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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라

마태복음 복음............... 조회 수 4587 추천 수 0 2007.11.15 19: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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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3-16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40년 전 링글린 브러더즈 서커스단이 뉴욕 공연을 할 때였습니다. 공연 중 갑자기 정전이 됐습니다. 1분간이었지만 관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무대에서는 조련사가 호랑이 네 마리의 재주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철창 속이니까 관중에게는 위험이 없었으나 캄캄한 데서 조련사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하고 캄캄한데 무대에서는 조련사의 채찍 소리와 호랑이의 동작을 지시하는 명령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불빛이 다시 켜지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뒤에 기자회견이 열리자 조련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들은 나를 잘 봅니다. 내가 호랑이를 못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 속에 있듯이 행동해야 합니다." 조련사가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를 여전히 제압하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의 사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원수 마귀를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려면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랑의 빛, 진리의 빛, 평화의 빛, 생명의 빛을 나타날 때 자랑스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 본향에서도 많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 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5-7)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요한일서 2:9- 11절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빛을 사랑으로, 어두움을 미움으로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어둡고 황량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과 믿음과 사랑입니다.

빛은 죄를 드러냅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이 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빛 된 삶으로 거짓과 불의가 통하지 않는 세상을 이뤄갈 사명이 있습니다. 빛은 경고를 합니다. 위험이 있는 곳에 빛을 비춰 사고를 대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위기를 알리고 죽음과 멸망을 경고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빛은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빛이 있어야 생명이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 되신 예수로 말미암아 거듭난 새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나누는 자여야 합니다. 빛은 길을 인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평안과 행복, 자유, 구원의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그 길로 인도하는 자입니다(요14:6).
‘노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소오 엘리저는 1990년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이탈리아 여인입니다. 엘리저는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에 폐병이 걸려 본국으로 소환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이라고 원망하지 않고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중국 선교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하다 그만 탈곡기에 손이 들어가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이때도 엘리저는 “주님, 오른손이 없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엘리저는 양로원을 세웠고 버려진 수천 명의 노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엘리저는 불행한 환경을 극복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도 “왜 나에게?”가 아니라 “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로 바뀌어야 합니다. “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기도에 주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라.” 진정 우리가 빛의 삶을 살 때 이 세상에 밝고 아름답고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845년 미국 조지아주의 어거스틴 제일침례교회에서 남침례 교단이 조직되었습니다. 교단을 창립한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사회"에 희망과 믿음과 사랑을 선언하고 어두운 시대에 세상의 빛이 되고자 결의했습니다. 그 날 교회에서는 이들의 선언과 결의를 기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념비를 남겼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믿을 수 없는 일을 믿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빛이요, 등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겸손과 온유의 모습을 이웃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웃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즉시 달려가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급히 필요할 때, 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부딪혔을 때도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놀라운 삶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우선 교회를 본래의 위치에 가져다 놓아야 합니다. 세속화되고 맛 잃은 소금같이 변질되고 외식하는 교회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을 하면 지옥 자식이 배나 증가하게 되게 하는 것입니다.(마23:15) 특히 교회지도자들이 세상사람들처럼 물질과 명예, 권세에 연연하여, 외형적인 큰 교회의 목회자 될 꿈만을 꾸고 있거나, 엉터리 박사학위 등을 취득하려고 힘쓰고, 교단과 교회행사 조직에 명예회장, 상임회장, 고문, 부회장 등등 거창한 직함을 좋아하여 수십 명씩 임명하는 등의 어두운 작태를 벌이고 있는 한 교회는 절대로 세상의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어두움 속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먼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며(롬14:17), 초대교회와 같이 나눔과 사랑과 성령이 충만한 교회로 개혁되고 변화된 후에야, 세상에 빛을 비추고 그리스도가 바르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빛이 필요한 곳은 우리가 사는 동네, 즉 어두움 속입니다.

