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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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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虛와 實 - ‘오늘’을 진단한다 82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평화’의 역사로 바뀌게 해야
진리에 대한 강한 확신을 주장하기 보다, 평화의 종교로 강조돼야
침략·억압의 종교서 섬김과 사랑의 기독교로 재탄생하는 개혁 필요
대한민국은 종교백화점
서울 천호동 고분다리 근처에는 작은 여러 개의 점집들이 보인다. 시장바구니를 든 사람으로부터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20여명이라고 한다. 이들 중에는 불교와 가톨릭교인, 심지어는 기독교인들도 있다고 한다. 애기동자와 처녀도사 등 그 이름도 특이하지만, 사람들은 현대의 공허한 도시생활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채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혹 어떤 이들은 재미로 갔다가 중독이 돼 거의 매일 이 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을 찾는 몇몇 사람들과 점쟁이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신을 만들어,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 단순히 재미로 찾는 점집 차원을 넘어 종교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 미아리에는 대형화, 기업화된 점집들이 즐비하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각 종교들이 모두 모인 백화점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종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 대중의 심성에는 민간신앙인 샤머니즘과 조선 5백년을 이어온 유교가 뿌리깊게 자리를 잡고 있다. 가족중심적인 사고와 삼강오륜적인 가치관, 그리고 관혼상제 그 어느 하나라도 유교적이 아닌 것이 없다.
유동식 은퇴교수(연세대)는 “한국의 대중은 샤머니즘과 유교의 혼합주의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교수는 “불교는 가장 오랜 기간을 두고 한국인의 마음을 지배해 온 종교였다”면서, “그러나 현재 한국인의 심성 형성이라는 초점에서 볼 때, 불교의 영향력은 조선 오백 년에 의해서 차단되었다”고 말했다. 유교수는 “그러나 불교는 그 관용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쉽게 종교적 혼합현상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고급화된 종교에서 주술적인 하급종교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정서 속에는 강한 종교적 속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종교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생각보다는 부모들에 의해 종교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선입견 없는 나이에 접한 종교에 흠뻑 빠질 수 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 종교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우월성만을 강조 타종교를 배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교간의 갈등 기독교가 부추겨
기독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크고 작은 마찰이 타종교와 빚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독교에 대한 종교편향에 대해 불교계가 들고 일어났다. 혹자는 이러한 종교간의 갈등을 기독교가 선두에서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진리에 대한 강한 확신이 충돌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 이웃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가 먼저 타종교를 포용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보다 큰 종교인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한신대학 김모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또 “한신대에서는 몇해전 석탄일에 축하 플래카드를 학교 정문에 부착한 경우도 있다”며, “갈등과 서로 간의 다툼을 만들기 보다는,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선교도 더 잘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공신력을 잃어버리면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종교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정점에 기독교가 서 있어서는 전도도, 복음전파도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몇몇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는 지금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두 종교간의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현대 지구촌을 전쟁과 불안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념 갈등이 아닌, 종교 갈등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와의 갈등 심각
미국에서 발생한 9월 11일 대참사도 정치적, 경제적 원인 외에 종교적 헤게모니 싸움으로 인한 참사였다. 가톨릭과 기독교, 동방정교와 가톨릭, 흰두교와 이슬람 등 종교 내부와 외부의 갈등은 일부에서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임태수교수(호서대 구약학)는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사이의 갈등은 세력과 주도권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갈등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교수는 “지금은 갈등을 넘어서서 세계평화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때”라며, “그 이유는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두 종교간의 갈등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이 지구는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교수는 이어 “예수가 가르친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서구가 해석하고 걸어간 기독교의 길은 십자가와 식민주의가 극명하게 보여 준 바와 같이 침략과 억압과 정복의 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면서, “이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탈리온(talion)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기독교 이해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난 2000년 동안의 서구중심의 기독교는, 구약의 성전적(聖戰的)인 종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가 중동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세계,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아시아 등 제3세계를 침략하고 식민지화하고 착취하는 역사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이제 서구 기독교국가들은 이러한 잘못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빌고, 예수가 가르치신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침략과 억압의 종교에서 섬김과 사랑의 기독교로 재탄생하는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것이 의식있는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어 임교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두 다 이 땅 위에 평화를 이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고 확신했다.
