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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영적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목회자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2001 추천 수 0 2009.03.06 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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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교회의 虛와 實 - ‘오늘’을 진단한다

- 영적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목회자

“영적인 권위와 거룩함은 목회적 돌봄과 섬김에서 나온다”
‘보통 사람과 다른 존재’인 목회자가 오히려 더 세속적 물질과 권위에 집착
‘자살충동’ 느껴도 목회자와 상담하려 하지 않는 등 영적 신뢰도 바닥수준

최근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선거를 둘러싼 파행을 지켜보는 교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감리교 감독회장은 우리나라 굴지의 교단인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한국교회의 영적 지도자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과연 그들에게서 영적 지도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감리교 사태는 목회자, 그것도 교단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영적 지도력은 고사하고 자질마저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여러가지 사례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교단이 정한 자격기준에 과연 부합한가’하는 문제를 비롯해서, ‘그 기준을 엄격하게 지키겠다는 의지는 있는가’의 문제, 그리고 나아가 그런 방식으로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그 영적 지도력을 과연 인정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들이 모두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서 목회자 둘러싼 잡음

감리교 뿐만이 아니다. 여타 장로교단에서도 교단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볼썽 사나운 모습들이 다반사로 드러나곤 한다. 또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기구의 수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꼭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더라도,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영적 지도력을 의심받게 하는 사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난다. 그리고 그중의 일부는 일반 언론에도 소개돼 교회의 신뢰과 영적인 권위에 먹칠을 하곤 한다. 이제는 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성직자인 목회자의 영적 지도력을 신뢰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목회자가 영적 지도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직자는 일반인과는 달라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에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부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서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보통 사람들보다는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방영된 CBS TV의 시사프로그램 〈크리스천 Q〉 역시 이 문제를 다뤄 눈길을 끌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인성목사(함께여는교회 담임·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는,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이른바 ‘CEO형 리더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즉, 목회자를 마치 커다란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와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CEO의 최고 미덕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그 기업의 자산과 가치를 늘여 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 목회자 역시 교회를 이렇게 운영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고, 큰 건물을 건축하고, 재정의 규모를 늘이는 것이 목회자로서 성공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인성목사는 여기에 목회자가 마셔서는 안될 ‘독배’가 숨어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큰 교회당’, ‘수많은 교인’, 그리고 ‘엄청난 재정 규모’ 같은 개념은 사실상 기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고 물량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CEO형 목회자의 리더십’은 교회의 타락과 물량화의 상징일 뿐이라는 게 방목사의 지적이다.

방목사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교회가 물량적인 성장만을 추구하고, 크기와 규모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제기돼 왔던 것이다. 따라서 ‘CEO형 목회자의 리더십’은 이같은 모든 문제들이 집약된 개념이라고 볼수 있다.

CEO형 리더십이 문제

더 심각한 것은 목회자들이 ‘CEO형 리더십’을 중시하고 이를 추구하고 있는 반면, 일반 교인들이나 일반인들은 이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서울의 초대형 교회를 보면서, “교회는 마치 대기업 같고, 목사님은 그 기업의 CEO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을 뒤집으면, “교회가 교회같지 않고 무슨 회사같다”는 뜻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교회가 교회로 보이지 않고 목사가 목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목회자들은 크고 멋있어 보이기 위해 ‘CEO형 리더십’을 추구하지만, 많은 교인들이나 보통 사람들은 여기에서 목회자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볼수 있다. 목회자가 ‘CEO형 리더십’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영적 지도력을 스스로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영적인 지도력과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 또다른 이유는, ‘영적 권위’와 ‘세속적인 권력’을 혼동하고, 나아가 ‘영적 권위’와 ‘세속적인 권력’을 함께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교단장이나 연합기관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자주 발생한다. 사실, 교단장이나 연합기관장은 영적인 권위를 부여받아야 하는 자리지만, 그 자리에서 하는 일은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교단장이나 연합기관장이라는 자리가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곤 한다. 당사자들은 부인할지 모르나, 이런 자리에 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과연 이 자리를 ‘섬김과 봉사의 자리’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보통 교인들이나 일반인들은, 이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단장이나 연합기관장에 오르려는 목회자들을 보면서, 그 자리가 ‘대단한 자리’라는 생각을 갖기 보다는 ‘그 자리가 뭐길래’라는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된다. 그 자리가 원래 가져야 할 권위와 상징성을,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까먹고’ 있는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목회자들의 도덕적 소양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에 대한 뉴스들은, 목회자의 윤리는 물론, 기본적인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곤 한다. ‘목사’라는 직위의 신뢰도가 다른 직책들에 비해 결코 높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권위에 대한 혼동과 세속적 타락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속적인 타락은 물질을 비롯한 세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부르고, 그 집착 속에는 세상적인 권력에 대한 집착 역시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원은 역시 하나님보다는 세상적인 것을 앞세우는 맘몬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사실은, 우리나라 목회자들만큼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엄격히 구분하고, 자신은 세상정 영역이 아닌 영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세상과의 소통도 없어

