하는 교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지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또 헌금 바로 앞에 있는 설교를 통해 목회자들은 헌금과 축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개척교회 등에서는 매 주일 저녁 헌금 순서가 들어 있는 ‘헌신예배’를 드린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헌금’을 하기 위해 헌신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 자체가 헌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개신교회의 예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뭔가 부족한’ 개신교회의 예배를 보다 풍성하고 의미있는 예배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그런 노력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어난 ‘예배의 토착화’를 위한 움직임이다. 예배에 아프리카의 토속적 리듬과 가락으로 구성된 찬송가를 도입하고, 예배의 형식도 기존의 도식적인 형태를 벗어나 나름대로의 색채를 가미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만의 감성과 종교적 특성을 풍부하게 담아낸 예배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토착화’를 통해 예배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시도는 ‘국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적인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차원에서 예배의 의미와 형식을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바로 1982년 페루의 리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직제위원회에서 채택된 ‘리마 예식서’가 그것이다.

‘리마 예식서’ 사용 시작

물론 이 예식서가 나오게 된 배경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고민에 있었다. 개신교회를 비롯하여 가톨릭, 정교회 등으로 교회를 분열시킨 요인과, 이를 극복하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의 모범’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신교회의 예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가톨릭 교회 등 예전을 중시하는 교회들의 장점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의 예배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리마 예식서’가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리마예식서’는 개신교와 가톨릭, 정교회가 합의한 것인 만큼 그 형식에 있어서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요소들을 많아 채택했다. ‘개회의 예전’과 ‘말씀의 예전’, ‘성만찬의 예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예식서는, 각 부분마다 회중과 집례자가 서로 응답하는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회중의 참여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 죄의 고백, 용서의 선언, 화해의 선포, 말씀 봉독, 신앙고백, 설교, 성만찬에의 참여 등 예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말씀 봉독에 있어서도, 설교의 본문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구역성서, 시편, 사도서신, 복음서를 각각 채택해서 읽는다.
따라서 ‘리마 예식서’를 사용한 예배는 순서와 형식이 복잡하고 시간도 일반 개신교회의 예배에 비해 오래 걸린다. 또 설교에 배당된 시간도 짧은 편이다. 여기에 반드시 성만찬이 포함되도록 구성돼 있다.
현재 에큐메니칼 모임에서는 대부분 리마 예식서에 근거한 예배를 드린다. 우리 나라의 경우, 지난 1990년 서울에서 열렸던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PIC) 세계대회’의 개회예배가 이 예식서를 따라 드려졌다. 당시만해도 단일 종교의 모임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던 이 대회의 개회예배는 UHF 채널이었던 KBS 사회교육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런데, TV를 통해 이 예배를 지켜 보던 우리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용공’이라는 평가가 많을 만큼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던 WCC의 예배가 너무나도 웅장하고 의미 깊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990년의 JPIC 세계대회 개회예배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란 이런 것’이라는 하나의 예시를 보여 준 것으로 기록될 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들어 부활절 연합예배를 리마예식서에 근거한 형식으로 드리고 있다. 부활절연합예배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공동 주최로 드리게 된 뒤, 지난 해 처음으로 예배를 주관한 교회협이 이같은 예배 순서를 만들어 한기총과 합의했고, 올해 연합예배 역시 일부 순서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 같은 형식으로 예배를 드렸다.
물론 이러한 부활절 연합예배의 순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전반적으로 회중들의 참여가 많고 성찬식까지 포함된 예배라는 점에서 ‘그냥 보는 예배’가 아닌 ‘참여하는 예배’, ‘드리는 예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지나치게 가톨릭 스럽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가톨릭 스럽다’고 느끼는 부분은, 사실 ‘필요 없는 요소’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신교회의 예배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요소들’이라는 점에서 무턱대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연합예배 이전에 각 교회에서 이같은 예배 형식에 대해 소개나 교육을 할 기회를 가졌다면, 이같은 논란이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지난해 4월 12일 개회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남연회 개회예배와 성찬예식이 리마예식서에 근거해 드려져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당시 연회 참석자들은, 복잡하고 생소하기는 했지만 ‘예배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또, 집레자와 회중이 교독문 등을 통해 서로 교감하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예배 자체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새로운 ‘예배 모범’ 절실

