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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복음............... 조회 수 2741 추천 수 0 2007.11.26 14: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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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7:1-6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7:1-4)

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습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는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 총장에게 악수도 받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축하객은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다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족을 하고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보이는 대로 비난했던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을 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방하는 사람 자신,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비방 당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남을 비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에 알폰소 12세라 불리워지는 선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궁전의 시동들이 하나님께 식사 기도를 하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책망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왕은 시동 모두를 향연에 초대하였습니다. 식탁은 모든 산해진미로 가득 차 있었으며 소년들은 매우 맛있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어느 누구도 식사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향연 중에 더럽고 누추한 옷을 입은 거지 하나가 들어 왔습니다. 그는 왕의 식탁에 앉아 맘껏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처음에 시동들은 경악했으며 왕이 곧 그를 명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알폰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낸 거지는 감사의 말 한 마디도 없이 갔습니다. 그러자 소년들은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야비하고 천한 사람인가 왕에게 감사의 인사도 않고 가다니" 그들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을 조용히 하도록 명하며, 뚜렷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였습니다.
"소년들이여, 너희들은 거지보다 더 뻔뻔스럽고 대담한 사람들이다. 매일 너희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그에게 은총을 바라거나 감사를 표현하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아리는 것은 도로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 감사 생활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말고 나 자신이 감사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

둘째, 사람은 자기 자신도 바로 알지 못하는 데 하물며 남의 형편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영화감독 존 휴스턴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딸이 “난 반 고흐의 그림은 질색이에요”라고 말하자 휴스턴이 대답합니다. “고흐의 그림이 싫다고? 그럼 네가 알고 있는 반 고흐의 그림을 몇 점이나 가지고 있고 왜 싫은지 이유를 말해 보거라” 딸이 우물쭈물하자 휴스턴은 이렇게 교훈합니다. “상대방을 자세히 모르면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 힘과 노력, 결심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오직 기도가 방법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비판과 염려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빌 4:6∼7).

셋째, 믿음이 약한 형제의 신앙을 위해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1983년 영국 이스트본에서 열세 살 소년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크레이븐. 소년은 모범생이었으며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소년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악마의 저주를 받아 가족들이 일찍 죽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죽음이 두렵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어머니 곁에서 죽는 편이 낫다." 소년을 죽인 범인은 '악의에 찬 헛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소문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정에 적개심을 품은 한 노인이 퍼뜨린 유언비어였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험담은 세 사람을 죽입니다. 험담을 퍼뜨린 자신과 험담의 주인공과 험담을 들은 사람이 모두 피해를 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저주의 말을 쏟아내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어리석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모독하며,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신중하게 처신하며 말조심을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살펴보고, 남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줍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치 말라"(롬14:10-12)

넷째, 주님이 오시면 모든 것을 밝혀내실 것이기 때문에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옛날에 세 자매를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 자매는 모두 예뻤으나, 그들은 제각기 한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딸은 게으름뱅이이고, 둘째딸은 훔치는 버릇이 있고, 셋째 딸은 험담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한편, 아들 삼 형제를 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세 딸을 모두 자기네 집으로 결혼시키지 않겠느냐고 청해 왔습니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자기 딸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그대로 말하자. 부자는 그런 점은 자기가 책임지고 그것을 고쳐가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자매는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 시아버지는 게으름뱅이 첫째 며느리에게는 여러 명의 하녀들을 고용해 주었고,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는 둘째 며느리에게는 큰 창고의 열쇠를 주어 무엇이든지 갖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는 셋째 며느리에게는 매일같이 오늘은 험담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느 날 친정 아버지는 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사돈집을 찾아갔습니다. 큰딸은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고, 둘째딸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셋째 딸은 시아버지가 자기에게 남녀 관계를 꼬치꼬치 묻기 때문에 귀찮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친정 아버지는 자기 셋째 딸의 말만은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셋째 딸은 시아버지까지도 헐뜯고 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