어느 도시의 시장이 전망대에 올라가서 도시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야! 정말 아름답구나. 이 불빛을 한 건물 안에 다 모으면 얼마나 멋질까!" 그 시장이 커다란 건물을 지어 전 등을 그곳으로 다 모으고, 다른 곳은 모두 암흑 속에 들어가게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 도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빛을 가지고 나가서 이웃에게 비추어야 합니다. 빛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비춰줄 때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한 것입니다. 빛을 가장 효과적으로 밝힐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웃을 향한 우리의 가정과 교회임을 기억하십시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크리스천의 정체성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예수 믿는 자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음식을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소금입니다. 음식을 만들 때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하나 하나씩 필요 없는 재료를 빼다보면 이건 없어도 되고 저것도 없어도 되지만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소금입니다. 맛을 내는데 가장 기본이 소금이라고 합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맛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없이는 맛이 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없으면 세상은 재미가 없습니다. 어디든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거나 그들과 함께 할 때 인생의 여러 가지 모양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이 가진 정체성입니다. 요즘 화의부동이란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가면 갈수록 크리스천들이 세상과 함께 더불어 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간혹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들을 변화시켜야 하기에 함께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전에 청년부 어떤 회장을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가끔씩 호프집에서 모여 한 잔씩하며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이 트이고 마음 속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후배목사가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상담을 하는데 그 후배목사도 이렇게 한 잔을 해야만 마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 이야기합니다. 화의부동. 그들과 같이 살아가지만 그들과 같아져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우리와 같이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천주교를 보십시오. 오랜 시간을 세상의 영혼들과 더불어 왔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타협하며 살아왔습니다. 더불어 가다 보니 미사 지내고 난 후 쉬는 시간에 신부님과 신도들이 나가서 담배도 피고 술 한 잔도 했습니다. 캐톨릭이 오랜 시간 동안 같이 가다보니 변해버린 것입니다.

본문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으로 살라고 하셨을까요?‘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소금은 음식이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을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빌4:8) 모든 일에 참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음식도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맛을 내려면 먼저 소금이 음식에 녹아야 합니다. 녹는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살 맛 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믿는 자에게 겸손과 사랑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은 생명력을 제공합니다.’인간의 몸에 필요한 하루 최저 소금 섭취량은 10∼15g 정도라고 합니다. 만일 이것이 공급되지 않으면 노폐물이 배설되지 못해 병이 생기는 것은 물론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생명력을 제공하는,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이상과 같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주님은 무섭게 경고하십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암염이 많았습니다. 암염은 만약 이를 옮기다 비를 맞게 되면 소금기가 다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가치가 없어져버립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소금 된 그리스도인들이 비 맞은 암염처럼 그 맛을 잃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지 않는지 염려스럽습니다. 혹시 당신도 그 맛을 잃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불쌍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이제라도 회개하고 소금의 맛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의 맛을 회복하면 이 세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소금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맛을 냅니다. 또 하나,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우리 몸의 인체를 보면 70%가 물이라고 합니다. 그 70% 중에 소금의 성분이 약 2.7-3%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킵니다. 바닷물의 짠맛을 내는 소금의 양은 2.071%에 불과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적은 양입니다. 모든 오염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바다가 늘 푸르고 싱싱할 수 있는 것은 3%의 염분, 소금이 제 맛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 3%의 크리스천이 있었는데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약 20%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명중에 1명은 크리스천입니다. 유럽은 약 90%이상이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면 교회로 가고, 결혼식 할 때 교회로 가고, 장례식 할 때 교회로 갑니다. 그 많은 크리스천이 있어도 유럽이나 지금 한국을 보십시오. 점점 더 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종말, 말세다 라고 합니다.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봐야 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는 한국의 이혼률이 47%를 넘어가서 이 추세대로 가면 곧 세계 1위를 탈환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크리스천이 4명중에 1명이라고 하는데 크리스천 안에도 여러 가지 인륜적인 것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안의 도전으로 삼기 바랍니다.