이처럼 리마예식서를 비롯한 ‘새로운 형식’의 예배에 대해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생소하면서도 의미있게 느끼는 이유는, 현재 한국 개신교의 예배가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가져다 주지 못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한국교회에 ‘새로운 예배 모범’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난해 부활절 연합예배를 기획하는 데 참여했던 교회협의 한 관계자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연합예배의 참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등 문제를 드러낸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교회에 새로운 예배 모범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기총의 한 관계자도, “새벽 시간에 어렵게 예배에 참여한 교인들에게 예배의 의미를 분명하게 느끼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멍하니 앉아서 설교나 듣다가 가는 것 보다는 교독이나 성찬 등으로 예배에 몰입하고 참여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를 보다 풍성하게 하고, 회중들이 예배의 주체로 참여해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무미건조하고 획일적인 예배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실험’이 일정한 신학적 근거와 신앙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려면, 교단이나 연합기관 차원에서 ‘예배 모범’을 만들어 이를 근거해서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에는 이런 ‘예배 모범’ 조차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배 모범’을 만들어 가고 또 그 ‘예배 모범’ 안에는 어떤 내용과 형식이 포함돼야 할 것인가?                 / 민성식·유종환·최대진 기자    2008.4.6 기독교신문

의미 못살리는 개신교회의 예배 (下)

‘말씀’과 ‘성찬’ 균형 이루는 ‘예배 모범’ 하루속히 만들어야 오늘날 한국 교회는 예배의 기본 구조의 틀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 성격과 형식에서 이미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몇 가지 문제점을 보이며, 예배의 갱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배가 TV나 인터넷, 간혹 생중계를 통해서 점점 확산되고 신자들은 모이기보다는 편리한 현대 대중 매체를 통해서 더 큰 감동과 더 질 높은 설교에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골 교회 전도사의 설교를 듣느니, 차라리 유명 목사의 설교집을 보거나,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는 유명 목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예배의 형식과 내용보다 오직 유명인사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오늘날 몇몇 대형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자리에 있지도 않은 목회자의 동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름 없는 전도사나 목회자의 예배보다, 훨씬 많은 교인들을 교회로 불러모으기 때문이다.

교인 불러모으는 도구로 전락

성산교회 노동혁목사는 “오늘날 예배는 진정 하나님을 향한 목소리를 내기보다, 교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면서, “예배의 본질에서 어긋난 형태는 경건함을 보이기보다 인기주의에 빠져있는 교인들의 눈을 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또 “예배에도 엄연히 순서가 있기 마련인데 순서를 지키는 교회는 많지 않다”면서,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것도 좋지만, 형식에서 너무 벗어난 것은 오히려 악영향을 불러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예배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것이 근본정신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모습은 이와 같은 면에서 이탈해 우리의 것, 즉 신자들에게 나타날 예배 후의 감동과 은혜에 치중하고 있다. 교인들의 느낌과 경험에 치중하는 예배가 아니라, 보는 예배로 변질됐다. 집단적 예배 현장은 현대적 인위적인 순서들로 더 많이 채워졌다. 한국교회는 더 진한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교회를 무대화하고 예배를 흩트려 놓았다. 불필요한 순서까지 넣으며 예배의 본질까지 흐리고 있다. 새신자환영이나 광고가 그것이다.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 한국교회에서는 버젓이 예배의 한 순서를 차지하고 있다. 진실된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예배가 엄숙함보다 너무 현실에 치우친 형태로 변한 것이다.

서울신대 조기연교수는 “예배는 고도의 경건성과 지극한 정성 가운데서 드려져야 한다”면서,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이며, 인간이 하나님께 말하는 행위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광고는 그 성격상 교회가 성도들에게 알리는 어떤 내용이다”면서, “광고는 인간이 인간에게 말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순서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실천신학 박해정교수는 “한국교회 예배의 문제는 목회자들의 예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예배준비가 목회자의 설교준비가 끝나면 예배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실제 예배가 준비되려면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요소들이 통합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예배준비위원회 및 예배준비를 위한 정기적인 모임이 없어 제대로 된 예배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예배가 변화하는 것은 그날 설교가 좋으면 은혜를 받는다는 생각이 큰 잘못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삶과 분리된 예배