다섯째, 율법과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님이 밤길을 나서기 전에 등불을 마련하여 길을 갔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길은 보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걸어가다 어떤 사람과 정면을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여보시오,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니시오!" 장님이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길에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데 왜 당신은 눈을 뜨고 다니지 못하시오!" 화가 난 나그네도 소리쳤습니다.
"나 소경이지만 이 등불이 보이지 않소?" 장님은 화가 치솟듯 다그쳤습니다. "당신 등불은 꺼졌구료!" 자기 등불이 꺼진 것을 모르고 상대방을 탓한 것입니다. 장님이니 자기 등불이 도중에 꺼진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모릅니다. 소경된 자가 자기 율법과 자기 의, 자기 가치관, 자기 주장만을 가지고 남을 욕하고 비판하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준하게 되어 고집으로만 밀고 나가는 경우가 있고 비록 그리스도인이라도 그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에 서 있지 못하고 속이 비어있을 때에는 권위와 고집 그리고 말로 자기 생각만 주장하기 마련입니다. 혹시 내 등불이 꺼져있다면 속히 확인하고 다시 불을 붙여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자신을 먼저 볼 줄 아는 지혜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야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1,12)

여섯째, 남을 비판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7, 38)

우리는 얼굴에 있는 눈으로 많은 것을 봅니다. 색깔을 구별하고 계절의 변화와 사물의 움직임을 보며, 다른 사람의 과실과 사회의 문제점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자신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이 있습니다. 이 눈은 시력이 매우 약하여 웬만한 것은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자신의 문제점, 못된 습관, 무능, 부족, 잘못 등을 보는 데 매우 약하여, 심하면 그 많은 것 중 하나도 못 보고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을 보는 눈을 보완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고, 타인의 과실을 보는 눈은 매우 밝은데도 더 밝게 하려고 첨단 기술을 투입하여 완벽에 가깝도록 고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남의 잘못은 아주 크게 보여 용서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의 잘못만 관대하게 처리되기를 바랍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끌고 예수님께 찾아와 처리 방법을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 남을 보는 눈으로 보면 그 여인은 분명히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눈, 자신을 보는 눈으로 먼저 자신을 돌아보면 그 여인에게 진정 돌을 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여인처럼 현장범은 아니라도 나는 마음으로 범죄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예배 시간에 졸거든 정죄하고 비웃기 전에 나도 몹시 피곤하면 그렇게 졸지 않을 수 있겠느냐 확인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웃을 향하여 들었던 원망의 돌, 분노의 돌, 미움의 돌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몇 년 전에 십대들이 음란 비디오를 만들어서 충격을 던져 준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매체들이 청소년들의 성윤리에 걱정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많은 어른들이 그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소위 "비행청소년"이라 불리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우리를 탈선했다고 말하면서 술집에서는 우리 같은 여자애들을 더 자주 찾아요."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8:7)

똑같이 죄에 젖어 있으면서 마치 자신은 깨끗한 척하며 다른 사람들을 사정없이 비난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주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삶을 주신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해야 합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우리는 형제, 자매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눈 속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에 티끌을 비난하는 이 시대에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손에 들려있는 돌을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일곱째,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에 똑같이 설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에 남의 장점은 보지 못하면서 자기의 장점은 떠벌리고, 자기의 단점은 감추고 남의 단점만 드러내며 나무라고 흉보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점점 따돌림을 받다가 나중에는 외톨이가 됐습니다. 그는 홀로 있는 시간이 무료해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과 대화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 보니 자신의 어깨에 앞뒤로 2개의 가방이 메어져 있었습니다. 가방을 열어보니 앞의 가방에는 자신의 장점과 남의 단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의 가방에는 자신의 단점과 남의 장점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장점과 남의 단점은 앞에 두고서 자기를 내세우며 남을 비판하고, 자신의 큰 단점은 남의 장점과 함께 뒤에다 둔 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지적입니다.
형제여! 행복한 이웃으로 살아가려거든 자신의 단점과 남의 장점을 담는 가방을 앞에 메십시오. 언젠가 우리는 선악간에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때에 햇볕이 비추면 더러운 먼지가 보이듯이 우리의 허다한 죄악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0-12)

여덟째,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으며,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롬14:10-12, 약4:11,12)
결혼을 앞둔 어떤 남성이 '완벽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 둔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상 구석구석을 살폈습니다. 이렇게 40년을 허비했으나 그런 여성과는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나이 이제 70인데, 그래 세상에 그런 여성이 없었나?"
"사실 딱 한번 그런 여성을 만났었네. 그런데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었다네. 그래서 결혼이 이뤄지지 못했지."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만 할 뿐입니다.