한국의 크리스천이 1000만 명을 넘는 지금 과연 세상에 대한 기독교인의 영향력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 독일의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뇌물제공지수'에 의하면 세계 21개국 중 한국이 3위에 올랐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먼저 청렴과 정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그 곳이 변화되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그 곳이 썩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소금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변질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에 크리스천이 20%인데 가짜란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가 벌써 12번도 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 한 번 다시 우리 입장에서 돌아보고, 우리 자리에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 생각에 그래도 나는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의 인생의 끝 날에 내 인생 또한 가짜라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다 진짜라고 생각하죠. 가짜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물론 다 진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가지만 끝 날에 가짜요 죽정이라고 들통난다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 인생을 점검하고 가야 합니다. 말씀을 알고 복음의 길을 간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인데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 보기 바랍니다. 이제는 진짜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라면 번져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번져 나가지 않는다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변하지 않는다면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1 달란트나 빈 달란트로 나간다면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소금이라면 적어도 주위의 한 두 사람은 변화시켜서 주님 앞에 인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라면 가짜란 말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내가 진짜 소금인지, 가짜 소금인지...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5:8- 11)
여기서‘착함'은 너그러움, 관용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각박하며 이기주의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 속에서 이웃을 향한 착함과 너그러움을 드러내야 합니다. 선행을 통하여 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의로움’은 도덕적으로 악, 부정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의롭지 못하며, 불법이 성행하며, 도덕적 부패가 극에 달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며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진실’은 허위와 위선의 반대 개념입니다. 우리는 허위와 위선이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참됨과 진실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불신이 팽배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믿을 수 있다는 신뢰성과 진실성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이제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둠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혹시 우리는 꺼진 등이 아닌지, 우리의 빛을 밝히 비추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고 빛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성경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 23)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내 모습을 돌이켜보고 점검하고 맛을 되찾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살리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변화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고 흘려듣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끝 날에 밖에 쫓겨 슬피 우는 자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것을 생각해보고 가기 바랍니다. 새로운 마음을 갖지만 정말 마음만 가지고 가는지, 정확한 푯대가 섰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정말 이 땅에 진정한 소금 3%만 있으면 이 세상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소금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맛을 드러낼 때 이 세상이 건강해집니다.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빛이 산 위에 있는 동네에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이기 때문에 숨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빛은 어디에도 가둘 수 없습니다. 불교의 절은 다 산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빛을 드러냅니다. 저희 형님의 꿈은 언덕 위에 하얀 교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교회는 이런 드러나는 교회입니다. 십자가도 높게 위에 꽂지 않습니까? 서울 시내를 보십시오. 거의 다 십자가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의 삶을 드러내야 합니다. 왜 빛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세상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힐 빛이 필요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119:105) 라고 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사람이 램프이고 그 안에 빛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이 빛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 진리의 빛이 꺼지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보면 어둡습니다. 은혜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안색이 변하는 것이고 얼굴이 까매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너무나 많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붙들고 살아간다면 변치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하나만 붙들어도 우리가 그 맛을, 빛을 잃지 않을 텐데...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의 세상과 세계 앞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적어도 우리 주위만은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 기도: 빛으로 오신 주여, 빛 되신 주님의 삶을 따르지 못하는 저희의 용기 없음을 용서하소서. 이제라도 우리의 삶이 선한 행실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을 밝게 비추시고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주옵소서. 주님의 불이 당겨져 나의 몸과 마음이 주를 향한 열정으로 타오르게 하시고 우리의 주위에 이 빛을 비출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일평생 소금의 맛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어두운 세상에 대해 도피하지 않고 빛으로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세상을 등지지 말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일컬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하며, 그 속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며, 맛을 내야 합니다. 열왕기상 18장 3,4절 말씀에 나오는 오바댜를 보십시오. 그는 악독했던 아합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궁내 대신을 지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호와를 크게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세상에 뛰어들어 그들에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주십니까?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과연 부패한 세상에 소금 노릇을 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빛과 소금으로 살고 있는가?
0 나는 모든 일에 공평한가? 나는 공의를 따라 행하기를 힘쓰는가?
0 나는 이웃을 구원할 소돔의 10명의 의인인가?
0 나는 현재 죄악된 세상에서 의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주의 의로우심을 본받아 내 생활도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가?
0 나는 잠깐의 이익을 위해 공의를 굽게 하지는 않았는가?
0 바울처럼 내가 본받을 만한 신앙인이 주위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나는 본받을 만한 신앙인입니까?
0 내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0 이웃에게 생명을 나누고 있습니까? 직장 혹은 가정이 거룩한 전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합니까?
0 언행과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혹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진 않습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인

두 농부가 한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 농부는 그리스도인이고 다른 농부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논은 지형상 항상 물이 고여 있도록 된 논이고, 불신자의 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는 밤중에 몰래 그리스도인의 논에서 물을 빼서 자기 논에 채웠습니다. 아침에 논에 나갔다가 자기 논의 물이 다 빠지고 옆의 논에 물이 차있는 것을 본 그리스도인은 그 불신자에게 따졌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자기가 물을 끌어간 것이 아니라 저절로 흘러 들어온 거라고 잡아뗐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화가 나서 불신자의 논에서 물을 빼 자기 논에 다시 채웠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연히 취할 권리를 취했는데도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왜 정당한 것만 주장하느냐? 왜 네 논의 물이 필요한 이웃에게 스스로 물을 대주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에게 깨우침이 왔습니다. 그날 저녁에 그리스도인은 자진해서 자기 논의 물을 불신자의 논에 대주었습니다. 밤에 자기 논에 물을 대려고 나왔던 불신자는 이미 물이 찬 것을 보고 금방 영문을 알아차렸습니다. 다음날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 예화(2): 소록도의 두천사