이같은 태도는 세속적인 대중문화를 대하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몇해 전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한 〈다빈치 코드〉가 개봉됐을 때, 한국 교계는 이 영화가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했다며 강하게 반발, 상영금지를 요구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또, 그보다 더 오래 전 이른바 ‘가짜 목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할렐루야〉가 제작되고 개봉되는 과정에서도, 강도는 약할지 모르지만 비슷한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불교의 성직자인 승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달마야 놀자〉 시리즈에 대한 불교계의 태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스님들은 조폭들과 고스톱을 치거나 술 많이 마시기 내기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패싸움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스님들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거리낌없이 하는 모습이 영화에 여과없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놓고 불교계가 상영금지를 요구한다든지 승려를 모독했다는 주장을 한 적은 없다.

이처럼 불교계와 기독교계의 대응이 서로 다른 이유는, 기독교 성직자인 목회자들이 자신은 ‘육이 아닌 영에 속한 사람들’이며, 자신의 권위는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히 맞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실제의 생활에서는 이와 모순되는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많다. 영에 속해 있다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물질과 권위에 집착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로 인해 ‘목회자는 영에 속한 사람이기에 보통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과 충돌하게 되고, 그것이 뚜렷하게 부각될 때 ‘영적인 권위’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영에 속한 사람으로서 영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적인 카리스마’는 자신이 주장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회적 활동과 돌봄, 그리고 섬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세속적인 물질과 권력에 집착할 때, 영적인 권위는 생겨나기보다는, 오히려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힘들때도 찾지 않는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영적인 카리스마’를 주장하면서 생겨나는 또하나의 문제는, 세상과의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교인들이나 일반인들은 목회자들이 ‘자신과는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연기자 안재환씨와 최진실씨의 자살로 인해 크게 부각됐던 연에인들의 자살문제는 이같은 현실을 잘 드러내 준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음에도, 이들이 자살을 해야 할만큼 긴박했던 순간에 목회자와 상담을 했다는 보도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 뿐만 아니라 보통 교인들도,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목회자를 찾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조성돈교수(실천신학대학원 교수)가 〈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라는 책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무려 20%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자살 충동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목회자를 찾아가 상담을 한 경우는 불과 18.8%에 불과했다. 이는 결국 기독교인들 조차도 심신의 곤고함을 목회자를 찾아가 상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인 동시에, 목회자를 ‘어려울 때 함께 할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삶과 결부된 문제에 있어서도 목회자들은 교인이나 일반인들로부터 그 ‘영적인 존재의 의미’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더 불행한 사실은, 이같이 자신들의 영적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목회자 자신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회자들은 스스로 ‘거룩하고 권위있다’고 생각하고 교인들이 이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르나, 정작 교인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한국교회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지금이라고 실추된 영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목회자들의 인식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조와 신학교육의 내용 등 교회의 전반적인 측면이 변화돼야 한다. 과연 어떤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할까?

/민성식·김태완 기자

◇한국교회 목회자들에 대한 영적인 권위와 신뢰가 바닥을 기고 있어 이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

목회자부터 ‘변화’ 체험하고 사회를 위한 돌봄에 나서야
세속화된 교회가 사회로부터 유리되면서 일반인들도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영적인 결단과 체험보다는 지식적 측면 강조하는 신학교육이 ‘게토화’ 부채질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영적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목사들의 범죄 등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기사들이 일반인들은 물론, 교인들까지도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 뉴스 일색

일선 목회자들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기분나빠할지 모르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목사’라는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해 보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후보가 당선된 것과 관련해서, 마틴 루커 킹목사와 제시 잭슨목사가 포함된 뉴스가 가장 많이 검색되고, 그 다음으로 국민일보 등 기독교 관련 매체의 뉴스가 검색된다.