지금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의 뇌물, 비리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위치에 있어서 누가 뇌물을 갖다 줄 때 과연 나는 깨끗이 거절할 수 있겠는가?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본 다음에 비난하고 욕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왜 주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할까요? 비판은 순환성이 있습니다. 비판받은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의 비판거리를 찾아 다시 비판합니다. 비판은 비난과 저주를 낳습니다. 그 결과 순식간에 공동체의 행복이 깨지는 것입니다. 비판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비판하다보면 부정적인 시각이 발달하여 숱한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하고 비판할 것만 보게 됩니다. 결국 비판에 중독되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비판은 저주성이 있습니다. 비판하면 무엇보다 기도가 막힙니다. 비판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기도할 수 없기에 더욱 마음이 황폐해지고 축복을 떠나 저주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조하십니다.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거든 비판하지 말라!”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며, 거짓과 불법을 행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만, 남을 정죄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형제들을 권면하고 도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판의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실제적 지침을 제시해봅니다. 나의 들보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3절).
안과 의사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고쳐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의사 자신의 눈에 병이 났다면 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을 고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의 눈부터 고쳐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바로 눈에 병이 난 안과 의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쉽게 비판하고 정죄하며 그것을 고쳐 주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죄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더 심한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조차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알면 함부로 남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잘 보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에게 많은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분별하여 권면해야 합니다(6절). 꼭 비판해야 할 일이라면 비난이 되지 않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먼저 기도한 후에 행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ing입니다. ‘under(아래)’와 ‘standing(서다)’는 뜻입니다. 즉, 낮은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볼 때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그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고소하는 자는 마귀(사탄)에 속한 자요,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격려하는 자는 천사(하나님)에 속한 자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칭찬을 하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주님, 나의 죄를 먼저 철저히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비판함으로써 서로를 해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서로를 세워주며 격려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결함과 비방

한국인의 약점중 하나는 남을 깎아내리는 버릇이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간의 상호 흠집내기 경쟁이 그것을 말해준다. 심리학자들은 '결함 이 가장 많은 사람이 남을 가장 많이 비판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에 이런 격언이 있다.
"심장에 치명적인 것이 두가지가 있다. 계단을 뛰 어오르는 것과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남의 약점과 실수를 꼬집는 것은 상대방과 자신을 동시에 죽게 만든다. 상대방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성숙한 사람이 되자.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형제의 허물을 찾기에만 급급해 하지는 않는가?
0 나는 함부로 주의 종을 비판하지는 않는가?
0 나는 군중에게 휩싸여 이성을 잃은 적은 없는가?
0 나는 함부로 남을 악평하지 않는가?
0 나는 주변의 일들과 사람에 대해 내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0 나는 내 허물보다 남의 허물을 찾기에 급급해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칠면조의 세대

사랑은 인간 관계에서 발견된 상대방의 약점이나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덮어주고 인내하는 교제를 뜻한다. 사랑은 모든 성가심과 고통을 묵묵히 참으며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에게 보복하거나 타인의 잘못을 폭로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은 자신에게 해를 입히거나 죄지은 자를 도리어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어떤 설교가는 우리의 세대를 “칠면조의 세대”라고 고발하였다. 칠면조는 그들 중 하나가 등에 상처를 입으면 한 우리에 있는 다른 모든 칠면조들이 덤벼들어 그 상처에서 피가 나 그가 쓰러질 때까지 쪼아댄다고 한다. 우리 성도들은 남의 허물을 대해서 수군수군하거나 남의 허물에 대해서 수군수군하거나 남의 허물에 더욱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가정생활에서 모든 식구들이 서로 허물을 덮어 주고,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끼리도 깊은 이해 가운데 서로 허물을 덮어 주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 예화(2): 험담