박교수는 “예배자체 뿐만이 아니라, 예배가 삶과 분리되는 현상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원인은 예배를 드리며, 자기 만족만을 취하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교수는 “이러다보니 자기중심의 생활로 인해 희생과 봉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는 것은, 그가 그릇된 삶을 살아 하나님이 노하셨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삶에서는 실천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행태로 인해 예배가 퇴색되고 있다. 목회자의 인식부재와 예배중심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교인들의 행동이 신앙과 따로 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한국교회의 예배가 회복되기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성경의 진정한 예배정신이 회복되어야 한다”면서, “요한복음 4장과 로마서 12장에 잘 나와 있듯이 신령과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예배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것은 초대교회공동체를 추구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나누고,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삶과 예배가 괴리되는 원인에 대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을 역임한 정철범주교는 “성찬과 말씀의 불균형현상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즉,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가 너무 말씀 중심이다 보니 예배의 균형이 맞지 않고, 성찬을 외면하다 보니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경험을 하지 못해 결국은 삶과 신앙이 동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신앙과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 보다도 말씀과 성찬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정철주교는 강조했다.

그렇지만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아직 한국 교회에는 제대로 된 예배의 모범이나 기본 예식서 같은 것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람직한 에배의 형식을 제시하는 예배의 모범이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

문제는, 예배의 모범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에 있다. 예배의 모범은 여러 가지로 나누지만 가장 먼저 ‘주의 날’을 지켜야 한다. 주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교인의 당연한 의무이다. 이 날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모든 생업을 중지하고 온 가족이 예배당에 나아가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한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누려야 한다.

경건하고 엄숙한 예배 절실

예배의 순서에 있어서도 경건하고 엄숙한 태도로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의 전통과 일관성을 가지는 동시에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와 회중이 참여하는 공동체 성격이 나타나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부분, 찬송과 고백의 기도, 말씀을 경청하는 부분, 감사와 응답, 위탁과 강복선언의 순서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또 모든 교인들이 한 공동체로서 예배당에서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기독교인이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마땅한 본분이니, 모든 음악순서는 예배의 목적과 내용에 일치되는 내용으로 해야 한다.

예배의 모범 중 기도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기도는 겸손한 태도로 영생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권위를 숭배하며,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삶을 회개해야 한다. 또 하나님이 은혜롭게 임하심을 겸손한 마음으로 간구하며, 예배에 대하여 성령의 도우심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를 용납하시기를 구하여야 한다.

또한 예배 때의 성경봉독은 공식 예배의 한 부분이다. 봉독한 성경의 내용은 설교자가 선택하되 봉독은 목회자나 그 밖의 허락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한다. 봉독할 때는 경건하고 엄숙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도록 해야 한다. 설교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회중들에게 바르게 선포해야 한다. 예배 가운데 설교는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한 길이의 시간 내에 강론하여, 그 진리를 옳게 가르쳐 그들의 생활 속에 연결해 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개신교회가 잃어버린 예전을 회복하는 것도, 예배의 엄숙함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 면에서 ‘리마 예식서’를 응용한 예배를 각 교회들이 실험적으로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존의 단순한 예배에 익숙한 교인들은 이 형식적인 예배가 지루하고 쓸데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루터교나 성공회 등 개신교 내에서 예전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의 예배를 참관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교단에서 예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교단들은 결혼식 등 행사를 위한 예식서는 만들어 놓고 있으나, 교회의 일반적인 예배에 대한 예식서를 갖추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같은 교단에 속한 교회라도 서로 다른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단이 앞장서서 에배 모범과 예전 규범을 만들어 교단 소속 교회에 배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문제는 신학교에서 예배학을 가르칠 때 예배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강조하면서도, 형식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신학생들에게 단순히 예배의 신학적, 관념적 차원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예배를 실험헤 보도록 함으로써, 예전의 중요성을 스스로 체득해 나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형식 실험 기회를

가톨릭이나 정교회와 같은 전통적인 예배는, 엄숙함과 신비스러움에 있다. 현대 교회 예배는 종교개혁 이후에 구교의 폐습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기 위해 형식보다는 내용에 중심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신교의 예배는 설교시간이 길고 신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다.

현재 제2의 오순절 운동인 ‘제3의 물결’은 현대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파를 초월해 개신교의 기존 예배보다 훨씬 더 자유스럽다. 어떤 경우에는 혼란스러울 정도까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각각의 교단, 교파, 교회 별로 예배의 형식은 비슷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에서는 철저하게 성경을 중심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를 추구해 왔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실용적인 것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켜왔던 예배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고 변화되어왔다. 또한 설교를 강조하다보니 자연히 예수의 보혈을 마시는 성찬이 빠지는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실용주의와 형식주의로 인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예배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교회는 소위 공연장에 모이는 사람들처럼 되어가고 있다. 주일날 교인들끼리 떠들고, 교인들끼리 친교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주일은 사람을 만나서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또한 헌금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우가 많다. 주보에 헌금의 내용을 게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금 중심의 예배로 변질되었다.