그리고는 곧 감리교 총회의 파행에 대한 뉴스들이 줄을 잇는다. 또, ‘환경을 훼손해 법의 제재를 받은 사람들 중에 목사와 승려 등 종교인도 포함돼 있다’는 뉴스가 검색된다. 최근 다시 일어나고 있는 대운하 재추진 분위기와 관련, 추부길목사와 김진홍목사의 이야기도 ‘그다지 환영받는 뉴스’는 아니지만 자주 나타난다. 또, 5.18 민주항쟁을 ‘북한의 특수 공작원이 투입돼 일으킨 폭동’이라고 폄하한 이종윤목사 관련 뉴스, 한때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씨가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뉴스도 보인다. 다시말해서, 미국 대선에 대한 뉴스나 기독교 관련 매체의 뉴스를 제외한다면, ‘목사’와 관련된 뉴스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은 것이다.

이처럼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목회자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에 비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에서 드러나듯, 기독교의 목회자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그 이유는 목회자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한국교회 전체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한국교회의 세속화라고 할 수 있다. 물량주의를 비롯해서 개교회주의, 분열 등 한국교회의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현상들은, 따지고 보면 세속화된 교회의 단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보다는 물질을 우위에 두는 물량주의는 물론이고, 모든 부정적인 현상들이, 하나님보다는 세상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데서 나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고쳐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교회가 세속화의 망령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속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한국교회가 무조건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양적 성장 위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를 위한 성장에만 몰두

그러나 한국교회가 ‘양적 성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다지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이미 ‘수와 힘의 논리’의 수렁에 완전히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큰 교회를 담임히고 있는 목사가 힘이 있고, 따라서 교단장이나 연합기관의 우두머리도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하고’ 하는 식의 수와 힘의 논리가 지금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교단의 정책에서도 금방 알 수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경우, 몇년 전 총회 차원에서 ‘1만교회 400만 성도를 달성한다’는 취지 아래 ‘만사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 회기부터는 ‘300만 성도운동’을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10일에는 성대한 발대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물론 이번에 전개하는 ‘300만 성도운동’에는 교인의 수를 획기적으로 늘인다는 것보다는, 교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자는 취지가 더 강하게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운동은 그동안의 ‘성장운동’ 내지 ‘교회부흥운동’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고쳐 먹는다면, 지금의 교인만으로도 건강성 회복은 물론, 사회적인 과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사실, 사회가 교회로부터 바라는 것은, ‘교회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재대로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는 구세군이 매년 연말이면 벌이고 있는 ‘자선남비’ 모금에서 잘 드러난다. 구세군은 규모로 따진다면 지극히 작은 교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선남비’ 모금에는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대거 참여한다. 이에 따라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적지 않은 금액을 모금하곤 한다.

구세군이 작은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자선남비’ 모금에서 매년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사회가 구세군을 그만큼 ‘신뢰하고 인정’하기 때문이지, 결코 구세군이 ‘큰 교단’이기 때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구세군은 ‘작은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로부터 그 존재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정을 받는 이면에는 구세군이 다른 어떤 교단보다도 검소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회봉사를 열심히 해 왔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교회가 세속화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회와 목회자가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모순’역시 목회자의 영적 권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우리 나라의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표현되는 교회와 목회자의 모습을 통해 잘 드러난다.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올려 놓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이창동감독의 영화는 특히 교회와 목회자의 모습에 대해 냉소적이다. 〈박하사탕〉과 〈오아시스〉, 그리고 〈밀양〉 등 그의 대표작에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상처를 받거나, 심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와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을 죽인 죄인을 하나님이 ‘먼저 용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밀양〉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시선도 냉소적

하지만, 가톨릭 신부의 모습은 정 반대로 표현된다.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나오는 신부는 윤락여성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해결해 주기까지 한다. 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에 나오는 돈 까밀로신부는, 마을 공산당의 우두머리이인 뻬뽀네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뻬뽀네가 지독한 무식쟁이라고 놀려먹고 골탕먹이는 일을 삶의 낙으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진정한 내용이다.

이처럼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으면서, 교회를 키우고 커다란 교회 건물 속에 들어앉아 있는 목회자들에 대해 사람들은, ‘영적인 권위’를 느끼기 보다는, ‘우리와는 상관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영화 등에 나오는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는, 작가의 독단적인 정서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한 것일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작품들이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와 교회가 그 영적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교회 밖으로 나가 세상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어루만져주는 목회적 돌봄을 시작해야 한다. 목회자의 영적 권위는 목회적 돌봄과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지, 목회자가 스스로 ‘나는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속화됨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그 ‘영적인 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또 세상과 스스로 단절함으로써 비난과 냉소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신학, 다시 말해서 목회자 양성과정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같은 사실은 이미 일선 신학교에서 목회자 지망생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신학자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었다.