소록도에는 40여년간 한센병 환자들과 울고 웃으며 애환을 나누어온 두 천사가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녀인 마리안느(68세)와 마가레트(67세)이다. 모두 가기를 꺼리는 곳에서 순수한 자원봉사자로 살아왔다. 정부보조금 10만원과 텔레비전도 없는 방에서 사과궤짝만한 장롱과 침대 한 개로 생활한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환자를 돌보는 수녀들은 생활비를 줄이느라 속옷도 직접 꿰매 입는다.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그들을 만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기자들이 온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그들은 멀리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을 세상 언론이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 주위사람들의 답변이다. 모두가 드러내기를 원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세태에 묵묵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들은 분명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한국의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가슴깊이 새겨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 예화(3): 한 알의 밀알

미국 매사츄셋츠주 살렘 태버나클 회중 교회에서 버어마 랑군에 아도니람 젇슨 목사 부부를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그곳엔 크리스천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보스톤의 대교회 목사로 초빙하는 것도 마다하고 버마로 가서 십 여년을 수고했으나 한 사람의 영혼도 주께로 인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낙망하지 않고 버어마 말을 배워 기독교 교리를 번역하였다. 어떤 날 한 사람이 찾아와 교리에 대해 묻고는 가버렸다. 한 해가 또 지났다. 여전히 공백상태였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고 그로인해 건강이 나빠졌다. 그 후 2년이 지나 몽나우라는 사람이 주께로 나왔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큰 시련이 뒤따랐다. 버마 왕은 그를 투옥시켜버렸다. 아내와 아이들이 죽어갔고, 그의 재혼한 부인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드디어 1829년 미국 선교본부에 "먼동이 터오고 많은 무리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있다"는 보고가 왔다. 여기에 감동받은 사무엘 프랜시스 스미쓰 박사는 "예수의 전한 복음"(264)의 찬송을 썼다. 그는 버마 영어사전도 펴냈다. 1850년 그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갔으나 100년 후 그 땅에는 20만명이 넘는 많은 알곡의 결실을 보았다.

* 예화(4): 세상의 빛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공평한 사회의 한 단면을 고발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고아를 웃기라. 고아가 웃으면 하늘과 땅도 함께 웃을 것이다’라는 잠언을 마음에 되뇌이곤 합니다. 가장 힘 없고 불행한 사람인 고아가 웃는다면 하늘과 땅, 온 세상이 웃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힘 없고 불행한 사람까지도 이 세상을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에는 어느덧 행복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이 아무리 밝게 만들려 하여도 밝아질 수 없습니다. 어두움은 모이면 모일수록 더 어두워질 뿐입니다.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빛입니다. 세상에는 빛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두움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빛이 비추어질 때 사회의 어두운 부분인 불의, 불공평, 잔인함, 착취 등이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하나님이십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시편82: 3)
* 기도: 가난한 자와 고아들의 얼굴에 웃음꽃 피도록, 빛을 비추는 생활을 하게 하소서.

* 예화(5): 세상의 빛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악하다고 해서 제한된 관계만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교회 공동체에만 한정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졌다는 사 람들이 그런 경향을 보이기 쉬운 듯합니다. 세상은 본래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악을 선으로 갚으며 선을 좇는 그리스 도인들과는 당연히 적대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만의 제한된 공동체인 게토를 형성하고 그 안에 서만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올바르게 보여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 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들은 등불을 켜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비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악하고 썩었다면 더욱더 그리스도인들은 그 세상 속으 로 들어가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썩은 세상.어두운 세상에 가서 자신을 녹이고 소모하는 것이 소금이요 빛인 성도의 사명입니다.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시38: 20)

4. 찬송: (259장) 빛의 사자들이여

1.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2.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3.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과 바다 건너가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4. 동서남북 어디나 땅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후렴]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5. 시: 빛과 소금

그대들 하나의 촛불일진대
이 세상 어두운 구석 찾아가서
조용히 비추는 빛이 되라

그대들 한 떨기 꽃일진대
메마르고 쓸쓸한 곳 찾아가서
곱게 피어나라

그대들 한 알의 밀알일진대
떨어진 그곳에서 말없이 썩어
새 생명 위한 거름이 되라

그대들 한 송이 백합일진대
더럽고 냄새나는 곳 찾아가서
진한 향기 날리라

그대들 한 움큼의 소금일진대
상하고 병든 곳 찾아가서
말없이 녹아 없어지라
그것이 곧 영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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