예수사랑의 종교로 복귀해야
임교수는 〈종교 갈등시대의 삶과 해석학〉(땅에쓰신글씨 펴냄)이란 책을 통해 “이슬람세계와 기독교세계가 화해와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 먼저 기독교는 예수의 사랑의 종교로 복귀해야 하고, 이슬람은 무력과 폭력을 합법화해 주는 지하드적인 종교를 넘어서서, 예수가 보여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종교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면서, “그럴 때에만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 사이에 화해와 평화가 깃들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임교수는 “화해와 평화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십자군과 식민지의 역사를 통하여 이슬람세계에 침략과 정복, 그리고 억압과 착취의 피해를 입힌 기독교세계가 먼저 용서를 빌고, 화해의 제스쳐를 취해야 할 것이다”면서, “그동안 지배하고 착취하면서 그 자원을 배경으로 선진국으로 발돋음한 서구 기독교 강국들이 이제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이슬람세계에 양보하고 합력함으로써 공존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임교수는 “소수의 이슬람 과격집단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다수의 온건한 무슬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과의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임교수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 기독교 국가들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만을 드는 것을 지양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균형잡힌 중동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임교수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이슬람권 국가들 중에는 가난한 나라들이 많다”면서, “기독교 국가들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이 나라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임교수는 “두 종교는 대화를 통하여 서로간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세계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임교수는 또 한스 큉의 〈지구윤리 구상〉 서문을 빌려 “종교간의 평화없이 세계평화는 있을 수 없다. 종교간의 대화없이 종교간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주의와 폐쇄성 지양
임교수는 결론적으로 “두 종교 모두 지역주의와 폐쇄성을 지양하고, 세계주의와 공동체성이 결합된 종교이념을 수용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될때 오랫동안 쌓여 온 두 종교집단간의 갈등의 역사가 화해와 평화의 역사로 바뀌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강정진교수(칼빈신학대)는 “타종교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상훈교수(정신문화연구원)도 “종교 다원성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며, 그 답으로 선교적 과제로서의 지향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내 종교간의 갈등도 동일한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평화와 자유를 향한 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갈등과 잡음의 기독교에서 섬김과 사랑의 기독교로 새로 거듭날 때 사람들은 다시 교회를 찾을 것이며, 밖으로 울려 퍼지는 교회의 찬송소리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것이다.
유동식교수는 〈한국 종교와 기독교〉에서 “복음과 타종교와의 대화는 일방적인 설복의 형태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면서,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화가 아니고 정복이다”고 말했다. 또한 유교수는 “바른 대화 형식은 곧 복음적 방법이다”면서,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된 것’이다”고 말했다. 유교수는 또 “하나님께서 인간의 개체성과 가치를 인정하시고, 인간의 자리까지 오셔서 사귐을 가졌던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유교수는 “배타적인 자기주장을 버리고 상대방의 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교수는 “한국교회에 자기 확립이 필요하다”면서, “자기가 분명치 않고는 남과의 대화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갈등은 또다른 갈등을 낳을 뿐만 아니라, 골이 깊어지면 더욱 극한 상황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종교간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 기독교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시대적 과업을 안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한국인의 심성은 화합과 포용을 중요시하고, 온유한 태도를 좋아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특성 때문에 잠시 동안이지만, 동학이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또한 신라나 고려시대에 불교의 확산이 여기에 있었으며, 조선시대 초·중기에 모습이 이러했다. 종교는 그 동 시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도 이러한 화합과 포용의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먼저 기독교 내부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한국교회의 모습과 무분별한 교단분열을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한다. 일반인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유치한 발상의 행사를 지양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는 기독교의 모습이 시급하다.
한국 기독교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랑을 받고, 우리 민족 속에 뿌리를 더욱 튼튼히 내리기 위해서는 옹졸하고 편협한 작은 틀이 아니라, 큰 틀의 기독교상을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의 리더십 확보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강조하거니와 ‘본질에는 일치해야 하지만 비본질에는 자유’하는 모습이 시급하다.
박병득기자
기독교신문 2008/11/27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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