지난 1일 열린 한국기독교교육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왕대일교수(감신대)는 “한국의 신학교육이 안수를 받기 위한 자격요건을 갖추는 과정으로 전락함으로써, 목회자가 된 뒤에 목회를 위한 교육을 따로 받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서 신학교에서부터 목회자가 되기위한 기본적인 소양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신학교육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가져오는 결과는 의외로 심각하다. 왕교수는 “신학의 한 분야인 성서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삶의 변화를 체험하기보다는, 성서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데 급급하다”고 밝혔다. 즉, 신학생들이 목회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가 된 뒤에도 자신의 목회를 통해 교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성공한 목회자의 사례를 쫓아 ‘성공할수 있는 목회 기술’을 따라하는 데 급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체험 없는 신학교육도 문제

같은 세미나에 참석한 임희국교수(장신대)역시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임교수는 신학교육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고 배우면서, 배운대로 증언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어야 함에도, 우리의 신학교육은 여전히 교실중심 교육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신학교육이 삶의 변화와 체험과는 상관없는 지식 전수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목회자가 되려는 학생들은 신학교육의 단계에서 목회사역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회에 임하는 제세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이것이 목회 현장에서는 ‘반쪽의 목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목회에서 중시돼야 할 돌봄과 나눔, 그리고 그것을 통한 변화의 체험보다는 외적인 성장이 더 중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지금 땅에 떨어져 있는 영적인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삶의 변화를 체험하고, 이를 근거로 교인은 물론 일반인들을 위한 적극적인 돌봄과 나눔에 나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교회와 목회자가 ‘자신들과 항상 함께 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구조가 세속적인 물량이나 성장보다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던져 주신 과제가 무엇인가를 먼저 겸허하게 생각해 보고, 그 과제를 살천할 수 있는 구조로 교회의 모든 측면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교회와 목회자의 영적 권위 회복은, 목회자 개인의 문제를 떠나 교회의 개혁과 목회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철저하게 구조적인’ 문제이다. 또한 목회자 한사람 한사람의 변화가 교회의 구조개혁과 연결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민성식·김태완기자
 
기독교신문 2008/11/13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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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 한국교회허와실 ■ 교회의 잘못된 상술문화를 진단한다 기독교신문 2009-03-06 3869
1395 한국교회허와실 ■ 한국교회 교육의 문제점 기독교신문 2009-03-06 4760
1394 한국교회허와실 ■ 교회성장의 딜레마에 빠진 개척교회 기독교신문 2009-03-06 3627
1393 한국교회허와실 ■ 심각한 상황에 이른 교회분쟁 진단한다 기독교신문 2009-03-06 1845
1392 한국교회허와실 ■ 종교간 갈등 극복과 기독교적인 대안은? [1] 기독교신문 2009-03-06 3982
» 한국교회허와실 ■ 영적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목회자 기독교신문 2009-03-06 2001
1390 한국교회허와실 ■ 현장을 떠난 은퇴목사 생계대책 없다 기독교신문 2009-03-06 1753
1389 경포호수가에서 워낭소리 [3] 피러한 2009-03-04 3222
1388 선교화제현장 ‘웃음 전도사’ 진수 테리가 말하는 성공을 위한 9가지 걸음마 최용우 2009-03-04 6288
1387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6] 이유없는 범죄는 없다. 어거스틴 2009-03-03 3072
1386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5] 도둑질 어거스틴 2009-03-03 3034
1385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4] 유학을 가게 된 이유 어거스틴 2009-02-27 3023
1384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3] 정욕의 노예 어거스틴 2009-02-27 3490
1383 100가지,50가지 성공의 법칙 100가지 . 최용우 2009-02-26 3323
1382 목회독서교육 2009년 1월 기독교 서적 베스트 셀러 1-50 최용우 2009-02-26 7917
1381 한국교회허와실 이 시대를 분변하라 성문 2009-02-24 2747
1380 경포호수가에서 노숙자 친구 [4] 피러한 2009-02-24 2699
1379 한국교회허와실 ■ 차별을 정당화 하는 교회 기독교신문 2009-02-19 3192
1378 한국교회허와실 ■ 갈수록 늘어나는 조손가정 틈새가정 기독교신문 2009-02-19 4171
1377 한국교회허와실 ■ 의미 못살리는 개신교회의 예배 file 기독교신문 2009-02-19 3094
1376 영성묵상훈련 인생의 신호등 [2] 루디아황 2009-02-18 2698
1375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2] 고백하게 된 동기 어거스틴 2009-02-17 3736
1374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21] 어렸을 때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어거스틴 2009-02-17 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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