아주 먼 옛날 한 신이 어떤 화살에 마법을 걸었습니다. 그 마법은 화살이 끝없이 세상을 맴돌며 사람들을 쏘아 죽이게 하는 마법이었습니다. 신은 수많은 화살에 똑같은 마법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화살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화살을 쏘아 상대방을 죽이더라도 결국에 그 화살이 되돌아와 쏜 사람마저 죽도록 마법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화살에 희생되자 화살은 이제 신에게 방향을 돌렸습니다. 결국 그 신은 화살을 피해 다니는데 영겁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화살의 이름은 바로 험담입니다.
유럽인의 율법해석서인 '미드라쉬'에는 험담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험담은 자그만치 세 사람을 죽인다. 말하는 자, 험담 대상자, 그리고 듣는 자!" 결국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험담, 꼭 해야 되겠습니까?

* 예화(3): 자신의 들보를 보라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집에서 일하던 두 종이 하루는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큰 소리가 들리기에 톨스토이가 나가서 보니까. 종 둘이서 서로에게 별명을 붙인 것이 감정을 상하게 하였던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좀 훌쪽하게 생긴 종이 뚱뚱하게 생긴 종에게 곰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곧 뚱뚱하게 생긴 종이 홀쪽하게 생긴 종에게 원숭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곰, 원숭이하면서 서로 티격티격 언쟁을 합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주인이 이런 말을 하면서 서로의 불화를 중재시켜 갔습니다. 그 홀쪽하게생 긴 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저 사람들 곰이라 불렀지, 너는 저 사람이 곰이기 때문에 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다. 네 마음 속에 곰과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을 곰이라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곰이란 별명을 가진 뚱뚱한 종에게는 "너가 저 사람을 원숭이라고 불렀지, 저 사람이 원숭이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네겐 원숭이처럼 보여진 게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던져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믿음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 하나님의 세계로 더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사람을 보느냐에 따라서 헐뜯을수도 있고 그를 격려할 수도 있고, 그를 일깨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예화(4): 비난의 힘

모간 블레이즈라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이 있다. 나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국가, 그리고 어떤 조직도 파괴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을 파멸 시킬 수 있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고,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더럽다. 나는 바다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으며,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비난이다.”
현대 사회의 비난은 말 또는 글을 넘어서 인터넷으로, 방송으로 퍼져 나갑니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비난을 사용하고, 자신이 내뱉은 비난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는 잊지 말아야 할 책임이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무책임하게 내뱉은 비난의 한마디, 그것은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홍정길 목사 | 남서울은혜교회

* 예화(5): 비판을 진주로

바다 밑 모래 바닥에서 조개가 숨을 쉴 때,잘못하여 모래알이 조개의 몸 속에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약한 살 속에 거칠고 딱딱한 모래알이 박히면 그 조개는 살을 가르는 통증을 없애려고 자기 몸의 진액을 짜내어 끊임없이 모래 알을 에워싸고 또 에워싸고 인고의 세월을 보냅니다. 이렇게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기고 나면 그 조개 속의 모래는 영롱한 색채를 내는 아름다운 진주가 됩니다. 그러나 조개의 몸 속에 들어온 모든 모래가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모래알 때문에 생긴 모진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는 조개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비판받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비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아무 것도 아닌 인물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비판을 통해 성숙해지고 비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역사를 체험하며 모래를 진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4. 찬송: (350장) 나의 죄를 정케하사

1. 나의 죄를 정케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2. 내게 부어 주시려고 은혜 예비하신 주 그 은혜로 채워 주사 능력있게 합소서
3. 죄의 짐을 풀어주신 주의 능력 크도다 나를 피로 사신 예수 내맘속에 옵소서
4.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사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후렴]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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