한국교회는 예배가 바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인 동시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 예배임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하듯이 형식과 외식에 치우지면 안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수 안에서 드리는 예배, 형식이 아닌 진실된 예배를 의미한다. 예배의 횟수가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준비하였느냐, 얼마나 정성을 다하였느냐가 중요하다. 이제 한국교회는 거의 날마다 드리는 예배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도 만나고, 은혜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민성식·유종환·최대진 기자    2008.4.28 기독교신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90 한국교회허와실 ■ 현장을 떠난 은퇴목사 생계대책 없다 기독교신문 2009-03-06 1712
1389 경포호수가에서 워낭소리 [3] 피러한 2009-03-04 3212
1388 선교화제현장 ‘웃음 전도사’ 진수 테리가 말하는 성공을 위한 9가지 걸음마 최용우 2009-03-04 6266
1387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6] 이유없는 범죄는 없다. 어거스틴 2009-03-03 3065
1386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5] 도둑질 어거스틴 2009-03-03 3027
1385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4] 유학을 가게 된 이유 어거스틴 2009-02-27 3016
1384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3] 정욕의 노예 어거스틴 2009-02-27 3482
1383 100가지,50가지 성공의 법칙 100가지 . 최용우 2009-02-26 3315
1382 목회독서교육 2009년 1월 기독교 서적 베스트 셀러 1-50 최용우 2009-02-26 7902
1381 한국교회허와실 이 시대를 분변하라 성문 2009-02-24 2739
1380 경포호수가에서 노숙자 친구 [4] 피러한 2009-02-24 2692
1379 한국교회허와실 ■ 차별을 정당화 하는 교회 기독교신문 2009-02-19 3187
1378 한국교회허와실 ■ 갈수록 늘어나는 조손가정 틈새가정 기독교신문 2009-02-19 4162
» 한국교회허와실 ■ 의미 못살리는 개신교회의 예배 file 기독교신문 2009-02-19 3081
1376 영성묵상훈련 인생의 신호등 [2] 루디아황 2009-02-18 2690
1375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2] 고백하게 된 동기 어거스틴 2009-02-17 3728
1374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1] 어렸을 때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어거스틴 2009-02-17 3895
1373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0] 소년 시절에서 청년 시절로 어거스틴 2009-02-15 3100
1372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19] 문법과 계율 어거스틴 2009-02-15 3038
1371 사회역사경제 예수님의 경제이야기 홍할배 2009-02-13 3239
1370 논문신학성경 사도신경(使徒信經)의 정체를 밝힌다. [6] 그레이스 2009-02-13 4420
1369 논문신학성경 교회의 사회적 책임 신현수 박사 2009-02-13 2521
1368 인기감동기타 종교와 수(數) 그레이스 2009-02-13 3008
1367 논문신학성경 기독교 인생관 -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성경의 교리적 근거 모색) 김광렬 교수 2009-02-13 3198
1366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18] 형식적인 학교교육 어거스틴 2009-02-10 3752
1365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17] 청년 교육법 어거스틴 2009-02-10 3457
1364 정치건강취미 일주일에 한번은꼭 먹어 줘야 할 음식 최용우 2009-02-10 2997
1363 수도관상피정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The Ladder of Divine Ascent") 고려수도원 2009-02-07 3041
1362 수도관상피정 관상기도를 통한 영적 성장 방안 file 이재학 2009-02-07 3949
1361 수도관상피정 기독교 영성사 연대 및 중요사항 file 고려수도원 2009-02-07 3044
1360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16]배움을 위한 기도 어거스틴 2009-02-04 3919
1359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15] 가장 싫어한 그리스어 어거스틴 2009-02-04 3203
1358 경포호수가에서 4차원 인간 피러한 2009-02-02 3581
1357 수도관상피정 사막 교부들과 서방 수도원 운동의 영성및 발전 과정에 관한 연구 심선진 목사 2009-01-30 4876
1356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14] 가장 좋아한 학문 어거스틴 2009-01-29 3314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